고석규 시선 초판본
고석규의 시, 1950년대의 질문.
해방이 되고 공산주의가 들어오자 의사였던 아버지는 단신 월남한다.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두고 그도 내려왔지만 아버지는 찾을 수 없었다. 전쟁이 났고 국군에 자원입대했는데 전쟁터에서 군의관으로 종군하던 아버지를 만난다.
고석규(高錫圭)는 1932년 9월 7일 함경남도에서 태어났다. 부산대학교를 졸업했고, 1958년 3월 국어국문학과 강사로 발령을 받았는데, 4월 19일에 죽었다. 26세였다. 그의 시에서는 1950년대 한반도의 역사에 몸이 묶인 인간 의식의 질문이 들린다.
이것이 세계인가?
江
어느 날 나는 江으로 갔다. 江에는 爆彈에 맞아 물속에 뛰
어든 아주 낭자한 아이들의 주검이 이리저리 떠가고 있었다.
물살이 어울리면 그들도 한데 어울리고 물살이 갈라지면
그들도 다른 물살을 타고 저만침 갈라져 갔다. 나는 그때가
八月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나무에선 樹脂가 흐르고 火藥에 쓰러진 雜草들이
소리를 치며 옆으로 자랐다. 불붙는 地帶가 하늘로 부우옇게
맞서는 西쪽 江畔에는 구리빛처럼 氣盡한 女人들이 수없이
달려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가리울 길 없는 衣裳들을 날리
며 한결같이 피 묻은 손을 들어
‘야오−’
‘야오−’
높은 餘韻 속에 합하여 사라져 가는 저들의 이름을 내가
듣는 것이었다. 神이 차지할 마지막 自由에 스쳐 나리는 軟
粉紅 길을 눈 감고 내가 그리는 것이었다.
‘야오−’
‘야오−’
이제는 아주 보이지 않게 떠나간 하직을 차라리 우는 것이
아니라, 먼 나라 紅寶色 그물 속으로 생생한 고기와 같이 찾
아가는 하많은 저들의 希望을 불러 보는 것이었다.
목소리 메인 空間의 말할 수 없는 鼓動에 사로잡혀 나도
몇 번이나 아름다운 歡呼에 손을 저었다.
銀비 내리는 구름 속까지 江은 구비쳐 내리기만 하고 노
을에서는 바닷녘에 가지런히 당도하여 돌아 부르는 아이들
의 고운 목청이 이제는 다시 물살을 타고 저만침 울려오는 것
이었다.
산란한 곡조로 그 소리는 바람 속에서도 연연히 들리었다.
<<초판본 고석규 시선>>, 고석규 지음, 하상일 옮김, 21~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