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겨울여행 11. 루쉰의 얼음 계곡
그곳에는 죽은 불, 얼어 죽은 불이 있었다
꿈 속의 기억이긴 하지만 그는 얼음 산과 얼음 계곡에 다녀왔다고 한다. 그곳에서 만난 것은 죽은 불, 얼어 죽은 불이었다. 손을 대자 그 찬 냉기는 손가락을 태웠다. 오늘 우리의 행선지는 얼음 계곡, 안내자의 이름은 루쉰이다. 1925년을 전후해 중국 대륙은 얼음의 산과 계곡이 된다. 제국주의의 냉기는 중국혼의 불꽃을 동사시킨다. 우리가 오늘 즐기게 될 여행의 백미는 여기부터 시작된다. 그는 어떻게 죽은 불을 살려냈을까?
<죽은 불>
나는 꿈속에서 얼음산 사이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얼음산인데, 위로는 차가운 하늘에 닿았고 하늘에는 고기비늘을 겹쳐 놓은 듯 언 구름이 가득 차 있었다. 산기슭에는 얼음 나무숲이 있었는데, 그 가지나 잎은 송백(松柏)과 비슷했다. 모두가 얼음처럼 차갑고 창백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얼음 계곡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상하 사방이 차가운 얼음으로 창백했다. 이 창백한 얼음 위로, 무수한 붉은 그림자가 산호(珊瑚) 그물망처럼 얽혀 있었다. 고개를 숙여 발아래를 보니 불꽃이 있었다.
그것은 죽은 불이었다. 한창 타는 모양을 하고 있었으나 흔들거리지 않고 전체가 산호수(珊瑚樹)처럼 얼어붙어 있었으며, 끄트머리에는 검은 연기까지 달라붙어 있었다. 화택(火宅)에서 나오자마자 얼어붙은 것 같았다. 이리하여 죽은 불은 사방의 얼음벽에 반사되고 다시 역으로 반사되어 무수한 그림자를 이루며 얼음 계곡을 붉은 산호 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하하하!
어릴 적 나는 쾌속선이 가르는 파도나 용광로가 뿜어내는 불꽃 보기를 좋아했다. 보는 것을 좋아할 뿐 아니라, 자세히 살펴보고 싶어 했다. 아쉽게도 그것들은 시시각각으로 변해 일정한 모양이 없었다. 아무리 살펴보고 또 보아도 일정한 인상이 남지 않았다.
죽은 불이여, 이제 먼저 너를 얻게 되었구나!
내가 죽은 불을 주워 들고 자세히 살펴보려는 찰나에 그 냉기가 내 손가락을 태웠다. 그러나 꾹 참고 그것을 호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얼음 계곡 사방이 삽시간에 완전히 창백해졌다. 나는 한편으로 얼음 계곡을 빠져나올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다.
내 몸에서 검은 연기가 한 줄기 피어나더니 실뱀같이 솟아올랐다. 얼음 계곡 사방에 다시 붉은 불꽃이 흐르고 불바다가 나를 감싸는 듯했다. 내가 고개를 숙이고 보니, 죽은 불이 다시 타기 시작해 내 옷을 태워서 구멍 내고 얼음 위로 흘러 나가고 있었다.
“어이, 벗이여! 그대는 그대의 열기로 나를 깨어나게 해 주었어.” 그가 말했다.
나는 황급히 답례를 하고 그의 이름을 물었다.
“나는 전에 사람에게서 얼음 계곡에 버려져서 말이야.” 그는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말했다. “나를 버린 자는 일찌감치 멸망해 없어졌어. 나는 하마터면 얼어 죽을 뻔했지. 그대가 열기를 줘서 다시 타오르게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얼마 못 가 멸망했을 거야.”
“그대가 깨어나서 나를 기쁘게 해 주었네. 마침 얼음 계곡을 나갈 방도를 궁리하고 있던 참이야. 나는 그대를 데리고 나가서 얼어붙는 일 없이 영원히 탈 수 있게 해 주고 싶군.”
“아냐, 아냐! 그러면 난 다 타 버려.”
“다 타 버리면 안타까운걸. 그럼 당신이 여기에 남도록 해 주지.”
“아냐, 아냐! 그럼 난 얼어 죽게 돼!”
“그럼 어떻게 할 건가?”
“그런데 그대 자신은 어떻게 하려고?” 그는 반문했다.
“말하지 않았나, 나는 얼음 계곡을 나가고 싶다고….”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타 버리겠네!”
그는 갑자기 붉은 혜성(彗星)처럼 뛰어오르더니, 나와 더불어서 얼음 계곡을 뛰쳐나갔다. 갑자기 커다란 돌 수레가 달려오더니 나를 바퀴로 깔아뭉갰다. 그러나 나는 죽기 전 그 수레가 얼음 계곡으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하하! 그대들은 이제 죽은 불은 만날 수 없어.” 나는 마치 이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던 것처럼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루쉰 단편집 <<들풀>>에 수록된 작품 <죽은 불>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