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측술 천줄읽기
늦었지만 고맙다. 지만지 국내 최초 출간 고전 12. <<추측술>>
확률이 시작되었다
인생은 도박인가, 수학인가? 주사위를 굴려 뭐가 나올지 알 수 없다면 도박이고 알 수 있다면 수학이다. 대답은 이렇다. 한 두 번 굴려서 뭐가 나올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수없이 굴려서 뭐가 나올 것인지는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짧게 사는 인간에게 인생은 도박이고 길게 사는 인간에게 그것은 수학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짧고 긴 것인가? 자신의 선택이다. 이런 주장은 자코브 베르누이의 책 <<추측술>>에서 시작되었다. 1680년대에 그는 왜, 어떻게 이런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을까? 옮긴이 조재근에게 확률과 베르누이와 책에 대해 묻는다.
<<추측술>>은 어떤 책인가?
확률이라는 것을 새로운 수학 이론의 주인공으로 연구한 최초의 책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1654년 파스칼과 페르마가 편지로 도박 문제를 수학적으로 풀기 시작한 후 1680년대에 베르누이가 ≪추측술≫을 쓰기 시작하면서 확률에 대한 연구는 크게 도약했다. 이 책에는 그때까지 이루어진 기댓값(expectation)이나 조합(combination)에 대한 연구가 베르누이 나름의 해석과 함께 체계적으로 들어 있다. 특히 확률을 처음으로 정의한 제4부에서 그는 수학사 최초의 극한 이론인 ‘큰수의 약한 법칙(weak law of large numbers)’을 제시하고 증명한다.
1680년에 쓴 책인가?
그때 시작해서 발표는 1713년에 이루어졌다.
세상에 어떻게 소개되었나?
원전은 라틴어로 썼다. 영어로 번역된 것이 2006년이다. 학술적,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일반화 되는데 300년이 걸린 셈이다.
300년 동안 뭘했나?
부분적으로만 번역되었다. 확률론 연구의 수준이 아주 낮았던 18세기 초에 나온 책이다. 후세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없는 내용도 책 속에 많이 들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완역은 늦어졌지만 후세 사람들에게 필요해 보이는 부분, 특히 제4부는 그 전에 이미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 책을 발췌한 이유는?
서양에서 부분 번역했던 것과 같은 이유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내용은 과감하게 덜어내고 베르누이의 핵심 이론만을 번역했다.
라틴어 번역이 아니라 영어 중역이다. 부득이하게 영어 번역으로부터 중역했으나 라틴어 원전의 페이지 수를 같이 기록해 독자들을 배려했다.
지만지의 <<추측술>>은 지금 여기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큰 수의 법칙’은 수학에서 처음으로 나온 극한정리다. 확률을 공부할 때나 일상적으로도 자주 만나게 되는 기본 개념이 처음 등장한다. 이것이 어떤 모습으로 등장했고 어떻게 증명되었는지 우리말로 직접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중요한 변화다.
제4부 제1장 어떤 것의 확실성, 확률, 필연성, 우연성에 대한 몇 가지 예비적인 설명
어떤 것의 확실성이란 그 자체로서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혹은 우리들과의 관계 속에서 주관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확실성이란 단지 무엇이 현재나 미래에 존재한다는 것이 진실한가를 뜻할 뿐이다. 주관적으로 보았을 때 확실성은 이러한 진실성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정도를 뜻한다.
태양 아래 모든 것은 본원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최고의 확실성을 가졌거나, 갖고 있거나, 가질 것이다. 이는 현재와 과거의 사건에 대해 명백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지금 존재하거나 과거에 존재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지금 존재하지 않거나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미래의 사건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비록 불가피한 필연성에 의한 것이 아니더라도 신의 뜻에 따라 예견되거나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당연히 미래에 존재해야 한다. 만일 미래에 있어야 할 사건이 미래에 일어난다는 것이 확실하지 않다고 해보자. [페이지 211] 그렇다면 가장 높으신 창조주의 전지전능함을 모두가 찬양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미래 사건의 확실성이 어떻게 제2차적 원인들이 우연히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것과 배치되지 않을 수 있는가라고 물을 수 있는데 그 문제는 여기서 우리가 거론할 주제를 벗어난 문제이다.
다음으로 우리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물이 갖는 주관적인 확실성은 모든 것들에 대해 한결같은 것이 아니고 커지거나 작아지는 식으로 다양하게 변한다. 계시나 이성, 감각, 경험, 직접적인 관찰 또는 다른 이유 때문에 그 존재나 그 일이 미래에 일어날 것에 대해 의심할 수 없는 것은 최고의 절대적인 확실성을 갖는다. 그렇지 않은 것들은 확률을 갖는데 그 확률이 크고 작음에 따라 우리는 현재, 미래 또는 과거에 그 사건의 발생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된다. 우리 마음속에서 그러한 사건들은 확률의 크기에 비례하는 덜 완전한 확실성을 갖게 된다.1)
확률은 확실성의 정도인데(probability is degree of cer- tainty) 확률과 확실성 사이의 차이란 부분과 전체와의 차이와 같다. 예를 들어 우리가 완전하고 절대적인 확실성을 ‘’라는 글자나 1이라는 숫자로 나타낸다고 하자. 만일 완전한 확실성이 5개의 부분 또는 확률로 이루어지는데 그 중 셋은 어떤 결과가 지금 혹은 미래에 일어나는 쪽, 둘은 일어나지 않는 쪽을 뒷받침한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그 사건은 또는 라는 확실성을 갖는다고 말할 것이다.
일상적인 언어에서는 어떤 사건의 확률이 확실성의 1/2보다 뚜렷이(markedly, notably) 큰 사건을 있음 직하다 (probable)고 하는데, 우리는 어떤 사건이 다른 사건보다 확실성이 더 크면 그 사건은 더 있음 직하다(more probable)고 부를 것이다. 내가 여기서 ‘뚜렷이’라고 한 까닭은 확률이 대략 확실성의 절반 정도인 사건은 의심스러운(doubtful) 혹은 미정(undecided, indefinite)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둘 다 단정적으로까지 있음 직하지는 않지만 1/5의 확실성을 가진 사건이 1/10의 확실성을 가진 사건보다 더 있음 직하다.
확실성이 없거나 무한히 작으면 그 사건은 불가능하다(impossible)고 하고 확실성이 매우 작더라도 그 사건은 가능하다(possible)고 한다. 따라서 1/20이나 1/30의 확실성을 갖는 사건은 가능한 사건이다.
1) 모두 4부로 이루어진 ≪추측술≫ 가운데 “확률”이라는 용어는 4부에 와서야 정의되고 본격적으로 논의된다. 즉 베르누이는 그가 이 책의 3장까지에서 다룬 우연에 따른 게임, 즉 도박에서 나오는 사건들에 대해서는 확률이라는 용어를 적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책의 제1부에서 보았듯이 하위헌스와 베르누이가 도박 문제를 다루는 핵심 키워드로 사용한 용어는 ‘기댓값’이었다. 4장의 설명과 더불어 베르누이가 예로 들고 있는 ‘어떤 사람이 범죄자일 확률’과 같은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확률이라는 용어를 어떤 사건이나 의견 등이 얼마나 확실한가(degree of certainty)를 나타내는 용어로 썼다. 즉 그는 인식론적인 의미로만 이 단어를 생각했던 것이다.
≪추측술≫, 자코브 베르누이 지음, 조재근 옮김, 119~1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