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신학의 여정 천줄읽기
신간 ≪러시아 신학의 여정≫
러시아 정신의 힘과 열정
책의 이름이 ≪러시아 신학의 여정≫이지만 ‘러시아 정신의 여정’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한국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플로롭스키는 신학자이기도 하지만 이미 철학자이고 슬라브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현대의 언어로 성서와 전승의 진리를 항상 재진술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혁신적이고 창의적”이며 그의 책은 “백과사전과도 같은 지식”과 “본질을 꿰뚫는 글쓰기”로 독자를 러시아 정신의 힘과 열정에 감전시키기 때문이다. 옮긴이 허선화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 책을 만나게 되었나?
러시아 유학 초기였다. 지도 교수가 소개한 책 가운데 한 권이었다. 너무나 생소한 내용이었으나 지은이의 힘과 열정에 감전이라도 된 듯 흥분되어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뭘 보았나?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던 러시아 정신의 실체에 나를 다가서게 해 주었다. 그가 다루는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번역은 어떻게 했나?
늘 번역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선 편역의 형태로나마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하게 되어 기쁘다. 1983년 파리 YMCA 출판사에서 간행한 ≪러시아 신학의 여정≫ 제3판을 원전으로 사용했다. 초판은 1937년에 역시 파리에서 간행되었다. 한국어로는 처음 번역되는 작품으로 시대의 분위기와 특징을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원전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2장 ‘서구와의 만남’의 내용이 다소 지엽적이라 판단해 번역하지 않았다. 다른 장은 원전의 분량과 비례해 균형을 이루도록 하고, 전체 원전 중 약 6분의 1을 발췌 번역했다. 지은이는 각 장에 작은 번호들을 기입했는데, 이 책은 번역에서 제외된 부분들이 있으므로 본문의 번호와 원전의 번호는 일치하지 않는다. 원전에서는 각 장의 작은 번호가 한 문단으로 되어 있으나 이 책에서는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임의로 문단을 구분했다. 원전에는 말줄임표가 매우 자주 등장하나 발췌 형태로 내용을 소개하는 본서에서는 불필요하다고 여겨 삭제했다. 주는 모두 옮긴이가 단 것으로 별도의 표시를 하지 않았다.
어떤 책인가?
고대 루시에서 20세기 초반까지의 러시아 정교 신학의 역사를 담고 있다.
중요한 책인가?
러시아 정교회사와 러시아 신학의 역사, 러시아 정신사 연구의 고전이다. 필적할 만한 저서는 찾기 힘들다.
왜 이제야 한국어판이 나왔을까?
영어 번역도 플로롭스키 생전에 시작되어 1987년에야 완결되었다.
왜 그렇게 늦었을까?
1937년에 출간되었으나 러시아의 망명 지성인들 사이에서 이 책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 책의 대부분이 소실되었던 것도 지연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번역에서 특별히 고려한 사항은?
저자의 의도와 문체를 살리기 위해 의역을 자제했다. 시대의 특징과 지적 분위기를 전달하고 저자의 일관된 비평 관점을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 책이 한국 독자에게 무엇을 전할 것인가?
러시아 정교회와 그 신학의 역사를 일별할 수 있다. 국가와 교회의 관계, 이 세상에서 교회의 정체성과 존재 의미, 사명에 대한 귀중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가톨릭, 개신교와 구별되는 정교회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허선화다. 고려대학교 대학원 노어노문학과에서 도스토옙스키를 전공으로 택해 도스토옙스키의 마지막 대작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과 성서의 상호 텍스트성에 관한 석사 논문을 썼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유학 가서 러시아문학연구소, 푸시킨 연구소라고도 하는데 그곳에서 베틀롭스카야의 지도를 받아 도스토옙스키 미학의 여러 문제들을 정교회 콘텍스트 속에서 연구한 박사 논문을 썼다. 귀국해서 고려대학교와 부산대학교에서 러시아 문학과 역사를 강의한다.
앞으로는?
계속해서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 나타난 기독교 주제를 연구할 생각이다. 그를 통해 문학과 신학, 심리학의 통합 연구가 목표다.
——본문 117∼121쪽
지난 세기의 러시아 인텔리겐치아의 모든 역사는 종교의 위기의 징후 아래서 흘러갔다. 당시 러시아에서 발생한 위기의 종교적 의미와 성격은 도스토옙스키(Достоевский, 1821∼1881)가 밝히고 제시했다. 그의 개인적 경험과 예술적 통찰력은 창작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자기 시대의 비밀에 이름을 붙일 줄 알았고 당시 아직 말해지지 않은 종교적인 우수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도스토옙스키는 당시의 러시아의 경험 전체가 갖는 의미를 파악하고자 노력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사사로운 일상의 일들과 사건들이 얽힌 가운데서 어떻게 인간의 최후 운명이 결정되는지를 관조했다. 그는 인간의 개성을 그 ‘경험적 성격’ 또는 보이는 원인과 결과의 유희 속에서가 아니라 존재의 비밀스러운 흐름이 결합되고 흩어지는, ‘이성으로 포착될 수 없는’ 심연 속에서 연구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을 그 문제성 속에서, 다시 말하면 자유 속에서 연구했다.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한데 오직 ‘문제’를 통해서만 자유가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작품들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거나 자신의 정신적인 경험을 ‘객관화하지’만은 않는다. 그에게는 한 명이 아닌 많은 주인공이 있다. 그리고 각각의 주인공은 얼굴(또는 형상)일 뿐 아니라 목소리이기도 하다. 매우 일찍부터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의 자유가 갖는 비밀스러운 이율배반을 보았다. 인간 삶의 모든 의미와 기쁨은 바로 자유, 의지적인 자유, 인간의 이 ‘자의지’에 있었다. 심지어 겸손과 순종도 오직 ‘자의지’를 통해, 그리고 자기 부인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의 이 ‘자의지’는 너무 자주 자기 파괴로 돌변해 버리지 않는가? 그것은 도스토옙스키의 가장 친밀한 주제였다. 그는 자유가 다른 사람들에게 강제 또는 압제가 되어 버릴 때, 자유나 자의지의 비극적인 충돌 또는 교차를 보여 줄 뿐 아니라 자유의 가장 무서운 자기 파괴도 보여 준다. 자신을 스스로 정의하고 긍정하는 고집은 인간을 전통과 환경으로부터 단절시키고 그럼으로써 그를 무력화한다. 이런 무토양주의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정신적인 위험을 발견했다. 고독과 고립 속에는 현실과의 단절이라는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고독한 자유는 사로잡힘으로 변해 버리고, 몽상가는 자기 몽상의 포로가 되어 버린다. 도스토옙스키는 공허한 자유가 어떻게 정열 또는 사상의 노예로 변해 버리는지를 보여 준다. 그리고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자는 그 스스로가 파멸한다. 바로 여기에 라스콜리니코프의 비밀, ‘나폴레옹의 비밀’이 있는 것이다. 자유는 사랑을 통해서만 행사될 수 있고, 사랑은 오직 자유 속에서만 가능하다. 부자유한 사랑은 정열 속에서 탄생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강제가 되어 버린다. 바로 여기에 도스토옙스키의 종합을 향한 열쇠가 놓여 있었다. 도스토옙스키는 부자유한 사랑의 이 이율배반적인 변증법을 두려울 정도의 통찰력을 가지고 묘사했다. 대심문관은 바로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 이웃을 향한 이러한 부자유한 사랑의 희생자인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마지막 종합은 교회에 대한 증언이었다.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는 사회적 이상으로서의 교회라는 도스토옙스키의 중심 사상을 바르게 정의했다. 자유는 오직 사랑과 형제애를 통해서만 완전히 실현될 수 있다. 바로 여기에 소보르노스티의 비밀,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애와 같은 사랑으로서의 교회의 비밀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형제애와 같은 사랑을 갈망하는 당시 휴머니즘적인 형제애의 추구에 대한 내적 반향이었다. 그의 진단과 결론은, 오직 교회와 그리스도 안에서만 사람들은 진실로 형제가 될 수 있으며,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모든 강제와 사로잡힘의 위험이 벗겨진다는 것이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인간은 자신의 이웃에 대해 위험해지기를 멈출 수 있다. 단지 호감과 동정만으로는 형제애가 되기에 부족하다. 인간을 그저 인간으로서 사랑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유가 아닌 우연성 속에서 인간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위험한 것은 인간을 그 이상적인 형상 속에서 사랑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거짓된 이상이 살아 있는 인간을 모욕하고 그를 몽상으로써 목 조르며 상상해 낸 사상으로 속박하는 위험성이 숨어 있다. 형제애에 대한 휴머니즘적인 몽상으로부터 도스토옙스키는 사회의 ‘유기적인’ 이론으로 옮겨 간다. 도스토옙스키가 ‘대지주의’를 이데올로기로서 고백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의 예술 창작에서 이 ‘대지’와 ‘몽상’에 대한 테마가 주된 것이 된다. ‘대지주의’는 본원적인 총체성으로의 회귀, 총체적인 삶의 이상과 과제였다. 모든 존재에는, 특히 인간의 실존에는 어떤 분열이 존재한다. 인간은 고립된다. 이것이 도스토옙스키를 가장 불안하게 했던 것이었다. 그는 매우 신속하게 경험의 총체성만으로는 아직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감정의 총체성뿐 아니라 신앙으로 돌아가야 했다. 도스토옙스키의 모든 주된 소설들은 바로 이것에 대한 것이다. 러시아 철학의 역사에 그가 포함되는 것은 철학 체계를 세웠기 때문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경험을 확장시키고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그가 모든 삶의 진실의 추구를 교회의 현실성으로 귀속시켰다는 것이다. 그의 살아 있는 형상들의 변증법 속에서 소보르노스티의 현실은 특히 명백한 것이 된다. 물론 모든 인간의 삶에서 종교적인 테마와 문제의 심연이 강력하게 묘사되었다. 이것은 특히 러시아의 1870년대의 동요된 상황에 시기적절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