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박성룡 시선
한국 시 신간, ≪초판본 박성룡 시선≫
너, 이런 가을을 보았나?
“가을”이라고 불러 버리면 이미 사라지고 없지만 참고 가만히 오래 기다리면 고요한 시간이 시작되고 우리는 그것을 만날 수 있다. 그 시간이 되면 꼭 찾아오는데 언제올까, 혹시 오지 않을까 생각하면 오지 않는다. 가을은 고요한 시간이다. 우리가 그러하고 싶듯이 이 계절도 그것을 원한다. 우리의 마음이 고요해질 때 고요함은 어김없이 약속을 지켰다.
處暑記
處暑 가까운 이 깊은 밤
天地를 울리던 우레 소리들도 이젠
마치 우리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걷히듯
먼 山脈의 등성이를 넘어가나 보다.
역시 나는 子正을 넘어
이 새벽의 나른한 時間까지는
고단한 꿈길을 참고 견뎌야만
처음으로 가을이 이 땅을 찾아오는
벌레 설레이는 소리라도 듣게 되나 보다.
어떤 것은 명주실같이 빛나는 시름을,
어떤 것은 재깍재깍 녹슨 가윗소리로,
어떤 것은 또 엷은 거미줄에라도 걸려
파닥거리는 시늉으로
들리게 마련이지만,
그것들은 벌써 어떤 곳에서는 깊은 우물을 이루기도 하고
손이 시릴 만큼 차가운 개울물 소리를
이루기도 했다.
處暑 가까운 이 깊은 밤
나는 아직은 깨어 있다가
저 우레 소리가 山脈을 넘고, 설레이는 벌레 소리가
江으로라도, 바다로라도, 다 흐르고 말면
그 맑은 아침에 비로소 잠이 들겠다.
세상이 琉璃盞같이 맑은
그 가을의 아침에 비로소
나는 잠이 들겠다.
≪초판본 박성룡 시선≫, 박성룡 지음, 차성연 엮음, 49∼50쪽
누구인가, 이 시인은?
박성룡이다. <풀잎>, <果木>으로 잘 알려진 전후 시인이다.
어떻게 이런 시를 쓰는가?
≪문학예술≫지에 이한직, 조병화 추천으로 등단하면서 당선 소감에 이렇게 썼다. “자칭 현대주의적인 공허에 뜬 방법만은 철저히 배격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활’이란 것을 중시하고 ‘작품’으로만 행동을 삼아야겠다. 왜냐하면 ‘작품’보다는 ‘생활’이 먼저요, ‘주의’보다는 또 ‘작품’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사조나 유파에 얽매이지 않고 구체와 본질을 추구했다.
그의 시는 무엇인가?
자연에 대한 동경이다.
왜?
언제나 자연을 관찰해 본질을 찾고자 했고, 자연과 교감하며 일체가 되려 했다.
시 작법은?
세련된 언어 감각으로 자연물 자체의 본질을 감각적으로 포착한다. 생경하고 독특한 느낌의 한자어를 적소에 배치해 감각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을 유지한다.
김우창의 평가는?
자연 대상들의 본질적인 형상을 포착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여 주는 시인이라 했다.
풀어 보자면?
<풀잎>에 그런 특징이 잘 나타나는데, 이 시에서 화자는 대상과 교감하며 대상에 의해 변화되고 마침내 대상과 일체가 된다. “너의 이름이/ 부드러워서” “나의 성대가 부드러”울 수 있다고 했다. 풀잎의 부드러움을 예찬하는 게 주된 내용이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 부드러움이 화자인 ‘나’에게로 전이되는 것이다.
언제부터 시를 썼나?
1955년 전남 광주에서 김정옥, 이일, 박이문, 윤삼하, 민재식, 박봉우 등과 동인지 ≪영도≫를 발간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어 ≪문학예술≫에 <郊外>로 이한직의 추천을 받았고, 1956년 동명의 다른 작품 <교외>가 이한직의 2회 추천을 받았으며, <花甁情景>이 조병화의 최종 추천을 받아 문단에 정식 데뷔한다.
동기가 있을 텐데?
신문사에 근무하던 어느 해 가을, 지방에 출장을 가게 되어 은사와 함께 산에 올랐는데 산비탈에 과수원이 있었다고 한다. 은사는 나무에 열린 과일들을 보며 “참 신기하단 말야. 저렇게 토박한 땅에서 저런 과일이 열리다니…” 하고 우연히 한 마디를 했는데 그 한 마디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아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아무리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난다’고는 하지만, 요즘도 나는 가을날의 과일 나무에 각종 과일들이 주렁주렁 열리는 것을 볼 때마다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시작 노트≫에 쓰고 있다.
그의 자세는?
하나의 대상에서 온 우주의 이치를 발견하려 했다. ‘과목’을 통해 대지에 과목을 열리게 하는 자연의 섭리를 드러내는 방식이 박성룡 고유의 시 작법이다.
어떻게 나타나는가?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기보다는 이미지 중심의 간접 화법을 쓴다. 하지만 이번 선집에 실린 <백자를 노래함> 연작에는 민족정신에 대한 탐구가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다.
<백자를 노래함>은 어떤 작품인가?
관념적이고 추상적일 수 있는 전통적 정서와 민족정신을 ‘백자’라는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서정적인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이제는 클리셰가 돼 버린 묘사와 상징을 사용하면서도 세련된 감각을 유지하고 있어 박성룡의 시 세계를 되돌아볼 때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대표작은?
<과목>이다. 박성룡 시의 원천인 자연에 대한 외경이 더함도 덜함도 없이 단정하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다 갔나?
일제 말기인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전쟁 중에 습작기를 거쳤고, 1956년 정식으로 등단했다. 1960년대에 활발히 활동했으며, 2002년 작고하기까지 평생을 시와 함께했다.
한자어의 출현은?
어린 시절 백부의 권유로 서당에 다녔는데 그의 시에 흔히 보이는 독특한 한자어의 운용에 영향을 미쳤다.
기자 생활의 영향은?
28세부터 언론사 생활을 시작해 ≪서울신문≫ 편집국장까지 지냈다. 이 경험은 그의 시를 좀 더 현실 쪽으로 끌어당겼으며, 1990년대 초에 정년을 맞이하면서 그 감회를 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자연과 현실은 싸우지 않았을까?
늘 세상사에 초연하고자 했고 ‘자연’을 닮고자 했지만 현실 또한 저버릴 수 없었던 생애를 살았고 그러한 길항이 시에 새겨져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 시집을 엮은 차성연이다. 2010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한 문학평론가다. 같은 해에 <한국 근대문학의 만주 재현 양상 연구>로 경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왜 박성룡을 선택했는가?
인간의 정신을 자연 위에 두지 않는다. 겸허하게 그것을 바라보고 교감한다. 그의 낭만성과 서정성은 잔잔하고 긴 여운을 남긴다.
상단에 소개한 시는 ≪초판본 박성룡 시선≫, 박성룡 지음, 차성연 엮음, 49∼50쪽에서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