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벨룽겐
독일 희곡 신간, ≪니벨룽겐≫
믿음이 사랑만 못한 까닭
신의의 남자 지크프리트는 불의의 남자 하겐에 의해 쓰러진다. 하겐은 왕과 씨족에 대한 신의를 지키기 위해 그를 살해하고 그의 아내 크림힐트는 아내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혈족을 모두 살해한다. 독일 최고의 비극은 신의에 의한 비극으로 종결된다. 믿음은 배신을 낳고 배신은 복수를 낳고 복수는 비극을 낳는다. 그곳에 아직 용서와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다.
≪니벨룽겐의 노래≫와는 다른 작품인가?
그것은 중세 영웅서사시다. 이 작품은 그것을 극화한 독일 비극이다.
그것은 어떤 지위에 있나?
괴테의 ≪파우스트≫와 함께 가장 중요한 독일의 문화유산으로 꼽힌다.
이 작품의 구성은?
‘각질 피부의 지크프리트’, ‘지크프리트의 죽음’, ‘크림힐트의 복수’ 3부작이다. 크림힐트의 복수로 부르군트족이 모두 멸망하는 3부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내용을 요약하면?
부르군트의 군터 왕은 이젠란트의 여왕 브룬힐트가 자신의 아내가 되길 원한다. 그러나 그녀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영웅 지크프리트만이 그녀를 제압할 수 있다. 그는 마법 외투로 몸을 숨긴 채 그녀를 제압해 군터의 부인으로 만든다. 그 대가로 군터의 누이동생 크림힐트를 아내로 맞는다. 브룬힐트와 크림힐트가 서열 싸움에 빠져들고 그 결과 비밀이 밝혀진다. 브룬힐트는 모욕감을 느끼고 군터에게 지크프리트를 죽이라고 요구한다. 지크프리트는 군터의 부하 하겐에 의해 살해된다. 크림힐트는 남편을 잃게 되자 훈족의 왕 에첼과 결혼한다. 지크프리트의 복수를 단행하고, 하겐과 군터, 크림힐트까지 모두 죽는다.
비극적 요소는?
크림힐트의 변화다. 소심하고 수줍음 많던 크림힐트가 혈육의 죽음을 명령하는 것은 물론 직접 칼로 원수의 목을 베는 무서운 복수의 화신으로 변한다. 헤벨은 여기서 비극적 요소를 포착했다.
니벨룽겐은 무엇인가?
원래는 황금 보물을 소유한 난쟁이족 이름이다. 나중에 하겐이 지크프리트를 살해하고 보물을 가져감으로써 부르군트족이 니벨룽겐으로 불리게 되었다.
게르만 신화는 익숙하지 않은데, 그리스·로마 신화와는 어떤 차이가 있나?
게르만의 영웅 전설처럼 투쟁과 죽음의 이미지가 강하다. 공동체의 건설이 아니라, 일찍이 예견된 파멸을 문제 삼고 있다.
헤벨이 ≪니벨룽겐의 노래≫를 극의 소재로 선택한 이유는?
소재에 매료되었다. ≪니벨룽겐의 노래≫를 극적인 요소가 풍부한 위대한 민족 서사시로 보았다. 노래의 작가를 철저한 극작가로 본 것이다. 때문에 이 서사시를 자신이 더 살을 붙이지 않고 극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메시지는?
신화 위에 순수한 인간 비극을 얹으려 했다.
어떤 방법으로?
게르만 태고의 서사시에 숨은 극적 요소를 새로운 형식으로 바꾸어 순수한 인간적 비극으로 만들었다.
신화가 역사로 발전하는가?
인간적 모티프와 역사 발전에 의해 상징적이고 신화적인 것이 물러나는 것이 드라마의 내적 중심이다.
노래는 어떻게 희곡으로 발전하는가?
≪니벨룽겐의 노래≫는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르게 수용되었다. 독일 제국이 건설될 때까지는 다정다감하지만 남편에 대한 신의로 무서운 복수의 화신이 되는 크림힐트가 중심인물로 다루어졌다. 보불전쟁 승리로 민족주의와 자본주의가 전성기를 맞이한 시대에는 게르만 영웅 지크프리트에 대한 열광이 두드러졌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부터는 하겐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되었다. 이 작품은 마지막 수용 단계를 선취하며 하겐을 재조명한다. 비교적 원전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나, 소재의 일부를 변화시키면서 인간적인 비극을 크게 부각했다.
지크프리트는 어떤 남자인가?
게르만의 영웅이자 신의의 남자다. 브룬힐트와 신화적 결속을 무시하고 인간적인 사랑에 끌려 크림힐트와 결혼함으로써 비극을 예고한다.
크림힐트는 어떤 여자인가?
하겐의 음모에 빠져 지크프리트 몸의 비밀을 말해 버리는 바람에 지크프리트를 죽게 만든다. 그 뒤 훈족의 왕 에첼과 두 번째 결혼식을 올린 후 지크프리트의 복수에 나선다. 수줍음 많고 다정한 여인이었지만 훈족 병사를 시켜 혈육인 군터의 목을 치게 하고, 하겐이 지니고 있던 지크프리트의 검으로 직접 그의 목을 치는 잔인함을 보여 준다.
하겐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그에 대한 평가절상이 이 3부작의 특징이다. 예리한 통찰력을 지닌 영웅적 인물인 동시에 정치적으로 교활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그의 목표는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세력 확장이나 존속이 아니라, 영웅적인 규범 세계를 지키는 것이다.
희곡이 되면서 달라진 내용은?
불필요한 장면이나 조역을 삭제해 사건 전개에 집중하고, 경과 시간을 단축했다. 3부에서는 뤼데거, 에첼, 디트리히가 주요 인물로 부상하고 있다. 헤벨은 디트리히의 마지막 결전 역시 원전과 다르게 구성했다.
발표 당시 작품에 대한 반응은?
관객뿐만 아니라 평론가들도 가장 성공적인 작품으로 평가했다. 작가 사후에도 한동안 가장 많이 공연되는 희곡이었고 제3제국 시기에 두 번째 전성기를 맞았다.
독일은 왜 이 작품에 열광했을까?
국가를 위한 개인의 헌신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헤벨의 의도와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이 드라마는 1848년 혁명이 좌절된 이후의 시대정신에 부응했다.
독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와 연결되었는가?
드라마에 나타난 민족적 요소 때문에 민족주의와 민족사회주의 이론가들은 헤벨을 자신들의 세계관의 고지자 내지 선구자로 여겼다. 그 결과 1970년대에는 쾰른(1973)과 바젤(1979)에서 단 두 차례 공연만 기록되어 있다.
≪니벨룽겐의 노래≫를 개작한 다른 극작품들과는 어떤 차이가 보이는가?
헤벨은 1834년 발표된 라우파흐의 ≪니벨룽겐의 보물≫과 1857년 발표된 가이벨의 ≪브룬힐트≫를 실패작으로 평했다.
근거가 뭔가?
라우파흐는 신화를 다룰 줄 몰랐고, 가이벨은 신화를 파괴했다는 것이다.
자신은 뭐가 달랐나?
원전에 보다 충실한 독일 민족의 비극을 쓰고자 했다.
헤벨은 누구인가?
19세기 독일의 가장 위대한 극작가이며 근대 비극의 선구자라고 알려져 있다. 베를린에 그의 이름을 건 극장도 있다.
희곡 작가인가?
서정시로도 동시대의 가장 중요한 시인으로 꼽힌다.
시의 주제는?
자아와 세계에 대한 성찰, 삶에 대한 욕구와 죽음에 대한 동경의 대비, 개체와 우주의 합일이 특징이다.
산문은 어떤가?
비극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소설, 밤과 꿈 등 낭만주의 주제를 다룬 괴기소설들이 있지만 드라마와 서정시만큼 인정받지는 못했다.
어떻게 살았나?
1813년 독일 북부 홀슈타인 지방 베셀부렌에서 가난한 미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생이 궁핍과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그는 완강하고 지칠 줄 모르는 기인이었다.
얼마나 힘들게 살았나?
뮌헨에서 독학으로 그리스비극, 셰익스피어, 실러의 희곡들을 공부하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경제적 사정도 여의치 않아, 걸어서 뉘른베르크, 밤베르크, 하노버, 괴팅겐을 경유해 함부르크로 돌아간다. 3월의 혹독한 꽃샘추위에 자신의 개와 단둘이었다. 헤벨은 후에, 폐렴에 걸려 사경을 헤매기도 했던 이 18일간의 여정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간으로 회상한다.
작품에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그의 드라마는 고난에 찬 생애에서 비롯된 염세적, 허무주의적 경향과 자아의 고독이 특징이다. 자아와 세계의 관계, 감정의 위기, 양성 간의 투쟁, 영적 고독을 주요 주제로 다뤘다.
비극에 집착한 것이 개인사 때문일까?
드라마는 예술의 최고 형식이고, 비극은 다시 드라마의 최고 형식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드라마의 법칙이 세계 의지의 기초가 되고, 역사는 커다란 위기 때마다 항상 비극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그의 비극의 핵심은?
개인의 의지와 세계의 의지, 개인의 법칙과 세계의 법칙 사이에 벌어지는 이원론적 대립이다.
사상 배경은?
판트라기스무스, 곧 범비극론이다.
어떤 사상인가?
모든 인간 존재와 현실은 비극적인 법칙에 지배를 받고 있어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갈등에 빠져들게 되어 있다고 보는 사상이다. 즉 인간 개개인의 자아실현 의지는 필연적으로 전체의 의지, 또는 세계의 의지와 충돌을 일으키게 되며, 드라마 주인공의 죄 역시 자아의 독단적인 실현과 확장 의지에서 비롯된다. 이렇게 개인의 의지가 세계의 의지와 충돌을 일으키면서 비극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니벨룽겐≫의 직접적 창작 계기는?
배우인 아내 크리스티네가 라우파흐의 ≪니벨룽겐의 보물≫에서 크림힐트를 연기하는 것을 보고 결심했다. 작가가 이 서사시를 접하고 드라마를 쓸 결심을 하기까지 고뇌한 시간들이 첫 장 “나의 아내 크리스티네 헨리에테에게”라는 헌시에 드러난다.
아내가 헤벨의 작품에도 직접 출연했나?
1861년 바이마르에서 전 3부작이 공연되었는데, 5월 16일의 1, 2부 공연에서 브룬힐트 역을, 18일의 3부에서는 크림힐트 역을 맡았다.
공연 기록은?
1861년 1월 31일, 3부작의 1, 2부가 딩겔슈테트의 연출로 작가가 참석한 가운데 바이마르에서 초연되었다. 가장 최근에는 2010년 예나에서 공연되었다.
당신은 왜 이 작품을 골랐나?
독일 민족의 민족성을 이해할 수 있다. 교양 필독서다.
작품에서 나타나는 독일의 민족 특성은 무엇인가?
강인성, 신의와 충성심, 국가를 위한 개인의 헌신, 정조 관념이 줄거리가 아니라 등장인물의 성격에서 나타난다. 온화함과 분노, 부드러운 수줍음과 완고한 고집, 불의와 신의, 사랑의 감정과 용맹성이 대비되고 있다.
이 작품의 독법을 권한다면?
드라마에서 결정적인 투쟁의 모티프는 권력 쟁취가 아니라 신의, 곧 믿음의 문제다. 신의의 남자 지크프리트는 음험하게 배후에서 공격하는 불의의 남자 하겐에 의해 쓰러진다. 하겐은 왕과 씨족에 대한 신의로 지크프리트를 살해하고, 크림힐트는 아내의 신의로 혈족을 모두 살해해 남편의 죽음에 복수한다.
번역의 난점은?
인물들의 위계질서, 복잡한 인간관계, 줄거리의 인과관계, 원전의 시행 맞추기 등이 어려웠다.
놓쳐서는 안 될 한 장면을 꼽는다면?
3부작 마지막 장면의 에첼의 대사는 번역을 마치고 나서도 계속 귓전에서 맴돈다.
에첼이제 내가 심판하고, 복수하고, 또다시 시냇물을
피바다로 이끌어야겠지. 그러나 난 싫다.
더 이상 할 수 없다. 짐이 너무 무겁구나.
디트리히, 나의 왕관을 물려받으시오.
이 세상을 당신 등에 지고 계속 끌어가시오.
디트리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의 이름으로!
(≪니벨룽겐≫, 프리드리히 헤벨 지음, 김충남 옮김, 485쪽)
이 장면의 의미는?
절대적인 파멸의 필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역사는 파괴를 거쳐 항상 새로운, 의미 있는 세계로 계속 나아간다는 변증법적 해석이다. ≪니벨룽겐≫에서는 신화의 상태가 이교와 무신앙의 단계를 거쳐 기독교 시대의 시작으로 옮겨 가고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충남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본대학교에서 수학했고 1981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봉직했다. 지금은 독일어과 명예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