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한가운데서 / 미망인들
희곡, 폴란드 문학 신간 ≪바다 한가운데서 / 미망인들≫
죽음이 춤을 춘다.
므로제크에게 죽음은 춤으로 다가온다. 춤은 생명의 역동성이고 죽음은 생명의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모순이다. 그러나 생명은 언제나 죽음과 함께 시작되고 죽음에 의해 빛을 얻으며 죽음과 경쟁하면서 성장한다. 죽음의 다른 이름이 생명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바다 한가운데서>는 어떤 작품인가?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현대인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교묘하게 포착해 낸 작품이다.
스토리라인은?
바다 한가운데 뗏목이 떠 있고 그 위에 세 조난자 뚱뚱이, 보통이, 홀쭉이가 있다. 식량이 떨어져 굶어죽을 위기에 처한다. 뚱뚱이와 보통이가 결합해 홀쭉이를 잡아먹으려고 음모를 꾸민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주인공들은 생존 문제가 걸린 극한 상황에서도 ‘문화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메시지는?
관습과 제도의 굴레에 갇혀 형식과 겉치레에 집착하는 현대인의 모순을 고발한다.
공연 현황은?
폴란드에서는 이미 수십 차례 무대에 올랐다. 매해 여름에 개최되는 ‘아우구스트 여름 연극제’에서는 ‘마야크 예술극단’이 1998년부터 정기적으로 호숫가에 뗏목을 띄워 놓고 공연해 왔다. 독일, 프랑스, 아르헨티나, 우크라이나, 한국에서 현지 극단이 자국어로 공연해 호평 받았다.
<미망인들>은?
엇갈린 욕망의 파국과 그로테스크한 죽음을 그린다. 죽음을 통해 역설적으로 생의 의미를 고찰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어떤 이야기인가?
카페에서 두 개의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하나는 남편을 잃은 두 미망인이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던 중, 상대방의 남편이 각각 자신의 숨겨 놓은 애인이었음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다. 다른 하나는 역시 우연히 마주친 두 남자가 ‘가운데 테이블’과 그 자리에 앉은 ‘묘령의 아름다운 여인’을 차지하려고 다투다가 어이없는 종말을 맞는 이야기다.
두 에피소드의 연관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에피소드는 공통으로 등장하는 웨이터와 ‘묘령의 여인’을 매개로 유기적으로 결합된다.
그의 장기인 수학 개념과 기하학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두 명의 미망인과 그들의 남편이자 애인인 두 남자, 그들을 지켜보는 웨이터와 두 미망인의 질투의 대상인 제3의 여인이 자리 바꾸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무대 위 ‘대칭구도(Symmetry)’를 부각한다.
공연은?
1992년 바르샤바의 현대극단에 의해 초연되었다. 이후 폴란드에서 자주 상연되는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다. 한국에서는 2005년과 2008년에 공연되었다.
놓칠 수 없는 한 장면은?
<미망인들>에서 제3의 미망인이 남자 1, 남자 2와 볼레로를 추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에 웨이터에게 춤을 추자고 손을 내미는 장면이다.
남자 2, 다시 왼쪽 벽으로 돌아간다.
남자 2, 얼마 후 벽에서 몸을 일으켜 춤추는 커플에게 다가간다. 왼손을 들어 숙녀의 허리에 놓여 있는 남자 1의 오른손을 억지로 떼어 내고, 오른손으로는 숙녀를 감싸 안는다.
남자 2와 숙녀, 함께 춤을 춘다.
남자 1, 남자 2의 목덜미를 휘어잡고 바닥으로 쓰러뜨린다.
남자 2, 바닥에 넘어진다.
남자 1, 쓰러진 남자 2의 몸 위에 양다리를 벌리고 걸터앉는다. 그리고 무릎을 꿇은 채 왼손으로 남자 2의 목을 움켜쥔다.
갑자기 음악이 멈춘다.
숙녀, 무대의 안쪽, 어둠 속으로 물러선다. 그리고는 객석을 향해 몸을 돌리고,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다.
(중략)
웨이터, 오른쪽으로 걸어간다. 다시 전과 똑같은 음악이 흐른다. 웨이터, 그 자리에 멈춰 선다. 왼쪽에서 숙녀가 걸어 들어온다. 웨이터, 천천히 숙녀를 향해 몸을 돌린다. 숙녀가 웨이터를 향해 손을 내민다. 웨이터, 그녀를 향해 깊숙이 머리를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한다.
≪바다 한가운데서/미망인들≫, <미망인들>, 스와보미르 므로제크 지음, 최성은 옮김, 136∼145쪽에서 발췌
왜 이 장면인가?
여기서 춤은 죽음을 향해 서서히 다가서는 은밀하고 치명적인 몸짓이다.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고찰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죽음의 춤(Dance Macabre)인가?
그렇다. 중세 우화나 미술에서 발견되는 모티브다. 페스트가 퍼지면서 다가올 재앙을 경고할 목적으로 마임이나 행위 예술을 통해 교회 집회에서 행한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춤이란?
생명의 그릇인 몸을 움직여 표현하는 행위다. 생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몸부림이자 삶의 역동성을 드러내는 예술이다. 죽음의 순간을 춤이라는 이미지에 싣는 것은 역설의 미학이다.
죽음의 춤은 이 극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
모티브가 된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죽을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닌 인간의 최후를 포착해, 그 처절한 몸짓을 괴기스럽고 즉흥적인 춤의 향연으로 형상한다. 연극 말미에 관능적인 볼레로 선율에 맞춰 춤을 추는 미망인 3과 두 남자, 그리고 욕망의 절정에 다다른 남자들이 맞이하는 허무한 최후에 삶의 유한성과 덧없음에 대한 므로제크 특유의 냉소적 유머가 담겨 있다. 배우들의 몸짓과 무대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떠올리면서 읽기를 권한다.
스와보미르 므로제크는 누구인가?
폴란드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이며 시나리오 작가다.
어떻게 살았나?
1930년 6월 29일 출생했다. 폴란드 명문 야기엘론스키대학교 건축 및 미술학부를 졸업하고 일간지에 풍자 칼럼과 시사만화를 기고하며 기자로 활동하던 중, 칼럼과 단편소설을 모은 첫 창작집 ≪코끼리≫를 1957년에 출간하면서 문단에 데뷔한다. 사회주의 체제의 억압에 항거해 1963년 망명을 선택했다. 이후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독일, 멕시코 등을 떠돌았다.
망명 시기 작품 활동은?
<행복한 사건>(1971), <이민자들>(1974), <여우 사냥>(1977), <대사>(1981), <여름날>(1983), <계약서>(1986), <초상화>(1987), <미망인들>(1992), <크림반도의 사랑>(1993) 등을 발표했다.
이후에는?
1996년, 33년 만에 고국 폴란드로 돌아가 크라쿠프에 정착했다가 2008년 다시 프랑스의 니스로 이주했다.
극작가로서 활동은?
1958년에 <경찰>, 1961년에 <바다 한가운데서>와 <스트립쇼>를 잇달아 발표하면서 극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생애가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보이지 않는 시스템에 의해 철저하게 조종당하고, 억압당하며 부조리한 행동을 일삼는 등장인물들”은 바로 작가가 체험한 사회주의 체제의 모순에 대한 저항의식에서 탄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작품 경향은?
블랙 코미디, 정치 풍자극, 부조리극으로 정의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현대인의 모순된 욕망과 통속적인 감성,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그의 위상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드라마 작가’, ‘폴란드 부조리극의 아버지’라 불린다. 폴란드가 가장 사랑하는 드라마 작가다.
폴란드에서만 인정받는 작가인가?
폴란드 연극평론가 얀 코트는 그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비트카치는 너무 일찍 이 세상에 왔고, 곰브로비치 또한 한발 앞서 왔다. 하지만 므로제크는 처음으로 타이밍을 맞춰 ‘제 시기’에 등장한 작가다. 폴란드의 시계뿐만 아니라 서유럽의 시계에서도.”
어떻게 보편성을 얻었나?
폴란드라는 지역성에 얽매이지 않고 문화적 특수성, 지역적 한계를 초월해 보편적이고 범세계적인 정서를 추구했다. 이런 그의 작품이 전 세계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했고, 지역을 초월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평가는?
폴란드 평단은 그를 가리켜 “리얼리스트이면서, 동시에 지극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소재를 부조리한 아이러니의 경지까지 무궁무진하게 확장시켜 나가는 놀라운 능력을 지닌 작가”라고 극찬한다. 또한 많은 평론가들이 작품이 가진 놀라운 흡인력과 친화력을 높이 평가한다.
흡인력과 친화력의 발원지는 어디인가?
대작부터 소품까지 모든 작품이 관객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면서 놀라운 교감을 만들어 내는데, 이것이 바로 므로제크 작품의 위대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평론가들은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귀에 쏙쏙 들어오는 명료한 대사로 구사하고 있다는 점, 작품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감수성과 유연성을 작품의 성공 비결로 꼽는다.
한국에서는 어떤가?
‘슬라보미르 므로체크’라는 국적 불명의 이름으로 <스트립쇼(Strip-tease)>와 <탱고(Tango)>가 여러 차례 공연되었다.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이 책이 출간된 이후 <미망인들>과 <바다 한가운데서>도 몇 차례 공연되었다.
두 편의 희곡을 함께 엮은 이유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더불어 동유럽을 강타한 정치 체제의 변화가 작가의 창작에 어떤 경향을 끼쳤는지 살펴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어떤 정치체제를 말하는가?
<바다 한가운데서>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미망인들>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쓰였다. 서로 다른 정치 체제에서 탄생한 두 작품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최성은이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부지런히 폴란드 문학을 번역, 소개하고 있다.
폴란드, 므로제크와 인연은?
거리 곳곳에서 문인의 동상과 기념관을 만날 수 있는 나라, 오랜 외세의 점령 속에서도 문학을 구심점으로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 왔고, 그래서 문학을 무엇보다 사랑하는 나라인 폴란드를 ‘제2의 모국’으로 여기고 있다. 므로제크는 개인적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폴란드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