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악부/정악부
악부, 당나라, 고대 중국 시 신간 ≪신제악부(新題樂府) / 정악부(正樂府)≫
도토리 줍는 할머니, 슬프다.
산과 강이 구름으로 만나고 술과 달이 호수에서 하나 되는 시간은 멋있다. 우리가 아는 중국 시가 대개 이랬다.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되는 중국 시에는 그런 것이 없다. 다만 도토리 줍는 할머니 한 분이 서 있다. 그는 탄식한다. 다람쥐를 걱정하는 마음일까? 정호준은 그 까닭을 이렇게 말한다. “백성을 향한 시인의 따뜻한 애정과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 때문이다.”
어떤 책인가?
원진의 <신제악부> 12수와 피일휴의<정악부> 10수를 모은 책이다.
신제악부란?
원진이 지은 악부시다. 신악부라고도 한다. 원제는 <이 교서에게 창화한 신제악부 12수(和李校書新題樂府十二首)>다. 친구인 이신(李紳)의 시에 화답한 시다.
악부란?
한나라의 관청 ‘악부’에서 채집한 각 지방의 민가 또는 악부에서 작곡한 조정 연회나 행사 때 부르던 노래 가사를 말한다.
신악부와 악부의 차이가 뭔가?
신악부는 제목에 이전의 시제(詩題)를 사용하지 않고 작품의 내용을 반영한 새로운 시제를 사용하고 있다. 원래의 악부시는 시의 내용이 아니라 음악 곡조를 따라 제목을 붙였다.
노래 가사면 음악을 따라가나?
음악과 거의 상관없다.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사회시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사회시의 모습이 어떻게 나타나는가?
<호선을 추는 여인(胡旋女)>을 보자. 다음은 그 시의 일부다. 당 현종의 실정을 풍자하고 나라의 안위가 위급해진 것은 통치자의 무능에서 비롯되었다는 비판 의식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악부시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
망령된 신하가 이를 듣고 속으로 계획해,
임금의 마음을 현혹해서 임금의 눈이 어둡게 되었네.
임금의 말이 갈고리처럼 굽어졌다가도,
임금의 말이 화살과 같이 곧게 펴지네.
교태 부리며 임금의 맑은 그림자를 따라다니면서,
오묘한 온갖 춘앵전(春鶯囀)을 배우네.
임금의 힘을 빙자해 세상을 어지럽히니,
가로막고 두루 가리며 임금이 볼까 두려워하네.
천자의 기와 행차가 만리교에 있게 되어서야,
현종이 비로소 세상이 뒤집어졌다는 것을 깨닫네.
정신 나가 눈과 마음이 뒤집어진 사람에게 말하노니,
나라와 집안 모두 마땅히 함께 책임져야 하느니.
佞臣聞此心計迴, 惑亂君心君眼眩.
君言似曲屈如鉤, 君言好直舒爲箭.
巧隨淸影觸處行, 妙學春鶯百般囀.
傾天側地用君力, 抑塞周遮恐君見.
翠華南幸萬裏橋, 玄宗始悟坤維轉.
寄言旋目與旋心, 有國有家當共譴.
≪신제악부 / 정악부≫, 원진 / 피일휴 지음, 정호준 옮김, 42∼43쪽 <호선을 추는 여인(胡旋女)>에서
신악부 운동은 왜 일어났나?
안사의 난이 배경이다. 이로 인해 당 왕조가 쇠락하고 사회 모순이 점점 첨예해졌다. 문인들은 시를 통해 이러한 사회 병폐를 비판하고 백성의 질고를 반영해 폐단을 개혁하고자 했다.
누가 주도했나?
백거이, 원진, 이신 등이다.
누구의 영향을 받았나?
두보다. 그는 악부시에서 이전의 시제(詩題)를 모방하는 데서 탈피해 ‘사건을 보고 제목을 짓는(卽事名篇)’ 신악부체(新樂府體)를 만들었다. 두보의 유명한 작품인 <진도를 슬퍼함(悲陳陶)>·<곡강 가를 슬퍼함(哀江頭)>·<왕손을 슬퍼함(哀王孫)>·<병거의 노래(兵車行)>·<고운 사람의 노래(麗人行)> 등이 이에 속한다.
후대에 미친 영향은 어떤가?
현실을 비판하고 백성의 질고를 반영하는 사회시 계열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선 시대에도 악부시 계열의 시를 지어 현실을 비판한 시인들이 많이 있다.
원진은 어떤 사람인가?
백거이와 더불어 중당대 신악부 운동의 발기인이다. 현실을 비판하는 악부시 계열의 시를 많이 썼으며, 문학 성과가 우수한 대표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악부시만 쓴 것이 아니라 율시에도 많은 창작 성과가 있었으며, ≪앵앵전(鶯鶯傳)≫이라는 전기소설(傳奇小說)을 창작하기도 했다.
정악부는 뭔가?
신악부와 같다. 피일휴가 그냥 자신의 신악부시 이름을 정악부라 했을 뿐이다. 즉 원진은 12수, 피일휴는 10수의 신악부시를 각각 신제악부, 정악부라 이름 짓고 서문을 써서 그 창작 이유 등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이들에게 이런 시를 쓰게 했는가?
만당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피폐해져만 가는 백성의 모습과 조정에 대한 불만을 이 작품을 통해 직설적으로 비판하고자 했다.
한 작품을 추천한다면?
산 앞에는 잘 익은 벼가 있어,
자줏빛 이삭 내음이 사람들에게 스며드네.
잘 거둬 정성스레 찧으니,
한 알 한 알이 귀고리 옥 같네.
그것을 관청에 바치고 나니, 집에는 저장할 창고가 필요 없네.
어찌하여 한 섬이 넘는 곡식을,
겨우 다섯 말로 쳐 주는가!
교활한 관리는 형벌도 두려워하지 않고,
탐욕스런 관리들은 도둑질한 물건도 꺼리지 않네.
농사지을 때는 빚을 내어 짓고,
농사를 마치면 모두 관가의 창고로 들어가게 되네.
겨울부터 봄에 이르도록,
도토리로 주린 창자를 달래야 하네.
山前有熟稻, 紫穗襲人香.
細穫又精舂, 粒粒如玉璫.
持之納于官, 私室無倉廂.
如何一石餘, 只作五斗量.
狡吏不畏刑, 貪官不避贓.
農時作私債, 農畢歸官倉.
自冬及于春, 橡實誑饑腸.
≪신제악부 / 정악부≫, 원진 / 피일휴 지음, 정호준 옮김, 72∼73쪽 <도토리 줍는 노파의 탄식(橡媼嘆)>에서
추천 이유는?
가난한 백성에 대한 동정과 탐관오리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며 백성의 삶이 피폐하게 된 이유를 탐관오리의 학정에서 찾고 있다. 백성을 향한 시인의 따뜻한 애정과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을 드러내고 있는 좋은 작품이다.
피일휴의 생애는?
젊어서는 은거도 하고 각지를 유랑하기도 하며 현실 사회의 많은 것을 목도했다. 후에 진사과에 합격해 태상박사(太常博士)를 지내기도 했지만 황소(黃巢)의 난에 가담했다가 피살되었다.
문학사에서 그의 위치는?
백거이와 원진의 시가 이론을 계승하고 발전시켰다. 시가의 미학적 작용과 풍자적 기능을 중시해 만당의 어지러운 사회와 백성들의 고난을 다수의 악부시에서 노래했다.
왜 이 책을 골라 옮기게 되었나?
당대 지식인들이 백성의 질고와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며 고뇌하는 사실주의 시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 독자들은 중국시라 하면 산수전원시나 서정시만 생각하곤 한다. 실제로는 현실에서 고뇌하는 악부시 계열의 시도 적지 않다. 이를 알리고 싶었다. 중국 시의 다양한 모습을 전하고 싶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정호준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박사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연구소 초빙연구원으로 있으면서 한국외국어대학교, 평택대학교, 호서대학교, 강남대학교에서 중국 문학과 중국어를 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