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로
타이완 희곡 신간 ≪피에로(紅鼻者)≫
절대 돌아오지 않을 거야
물에 빠진 동료를 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물에 뛰어드는 것이다.
화급한 순간 주인공 피에로가 목숨을 걸로 바다로 뛰어들자
그를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또 가장 깊이 사랑한 여인 왕페이페이는
구경하는 모든 사람에게 외친다.
그는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은 버리면서 동료는 왜 구하려 했을까?
부조리다.
1970년대 타이완이 그랬다. 한국처럼.
허메이리: 당신은 왜 또 자화자찬하는 거예요?
추다웨이: 자화자찬? 누가 자화자찬한다는 겁니까?
허메이리: 어젯밤 일을 잊으신 건 아니겠죠?
추다웨이: 어젯밤이 어쨌다고?
허메이리: 피에로가 당신에게 한 말을 잊었나요?
추다웨이: 어느 피에로?
허메이리: 서커스단에 있는.
추다웨이: 아, 아, 그 서커스단 어릿광대!
허메이리: 바로 그 사람이에요.
추다웨이: 그 사람이 뭔데? 떠돌이 서커스단 어릿광대일 뿐입니다. 뭘 알겠습니까?
허메이리: 그 사람이 말한 게 틀렸나요?
추다웨이: 그 사람이 뭐라고 했는지 벌써 잊어버렸습니다. 그 사람 이야기는 다시는 꺼내지 마세요. 알겠죠?
≪피에로≫, 야오이웨이 지음, 조득창 옮김, 139∼140쪽
어떤 장면인가?
작곡에 어려움을 겪던 추다웨이가 피에로의 도움으로 원하던 곡을 작곡하고는 금세 태도를 바꿔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리며 피에로를 깎아내리는 장면이다.
왜 하필 이 장면을 골라 보여 주나?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버리는 추다웨이의 모습에서 작가가 작품을 창작하게 된 동기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안면 몰수가 주요 모티브란 말인가?
곤란에 처한 사람들이 신께 간구하며 어떤 희생이든 치르겠다고 맹세하다가도 곤란에서 벗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전과 같은 태도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작가는 어린 시절에 의아심을 품곤 했다고 한다. 거기에 착안해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피에로(紅鼻者)≫는 어떤 작품인가?
타이완에서 모더니즘 희곡 발전을 촉진시킨 희곡이다. 타이완 희곡으로는 최초로 중국에서 공연, 출판되었다.
타이완 희곡이 중국에 소개되었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양국은 오랫동안 반목했고 1970년대 말에야 교류를 시작했다. 이 작품이 양국 연극 교류에 가교를 놓았다는 뜻이다. 중국에서 2004년 출판된 ≪20세기 중국 희곡 명작≫에 타이완 희곡으로는 유일하게 수록됐다.
무슨 이야기인가?
기상 악화로 길이 막히는 바람에 삼류 호텔에 발이 묶인 손님들 이야기다. 그들의 곤란한 사정이 교차로 조명되고 나면 서커스단이 등장해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피에로가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자 마법처럼 상황이 반전되고, 손님들은 곤란한 처지에서 벗어난다. 축제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피에로의 과거를 아는 한 여인이 등장한다.
누구인가?
피에로의 전부인 왕페이페이다. 피에로는 어릴 때는 부모가, 커서는 부인이 애지중지 모신 덕분에 본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편하게 살았다. 그러나 안락한 삶에 회의를 느껴 자신의 가치, 삶의 목적을 찾아 집을 떠난다. 교사, 세일즈맨, 기자, 노점상을 거쳐 서커스단에 정착했다.
직업을 자주 바꾼 이유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했다. 피에로 분장을 하면서 겨우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그 후로 피에로 가면을 벗지 않게 되었다.
가면으로 피에로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본모습을 숨김으로써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가면을 쓴 상태에서만 자유를 느낄 수 있었고,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자유와 용기를 얻으면서 자신의 가치와 삶의 목적을 발견한다.
피에로가 찾은 삶의 목적은 무엇이었나?
남을 위해 희생할 때 느끼는 즐거움이다. 그는 이 깨달음을 실천하기 위해 동료를 구하고자 물에 뛰어든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데도.
주제는 무엇인가?
타인을 위한 희생이다. 창작 당시는 타이완이 빠른 속도로 경제 발전을 이루면서 금전만능주의가 팽배해지던 때였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부패나 악행도 서슴지 않는 행태가 잦아졌다. 작가는 이런 사회 부조리를 꼬집고자 피에로를 통해 ‘타인을 위한 희생’ 정신을 보여 주고자 했다.
구성의 특징은?
서양 고전극에서 말하는 ‘삼일치 법칙’을 따르고 있다. 극중 시간은 24시간을 넘지 않으며, 장소 또한 ‘펑라이 호텔’ 로비로 한정된다.
고전주의 희곡인가?
아니다. 사실적인 스토리에 모더니즘 요소를 가미했다. 모더니즘 희곡이다. 표현주의, 상징주의, 초현실주의 요소가 풍부하다. 리얼리즘만으로는 현대인의 정서를 작품에 온전히 담아 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초연에서 작품명이 ‘快樂的人’으로 소개된 이유는?
1970년 자오치빈(趙琦彬) 연출로 초연되었다. 원문 제목이 ‘紅鼻者’인데 ‘紅’ 자가 공산당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당국에서 공연을 금지했다. 결국 제목을 ‘즐거운 사람(快樂的人)’으로 바꿔서 공연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 현실이 어느 정도 심각했나?
당국에 잡혀간 진보 인사 중에는 그와 친분 있는 작가도 있었다. 특히 타이완 진보 작가인 천잉전(陳映眞)이 정치범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 사건은 작가에게도 충격이었다. 야오이웨이 역시 공산당과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누명을 쓰고 체포되어 7개월 간 감옥에 구금되었다.
불안한 정치 현실은 작품에서 어떤 장면으로 표현되나?
동료를 구하기 위해 피에로가 바다에 뛰어든다. 왕페이페이는 ‘그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외친다.
야오이웨이는 누구인가?
타이완 극작가 겸 문예 이론가다. 대학에서 금융학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은행에서 근무했다. 독학으로 서양 미학, 철학, 문학, 심리학, 언어학을 독파하고 중국 전통문화와 현대 문화를 연구해 대학에 출강했다. 퇴임 이후에는 오늘날 국립대북예술대학교 전신인 국립예술대학에 연극과를 창설, 1972년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후학 양성에 힘썼다.
타이완 연극계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은?
실험극의 선구자이자 현대연극의 대부라 불린다. 중국 전통에 서양 공연 예술을 접합해 중국 현대연극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1980년에 실험극전을 개최해 타이완에 소극장 운동을 촉진한 장본인이다. 1984년까지 다섯 차례 개최된 실험극전을 통해 타이완에 많은 소극장이 생겨났고, 젊은 연극인도 다수 배출되었다.
실험극전과 소극장 운동이 무엇인가?
실험극전은 당시 정체되어 있던 타이완 연극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창작의 자유’를 모토로 개최된 연극제다. 소극장 운동은 300석 규모의 작은 극장에서 대극장의 상업주의 연극에 반대하며 반기성, 반상업을 목표로 실험적이고 새로운 연극들을 선보인 움직임이다.
한국 연극과 어떤 점이 같고 다른가?
역사가 비슷하다. 일제강점기에 서양 근대극을 수용한 점이라든가, 친일극을 창작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1960년대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서양 모더니즘 계열 희곡을 수용한 점 등이 비슷하다. 그러나 전통 소재 운용에서는 타이완이 낫다.
당신은 누구인가?
조득창이다. 북경사범대학에서 중문학 박사 학위를 받고 협성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