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애 작품집 초판본
독립 만세 7. 강경애의 <소곰>
식민지 여성의 리얼리즘
강경애가 그리는 장면은 섬뜩하다. 그러나 그게 현실이었다. 다른 여성 작가들이 일상에 번민하고 사랑에 탐닉할 때 그는 여러 겹 질곡에 묶여 살던 식민지 여성의 참혹한 현실을 치열하게 증언한다. 그때 빈농의 딸이란 운명이 안겨준 계급의식과 젠더의식은 그의 리얼리즘이 부패하지 않게 하는 소금이었다.
그들은 정신없이 시가를 벗어나 해란 강변으로 나왔다. 강물이 앞을 막으니 그들은 우뚝 섰다. 어대로 가나? 하는 생각이 분에 흩어졌던 그들의 생각을 집중시켰다. 그들은 눈을 들었다. 해는 누엿누엿 서산에 걸렸는데 저 멀리 보이는 마을 앞에 둘러선 버들 숲은 흡사히도 그들이 살던 싼드거우(三頭溝) 앞에 가로놓였던 그 숲과도 같았다. 그곳에는 아직도 남편과 봉식이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눈을 부비치고 보았을 때 봉염의 어머니는 털석 주저앉았다. 그리고 소리 높이 흐르는 강물을 드려다보며 그만 죽고 말까 하였다. 동시에 이때까지 거짓으로만 들리던 봉식의 죽음이 새삼스럽게 더 걱정이 되며 가슴이 쪼개지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 말은 믿고 싶지 않았다. 봉식이는 똑똑한 아이다. 그러한 아이가 애비 원수인 공산당에 들었을 리가 없을 듯하였다.
그것은 자기 모녀를 내보내랴는 거짓말이다.
“죽일 년. 그년이 내 아들을 공산당이라구. 에이 이 년놈들 벼락 맞을라. 누구를 공산당이래… 너의 놈들이 그러고 뒈질 때가 있을라. 누구를 공산당이래.”
봉염의 어머니는 시가를 돌아보며 이를 북북 갈았다. 시가에는 수없는 벽돌집이 다닥다닥 붙어 앉았다.
저렇게 많은 집이 있건만 지금 그들은 몸담아 있을 곳도 없어 이리 쫓기어 나오는 생각을 하니 기가 꽉 찼다. 그러고 저자들은 모두가 팡둥 같은 그런 무서운 인간들이 사는 것 같아 보였다. 이렇게 원망스러우면서도 이리로 나오는 사람만 보이면 행여 팡둥이가 나를 찾아 나오는가 하여 가슴이 뜨끔해지군 하였다.
어스름 황혼이 그들을 둘러쌀 때에 그들은 더욱 난처하였다. 봉염이는 훌쩍훌쩍 울면서
“오늘 밤은 어대서 자누? 어머이.”
하였다. 그는 순간에 팡둥 집으로 달려 들어가서 모주리 칼로 찔러 죽이고 자기들도 죽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어났다. 그래서 그는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그의 앞으로 끝없이 걸어 나간 대철로를 바라보았을 때 소식 모르는 봉식이가 어미를 찾아 이 길로 터벅터벅 걸어올 때가 있지 않으려나… 그러고 또다시 팡둥의 말과 같이 아주 죽어서 다시는 만나지 못하려나 하는 의문에 그는 소리쳐 울고 싶었다. 속 시원이 국자가를 가서 봉식의 소식을 알아볼까. 그러자 그 후에 참말이라면 모주리 죽이고 나도 죽자! 이렇게 결심하고 어정어정 걸었다.
그날 밤 그들은 해란 강변에 있는 중국인 집 헛깐에서 자게 되었다. 그것도 모녀가 사정을 하고 내일 시장에 내다 팔 시금치나물과 파 등을 다듬어주고서 승낙을 받았다. 봉염의 어머니는 밤이 깊어갈사록 배가 작고 아펐다. 그는 애가 나오려나 하고 직각하면서 봉염이가 잠들기를 고대하였다. 그러나 잠이 많던 봉염이도 오늘은 잠들지 않고 팡둥 부처를 원망하였다. 그러고 이때까지 몸 아끼지 않고 일해준 것이 분하다고 종알종알하였다.
“용애는 잘 있는지. 우리 학교는 학생이 많은지.”
잠꼬대 비슷이 봉염이는 지꺼리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만다.
그의 어머니는 한숨을 후 쉬며 어서 봉염이가 잠든 틈을 타서 나오면 얼른 죽여서 해란 강에 띠우리라 결심하였다.
그러고 배를 꾹꾹 눌렀다.
바람 소리가 후루루 나더니 비방울이 후두두 떨어진다.
그는 되기 딴은 잘되었다 하였다. 이런 비 오는 밤에 아무도 몰래 애를 낳아서 죽이면 누가 알랴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봉염의 몸을 어루만지며 낡은 옷으로 그의 머리까지 푹 씨어놨다. 비는 출출 새기 시작하였다.
그는 봉염이가 비에 젖었을까 하야 가만이 그를 옮겨 누이고 자기가 비 새는 곳으로 누었다. 비는 차츰 기세를 더하야 좍좍 퍼부었다. 그리고 그의 몸도 점점 더 아펐다.
그는 봉염이가 깰세라 하야 입술을 깨물고 신음 소리를 밖에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신음 소리가 코구멍을 뚫고 불길같이 확확 내달았다. 그러고 비방울은 그의 머리카락을 타고 목덜미로 입술로 새어 흐른다.
“어머이!”
봉염이는 벌떡 일어나서 어머니를 더듬었다.
“에그 척척해.”
어머니의 몸을 만지는 그는 정신이 펄적 들었다. 그러고 비가 오는 것을 알았다.
“비가 새네. 아이그 어떻거나.”
딸의 말소리도 이전 들리지 않고 딸이 들을세라 조심하던 신음 소리도 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으흥으흥” 하면서 몸부림쳤다. 머리로 벽을 쾅쾅 받다가도 시원하지 않아서 손으로 머리를 감아쥐고 오짝오짝 뜯었다.
봉염이는 어머니를 흔들다가 흔들다가 그만 “흑흑” 하고 울었다.
어머니는 봉염이를 밀치며 “응응” 하고 힘을 썼다− 한참 후에 “으악!” 하는 애기 울음소리가 들였다. 봉염이는 어머니 곁으로 다가붙으며
“애기?”
하고 부르짖었다.
어머니는 얼른 애기를 더듬어 그의 목을 꼭 쥐려 하였다. 그 순간 두 눈이 확근 달며 파란 불꽃이 쌍으로 내달았다. 그리고 전신을 통하야 짜르르 흐르는 모성애! 그는 자기의 숨이 턱 마키며 쥐려는 손끝에 맥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땀을 낙수처럼 흘리며 비켜 누어버렸다. 그리고
“아이구!”
하고 소리쳐 울었다.
<소곰>(1934년 작), <<강경애 작품집>>, 김경수 해설, 100~1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