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인터뷰와 질적 내용 분석
직관의 정석
2009년 7월, 우상수와 정수정은 질병체험 내러티브 데이터베이스 구축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영국의 옥스퍼드대학교 연구팀이 상당한 성과를 거둔 분야였지만 출발부터 난관에 봉착한다. 질병체험자를 인터뷰해 1차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2차 데이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질적 방법론이 필요한데 도움이 되는 연구문헌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만난 것이 요헨 글래저와 그리트 라우델의 <<Experteninterviews und qualitative Inhaltsanalyse>> 3판이었다. 첩첩산중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심마니를 만난 듯 앞길이 환해지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데이터 확보 방법과 평가 방법에 대해 연구의 전체 과정을 통해 세심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상수에게 연구와 책 그리고 번역에 대해 물었다.
전문가란 누구를 가리키나?
이 책에서 전문가란 ‘특정한 지식 및 경험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 또는 ‘연구하고자 하는 사회적 상황과 과정에 대한 지식, 경험을 인터뷰로 제공하는 모든 사람’을 말한다. 이를테면 특정한 질병을 경험한 사람도 여기서는 해당 질병에 대한 전문가에 포함 된다.
전문가 인터뷰라고 뭐가 달라야 하나?
달라야 한다. 전문가 인터뷰는 사회과학적으로 답을 찾기 위해 사회적 상황이나 과정을 재구성하는 연구에 이용된다. 따라서 해당 사안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는 대상에게 묻는 것이다. 연구목적에 부합하는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인터뷰 대상자에게 일정한 단서가 제공되는 비표준화된 인터뷰다. 이 점이 다르다.
전문가 인터뷰의 평가 방식으로 질적 내용분석이 베스트 메소드인가?
그렇다. 질적 내용분석은 원전 텍스트에 담겨 있는 정보베이스를 토대로 연구 과제에 대한 답을 얻는 데 필요한 정보들을 추출하여 분석하는 방법이다. 이 방식의 핵심은 추출이다. 질적 내용분석은 규칙에 따른 방법이면서 동시에 체계적인 방법이다. 유의미한 정보와 범주체계가 불일치되는 상황에서도 범주나 특성이 제거되지 않고 보완된다. 전문가 인터뷰의 평가를 위해서는 질적 내용분석이 그 어떤 질적 평가방식보다 우수하다.
지금 진행 중인 연구 프로젝트는?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기초연구과제 융·복합 연구다. 특정 질병을 체험한 사람의 이야기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야기라는 도구로 인터뷰 대상자의 질병 체험을 제1차 데이터와 제2차 데이터로 확보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제1차 데이터는 각 학문 영역 연구자료로서 학술적인 목적으로 활용되고, 분석단계를 거쳐 가공된 제2차 데이터는 인터넷을 통해 일반에 공개해 사회·공익적 목적으로 활용된다.
어려움이 많겠다.
물론이다. 나는 선행 연구와 기존 이론의 토대 위에서 지식의 빈틈을 찾고 전체 지식코퍼스에 기여하는 연구에 익숙했던 인문학자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성격이 다르다. 생생한 자료를 중심으로 사회적 사안을 규명하는 질적 연구 프로세스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선행 연구 모델이 없지 않았지만 실제 연구에서는 연구자의 창의력과 상호 토론에 의존해야 했다. 마치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 나가는 기분이었다. 질적 연구 분야의 재구성 연구에서 연구과제의 특성에 맞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세부 연구 방법론이 없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였다.
이 책이 그렇게 좋았나?
질적 연구 방법론에 관련된 문헌들은 연구 방법 이론만을 소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실제 연구 과정을 다루었다고 해도 직관에 의존하고 체계적이지 못했다. 이 책은 실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체득한 연구 경험을 체계적이고 매우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연구의 지침서로 손색이 없었다. 인터뷰로 확보된 자료의 학술적 활용은 물론이고 최종 결과를 일반인들로 하여금 직접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해야 하는 우리의 프로젝트 방법론 정립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정말 반가웠다.
어떤 점이 강한가?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겠다. 재구성 연구를 위해 처음 만나는 인터뷰대상자를 상대로 어떻게 인터뷰를 해야 하는지, 유의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돌발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세심하게 조언한다. 이론적인 추론으로, 머리로 쓴 책이 아니다. 실제로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터득한 경험과 지혜를 기술한 책이다. 인터뷰와 분석에 조금이라도 경험이 있는 연구자라면 첫눈에 알 수 있다. 현장에서 큰 도움이 된다.
실제로 어떤 도움을 받았나?
이 책에서는 저자가 실행한 두 가지 연구 프로젝트를 시종일관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저자는 사례에 대한 실제 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들을 하나하나 이론화한다. 일부 문헌적 보충을 통해 글에 살을 붙이고 있지만 대부분의 글은 실제 연구 진행 과정에서 발생한 경험적 사항들이 뼈대를 구성하고 있다. 그 결과 실제 프로젝트의 각 단계에서 세부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살아있는 지침서가 되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프로젝트에서 행하는 인터뷰가 구체적으로 어느 갈래에 속하며 어떻게 규정되며 다른 인터뷰 방식과의 차이는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분석 방법 또한 근거이론에서 비롯된 코딩 방식과 무엇이 다르며 왜 그 방식이 적합한지에 대해 보다 분명한 방법론을 세울 수 있었다.
이 책이 질적 방법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어렵다. 하지만 직관에 의존했던 여러 방법론과 비교해 보다 규칙적이고 체계적인 질적 연구 방법으로서 활용가능성이 점차 확대될 것이다. 객관성과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한 지속적인 질적 방법론의 개발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저자가 무료로 공개한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를 실제로 이용했는가?
기존에 있던 소프트웨어로 프로젝트의 분석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저자가 제공한 프로그램을 실제 연구에 공식적으로 활용하진 못했다. 데이터 코딩이 목적이 아니라 데이터 내용 추출이 목적이라면 이 소프트웨어가 훨씬 유용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번역이 쉽지 않았을 텐데?
다양한 질적 연구 방법이 요구하는 연구 원칙을 질적 연구 방법론이 아직 준비하지 못한 듯하다. 이것은 사회과학적 연구 분야가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가 아닐까? 학술연구자가 복잡다기한 현대사회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연구의 학문 간 통섭이 절실하다. 나 자신이 인문과학적 방법론과 사회과학적 방법론의 장점을 통합하여 연구 프로젝트를 실행하려는 연구자다. 그러나 체계적 방법론의 부재로 어려움이 많다. 나만 그렇겠는가? 다른 연구자들을 돕고 국내 질적 연구 분야 발전에 기여하고 싶었다.
강의 교재로도 쓸 수 있을까?
이 책은 연구자뿐만 아니라 질적 연구에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기술되었다. 질적 연구 입문자의 지식 확장을 위해서 각 장의 말미에 유용한 참고문헌을 친절하게 제시하고 있으며 연습문제를 제공함으로써 각 장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항들에 대해 독자 스스로 정리해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독자는 재구성 연구에 대한 개념과 과정을 심도 있게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