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의 타이먼
타이먼: (황금을 손에 들고) 오, 세상 군왕들도 죽음으로 몰아넣는 사랑스러운 살인자, 부모 자식 사이도 갈라 놓는 다정한 패륜아, 신성한 결혼의 침상마저 더럽히는 달콤한 배신자야! 나라와 나라 사이를 피로 물들이는 용맹한 군신아! 살짝 붉힌 뺨과 뜨거운 입김으로 눈같이 차가운 처녀의 정절을 녹여 버리고 무릎을 벌리게 하는 영원불멸한 젊음의 구혼자야! 너 눈에 보이는 신이여! 물신이여! 너는 결코 합쳐질 수 없는 것들도 서로 입 맞추게 하고 어떤 부당한 목적도 너의 화려한 능변으로 치장해 결국은 이루고 마는구나. 오, 만지기만 하면 인간의 마음을 갈대처럼 흔들어 놓는 너 영혼의 시금석아! 네 노예인 인간이란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는 영원한 변절자다. 그러니 네 힘으로 그들을 멸망케 하라! 이 지상을 사람 아닌 짐승들의 제국이 되게 해라!
≪아테네의 타이먼≫,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강태경 옮김, 137쪽
타이먼이 누구인가?
아테네의 부호였다. 아낌없이 베풀어 한때 시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지금은 처지가 달라졌나?
빈털터리 신세다. 매일같이 연회를 열고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마련하는 데 엄청난 비용을 들였다. 빚독촉이 시작되기 전까지 자신의 재정 상태를 전혀 몰랐다.
빚까지 져 가며 베풀었단 말인가?
재산이 바닥을 드러내는데도 선물을 받으면 항상 그 이상으로 보답했다. 아테네에서 스파르타까지 이곳저곳에 있던 토지도 모두 나눠 주고 없었다. 부족해진 비용은 고리대금업자에게 빌렸다.
그렇게까지 베푼 이유가 무엇인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넘어 인류 형제애에 바탕을 둔 나눔의 윤리를 실천하고자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형제처럼 서로 소유를 나눌 수 있다면 그보다 큰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형제처럼 서로의 소유를 나누는 ‘완벽한 세상’을 상상한 것이다.
완벽한 세상은 실현되는가?
타이먼은 그동안 아낌 없이 베푼 결과가 나타나리라 기대했다. 친구들에게 하인을 보내 처지를 알리고 도움을 구한다. 하나같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외면한다.
타이먼은 이제 어떻게 하나?
믿었던 이들이 모두 자신의 어려움을 모른 척하자 깊은 절망에 빠진다. 마지막으로 모두를 초대해 큰 연회를 베푼다.
무슨 속셈인가?
외면했던 이들이 연회 소식을 듣고는 찾아온다. 그가 사실 파산한 게 아니라 자신들을 시험해 본 게 아닐까 생각한다. 다시 아첨을 늘어놓는 이들에게 그는 물을 끼얹으며 저주를 퍼붓는다. “썩어 빠진 아테네는 와르르 무너져라! 지금부터 이 타이먼은 인류 전체를 증오하며 살겠다!”
인간 혐오자가 되기로 한 것인가?
이후 숲 속 동굴에 은거하며 “모든 종류의 인간, 전 인류를 향한 증오심”을 폭발시킨다. 누구에게나 아낌없이 베풀던 박애주의자가 “인간을 혐오하는 자”로 변모한 것이다. 그 중심에는 배금주의에 대한 질타도 자리 잡고 있다.
배금주의가 당시의 사회문제였는가?
그렇다. 당시 영국은 초기 교환경제에서 본격적인 상업 자본주의로 넘어가던 때였다. 타이먼의 몰락은 이런 과도기적 상황의 병리적 징후라 할 수 있다.
어떤 것이 병리적 징후인가?
개인적 이윤 추구와 공동체 전체 복리 사이에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도덕적 경제’ 윤리가 급격히 무너졌다. 전통적인 공동체 정신을 대변하는 타이먼이 귀족과 거상들로 이루어진 원로원에 의해 추방당한 것은 도덕적 경제의 파탄을 표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추방당한 뒤엔 어떻게 지내나?
동굴에서 묻혀 있던 황금을 발견하지만 물신주의를 경계하며 도로 묻는다. 원로원에 불만을 품고 아테네를 공격하려던 알시바이어데스와 우연히 만난다. 그에게 군자금을 대 준다. 아테네를 위기에서 구해 달라는 원로원의 청도 거절한 채 두문불출한다. 알시바이어데스가 다시 그를 찾았을 때 그곳엔 그가 직접 쓴 묘비명만 남아 있었다.
묘비명엔 뭐라고 썼나?
“여기 나 타이먼이 잠들다. 살아서는 살아 있는 모든 인간을 증오했고 죽어서도 영원한 저주만을 남기노라. 그러니 내 무덤 앞에 그대의 발걸음을 멈추지 말라.” 최후까지도 인류에 대한 저주를 멈추지 않았다.
셰익스피어는 무엇을 보여 주려 했는가?
타이먼을 통해 ‘인간성의 양극단’을 구현하고자 했다. 그의 몰락에는 최상과 최악만을 찾는 ‘중용을 모르는 극단성’도 한몫했기 때문이다. 이 극이 타락한 세상에 대한 통렬한 풍자이기를 넘어서서 인간성의 깊은 탐구를 보여 주는 비극인 이유다.
당신은 누구인가?
강태경이다.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다.
2775호 | 2015년 10월 21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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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경이 옮긴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아테네의 타이먼(Timon of Athe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