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방사성 물질≫은 1903년 마리 퀴리가 파리대학 이학부에 제출한 박사 학위 논문이다. 그해 마리 퀴리는 서른여섯 살이었는데, 요즘 기준으로 치면 꽤 늦은 나이에 박사 논문을 제출한 셈이다. 하지만 그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마리 퀴리 개인의 박사논문이긴 하지만 ≪방사성 물질≫은 이후 여러 부분으로 확장될 방사능 연구의 틀을 세운 업적이라 할 수 있다.
우선 방사능(radioactivity)이라는 용어를 정립해 몇몇 물질에 국한되어 있던 것으로 보였던 현상에 보편성을 부여한 것이 중요한 업적이다. 마리 퀴리는 우라늄과 토륨 등의 화합물질에서 베크렐선이 나오는 것에 대해 방사능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것이 우라늄과 토륨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원자적 수준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동안 이루어졌던 방사성 물질의 연구 방법을 정립한 것도 이 연구의 중요한 업적이다. 마리 퀴리를 포함하여 당대의 연구자들에게 방사능이나 방사성 물질은 그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물질이었다. 방사능은 그 화학적, 물리적 특성을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였기 때문에 어떤 실험 도구를 써서 무슨 특성을 어떤 방법으로 조사할 것인지를 알아내는 것조차 막막했다. 마리 퀴리가 한 일은 바로 그 미지의 세계에서 방향을 잡아 주는 나침반과 거리를 재는 자를 제공해 준 것이다. 그 점을 잘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논문의 2장이다. 이 논문의 2장은 라듐이 새로운 화학 원소라는 것을 밝히는 데 초점이 놓여 있다. 이를 위해 마리 퀴리는 순수한 염화라듐을 정제하여 라듐의 원자량을 결정했다. 다량의 피치블렌드에서 강력한 방사능을 띠는 순수한 염화라듐을 정제해 내기 위해 마리 퀴리는 화학의 분별결정법과 방사능 측정법을 결합시켰다. 피치블렌드를 화학적으로 녹여 분별결정법으로 분류한 후에 그중에서 방사능이 강한 부분을 찾아내고, 이 물질을 다시 분별결정법으로 분류해서 방사능이 강한 부분을 찾아내는 방식을 수차례 반복해, 순수한 염화라듐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로부터 라듐의 원자량을 결정해 낸 것이다.
3장 또한 방사능 연구의 방법론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장이다. 이 장은 방사능 물질에서 방출되는 방사선의 특성을 탐구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3장의 묘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다발의 방사선을 확인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 당시 방사선을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전기장과 자기장에서 휘는 정도의 차이, 공기와 몇몇 물질에 대한 투과력의 차이 등을 통해 라듐에서 나오는 방사선에 세 종류의 광선이 섞여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고 이 세 광선에 그리스어 첫 순서대로 α선, β선, γ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광선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엑스선이나 음극선과는 어떤 관계인지 등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알아내는 과정의 막막함을 이해하게 되며 동시에 과학에서의 발견이라는 일이 갖는 위대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방사선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전기장과 자기장에서 광선의 굴절률을 조사하고 여러 물질에 대한 광선의 투과율을 조사하는 방법은 마리 퀴리의 방사선 연구 이전부터 개발되어 온 방법이다. 하지만 마리 퀴리의 이 논문은 그동안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던 연구까지 포괄해 방사선을 연구하는 방법을 정리해 낸 데 그 가치가 있다 할 수 있겠다.
200자평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이자 ‘최초’의 노벨상 2회 수상자가 누구일까? 바로 지금으로부터 한 세기 전, 세계를 들썩였던 알파걸 과학자 마리 퀴리다. 그녀는 피치블렌드를 녹여 순수한 염화라듐을 정제했으며, 라듐이라는 새로운 화학 원소의 원자량을 결정했다. 라듐이 방사선을 내보내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로써 퀴리는 ‘방사능’이란 말을 처음 정의했고 방사성 물질을 연구하는 길을 열었다.
지은이
마리 퀴리(Marie Sklodowska Curie, 1867~1934)만큼 유명한 여성 과학자가 있을까.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 최초의 노벨상 2회 수상자, 최초이자 유일하게 서로 다른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사람, 최초의 파리 대학 여교수. 이렇게 ‘최초’라는 영광을 장식품처럼 매달고 다니는 사람이 바로 마리 퀴리다. 1903년 방사능 복사에 대한 연구로 앙리 베크렐, 피에르 퀴리와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받았고 1911년에는 라듐과 폴로늄 원소의 발견과 라듐의 분리 및 그 특성에 대한 연구를 인정받아 두 번째 노벨상인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파리대학 최초의 여교수라는 영예 이면에는 노벨상으로 명성을 얻었음에도 남편이 죽은 후에나 남편의 교수 자리를 이어 받을 수 있었던 여성 과학자의 비애가 있었다. 1903년 노벨물리학상도 처음 명단에는 마리 퀴리가 올라가 있지 않았다. 마리 퀴리의 박사 논문으로 시작된 연구였고 몇 차례 단독으로 논문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의 영예는 고스란히 피에르 퀴리의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피에르 퀴리가 노벨위원회에 요청을 한 덕에 마리 퀴리도 노벨상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906년 남편이 죽을 때까지 그녀는 독립 연구자로서 크게 인정을 받지는 못했다.
최초로서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감내해야 했지만, 그렇다고 마리 퀴리가 그런 어려움에 조용히 쓴 울음을 삼키고 참기만 했던 연약한 사람은 아니었다. 마리 퀴리는 처음으로 발견한 방사능 원소에 폴로늄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자신이 폴란드인이라는 것을 밝힐 줄 아는 자신감 있던 사람이었고, 피에르 퀴리의 조수로 인식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이 한 연구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구분해서 밝힐 줄 아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또 1차 세계대전 중에는 방사능 진단 차량을 끌고 전장을 누비며 부상자들을 치료했던, 사회적인 일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이런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적극성, 영리함이 최초로서 직면해야 했던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최초의 자리에 올려놓았던 강인한 자질이었을 것이다.
옮긴이
박민아는 서울대학교에서 물리교육을 전공하고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과학사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MIT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연구교수를 지냈다. 과학사를 통한 과학대중화 및 과학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다. 지은 책으로 ≪뉴턴과 아인슈타인: 우리가 몰랐던 천재들의 창의성≫(공저), ≪뉴턴 & 데카르트: 거인의 어깨에 올라선 거인≫, ≪퀴리 & 마이트너: 마녀들의 연금술 이야기≫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논쟁 없는 시대의 논쟁≫(공역), ≪프리즘: 역사로 과학읽기≫(편역)가 있다.
차례
서론
1장 우라늄과 토륨의 방사능
2장 연구 방법
3장 새로운 방사성 물질의 복사
4장 방사능을 띠지 않은 물질로의 방사능 전달
결론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화학적 관점에서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게 확립되었다. 강력한 방사능을 띠는 새로운 원소의 존재, 즉 라듐이 바로 그것이다. 순수한 염화라듐의 정제 및 라듐의 원자량 결정이 내 연구의 주요한 부분을 이루었다. 이 연구는 명백하게 알려져 있는 원소들에 매우 신기한 특성을 지닌 새 원소를 추가하는 일인 동시에 새로운 화학 연구 방법을 정립시키고 그 타당함을 보여 주는 일이기도 했다. 방사능을 물질의 원자적 특성으로 가정하는 데서 시작되는 이 방법은 피에르 퀴리와 나의 라듐 발견을 가능하게 했던 바로 그 방법이었다.
-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