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 시선 초판본
한국 시 신간, ≪초판본 천상병 시선≫
다소 행복한 아침
밤이 길거나 너무 짧았다면, 그래서 아침이 낯설거나 무섭다면 오늘은 아무렇게나 생긴 쉽고 간단한 시인을 만나 보자. 그에게 밤은 언제나 충분했고 아침은 제때에 찾아왔으며 하루는 길지도 짧지도 않았다. 하릴없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세상을 걷다 보면 차거나 덥지 않은 저녁을 만나게 마련이었고 그 시간을 행복이라고 생각했으므로 다음 날의 아침 역시 불행일 수 없었다. 그는 매일 아침 다소 행복했다.
행복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 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느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운 좋은 이 시인은 누구인가?
천상병이다.
천상병은 누구인가?
한국 현대시의 역사에서 순정한 지점이며 가장 아픈 기억이다.
달리 표현하면?
새의 영혼을 가지고 지상으로 소풍 온 우리 시대의 자유인이다.
그의 자세는?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이다.
현실에서 자유가 가능한가?
일상을 짓누르는 가난조차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여유가 있다면 가능하다.
인간이 그럴 수 있나?
<나의 가난은>의 한 구절을 보라.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 값이 남았다는 것.”
자유 아닌가?
시의 콘셉트는?
마음 하늘이다.
하늘이 뭔가?
하늘은 그가 즐겨 찾는 새의 거처다.
무슨 뜻인가?
자유의 공간이자 진실과 순수의 지점이다.
마음은 뭔가?
하늘은 시를 통해 보여 주는 시인의 마음을 닮았다.
마음 하늘은 무엇을 할 수 있나?
시인이 세상과 현실에 병든 지상의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그는 정말 그렇게 살았을까?
고문의 상처를 지닌 채 가난하게 살았다.
잘 산 것일까?
술과 시를 즐기며 풍류를 누렸다.
고문은 왜 당했나?
동백림 사건이다.
얼마나 당했나?
6개월 정도 옥고를 치렀다.
후유증은?
오래 지속되었다.
어쩌다 연루되었는가?
언젠가 방송에서 직접 밝힌 적이 있다. 그는 반복적으로 더듬거리며 말하기를, 동백림에서 북한에 다녀온 친구 강빈구가 자기에게 북한에 갔다 왔다고 얘기한 것을 들었는데 그걸 당국에 고발하지 않은 죄였다는 것이다.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다.
상흔이 치료되었을까?
따뜻하게 온몸으로 세상을 껴안고 살다 갔다.
시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열아홉 살이던 마산중학교 5학년 때 담임 교사였던 김춘수 시인의 추천으로 <강물>을 ≪문예≫에 발표했다.
당시 평가는?
지역 문단의 4대 젊은 기수로 꼽혔다.
누구인가, 4대 기수?
진주의 이형기, 삼천포의 박재삼, 부산의 최계락과 마산의 천상병이다.
한국 문학에서 어떤 위치에 있나?
삶과 시 자체로 우리 시대 시인의 초상을 보여 주었다.
어떤 초상인가?
가난과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착한 아이의 마음으로 시를 썼다.
사상 배경은?
가톨릭 세계관과 노장사상의 형이상학을 일상 언어를 통해 시적 서정으로 고양하는 새로운 영역을 보여 주었다.
그의 시는 독자에게 어떤 선물이 될까?
고단한 현대 생활에서 마음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박승희다.
*위의 시 <행복>은 박승희가 엮고 해설한 ≪초판본 천상병 시선≫, 32~33쪽에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