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제1장. 어느 작은 가족의 내력
1.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는 우리 군의 지주인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의 셋째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 표도르는 꼭 13년 전에 비극적이고 어두운 최후를 맞이했기 때문에 당시(아니, 지금도 여전히 우리 고장에서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꽤나 유명한 인물이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적당한 곳에서 자세히 얘기하기로 하겠다. 지금은 이 ‘지주’(비록 그가 자기 영지에서 살았던 적은 평생 거의 없었지만 우리 고장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가 이상한 유형의 사람이었다는 것만을 말해 두고자 한다. 이 이상한 유형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고, 음탕하고, 어리석기 그지없는 인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러시아에서는 이런 유형을 매우 빈번하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어리석기 그지없는 인간들이긴 하나, 자신의 재산과 관련한 자질구레한 일만큼은 아주 능수능란하게 처리할 줄 아는데, 다만 오로지 이런 일 하나만을 잘할 줄 아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다. 일례로,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지주라고 해 봐야 아주 보잘것없는 수준이어서, 거의 무일푼에서 출발해 남의 집 식사에 초대받아 끼니를 때우거나 부잣집 식객 자리를 노리며 살아왔지만, 정작 죽을 때 보니 현금으로 10만 루블이나 되는 돈을 수중에 갖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평생을 우리 군에서 가장 멍청한 반미치광이 행세를 하며 살았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이것은 머리가 우둔해서가 아니다. 이런 반미치광이들 대부분이 외려 영악하고 교활하다. 다시 말하자면 이런 식의 멍청함, 이런 어리석음은 러시아 민족 특유의 것이다.
그는 두 번 결혼해서 아들 셋을 두었다. 장남인 드미트리 표도로비치는 첫 번째 부인 소생이고, 나머지 두 아들 이반과 알렉세이는 두 번째 부인 소생이다.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첫 번째 부인은 역시나 우리 군의 지주였으며, 상당히 부유하고 명망 있는 귀족 집안인 미우소프가 출신이었다. 지참금이 상당하고, 더구나 미인이고, 게다가 요즘에는 그리 드물지 않지만 당시에 이미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 기지 넘치는 영리한 처녀가, 어째서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멍청한 놈”이라고 부르는 자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너무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나는 과거의 “낭만주의적인” 세대에 속하는 한 아가씨를 알고 있는데, 그녀는 어느 신사에 대한 수수께끼 같은 사랑을 수년간 키워 오던 중, 언제라도 아무런 탈 없이 그와 결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온갖 장애들을 자기 혼자 상상해 내고는, 폭풍이 몰아치던 밤에 절벽처럼 치솟은 높은 강둑에서 아주 깊은 급류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셰익스피어의 오필리아를 닮고 싶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러니까 한마디로 자신의 변덕에 의해 그녀는 파멸한 것이다. 그녀가 오래전부터 점찍어 놓고 사랑해 온 그 절벽이 그토록 아름답지만 않았더라도, 그냥 산문적이고 평범한 강둑이기만 했었더라면, 자살 따위는 애당초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진짜 실화이지만, 최근 두세 세대 동안에 이런 종류의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적지 않게 발생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아델라이다 이바노브나 미우소바의 행동도 이와 마찬가지로, 외래 사조의 영향으로 그 사상에 사로잡혀 일으킨 발작 같은 충동임이 틀림없다. 그녀는 어쩌면 사회적인 제약과 친척이나 가족의 전제에 대항해 여성의 자주성을 천명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고, 뭔가를 보살피기를 좋아하는 그녀의 상상력이 표도르 파블로비치를 비록 식객의 처지이기는 하나 최상의 것을 지향하는 과도기적 세기를 대변하는 극히 용감하면서도 극히 냉소적인 이들 중의 하나라고 일순간이나마 믿게 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실상은 사악한 광대에 불과했으며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가장 짜릿한 점은 이것이 뺑소니 결혼이라는 사실이었고, 바로 이 점이 아델라이다 이바노브나를 크게 매혹했다. 한편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해 볼 때 이런 유의 온갖 사건을 저지를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그때 그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반드시 출셋길을 닦아야겠다는 열렬한 소망에 불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훌륭한 가문에 지참금까지 딸려 있는 아가씨의 환심을 산다는 것은 꿩 먹고 알 먹는 셈이니 엄청나게 구미 당기는 일이었다. 서로 간의 사랑에 관해 말하자면, 신부 쪽에서도 그런 건 전혀 없었던 듯하고, 아델라이다 이바노브나가 미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 쪽에서도 그런 건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이런 일은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일생에 유일무이한 경우일 것이다. 왜냐하면 표도르는 어떤 여자라도 치마만 둘렀으면,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단번에 아무 치마폭에나 달라붙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인간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오직 이 여자만은 육욕적인 측면에서 그에게 어떤 특별한 인상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뺑소니 결혼을 한 직후, 아델라이다 이바노브나는 남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경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즉시 깨달았다. 이렇게 해서, 결혼의 결과는 매우 빠른 속도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친정에서는 상당히 빨리 이 사건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도망 간 딸에게 지참금을 떼어 주었지만, 그럼에도 부부 사이에는 끔찍할 정도의 무질서한 생활과 영원한 불협화음이 시작되었다. 사람들 말에 따르면, 그래도 젊은 부인은 표도르 파블로비치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고상하고 우아하게 행동했다고 한다. 지금은 모두가 다 아는 일이지만, 그는 그녀의 수중에 돈이 들어오기가 무섭게 2만 5000루블이나 되는 돈을 단숨에 낚아채 갔고, 때문에 그녀는 그때부터 몇 만 루블이나 되는 돈을 물속에 갖다 버린 셈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지참금으로 딸려 온 작은 시골 마을과 시내에 있는 꽤나 좋은 집도 어떤 적절한 절차를 통해 자기 이름으로 옮기려고 오랫동안 무진 애를 썼다. 매분 매초 뻔뻔스런 협박이나 애원으로 아내의 마음속에 경멸과 혐오의 감정을 일으켜, 그녀가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 넌더리가 나서 제발 떨어져 나가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게 한 것만으로도 어쩌면 그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일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때 아델라이다 이바노브나의 친정이 개입해 이 약탈자를 저지했다. 부부 사이에 심심찮게 주먹다짐이 있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인데, 전해 오는 바에 따르면, 주먹질을 한 쪽은 표도르 파블로비치가 아니라, 성질이 불같고 급하며, 대담하고, 거무스름한 피부에 타고난 육체적인 힘의 소유자인 아델라이다였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세 살배기 미탸를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손에 남겨 둔 채, 가난에 찌든 신학교 출신 교사와 함께 줄행랑을 쳐 버렸다.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순식간에 온 집안을 하렘으로 만들어 온갖 방탕한 주연을 벌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틈만 나면 거의 온 현을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아델라이다 이바노브나가 자기를 버렸다며 눈물을 질질 짜면서 하소연했다. 뿐만 아니라 남편으로서는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한 이야기까지 소상하게 떠벌이고 다녔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모욕당한 남편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역할을 남들 앞에서 연기하고 온갖 수식어를 동원해 가며 자신이 받은 모욕을 속속들이 묘사하는 것이 그에게는 유쾌하다 못해 무슨 커다란 자랑거리라도 되는 성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망간 그의 아내가 페테르부르크의 어느 다락방에서 급사했다는 전갈이 도착한다.
2. 장남을 내쫓다
물론 이런 인간이 어떤 양육자이며 어떤 아버지였으리라는 것은 안 봐도 뻔한 일이다. 아버지로서 그에게는 응당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 즉, 그는 아델라이다 이바노브나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기 아들을 완벽하게, 그것도 문자 그대로 완전히 내팽개쳤는데, 이것은 아이가 미워서도 아니었고, 모욕받은 남편이라는 감정 때문도 아니었고, 그저 아이의 존재 자체를 새까맣게 잊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눈물을 질질 짜며 시도 때도 없는 하소연으로 주변 사람들을 질리게 하면서도, 자기 집을 방탕의 소굴로 만들고 있었다. 그동안 세 살배기 소년 미탸를 거둔 것은 이 집의 충직한 하인 그리고리였다. 그 무렵 그가 챙기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 어린아이는 속옷을 갈아입힐 사람조차 없이 방치되었을 것이다.
얼마 안 있어 외국 교육을 받고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죽은 아델라이다의 사촌 오빠가 와서 미탸의 후견인이 되겠다며 아이를 데려가 모스크바의 귀부인 당숙모에게 맡기고, 당숙모가 죽자 아이는 네 차례나 더 다른 집으로 옮겨 가 양육된다.
첫째, 이 드미트리 표도로비치는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세 자식 중 자신만은 어느 정도 재산이 있으므로 성년이 되면 독립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자란 유일한 아들이었다. 그는 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을 무질서하게 보냈다. 김나지움을 채 마치기도 전에 육군학교에 들어갔다가, 다시 캅카스로 가서 근무하다 결투를 해서 강등되었다가, 복귀해서는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꽤나 많은 돈을 탕진했다. 성년이 되기 전까지는 표도르 파블로비치로부터 한 푼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때까지 그는 상당히 큰 빚을 지게 되었다. 아버지 표도르 파블로비치와 처음 알게 되고 만나게 된 것은 자기 재산 문제에 관해 아버지와 해결을 보기 위해 일부러 우리 고장에 왔을 때였다. 아마 그때에도 그는 아버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약간의 돈을 받고 자기 소유의 영지에서 나오는 수입을 앞으로 어떻게 받을지 하는 문제에 대해 어떤 교섭을 한 후 얼마 머물지도 않고 서둘러 떠나 버렸다. (주목해 둘 만한 사실은) 그때 그는 표도르 파블로비치에게 영지의 수입액도, 또 영지의 가치도, 한마디로 아무것도 캐묻지 않았다는 점이다.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아들과 처음 만났을 때부터(이 점도 역시 주목해야 한다), 미탸가 자기 재산 상태에 대해 매우 불분명하고 과장된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을 알아챘다.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자기 나름의 계산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사실에 몹시 흡족해했다. 그는 이 젊은이가 경솔하고, 난폭하며, 정열적이고 참을성이 없는 난봉꾼이어서, 가끔씩 얼마간의 돈을 쥐여 주면 물론 일시적이기는 하겠지만 금방 얌전해질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바로 이런 점을 이용해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당장에 아들의 돈을 갈취하기 시작했다. 즉, 작은 액수의 용돈 정도를 주되 수시로 송금하는 방법으로 속여 먹은 것이다. 4년 후, 마침내 인내심을 잃고 미탸가 아버지와 이 문제에 대해 끝장을 보려고 우리 고장에 다시 나타났을 때, 그는 계산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자기 재산이 한 푼도 남아 있지 않으며, 이미 전 재산을 현금으로 바꾸어 표도르 파블로비치로부터 받아 갔기 때문에 어쩌면 도리어 자신이 아버지에게 빚을 졌을는지도 모른다, 또 당시 자신이 원해서 맺은 여러 가지 협약에 의해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할 권리조차 없다는 등등의 사실을 알고는 너무 놀라 믿을 수가 없었다. 청년은 이게 혹시 거짓말은 아닌가, 아버지가 사기를 친 건 아닌가 하고 의심하며, 거의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바로 이런 상황이 소설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내 첫 소설의 주제,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외곽을 이루게 될 참극의 시발점이 된다. 그러나 소설로 들어가기 전에 미탸의 동생들인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나머지 두 아들에 대한 것과, 또한 그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 둘 필요가 있겠다.
3. 두 번째 결혼과 두 번째 아이들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네 살배기 미탸를 떨쳐 내자마자 곧장 두 번째 아내를 맞이했다. 두 번째 결혼 생활은 약 8년간 지속되었다. 두 번째 부인인 소피야 이바노브나 역시 매우 어렸는데, 그가 어떤 유대인과 함께 자잘한 일들을 처리하려 다른 현에 들렀을 때, 거기서 이 여자를 데려왔다.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방탕한 생활을 하고 술을 퍼마시며 추태를 부려 댔지만, 재산에 관해서만은 절대로 등한히 하는 법이 없었으며, 물론 거의 언제나 치사하고 야비한 수법을 쓰긴 하지만 어쨌건 돈에 관한 일만은 언제나 성공적으로 해치웠다. 소피야 이바노브나는 무식한 보제(補祭)의 딸로서 어릴 때부터 부모 없는 ‘고아’ 같은 처지로, 은인이자, 양육자이자, 박해자인 저 유명한 보로호프 장군 미망인의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겠으나, 말대꾸라고는 할 줄도 모르고, 심술이라고는 통 없는 순해 빠진 이 양녀가 한번은 창고에 있는 못에 올가미를 걸고 목매 죽으려는 걸 사람들이 구해 냈다는 말이 들리는 걸로 보아, 늙은 미망인의 변덕과 끊임없는 잔소리를 참아 내기가 그 정도로 힘들었던 모양이다. 보아하니 이 노파는 사람이 못돼 먹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저 무료함 때문에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고집불통이 되어 버렸다. 표도르 파블로비치가 정식으로 청혼을 하자, 그녀는 사람을 시켜 그에 대해 뒷조사를 한 뒤 퇴짜를 놓았다. 그러자 그는 첫 번째 결혼 때와 똑같이 이 고아 처녀에게 뺑소니 결혼을 제안했다. 만약 그녀가 제때에 그에 관해서 조금만 더 자세히 알았던들, 절대로, 결단코 그런 작자를 따라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다른 현에서 발생한 일이고, 또 열여섯 살짜리 어린 처녀가 뭘 알았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그녀는 은인의 집에 남느니 차라리 강물에 빠져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으니 말이다. 이렇게 해서 이 딱한 처녀는 여자 은인을 남자 은인으로 바꾸게 된 것이었다.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이번에는 땡전 한 푼 받아 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장군 부인이 화가 나서 길길이 뛰며 아무것도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것도 모자라 이 둘에게 저주의 말까지 퍼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도 지참금 같은 것을 챙기려는 속셈에서가 아니라, 청순 무구한 소녀의 빼어난 아름다움에 매혹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지금까지는 오직 부도덕한 여자들의 난잡한 아름다움만을 탐해 오던 호색한인 그가 그녀의 순결한 모습에 사로잡혀 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때 그 순결한 두 눈동자가, 면도칼로 내 영혼을 싹 도려내는 것 같았지 뭐야”라고 그는 후에 그 특유의 징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하지만 이 음탕한 인간에게는 이것마저도 음탕한 정욕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아무런 지참금도 가져오지 못한 아내를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함부로 대했다. 이를테면 그녀는 자기 앞에서는 ‘죄인’이나 마찬가지이고, ‘목매 죽으려는’ 것을 구해 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과 또 기이하다 싶을 정도로 온순하고 고분고분한 그녀의 성격을 십분 이용해,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예의조차도 짓밟았다. 아내가 집에 버젓이 있는데도, 난잡한 여자들을 불러 모아 놓고 떠들썩한 술판을 벌여 댔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점은 무뚝뚝하고, 우직하고, 완고한 하인 그리고리는 전 마님인 아델라이다 이바노브나는 싫어했지만, 이번에는 새 마님 편이 되어서 하인으로서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욕지거리도 표도르 파블로비치에게 서슴지 않고 퍼부으면서 새 마님을 옹호했으며, 심지어 언젠가 한번은 난잡한 술판을 벌이고 있는 추잡한 여자들을 우격다짐으로 쫓아낸 적도 있었다. 이후 아주 어려서부터 겁에 질려 살아온 이 불행한 젊은 여인은 시골에 사는 평민 아낙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종의 부인성 신경 질환 같은 것에 걸렸다. 이 병은 끔찍한 히스테리 발작을 동반하며, 심할 때는 때로 의식을 잃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도 그녀는 표도르 파블로비치에게 이반과 알렉세이라는 두 아들을 낳아 주었다. 첫 아들은 결혼 첫해에, 둘째 아들은 그 3년 뒤에 낳았다. 그녀가 죽었을 때 소년 알렉세이는 네 살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그 후 평생 동안 어머니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물론 꿈속에서 보듯이 어슴푸레한 형태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녀가 죽자 두 소년에게는 장남 미탸에게 일어난 것과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들은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존재 자체가 망각되었으며, 그리고리에게 거둬져 그의 오두막으로 옮겨졌다. 그들의 어머니의 은인이자 양육자였던 고집불통 노파인 장군 부인이 그들을 발견한 곳도 바로 이 오두막이었다. 그녀는 그때까지도 살아 있었는데, 지난 8년 동안 한시도 자기가 받은 모욕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소피야’의 인생사에 관한 한 8년 내내, 매우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들을 입수하고 있었으며, 소피야가 얼마나 아픈지, 그녀 주변에서 얼마나 추잡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듣고는 자기 집의 식객들에게 “그년은 그래도 싸. 배은망덕한 년한테 하느님이 천벌을 내리신 거라고”라며 두세 번 정도 크게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소피아가 죽은 지 3개월 만에 장군 부인이 그리고리의 오두막에 나타나 이반과 알렉세이를 데려갔고, 교육비 명목으로 그들에게 1000루블씩을 남기고 죽는다. 그녀가 죽은 후, 정직하고 사람 좋은 예핌 페트로비치 폴레노프가 두 소년을 잘 돌보아 준다.
형 이반에 대해서는 그저 다음과 같은 것들을 말해 두는 바다. 그는 결코 겁쟁이는 아니었지만, 어쩐지 마음의 문을 닫은 듯한 음울한 소년으로 성장했다. 그는 열 살 때부터 이미 자기들이 어쨌건 남의 집에서 남의 도움을 받으며 자라고 있고, 자기들의 아버지는 입에 담기에도 부끄러운 인간이라는 것 등을 매우 날카롭게 느끼고 있었다. 이 소년은 아주 어렸을 때, 거의 유년기 때부터(적어도 전해 오는 바에 따르면 그렇다) 학업 면에서 비상할 정도로 탁월한 재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어쨌건 열세 살이 되자마자 예핌 페트로비치의 집을 떠나 모스크바에 있는 김나지움에 입학해, 예핌 페트로비치의 어릴 적 친구이며 경험 많은 유명한 교육자의 기숙사에 들어갔다. 후에 이반 자신이 말한 것에 따르면, 이것은 예핌 페트로비치의 ‘선행에 대한 열정’ 덕분이었다고 한다. 즉, 당시 예핌 페트로비치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소년은 천재적인 교육자 밑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사상에 심취해 있었다고 한다.
김나지움을 졸업한 이반은 대학을 다니며 신문사 편집국에 칼럼을 쓰기 시작하는데, 그 내용이 신랄하고 독특하며 재미있어 넓은 독자층의 주의를 끌게 된다. 자연과학을 전공했으나, 대학을 마칠 때쯤 개시한 교회 재판에 관한 기묘한 논문으로 세간의 이슈가 된다. 이런 이반이 갑자기 아버지 집에 나타난다.
나중에 가서야 밝혀진 일이지만, 이반 표도로비치가 이 고장에 온 것은 일정 부분은 자기 형인 드미트리 표도로비치의 부탁에 따라 그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드미트리 표도로비치와 더 많이 관련된 어떤 중대한 일 때문에 모스크바에서 이리로 오기 전부터 편지 왕래를 하고 있었지만 형과 직접 대면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이 어떤 일이었는지는, 독자 여러분은 때가 되면 아주 상세히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후에 이 특이한 정황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에도, 내게 이반 표도로비치는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비쳤고, 그가 우리 마을에 온 이유 역시 여전히 불명확했다.
한 가지 더 추가해 두자면, 이반 표도로비치는 당시 아버지를 상대로 큰 싸움을 벌이고, 심지어는 정식 소송까지 생각하고 있던 형 드미트리 표도로비치와 아버지 사이의 중재자 내지는 조정자 같은 입장이었다.
되풀이해서 말하지만 이 작은 가족은 그때 생전처음으로 다들 한자리에 모인 것이고, 그중 어떤 식구들은 생전처음으로 서로의 얼굴을 알게 되었다. 다만 막내아들인 알렉세이 표도로비치만은 벌써 1년 전부터 우리 고장에 와서 살고 있었으니, 그나마 형제들 중에서는 제일 먼저인 셈이다. 바로 이 알렉세이야말로, 소설의 본무대로 등장시키기에 앞서 서문 격인 이런 이야기 속에서 설명하기가 가장 어려운 인물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서문 격의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적어도 몹시 이상한 점 하나만은 미리 분명히 해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내 미래의 주인공을 소설 첫 번째 장면부터 수도사의 법의를 입혀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 그는 그때 우리 고장 수도원에서 산 지 벌써 1년 가까이 되어 가고 있었고, 수도원에 평생을 묻을 각오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4. 셋째 아들 알료샤
당시 그는 겨우 스무 살이었다(그의 형 이반은 당시 스물네 살, 큰형 드미트리는 스물여덟 살이었다). 무엇보다 먼저 밝혀 둘 점은, 알료샤라는 이 청년은 결코 광신자도 아니었고 적어도 내 생각에는 신비주의자 같은 것도 아니었다. 내 의견을 미리 기탄없이 밝혀 두자면, 그는 단지 조숙한 박애주의자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그가 수도원이란 길로 돌진했다면, 당시에는 오직 그 길 하나만이 그를 감동시켰고, 그것만이 악의로 가득한 속세의 어둠을 벗어나 사랑의 빛으로 나아가려 몸부림치는 그의 영혼을 위한 소위 이상적인 출구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길이 그에게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준 것은, 당시 그가 비범한 존재라고 생각하던 우리 수도원의 유명한 조시마 장로를 바로 그 길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이 장로에게 알료샤는 뜨거운 첫사랑과도 같은 억누를 길 없는 심장을 통째로 바쳤던 것이다.
(…)
그는 사람들을 사랑했다. 평생 동안 사람들을 완전히 믿으며 살아온 듯했지만, 그렇다고 어느 누구도 그를 멍청이나 순진해 빠진 사람 취급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에게는 남을 심판하고자 하지도 않으며, 남을 심판하는 일을 떠맡고 싶지도 않으며, 또 어떤 일이 있어도 남을 탓하거나 비난하거나 심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주고 그런 감정을 일으키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이건 그 후에도 평생 그랬다). 비록 아주 자주, 매우 쓰라린 비애를 느꼈지만, 이를 어느 누구의 탓으로도 돌리지 않았고, 오히려 모든 것을 허용하는 듯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의미에서 어느 누구도 그를 놀라게 하거나 경악하게 만들거나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는데, 이런 성향은 아주 어린 유년기 때부터 드러났다. 스무 살 때, 그야말로 더러운 방탕의 소굴인 아버지의 집에 와서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되면 순결하고 깨끗한 그는 그저 묵묵히 자리를 뜰 뿐, 누구를 경멸하거나 비난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한편, 한때 남의 집 식객으로 살았던 아버지는 모욕이나 멸시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민감하고 날카로웠기 때문에 처음에는 미심쩍은 듯한 무뚝뚝한 태도로 아들을 맞이했지만(“말은 안 하지만, 속으로는 별생각을 다 하고 있겠지”라고 투덜거리며), 두 주도 채 지나기 전에 시도 때도 없이 자주 아들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심지어 눈물까지 흘리면서 말이다. 비록 술기운에 감상적이 되어 흘리는 술주정뱅이의 값싼 눈물이긴 하지만, 이 아들을 진심으로 깊이 사랑하게 된 것만은 분명했다. 그는 일찍이 어느 누구도 이렇게까지 사랑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사실 이 청년은 어려서부터 어디를 가나 모든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았다.
(…)
그의 성격 중 이보다 더 특이한 점은 자기가 대체 누구의 돈으로 살고 있는지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보려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형 이반 표도로비치와는 극과 극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형 이반은 대학의 첫 2년간 제 힘으로 밥벌이를 하며 매우 궁핍한 생활을 했고, 또 은인의 집에서 남의 빵을 얻어먹으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주 어려서부터 절절히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알렉세이의 성격에 있는 이런 이상한 특성을 과히 심하게 비난할 수는 없을 듯싶다. 왜냐하면 누구나 그를 조금만 알게 된다면, 이런 문제가 불거지기가 무섭게, 이 청년이 유로디비이와 같은 부류라는 것을 단박에 확신하게 되기 때문이다. 갑자기 엄청나게 큰돈이 손에 굴러들어 온다 할지라도, 그는 선행을 위해서건 아니면 그저 약삭빠른 사기꾼에게 걸려들어서건, 아무나 먼저 손을 내밀기만 하면 당장에 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