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수필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수필을 대표하는 주요 수필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김우종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57년 조연현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은유법(隱喩法) 논고(論考)>와 <이상론(李箱論)>으로 데뷔한 원로 비평가다. 남한의 초기 비평 문단 형성 과정에서 굵직한 비평사적 당면 과제들을 유종호, 이어령, 고석규 등과 함께 온몸으로 겪어 냈으며, 오늘날 문학 연구가들에게도 여전히 그의 비평은 정전(canon)이자 귀감이 되고 있다. 그가 참여한 비평적 논의들을 되짚어 보면 1950년대 말 비평 자유 논쟁이나 독립성 논의, 기존의 전통론과 ≪사상계≫ 지식인 담론, 1960년대 순수 참여 논쟁의 촉발 등 그 맥락만을 살펴보아도, 그가 현대 비평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기여한 부분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김우종의 수필을 논하는 데 그의 수필 세계뿐만이 아니라 그 저변에 있는 비평가적 면모도 쉬이 간과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비평을 대하는 역사주의, 혹은 실천주의적 관점에서의 태도들이라든가 소통과 논리를 동시에 중시하는 총체적인 면모 등등을 모두 종합적으로 규합해 상기해 보면, 김우종의 수필 세계뿐만이 아니라, 김우종의 문학관에 대해 좀 더 뚜렷하게 가늠해 볼 수가 있다.
가령 젊은 시절 청년 김우종은 비평의 가치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비평 행위를 ‘주관을 객관화’하는 논리적 연쇄로 인식하고, 주관과 객관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는 인식론을 보여 줬던 것을 상기해 보자. 특히 유종호와의 논쟁에서 비평 문학의 독립적 위상과 자율, 존엄성 등을 강조했던 점과 그러면서 비전문적이고 감성적 대처로써의 비평이 아니라, 전문 비평의 가치 발견을 강조했던 점 등은 비단 비평뿐만이 아니라 김우종 문학 세계가 지향하고 있는 토대를 엿볼 수 있다. 주지하듯 물론 그것은 ‘자율’과 ‘창조성’을 바탕에 둔 문학관이라 압축할 수 있다. 그뿐인가. 이상 시의 난해성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고전 문학 텍스트를 현재적 입장에서 가치 평가하는 논의들을 두루 살펴보았을 때에도, 김우종은 객관성과 논리성을 강조하며 분석적 입장을 취하면서도 주어진 텍스트들이 ‘지금 여기’에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 탐색하는 효용적 태도를 누차 엿보이고 있다. 이런 면모 또한 김우종 문학 세계가 지속적으로 문제시하고 있는 ‘소통’과 ‘가치 지향성’이라는 큰 척도를 반영하고 있는 예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김우종 문학의 특징을 그의 수필에 옮겨 와 덧입혀 보면 어떠할까. 물론 1966년부터 라디오 방송을 통해 매일 수필 한 편씩을 발표한 이래로 반세기 동안 수십 권의 수필집과 전집을 간행했고, 30대의 젊은 나이에 이미 당대 대중에게는 문학계의 지성으로 인정을 받아 각개 방송사에서 진행자까지 오랫동안 해 왔던 경력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비평 세계를 거울삼아 수필 세계를 논하는 것은 어쩌면 주객이 전도된 조명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청년 김우종에게 비평적 귀감을 느낀 문학 연구가의 입장과 또는 노년의 근작 수필 선집을 먼저 만나 본 독자의 입장을 두루 종합해서 말하건대, 김우종 수필 세계가 지향하는 큰 줄기는 그의 문학관처럼 견고하고 곧게 서 있다. 그 내용적 측면은 ‘소통’과 ‘가치 지향성’의 맥락과 맞닿아 있고, 형식적 측면에서는 ‘주관을 객관화’하는 ‘논리성’의 맥락에 그대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수필이라는 장르적 특성상, 전자는 ‘미적 감동’과 지금 이곳의 실천 윤리를 놓치지 않는 작가 정신의 측면으로 실현되고 있고, 후자는 논리성과 상상력 간의 끊임없는 진자 운동으로 드러나고 있다.
200자평
전쟁과 월남, 북과 남 양쪽의 포로수용소 체험, 날조된 ‘문인 간첩단’ 사건 등 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겪어 낸 김우종. 그의 수필은 남북한의 이념도, 문단의 문학 권력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롯이 홀로 서서 사랑과 평화, 화해를 말한다. 서정성과 논리성 사이를 오가는 특수한 공간을 명확히 확보해 내면서, 오랫동안 비평에 전념했던 현대 지성이 쓰는 독특한 수필의 면모를 가감 없이 구현해 내는 것이다.
지은이
김우종(金宇鍾)은 서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충남대학교, 경희대학교, 덕성여자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한국대학신문≫ 주필을 지냈다. 1957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1968년에 첫 에세이집 ≪내일이 오는 길목에서≫를 출간하고, 한국수필문학진흥회에서 펴낸 ≪수필공원≫을 통해 김태길, 윤형두, 박연구 등과 작품 활동을 했다. 대학에서는 한국 현대 소설의 사적 체계화에 관심을 두고 소설사의 정립과 비평 문학 연구를 수행했으며, 1960년대 초부터 모순된 현실을 직시하고 그 비판과 문학의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다수의 평론을 발표했다.
주요 저서로 ≪한국 현대 소설사≫, ≪작가론≫, ≪현대 소설의 이해≫, ≪한국 근대 문학 사조사≫, ≪순수문학 비판≫ 등이 있으며, 대표 산문집으로는 ≪그 겨울의 날개≫, ≪젊은 날의 꿈과 고뇌≫, ≪사랑과 행복의 조건≫, ≪내일도 우리가 사랑한다면≫ 등이 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 KBS 초대 방송심의위원, 참여연대 자문위원 등을 거쳐 현재는 계간 문예지인 ≪창작산맥≫을 발행하면서 윤동주 추모 사업을 계속하는 한편, 한국미술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고문, ≪한국대학신문≫ 논설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국문인협회상, 월탄문학상, 서울시문화상,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해설자
박성준은 198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09년 ≪문학과 사회≫ 신인 문학상에 시 <돼지표 본드> 외 3편으로 등단했고, 201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서 평론 <모글리 신드롬−가능성이라 불리는 아이들>로 문단에 데뷔했다. 석사 논문으로는 <조정권 시의 문채 특징 연구>가 있으며, 저서로 시집 ≪몰아 쓴 일기≫(문학과지성사, 2012)와 ≪잘 모르는 사이≫(문학과지성사, 2016)가 있다. 그 밖에 산문집 ≪소울 반띵≫(멘토프레스, 2013), 앤솔러지 산문집 ≪시인의 책상≫(랜덤하우스코리아, 2013), ≪나는 매번 시 쓰기가 재미있다≫(서랍의 날씨, 2016)를 출간했으며, 연구서로는 ≪구자운 시 전집≫이 있다. 2015년 박인환 문학상을 수상했다.
차례
1부
경의선 대합실
38선의 사슴벌레
38선과 연애편지
백담사에서 만난 ‘임’의 향기
북한 간호병의 면사포
북한군 간호병
중공군 신발 훔치기
포로가 되면 이적 행위자로 모는 나라
마쓰이 히데오 이야기
731부대의 들쥐들
2부
그 여름 베짱이의 마지막 연주
겨우살이와 큰 나무
그 겨울의 날개
아름다운 날갯짓
아름다운 딱따구리
카추샤의 사랑
배신당한 이데올로기
태극무늬와 유리 구두
심청의 소원
꼴찌들의 권리
40여 년 뒤집고 또 뒤집은 유신 드라마
3부
한글은 24자 아니고 17자
한글 자랑 한글 치마
한글과 문화유산
미국서 후쿠오카로 날아온 여인
시청 앞 광장의 풍선 편지
아베와 미국 사이
시인의 말재주가 저지르는 것
동주가 우리에게 전하는 말
4부
떠나 버리는 철새
징검다리
문인의 DNA
글과 그림 사이
문인의 인연
거울 앞에 선 누님과 바보 잠자리
망가뜨린 장미
시간의 미학
흙탕물의 갈대와 연못
겨울 편지
우리말 바로 쓰기
나비와 철조망
세상은 아름답게
잊히지 않는 문인
북으로 팔려 간 여인
고독병 치유법
높이 켠 등불처럼
아름다운 상처
울지 않는 꾀꼬리
춘향의 슬픔
버려지는 사람들
사랑과 이별
슬픔과 노여움
국화꽃의 메타포
청산별곡 까치 소리
해설
지은이에 대해
해설자에 대해
책속으로
문학이 지닌 가장 소중한 기능은 사랑과 평화의 구현이다. 노벨 문학상이 가장 명예로운 문학상인 것도 그것이 사랑과 평화를 위한 문학에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소설가나 시인 그리고 그들의 작품이 노벨상 후보로 논의되는 경우가 있었던 것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분단된 한반도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우리 인류가 지향하는 가장 보편적 가치는 다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며 그것은 사랑과 평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 문학도 이를 위해서는 모든 편견과 완고한 고집과 우매한 거짓으로 만들어진 의식 속의 철조망을 걷어 내고 무시해 버리고 사랑을 구현해 나가야 할 것 같다.
<나비와 철조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