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디자인은 기술 변화를 유토피아로 이끄는 힘이다
디자인 역사는 미래 디자인 지도, 디자인 목표는 언제나 ‘인간’
한때 우리는 가장 합리적·객관적·보편적인 디자인,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디자인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모더니즘은 여러 이상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모더니즘이 현대 디자인을 만들어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를 부정하고 붕괴시켰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광풍을 지난 지금도 우리만의 디자인을 제시해야한다. 디자인의 역사를 둘러봄으로써 과거의 성공과 실패를 통해 어떤 디자인을 만들어내야 할지 고민할 수 있다. 이 책이 디자인의 양식적 특징보다 각 시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배경과 이에 따른 디자인의 변화를 살펴본 이유는 무엇을 만들어나갈지 고민하기 위해서는 그 디자인이 만들어진 이유, 디자인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했고 또 얻었는지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을 인간으로 자각하기 전부터 디자인을 만들어왔고 이를 통해 인간이 되어왔다. 디자인의 어원은 16세기 프랑스의 ‘데생(dessin)’, 15세기 이탈리아의 ‘디세뇨(disegno)’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디자인을 지금과 같은 의미로 사용한 것은 19세기 영국이었다. 영국에서 ‘디자인’에 주목한 것은 싼 값에 만들어 비싸게 팔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면직물은 날염으로 마무리되었는데 패턴적용이 자유롭고 생산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었고 직물업자들은 이를 활용해 날마다 새로운 스타일과 유행을 만들어냈다.
20세기는 모더니즘의 시대였고 이는 21세기인 지금도 마찬가지다. 객관성·합리성·효율성은 모든 시대와 문명을 관통하는 보편적 가치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간 개념이 보편적이어도 인간 개인은 상대적이듯 모더니즘 또한 절대적 이념인 것은 아니다. 모더니즘은 보다 많은 제품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밀레니엄이 도래한지 20년이 지난 지금 디자인 시장의 중심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기술의 발전으로 시각과 제품의 구분 대신 UX/UI를 다루게 되었지만 디자인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의 어딘가에서 어정쩡하게 균형을 잡고 있다. 모더니즘은 답답하고 불편하지만 버릴 수 없고 포스트모더니즘은 자유롭지만 사회를 유지할 수가 없다.
디자인 역사는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디자인하는 데 필요한 지도와 나침반이 되어 준다. 과거의 디자인들을 참고해 과거와 다른 디자인, 미래를 위한 형태와 기능을 구상하고 제작할 수 있게 도와준다.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 남들과 차별화된 스타일을 만들 수 있게 해준다.
디자인 역사에 완벽이란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디자인 역사를 찾는 이유는 미래를 디자인하는데서 참고할 자료가 과거에 있기 때문이고, 미래에도 존재할 우리 자신에 대한 기록이 비록 온전하지 않다 해도 과거에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 양식은 각 시대에 따라 달라져왔지만 디자인의 목표는 언제나 인간이었고 앞으로도 인간일 수밖에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어떤 미래를 바라는지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술적 변화를 유토피아로 이끌어 가는 데 핵심적인 수단이 될 새로운 디자인의 미래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를 다뤘다.
200자평
다른 역사 연구가 인물이나 사건 등 행위에 주목한다면, 디자인 역사 연구는 모양과 기능 등 형태에 주목한다는 특징이 있다. 형태와 행위의 상호작용, 디자인현상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만들어 왔고 또 무엇을 만들어가야 할까? 지금까지 디자인역사서들은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관점에서 현대디자인이 만들어져온 과정을 살피고 이를 통해 디자인이 객관성·합리성·효율성을 따지는 이유 또는 개인의 자유로운 감성을 추구하는 이유를 설명해왔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 세계 자체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디자인을 변화시켜왔는지, 왜 디자인을 만들고 어떻게 디자인해야 하는지 보다 깊고 넓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술적 변화를 유토피아로 이끌어 가는 데 핵심적인 수단이 될 새로운 디자인의 미래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를 다뤘다.
지은이
김영찬
한양대학교, 서일대학교, 동양대학교 등에서 디자인역사, 현대미술사, 광고디자인 등을 강의했으며 현재 머니앤벨류(주) 편집부에서 경제주간지 ‘머니S’를 편집하고 있다. 한양대학교에서 ‘디자인역사연구방법론 연구와 이를 기반으로 한 3D디자인역사연표 개발’(2011)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디자이너 디자인에 딴지를 걸다』(2008), 『디자인+철학』(2013), 『디자인의 의미』(2015), 『디자인에 있어 ‘창조’의 의미와 그 향상에 대한 고찰』(2020)이 있다. ‘한국 디자인역사연구에 있어 일상사적 연구방법론의 적용에 대한 연구’(2009),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관점에서 바라본 디자인의 의미’(2012), ‘플라톤의 관점에서 바라본 디자인의 의미와 가치 ’(2015) 등 약 20편의 논문을 한국연구재단 등재지에 게재했다.
차례
우리는 무엇을 디자인해 왔는가, 무엇을 디자인해야 하는가
01 인간 그리고 디자인의 출현
02 고대 디자인 : 문명의 건설
03 전근대 디자인 : 세계관에 따른 변화
04 산업혁명과 디자인의 탄생
05 빅토리아 시대의 디자인 운동
06 벨 에포크 시대의 디자인 운동
07 제1차 세계대전 : 현대 디자인 운동들
08 제2차 세계대전 : 이념과 디자인
09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
10 밀레니엄 이후의 디자인
책속으로
우리는 디자인이 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디자인이 인간을 위해,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우리는 2만5000년 전 인류가 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만들었는지, 즉 예술작품을 만들고 싶었는지, 종교적 제기나 하다못해 무게를 재기 위한 추가 필요해서였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목적이 무엇이든 지금보다 나은 세계를 꿈꾸고 실현시키기 위해 이를 만들어냈다는 점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_ “01 인간 그리고 디자인의 출현” 중에서
당시 영국의 면직물과 도자기가 전 세계를 석권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이들 제품이 전 세계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디자인은 그 아름다움으로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함으로써, 사람들을 대량생산·대량소비 시스템에 끌어당김으로써 이 시스템의 핵심동력이 되었다.
_ “04 산업혁명과 ‘디자인’의 탄생” 중에서
존 러스킨은 이러한 화려하고 과시적인 디자인, 판매향상과 이익창출을 위한 디자인을 비판하며 근면성실하고 겸손한 삶을 위한 디자인, 전인적·도덕적 디자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디자인을 만들고 사용하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인간이었고 따라서 인간적으로 디자인되어야만 했다.
_ “05 빅토리아 시대의 디자인 운동” 중에서
아르데코는 새로운 기계문명, 유니섹스적인 인간상의 상징이었다. 육중한 강철의 무게감과 크롬 도금의 날렵함, 여러 겹 중첩되는 직선과 둥근 모서리, 이집트와 아즈텍 문양에서 차용한 이국적 장식은 아르데코만의 특색이었다. 특히 소년처럼 짧게 자른 보브컷과 코르셋을 없앤 직선형의 샤넬 드레스, 여기에 화려한 액세서리로 완성한 플래퍼 룩, 즉 모던 여성의 이미지는 아르데코의 전형이 되었다.
_ “08 제2차 세계대전: 이념과 디자인” 중에서
1970년대 미국 또한 변화하고 있었다. 로버트 벤츄리가 라스베이거스의 교훈에서 새로운 건축문법의 출현을 보고하던 해, 필립 존슨은 ‘AT&T 빌딩’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시작을 알렸다. 그는 전통양식의 현대적 해석을 통해, 즉 그리스나 바로크 건축양식을 모더니즘 문법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익숙한 새로움을 창조했다. 이들의 키치적 감성은 팝아트와 공명했지만 1980년대엔 이들도 진부하다는 평을 받았고 이를 대신해 해체주의 건축이 시장을 선도해나갔다.
_ “09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