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하라 다미키는 히로시마에서 피폭당한 작가로, 그 체험을 글로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어린 시절부터 문집 활동 및 동인 활동을 끊임없이 해 온 하라 다미키는 먼저 시인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언어를 갈고 닦아 정제된 표현으로 그리는 과정을 겪은 하라 다미키의 문장은 이 작품에서 보이는 죽음을 그리는 중에도 아름답게 표현된다. 오에 겐자부로는 문고판 신초사 간 ≪여름 꽃·심원의 나라≫ 해설에서 하라 다미키에 대해 “현대 일본 문학의 가장 아름다운 산문가의 한 사람”으로 칭하며 문체에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작가는 그 문체로 절망과도 같은 죽음, 처참한 대량의 죽음, 그리고 광기에 휩싸여 스스로 맞아들이고 있는 죽음에 관해 그려 낸다.
이 단편집에 실린 작품은 크게 세 가지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로 나뉜다. 1부에는 1944년에 세상을 떠난 하라 다미키의 아내 나가이 사다에의 병환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다. 아내의 죽음과 관련된 작품 다섯 편에는 죽음에 직면해서, 또는 아내를 보내고 그 이후의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다. 2부는 피폭으로 인한 대규모 사망과 관련한 단편 세 편으로, 각 작품은 1945년 초부터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40시간 전까지, 피폭 시와 직후의 상황, 그 후의 히로시마를 그린다. 3부는 히로시마 피폭이 어느 정도 정리된 시점에 ‘나’의 이야기로, 자신의 죽음 직전의 심상이다. 작품집에는 죽음과 관련된 이 이야기들이 생생하고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200자평
일본 원폭문학의 대표작인 <여름 꽃>을 비롯해 하라 다미키의 단편 열두 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여름 꽃>은 작가가 히로시마에서 체험한 피폭과 그 직후의 일기를 바탕으로 해 원자폭탄이 인간에게 가져온 직접적인 피해의 처참함을 생생하게 고발한다. 오에 겐자부로는 하라 다미키에 대해 “현대 일본 문학의 가장 아름다운 산문가의 한 사람”으로 칭하며 문체에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은이
하라 다미키(原民喜)는 일본 전후의 시인이며 소설가로, 히로시마에서의 피폭 체험을 시 <원폭소경>과 소설 <여름 꽃> 등의 작품으로 남겼다. 1905년 히로시마에서 출생했다. 형과 함께 가정 내 동인지 ≪포기(ポギー)≫를 통해 시 창작을 시작했다. 1924년 게이오대학 문학부에 진학하고, 다다이즘에 심취하여 이토카와 타비오(糸川旅夫)라는 필명으로 ≪예비일일신문(芸備日日新聞)≫에 다다이즘계의 시를 발표하게 된다. 대학 시절에 동인지 ≪춘앵전(春鶯囀)≫을 창간하여 활동하고, 회람잡지 ≪4, 5인 잡지(四五人会雑誌)≫를 창간하기도 했다. 1936년부터 1941년에 걸쳐 ≪미타문학≫ 등에 단편소설을 다수 발표한다. 1939년 아내가 병석에 누우면서 발표 작품 수가 감소한다. 1945년 1월 고향 히로시마로 피난해 있던 중 피폭된다. 그해 가을에서 겨울에 걸쳐 피폭과 그에 의한 참상을 기록한 수첩을 기초로 소설 <원자폭탄>을 집필하는데, 이것이 후에 원폭 소설의 대표작 <여름 꽃>이 된다. 1948년 <여름 꽃>으로 제1회 미나카미 다키타로상을 수상하고, 1949년 소설집 ≪여름 꽃≫을 간행한다. 1951년 기차선로에 몸을 눕혀 자살한다.
옮긴이
정향재는 현재 한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로 일본 근현대 문학을 전공했다. 세부적으로는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일본 세이케이(成蹊)대학에서 가와바타 문학과 예술에 대한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대표 논문으로 <가와바타 문학과 주변예술>, <1930년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단상>, <일본 현대문학에 있어서의 패전>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원작의 ≪잠자는 미녀≫(현대문학), 노나카 히라기 원작의 ≪연인들≫(살림), 니시하라 미노리 저작 ≪클래식을 뒤흔든 세계사≫(북뱅) 등이 있다.
차례
1부
고통스럽고 아름다운 여름
가을 일기
겨울 일기
아름다운 죽음의 낭떠러지에
죽음 속의 풍경
2부
파멸의 서곡
여름 꽃
폐허에서
3부
불의 입술
진혼가
영원한 푸르름
심원의 나라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그는 아내의 뼈를 허공에 그려 보았다. 그가 죽은 후의 뼈도 아마도 저 뼈와 흡사할 것이다. 그리하여 저 어둠 속에 언젠가는 그의 뼈도 안치될 것임이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하자 희미하지만 편안한 기분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설령 그의 뼈가 같은 묘지에 묻힌다고 해도 이제 인간의 형태로 아내와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죽음 속의 풍경>
사람들은 처음에는 자신의 집만 폭격당했다고 생각했는데, 밖으로 나가 어디나 똑같이 당했다는 것을 알고 아연실색했다. 그리고 땅 위의 집이라는 집은 모두 붕괴되어 있는데도 폭탄 흔적 같은 구멍이 없다는 것에도 이상해했다. 그것은 경계경보가 해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번쩍하고 빛이 났고, 마그네슘을 태우는 것 같은 ‘슈욱’ 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한순간 훅 하고 발밑이 돌고, … 그것은 마치 마술과도 같았다고 여동생은 전율하면서 이야기했다.
−<여름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