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명 Rubáiyát of Omar Khayyám 지은이오마르 하이얌 · 에드워드 피츠제럴드
(Omar Khayyām · Edward FitzGerald)
옮긴이윤준
책소개
밥 딜런도 노래 가사에 사용한 루바이
<<루바이야트>>의 시편들은 T. S. 엘리엇,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등 여러 문학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201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의 노래 가사에도 여러 차례 인용되었다.
“열네 살 무렵 내 주위에 놓여 있던 피츠제럴드의 ≪오마르≫를 우연히 집어 들었던 그 순간을, 그리고 그 시가 내게 펼쳐 보인 감정의 새 세계로 압도당한 채 끌려들어 갔던 것을 아주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것은 느닷없는 개종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 세계는 눈부시고 유쾌하고 고통스러운 색깔로 채색되어 새롭게 나타났다.”-T. S. 엘리엇(영국 시인, 1948년 노벨문학상 수상), ≪시의 용도와 비평의 용도≫
“어쩌면 1857년경에 오마르의 영혼이 피츠제럴드의 영혼 속에 자리를 잡았던 듯하다. ≪루바이야트≫에서 우리는 우주의 역사란 신이 구상하고 무대에 올리고 지켜보는 장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관념은(전문 용어로는 범신론이라고 하는데) 우리로 하여금 피츠제럴드가 오마르를 재창조할 수 있었다고 믿게 만들어 줄 것이다. 왜냐하면 두 사람 다 본질적으로는 신이거나 신의 순간적 얼굴들이기 때문이다. (…) 어떤 합작이건 다 신비롭다. 피츠제럴드와 오마르의 합작은 훨씬 더 신비하다. 두 사람은 서로 달랐고, 어쩌면 살아생전에는 벗이 되지 못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죽음과 변천과 시간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알게 만들고 그들을 하나의 시인이 되게끔 묶어 주었던 것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아르헨티나 시인, 소설가, 1980년 세르반테스상 수상), <에드워드 피츠제럴드의 수수께끼>
여가 시간에 흥겹게 놀며 짓던 즉흥시 ‘루바이’
페르시아 니샤푸르 태생의 11∼12세기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였던 오마르 하이얌은 19세기 영국 시인 피츠제럴드가 번역한 시집 ≪루바이야트≫의 원작자다. 페르시아어 ‘루바이’는 ‘4행시’를 뜻하고, ‘루바이야트’는 그 복수형으로 ‘4행시 모음’을 말한다. ‘루바이야트’는 페르시아 시에서 오래된 시 형식의 하나이긴 하지만 특별히 중요하게 여겨지진 않았다. 시인들과 교육 수준이 높은 이들은 여가 시간에 루바이를 재미 삼아 짓거나 벗들과 흥겹게 저녁 시간을 보내며 즉흥적으로 짓곤 했다. 이 때문에 하이얌의 루바이야트가 당대에 중요한 작품으로 인식되지 않았던 것 같다. 또한 페르시아 문학 전통에서 루바이야트는 개별 루바이들의 모음에 불과했고, 따라서 어떤 일관된 스토리나 연속성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피츠제럴드는 루바이의 압운 체계를 따르면서도 좀 더 관례적인 영국 시의 리듬과 율격을 활용했다. 하이얌의 루바이들을 번역하면서 그가 활용한 4행 연은 영시에서 ‘루바이야트 4행 연’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원작자 오마르 하이얌과 번안자 피츠제럴드의 쌍둥이 영혼
피츠제럴드는 하이얌의 루바이들 중 마음에 드는 것들을 골라 번역했다. 그는 하이얌의 정신과 정서를 살리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시를 재창조했다. 피츠제럴드의 ‘자유로운’ 번역을 비판해 온 많은 학자들조차도 그가 빼어난 시를 창조해 냈을 뿐만 아니라 원시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음을 인정했다.
서구의 한 페르시아 문학 연구자는 피츠제럴드의 ≪루바이야트≫가 가진 강렬함에 주목하면서 피츠제럴드가 하이얌에게서 ‘쌍둥이 영혼’을 발견하고 동질감을 느낀 감수성의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두 개의 필사본을 토대로 35편을 번역한 피츠제럴드는 1858년 초에 ≪프레이저 매거진≫에 번역 원고를 보냈지만 회답이 없자 도로 돌려받았다. 이후 40편을 더 번역한 그는 1859년 초에 버나드 쿼리치 출판사에서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라는 표제 아래 익명으로 250부를 자비로 발간했다. 그렇지만 발간된 직후 거의 주목받지 못하자 서점 주인이자 발행인인 쿼리치는 결국 이 시집의 재고본들을 ‘1페니 떨이본 박스’에 따로 치워 두었다. 그러다가 2년 후 우연히 이 시집을 발견한 두 명의 문인이 친구 로제티와 스윈번에게 보냈고, 라파엘 전파 문인·화가 그룹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로써 이 시집은 이후 널리 알려져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불확실한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도주가 있어 행복
원작자 하이얌과 번역자 피츠제럴드가 함께 관심을 기울였던 문제는 삶의 불확실성에 관한 것이었다. ≪루바이야트≫ 초판본이 발간된 1859년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과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에 관해≫가 발간된 해이기도 하다. 종교적·철학적 체계에 회의적인 눈길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당대인들에게 피츠제럴드의 유려한 번역을 통해 재해석된 하이얌의 사색은 불확실하긴 하지만 삶과 우주에 대한 하나의 대안적 근거를 제공할 수 있었다. 이 시들은 삶의 덧없음에 대한 슬픔과 감각적 쾌락이라는 두 축을 매혹적으로 직조하고 있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왜 고통을 감내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지금 당장 내 눈앞에 사랑하는 사람과 아름다운 장미꽃과 향기로운 포도주가 있으니 행복하지 않은가? 이러한 메시지는 시집이 발간된 지 16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읽히고 갖가지 형태로 변주되고 있는 이유를 뚜렷하게 말해 준다.
19세기 영문학 연구자의 전문성 있는 번역
기존 도서들은 1879년에 출간된 제4판을 주로 소개했다. 그러나 이 책은 19세기 영문학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윤준 교수가 학술적 예술적으로 가장 높게 평가받고 있는 초판본을 저본으로 삼아 옮겼다. 상세한 주석과 해설을 붙였고 내용이 난해해 그간 소개된 적이 없던 피츠제럴드의 서문도 추가해 책의 가치를 높였다.
전문가들이 출연해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를 설명하는 BBC 라디오 녹음 <The Rubaiyat of Omar Khayyam (In Our Time)>
200자평
11세기 페르시아의 시인들은 벗들과 흥겹게 어울리며 즉흥적으로 ‘루바이’를 지었다. 루바이는 4행시를 뜻한다. 페르시아의 시인이자 천문학자인 오마르 하이얌은 수백 편의 루바이를 남겼다. 그로부터 7세기가 지나 영국 시인 피츠제럴드는 친구로부터 하이얌의 루바이가 적힌 필사본을 선물받는다. 그는 약 600년 전의 이 ‘쾌락주의적 불신자’ 하이얌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루바이들을 번안해 ‘루바이야트’라는 이름으로 출간한다. 말이 번안이지 피츠제럴드는 거의 자신만의 빼어난 창작물을 만들어 낸다. 평론가들은 피츠제럴드가 하이얌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내린다.
이 책에 실린 75편의 루바이들은 우리 삶의 불확실성에 대안을 제시한다. 우리는 어떻게, 왜 이 세상에 왔는지, 그리고 덧없는 열정의 삶이 순식간에 지나가면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향긋한 꽃들과 사랑하는 벗들과 감미로운 포도주가 있다면 충분히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 책의 각 루바이에는 영국의 삽화가 조지프 설리번이 1913년 출간한 판본에 그린 삽화가 함께 실려 있다. 이 삽화들은 이후 숱한 판본에 재수록되었다.
지은이
오마르 하이얌은 오늘날의 이란의 북동부에 자리한 호라산주 니샤푸르에서 1048년에 태어나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1131년경 고향에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문학자와 수학자와 철학자로 널리 알려졌던 하이얌은 당대에는 시인으로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고, 그의 생애에 관해서는 더더욱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피츠제럴드의 서문에 제시된 하이얌과 셀주크 왕조의 재상 니잠 알 물크와 암살단의 수장 하산 이 사바흐 간의 우정에 관한 흥미로운 스토리에 의문을 품는 학자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이얌은 셀주크 왕조 군주들의 궁정에서 일했고 또 그의 사상이나 저작들은 당대의 만만찮은 정치적·종교적 환경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종교는 하이얌이 활동하던 시대의 사회와 권력 구조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는데, 특히 11세기로 접어들면서 페르시아의 궁정에서 기존의 종교관과 다른 견해를 갖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 되었다. ≪루바이야트≫의 내용과 의의는 그 같은 맥락에서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당대의 역법을 개혁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천문학자로서, 또 대수학에 관한 선구적인 저작들을 남긴 수학자로서 하이얌의 명성은 당대에도 무척 확고한 것이었지만, 시인으로서의 명성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반세기 가까이 지난 1170년대에 처음으로 아랍어로 쓴 시 네 편이 그의 이름으로 한 사화집에 수록되었고, 13세기로 접어들면서 몇몇 저자들이 상당수의 페르시아어 시편들을 그가 지은 것으로 언급했다. 이후 시간이 갈수록 그의 이름이 적힌 필사본들에 수록된 페르시아어 시편들은 점점 늘어나게 되었는데,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현재 옥스퍼드대학교 보들리언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아우즐리 필사본’이다. 1460∼1461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필사본에는 158편의 4행시(‘루바이’)가 수록되어 있고, 피츠제럴드가 벗 에드워드 카우얼을 통해 하이얌의 4행시들을 처음 접하게 된 것도 바로 이 필사본을 통해서였다. 물론 이후에 발견된 필사본들에 수록된 루바이들까지 합치면 하이얌의 작품들로 알려진 것이 1000여 편이나 되지만, 많은 학자들은 하이얌의 실제 작품이 200편이 채 못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피츠제럴드의 삶의 성격과 그 배경은 하이얌의 4행시편들에 대한 그의 해석과 번역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고, 이 점은 그가 창조한 ≪루바이야트≫의 특질과 성공에 관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1809년 서포크주 우드브리지 근처 브레드필드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영국 전역과 대륙을 여러 차례 여행하긴 했지만, 거의 평생 동안 이스트앵글리아 지방에 거주하면서 생계에 대한 걱정 없이 고전 작품들을 읽고 정원을 가꾸며 이른바 ‘초야의 학자’로 살았다. 베리 센트 에드먼즈에 있는 킹 에드워드 6세 문법학교에서 수학한 그는 1826년 케임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칼리지에 입학했는데, 문법학교와 대학에서 만난 벗들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의 교우 관계는 그의 지적이고 문학적인 탐구를 잘 보여 준다. 그는 빅토리아기 문단에서 활약하던 소설가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 시인 앨프리드 테니슨, 역사가이자 저술가인 토머스 칼라일과 교유했다. 그는 그들과 자주 매력적인 편지들을 주고받았고, 새커리와 테니슨이 어려움을 겪던 젊은 시절에는 그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또 당시 올리버 크롬웰의 전기를 집필 중이던 칼라일을 위해 자신의 가문 영지에 들어 있던 네이스비 들판에 대해 조사해 주기도 했다.
1851년에 플라톤풍 대화록인 ≪유프라노어−젊음에 관한 한 대화≫를 자비로 발간했던 피츠제럴드는 자신이 거주하던 지역의 방언들과 고전어에 관심이 많았고, 고전 작품들을 번역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를 진지한 번역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고 또 궁극적으로 ≪루바이야트≫의 발간으로 이어진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은 자신보다 훨씬 나이 어린 에드워드 카우얼과의 만남이었다. 1844년에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카우얼은 18세, 피츠제럴드는 35세였다. 보기 드문 언어 재능을 지닌 카우얼은 이미 라틴어·그리스어·스페인어·페르시아어에 능통해 있었고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는 중이었다. 카우얼로부터 스페인어를 배운 지 3년 만에 피츠제럴드는 스페인 극작가 칼데론의 희곡 6편을 번역해 자비로 발간했고, 1852년 12월부터 옥스퍼드에서 카우얼에게 페르시아어 교습을 받기 시작했다. 페르시아어에 어느 정도 친숙해진 그는 1856년에 페르시아 시인 자미의 ≪살라만과 압살≫을 번역해 자비로 발간했다.
오마르 하이얌이 피츠제럴드의 삶 속으로 들어올 무렵 그가 이미 페르시아어를 번역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1856년 옥스퍼드대학교 보들리언도서관에서 조수로 일하던 카우얼은 하이얌의 것으로 추정되는 한 필사본을 발견했다. 그는 이 ‘아우즐리 필사본’을 베낀 작은 노트를 보냈는데, 피츠제럴드는 ‘약 500년 전의 한 쾌락주의적 불신자’인 하이얌에게 동질감을 느꼈던 것처럼 보인다. 또 같은 해 가을 인도 캘커타의 프레지던시칼리지 교수로 임명되어 아내와 함께 인도에 도착한 카우얼은 현지에서 또 다른 필사본을 발견해 그것을 베껴 쓴 후 피츠제럴드에게 보냈고, 피츠제럴드는 2년에 걸쳐 이 하이얌의 루바이들을 번역했다. 사실 자신의 페르시아어 멘토였던 카우얼이 인도로 떠나 버리고 또 얼마 후 결혼한 루시 바턴과의 불행한 결혼 생활(이듬해인 1857년 8월, 부부는 별거하기로 합의했다)을 이어 가던 그로서는 이 번역 작업이야말로 힘겨운 시기를 견딜 수 있게 해 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피츠제럴드는 평생 동안 우드브리지에서 유복하게 살면서 독서와 외국어 공부와 번역에 전념했고, 이웃들에게는 ‘약간 얼빠진’ 괴짜로 여겨졌다. 그가 남긴 숱한 편지들은 그가 점점 떨어지는 시력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지적 호기심과 탐구심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는 벗들과의 교유를 계속하면서 가끔 런던과 다른 지역을 여행하기도 했고, 테니슨 부자는 1876년 우드브리지의 자택으로 그를 찾아오기도 했다. 그는 1883년 5월 노포크주 머튼에 거주하던 벗 크래브(시인 조지 크래브의 손자)를 방문하던 중 세상을 떠났고, 우드브리지 인근의 보울지의 교회 묘지에 묻혔다.
옮긴이
윤준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1990)를 받았으며, 1985년부터 현재까지 배재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영문과에서 풀브라이트 방문학자(1992∼1993)로 연구했고, 한국현대영어영문학회 제1회 우수논문상(2005)을 받았으며, 한국현대영미시학회장(2011∼2012)과 한국현대영어영문학회장(2011∼2013)으로 일했다. 지은 책으로 ≪콜리지의 시 연구≫(2001), 옮긴 책으로 ≪문학과 인간의 이미지≫(1983), ≪거상−실비아 플라스 시선≫(공역, 1986), ≪영문학사(제4개정판)≫(공역, 1992), ≪Who’s Who in Korean Literature≫(공동 영역, 1996), ≪티베트 원정기≫(공역, 2006), ≪영미시의 길잡이≫ (2007), ≪티베트 순례자≫(공역, 2007), ≪영문학의 길잡이≫(2008), ≪마지막 탐험가−스벤 헤딘 자서전≫(공역, 2010), ≪콜리지 시선≫(2012), ≪워즈워스 시선≫(2014), ≪영국 대표시선집≫(2016), ≪허버트 시선≫(2018)이 있다.
차례
서문
루바이야트
해설
지은이에 대해
그린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1
여기 나무 그늘 아래 빵 한 덩어리,
포도주 한 병, 시집 한 권−그리고 황야에서도
내 곁에서 노래하는 그대가 있으니−
황야도 낙원이나 다름없구나.
Here with a Loaf of Bread beneath the Bough,
A Flask of Wine, a Book of Verse−and Thou
Beside me singing in the Wilderness−
And Wilderness is Paradise enow.
26
오, 현자들은 떠들게 내버려 두고, 늙은 하이얌과 함께 오라.
인생은 쏜살같이 지나간다는 그 한 가지는 확실하다네.
한 가지만 확실하고, 나머지는 거짓이라네−
한때 피었던 꽃은 언젠가 시들기 마련인 법.
Oh, come with old Khayyám, and leave the Wise
To talk; one thing is certain, that Life flies;
One thing is certain, and the Rest is Lies;
The Flower that once has blown for ever dies.
30
아니, 묻지도 않고, 어디에서 여기로 서둘러 왔는가?
또, 묻지도 않고, 여기에서 어디로 서둘러 갔단 말인가!
한 잔 또 한 잔 쭉 들이켜
이 얼토당토않은 일을 까맣게 잊자꾸나!
What, without asking, hither hurried whence?
And, without asking, whither hurried hence!
Another and another Cup to drown
The Memory of this Impertinence!
37
아, 잔을 가득 채워라—시간이 우리 발밑에서
얼마나 빨리 미끄러져 가는지 되뇌어야 무슨 소용인가.
내일은 태어나지 않았고 어제는 죽었는데,
오늘이 즐거우면 왜 내일과 어제에 대해 안달복달할 것인가!
Ah, fill the Cup:—what boots it to repeat
How Time is slipping underneath our Feet:
Unborn TO-MORROW and dead YESTERDAY,
Why fret about them if TO-DAY be sweet!
74
아, 이울 줄 모르는 내 기쁨의 달,
하늘의 달은 또다시 떠오르네.
앞으로 저 달은 몇 번이고 떠오르며
바로 이 정원에서 나를 얼마나 찾을 것인가−헛되이!
Ah, Moon of my Delight who know’st no wane,
The Moon of Heav’n is rising once again:
How oft hereafter rising shall she look
Through this same Garden after me−in vain!
서지정보
발행일 2020년 2월 10일 쪽수 198 쪽
판형 128*188mm
, 210*297mm
ISBN(종이책) 9791128852770 03840
12800원
ISBN(PDF) 9791128852794 05840 10240원
ISBN(EPUB) 9791128852800 05840 10240원
ISBN(큰글씨책) 9791128852787 03840 2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