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괴테는 고트프리트 폰 베를리힝겐(1480년 경∼1562년)이라는 기사의 자서전을 읽고 그를 “가장 고결한 독일인 중 하나”(잘츠만에게 쓴 1771년 11월 28일자 편지)라고 생각했다. 괴테는 그에 대한 열광을 바탕으로 작품을 구상해 1771년 초고를 완성했다. 이후 개작에 가까운 수정을 거쳐 1773년에 익명으로 〈무쇠 손 괴츠 폰 베를리힝겐〉을 출간한다. 《젊은 베르터의 슬픔》보다 1년 앞선 작품이니 괴테가 발표한 최초의 대작이라 할 수 있다.
18세기 계몽주의를 이끌었던 레싱을 비롯한 작가들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역사 속 인물들을 소재로 작품을 써서 궁극적으로는 그 인물의 명예 회복을 도모했다. 괴테는 수많은 역사 속 인물 가운데 베를리힝겐을 명예 회복의 대상으로 택해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의 의지가 인간 자체와 함께 필연적인 역사의 흐름에 의해 분쇄되어 가는 모습을 그린다.
괴츠는 드라마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정직한 사람, 기사, 자율적으로 자기 삶을 꾸리는 위대한 인물로 묘사된다. 처음 등장해 숨을 거둘 때까지 괴테가 일관되게 부르짖는 것은 한마디로 ‘자유’다.
괴테는 괴츠를 자유와 정직을 지향하는 최후의, 유일한 기사로 묘사했다. 그래서 괴츠의 운명은 처음부터 몰락하기로 예견되어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괴츠의 상대는 혼란하고 무질서한 시대,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 막강한 상대를 꺾고 승리할 재간이 괴츠에겐 없다. 괴테는 주인공의 이런 운명을 셰익스피어 비극의 핵심으로 간파하고 있었다.
그의 드라마들은 모두 (…) 우리 자아의 본질적인 것, 우리 의지가 요구하는 자유가 전체의 필연적인 진행과 충돌하는 비밀스런 점을 중심으로 돈다.” -〈셰익스피어 기념일에 부쳐〉 중에서
괴츠에게 다가올 새로운 시대는 타락의 시대다.
앞으로 거짓의 시대가 올 거야. 거짓이 자유를 얻어 판을 칠걸세. 비열한 놈들이 권모술수로 세상을 다스리고 고결한 사람들은 그놈들의 덫에 걸려들겠지.
-〈괴츠 폰 베를리힝겐〉 276쪽에서
괴테가 바라보는 18세기 독일도 그랬다. 16세기 엄혹한 신분 사회에서도 자유를 추구했던 옛 기사 괴츠는 18세기 청년 괴테에게 자유의 가치를 새로 일깨워 준다. 대세에 맞서 꿋꿋하게 자유와 정의를 추구하는 기사 괴츠의 이야기에는 시공을 초월하는 감동이 있다.
200자평
청년 괴테의 고전주의 극작 스타일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작품. 봉건적인 신분 사회 질서에 반항하는 괴츠의 자유를 위한 투쟁과 한계에 직면한 인간의 숭고한 도덕적 승리를 그렸다.
지은이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1749년 8월 28일 독일 마인강 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부친 요한 카스파르(Johann Kaspar) 괴테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황실 고문관이라는 명예직을 가진 부유한 시민으로 합리적이고 이지적인 성격이었다.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Katharina Elisabeth)는 라틴계 특유의 풍부한 감정과 활달하고 명랑한 성격의 여성으로 어린 아들에게 동화를 들려주고 인형극을 접하게 하여 아들의 예술 감각을 일깨워 주었다.
괴테는 1765년 10월 부친 뜻에 따라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한다. 1771년 8월 법학석사 학위 시험을 치른 뒤 고향으로 돌아간다. 고향에서 변호사로 일을 시작하지만 본업보다는 문학에 더 힘을 기울인다. 이 시기 〈무쇠 손 괴츠 폰 베를리힝겐〉(1773)을 발표한다. 이후 3년은 괴테 일생에서 가장 풍성한 결실의 기간이다. 《젊은 베르터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1744)도 이때 발표된다.
1776년 괴테는 추밀원 고문관에 임명되는 것을 시작으로 10년간 여러 분야의 행정 업무를 담당한다. 1782년에 재무상이 되는 한편 신성로마제국 황제 요제프 2세로부터 귀족 작위도 받는다. 이 시기 바이마르 궁정의 여관 샤로테 폰 슈타인 부인과의 정신적 교류 영향으로 질풍노도기의 과도한 격정에서 벗어나 조화와 중용을 지향함으로써 좀 더 원숙한 문학 세계로 들어선다. 그 밖에 괴테는 지질학, 광물학, 해부학, 식물학 등 자연과학 연구에도 몰두한다. 1786년 9월 3일 괴테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바이마르를 떠나 이탈리아로 향한다. 이탈리아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을 접한 괴테는 이성과 감성을 조화시키고 중용을 지키며 교양을 갖춘 원숙한 인간상을 절제된 언어와 짜임새 있는 형식으로 표현하려는 고전주의 문학관을 확립한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후 별 성과 없이 여러 해를 지내던 괴테는 10년 연하의 실러와 아름다운 우정 관계를 맺는다.
1828년 카를 아우구스트 대공의 사망과 2년 뒤 아들의 죽음으로 최대 시련을 맞은 괴테는 미완성 작품에 매달림으로써 그 시련을 극복하려고 한다. 〈파우스트〉는 그때까지 인간 정신이 이룩한 모든 것과 예언적으로 이후에 창조될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방대한 스케일, 다양한 운율, 풍부한 상징 등으로 독일 문학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대작이다. 인간의 한평생이라 할 수 있는 6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던 〈파우스트〉의 완성과 함께 괴테의 일생도 종결된다. 괴테는 1832년 3월 22일 향년 83세로 눈을 감는다.
옮긴이
윤도중
서울대학교 문리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뮌헨대, 본대, 마인츠대에서 수학한 뒤 주한독일문화원, 전북대학교를 거쳐 숭실대 독문과 교수로 정년퇴직하고 명예교수가 되었다. 한국독어독문학회장, 숭실대학교 인문대학장을 지냈고 레싱, 괴테, 실러 등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저서 《레싱: 드라마와 희곡론》(2003) 이외에 다음을 번역 출간했다.
프란츠 메링, 《레싱 전설》(2005)
고트홀트 레싱, 《라오콘: 미술과 문학의 경계에 관하여》(2008), 《함부르크 연극론》(2009)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괴테 고전주의 희곡선》(1996)
카를 추크마이어, 《쾨페닉의 대위》(1999)
고트홀트 레싱, 《에밀리아 갈로티》(2009), 《현자 나탄》(2011), 《미나 폰 바른헬름, 또는 군인의 행운》(2013)
프리드리히 헤벨, 《마리아 마그달레나》(2009), 《유디트》(2010)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홈부르크 공자》(2011)
프리드리히 실러, 《돈 카를로스》(201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2020)
에두아르트 뫼리케, 《프라하 여행길의 모차르트/슈투트가르트의 도깨비》(2021)
차례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제5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괴츠 : 자유가 후대에도 살아 있으면 우리는 마음 편히 죽을 수 있네. 후손들이 행복하고 후손들의 황제가 행복한 걸 영계에서 볼 수 있으니까. 만약 영주들의 신하들이 자네들이 나에게 하는 것같이 그렇게 고결하고 자유롭게 섬긴다면, 그리고 또 내가 황제를 섬기듯 영주들이 황제를 섬긴다면….
180쪽
괴츠 : 그나마 다행이군. 그는 하늘 아래 가장 착하고 용감한 청년이었지. 이제 제 영혼을 풀어 주소서. − 불쌍한 여자! 도덕이 땅에 떨어진 세상에 당신을 남겨 두고 가는구려. 레르제, 내 아내를 지켜 주게. − 자네들은 집 대문보다 마음을 더 세심하게 단속해야 하네. 앞으로 거짓의 시대가 올 거야. 거짓이 자유를 얻어 판을 칠 걸세. 비열한 놈들이 권모술수로 세상을 다스리고 고결한 사람들은 그놈들의 덫에 걸려들겠지. 누이야, 하느님의 가호로 남편을 되찾기 바란다. 매제가 드높이 뛰어오른 만큼 깊숙이 추락하지 않기 바란다. 젤비츠 공이 죽었고 선한 황제도, 내 게오르크도 죽었다. − 물 한 모금 주게. − 천국의 공기 − 자유! 자유! (숨을 거둔다.)
엘리자베트 자유는 저 위, 저 하늘 위 당신한테만 있어요. 이제 이 세상은 감옥입니다.
마리아 : 고결하신 분! 고결하신 분! 이런 분을 내친 시대에 저주가 있으리라!
레르제 : 이런 분을 몰라보는 후대에 저주가 있으리라!
27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