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철학의 혁신을 혁신하다
철학에서 ‘관념’은 오랫동안 사유의 근본 단위로 군림해 왔다. 분석철학은 ‘관념’을 ‘문장’으로 대체한다. 사람마다 다르게 품을 수 있는 ‘관념’과 달리 ‘문장’은 진위 평가가 가능해 공동체가 공유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언어적 전회’다. 솔 크립키는 분석철학의 이 언어적 전회를 더욱 심화하고 적실하게 만든 인물로 손꼽힌다.
이 책은 철학을 새로운 지평에 올려놓은 크립키 사유의 개요를 열 가지 키워드로 정리한다. 프레게·러셀·콰인의 ‘기술이론’에 대한 크립키의 반론, ‘동일성’·‘가능성’·‘필연성’에 대한 해석, 양상논리를 새롭게 정리한 ‘크립키 의미론’ 등을 요약했다. 단번에 이해하기 쉽지 않은 크립키 철학에 한결 쉽게 가까워질 수 있다.
솔 크립키(Saul S. Kripke, 1940∼2022)
미국의 철학자이자 논리학자. 록펠러대학교, 프린스턴대학교, 뉴욕시립대학교에서 가르쳤다.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알려졌고 대학 1학년 때 “양상논리의 완전성 정리”라는 논문을 학회지에 발표해 소위 ‘크립키 의미론’의 기반을 구축했다. 필연성의 다양한 통사적 체계들을 단일한 의미론적 패러다임으로 통합한 것이다. ≪이름과 필연≫은 그러한 통합 패러다임의 설득력을 입증한 책이다. 일상언어의 애매모호성을 수용하고 언어놀이 개념을 다룬 ≪비트겐슈타인 규칙과 사적 언어≫라는 저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기존의 여러 철학적 난제를 푼 기여로 롤프쇼크상(Rolf Schock Prize)을 수상했다. 미국 뉴저지 플레인스보로에서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200자평
분석철학은 ‘문장’을 사유의 근본 단위로 삼는다. ‘관념’은 사람마다 다르게 품을 수 있지만 ‘문장’은 진위 평가가 가능하다. 사람과 사람의 소통에서 객관적 평가 단위가 될 수 있다. 분석철학의 이러한 혁신을 더욱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인물, 솔 크립키 철학의 개요를 이 책에 담았다.
지은이
정대현
고려대학교에서 논문 “지식개념의 일상언어적 분석”으로 학위를 받았고, 평생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언어철학, 심리철학, 형이상학 등을 가르쳤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다. 일상언어는 애매모호하지만 음양적 논리로 자연화된 우주의 희미한 거울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필연성의 문맥적 이해≫, ≪이것을 저렇게도: 다원주의적 실재론≫ 등을 썼다. 저술 목록과 일부 논문들은 블로그(blog.naver.com/chungdhn)에서 볼 수 있다.
차례
미래의 문을 두드리는 조심스러운 철학자
01 기술이론
02 ‘이름은 고정지시어’
03 동일성
04 가능성
05 필연성
06 크립키 의미론 : 양상 세계의 언어
07 믿음의 당혹성
08 ‘나는 누구인가’
09 규칙 : 의미·사실·사용
10 양자물리학 시대의 크립키 철학
책속으로
크립키는 분석철학의 언어적 전회 프레임을 큰 틀에서 유지하지만, 언어적 전회를 뒷받침하는 거인들의 중심 주장들을 반박한다. 그러면서 이를 수정·발전시키고 강화해 현재의 과학적·사회적 상황에 더 적합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사유가 관념이 아니라 문장 또는 명제로 이루어질 때, 중요 요소 중 하나는 그 문장에서 언급되는 “최한기”와 “서울” 같은 이름 또는 고유명사나 “호랑이”와 “물” 같은 보통 명사다. 거인들은 이들 명사가 관찰 가능한 특정 기술 집합을 의미한다고 보고 ‘언어적 전회’를 시작했다. 반면 크립키는 그러한 접근 방식은 그 시작에서부터 해당 명사들이 지칭하는 대상들의 고유 속성이나 본질의 탐구를 저해한다고 비판한다. 크립키는 대상의 고유 속성을 추구할 수 있는 ‘크립키 의미론’을 개발해, 분석철학에서 진정한 언어적 전회를 이끌고 적실하게 만들었다.
_ “미래의 문을 두드리는 조심스러운 철학자” 중에서
크립키는 분석철학의 주류 학자들이 이름 또는 고유명사를 기술론적으로 설명한 것을 부정했다. 이름과 대상을 연결하는 고리로서 기술은 필요 없다고 보았다. 크립키에 따르면 이름은 매개자 없이 대상에 직접 연결된다. 이름은 특정한 기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대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곧 이름은 고정지시어다.
_ “02 ‘이름은 고정지시어’” 중에서
가능성과 필연성 개념은 인간의 일상 경험에서 다반사로 갈등을 일으킨다. 예컨대 진실된 불교인과 기독교인은 서로 자기 종교가 절대적·필연적이라 믿고, 대한민국 헌법은 그러한 모순된 믿음을 대한민국 체계 안에서 허용한다. ‘사람이 나비가 되는 것’은 가능하다고도 하고 가능하지 않다고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에서 이러한 가능성-불가능성 이야기들을 이해할 수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인간 지성사에서 이 물음과 정면으로 씨름한 경우는 보이지 않는다. 크립키는 소위 “크립키 의미론”으로 이 과제를 풀어낸다.
_ “06 크립키 의미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