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아폴론은 제우스에게 아들을 잃은 뒤 그 복수로 제우스에게 벼락을 만들어 준 키클롭스를 모두 죽인다. 제우스는 아폴론에게서 신의 지위를 박탈하고 인간에게 노예로 봉사하라는 벌을 내린다. 이런 연유로 아폴론은 잠깐 인간 아드메토스를 주인으로 섬기게 된다. 이때 아드메토스는 노예 신분이 된 아폴론을 여전히 신으로 예우했고, 아폴론은 그의 겸손한 태도에 감동해 보답으로 그를 죽음 문턱에서 구해 주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드메토스를 대신해 명계로 향할 누군가의 희생이 반드시 필요했다.
아드메토스와 한때 죽기를 각오하고 함께 싸운 전우들도, 그를 세상에 있게 한 부모도 모두 아드메토스를 대신해 죽기를 거부한다. 그때 단 한 사람, 아드메토스의 아내 알케스티스가 그를 대신해 죽겠다고 나선다. 모두가 죽음을 거부하는 가운데 오직 그녀만이 두려움 없이 죽음을 받아들이며 고고한 영웅성을 내비친다. 여성 캐릭터 구축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에우리피데스는 이 작품에서 알케스티스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내세워 삶과 죽음에 임하는 그녀의 남다른 태도를 영웅적으로 묘사했다.
알케스티스의 장례가 한창인 아드메토스의 성에 헤라클레스가 손님으로 찾아온다. 아드메토스는 상중에도 헤라클레스를 손님으로 극진히 대접하고, 아드메토스에게 닥친 불행을 알 리 없었던 헤라클레스가 뒤늦게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되면서 극은 반전을 맞는다. 헤라클레스는 아드메토스를 위해 죽은 알케스티스를 저승에서 구해 오기로 작정한다.
에우리피데스의 <알케스티스>는 지나치게 삶에 집착하는 인물들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재현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삶의 소중함을 환기시키며 살아 있음을 감사하게 만든다.
인간은 누구나 다 죽어!
죽기 마련이야! 그 누구도 자신이
내일도 여전히 살아 있을지 알지 못해.
운명의 발걸음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 몰라.
(…)
자네들은 인생을 즐겨!
술을 마시고, 매일매일을
자네들 것으로 여기고 즐기란 말일세. (제4삽화)
헤라클레스가 알케스티스의 죽음을 슬퍼하는 하인들에게 한 말이다. 삶과 죽음은 서로 멀지 않고, 만인이 죽음 앞에 평등하듯 삶 또한 만인에게 똑같이 소중하다는 교훈을 전하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그리스 비극이 공통적으로 피력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200자평
고대 그리스 비극 작가 가운데 여성 캐릭터 묘사에 특출했던 에우리피데스는 여성 인물을 내세운 작품들을 유독 많이 남겼다. <알케스티스>도 그런 작품 가운데 하나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죽음 앞에 평등한, 나약한 인간 군상 가운데서 오직 알케스티스만이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아들인다. 에우리피데스는 알케스티스의 고고한 희생정신을 영웅적으로 묘사한 이 작품에서 삶과 죽음이 서로 멀지 않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전한다.
지은이
에우리피데스(Euripides, BC 484∼BC 406)는 아이스킬로스(Aeschylos), 소포클레스(Sophocles)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기원전 534년에 그리스에서 최초로 비극이 상연된 후, 기원전 5세기에 이르러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를 통해 그리스 연극은 전성기를 맞는다. 기원전 3세기까지의 그리스 고대극의 전통은 로마를 거쳐 유럽 전체에 퍼지며 서구 연극의 원류가 되었다. 에우리피데스는 이 과정에서 서구 연극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극작가다. 생애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고, 다만 부유한 지주 계급 출신이라는 점과 좋은 가문에서 상당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는 점 정도만 전해진다. 기원전 455년에 데뷔한 이후 92편에 이르는 작품을 집필했지만,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은 18편뿐이다. 기원전 408년경 아테네를 떠나 마케도니아에 머물렀고 2년 뒤에 사망했는데,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와 <바카이>는 이때 집필된 작품이다.
옮긴이
김종환은 계명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네브래스카 대학교에서 셰익스피어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86년부터 계명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영어영문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했고, 현재 한국영미어문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5년에 재남우수논문상(한국영어영문학회)을 받았고, 1998년에는 제1회 셰익스피어학회 우수논문상을, 2006년에는 원암학술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셰익스피어와 타자≫, ≪셰익스피어와 현대 비평≫, ≪셰익스피어 연극 사전(공저)≫이 있으며, 세 권 모두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 그 외 저서로 ≪셰익스피어 작품 각색과 다시쓰기의 정치성≫, ≪인종 담론과 성 담론≫, ≪명대사로 읽는 셰익스피어 비극≫, ≪명대사로 읽는 셰익스피어 희극≫, ≪음악과 영화가 만난 길에서≫, ≪상징과 모티프로 읽는 영화≫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주요 작품 20편을 번역했으며, 소포클레스의 작품 전체와 아이스킬로스의 현존 작품 전체를 번역했다. 최근 ≪길가메시 서사시≫를 번역했고, 현재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번역하고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서막
제1삽화
제2삽화
제3삽화
제4삽화
종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알케스티스 : 제 생명보다 당신 생명을 더 중하게 생각했어요.
당신이 살아서 태양 빛을 보게 하려고
당신 대신 제가 죽는 겁니다.
(…)
저는 당신 없이 고아로 남겨진
아이들을 바라보며 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달콤하고 좋아야 할 제 청춘을
희생하는 겁니다.
-40쪽
페레스 : 나를 위해 죽어 달라고 청하진 않겠다.
너도 널 위해 죽어 달라고 청하지 마라!
젊은 너는 대낮의 빛을 좋아하면서
이 늙은 아비는 안 그럴 거라고 생각하느냐?
의심의 여지 없이 지하 세계의 삶은 길고,
여기 이 세상에서의 삶은 짧다.
너무나 짧다. 하지만 감미롭다.
정말 달콤하다. 그게 바로 네가
뻔뻔스럽게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면서
정해진 운명의 시간보다 더 오래 살려는 이유다.
(…)
이걸 명심해라, 아드메토스.
네가 네 목숨을 소중하게 여기듯
남들도 다 제 목숨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걸!
-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