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시선 이백은 당대 시단 나아가 중국 역대 시단을 통틀어 시성(詩聖) 두보와 쌍벽을 이루는 시인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이백에 대한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이태백시집≫을 제외하고는 그의 시에 대한 완역이 없어 학자들이 많이 아쉬워하고 있다. 이러한 반성에 기초해 몇몇 사람들이 뜻을 모아 ≪이백 전집≫을 역주하고 해설해 출판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이백은 젊은 시절부터 만유를 하며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역사의 유적지나 명승지를 둘러보았다. 역사의 현장이나 유적지에서 그 역사를 떠올리며 시를 짓는 것은 시인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백의 시집에 <회고>편이 존재하게 된 것은 이러한 시 창작의 배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게다가 이백은 역사 속 인물 가운데 자신의 ‘지취(志趣)’를 공유할 수 있는 인물에 대해서 수시로 시를 통해 흠모의 정을 드러내었다.
이백의 <회고>편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창작 배경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먼저 일종의 흘러간 역사 속에서 유적은 남아 있으나 인걸은 보이지 않는 일종의 ‘금석지감’과 같은 감회를 풀어낸 작품이 가장 많은 비중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이백이 흠모하는 역사 속의 인물과 관련한 유적지나 역사를 접하게 될 때, 그리움의 정서를 흠뻑 드러낸 회고시를 짓거나 혹은 그 대상과 관련한 역사나 일화를 단순 서술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또한 그러한 인물 묘사에는 단순한 묘사가 아닌 시인이 드러내고자 하는 감회나 뜻이 숨어 있는 경우도 많았다. 이 밖에 회고시를 통해 시인의 정치적 포부나 개인의 지향을 확연히 드러낸 ‘언지(言志)’의 내용 역시 일부 포함되어 있다.
이백의 <회고>편은 세 가지 측면에서 그 구조적 특색을 드러내는 것으로 파악된다. 첫째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송양의 구조로, 주로 ‘공성신퇴’ 혹은 ‘위진풍도’의 풍모를 보여 주는 인물에 집중되어 있다. 물론 이를 통해 이백은 자신만의 정신적 신념과 뜻을 드러낼 수 있었다. 둘째는 역사의 창상감에서 오는 소멸의 심미 구조로, 화려했던 과거의 역사가 지금의 눈앞에서는 보이지 않는 극명한 대비의 구조를 통해 일종의 상실의 미감을 표현하고 있다. 셋째는 시간 차의 제거에서 오는 부재의 구조 특색으로, 시공간을 뛰어넘어 금방이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역사의 인물을 결국은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일종의 ‘부재’의 심미를 드러내고 있다. 사실 이백은 역사 속 ‘지음’과의 교유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정감적 위안을 받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백이 추구했던 일종의 ‘무정유(無情遊)’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결국 과거와의 끊임없는 소통과 교류는 현재의 불우 혹은 한계를 위안하는 좋은 매개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이백의 <회고>편은 바로 이러한 소통과 교류의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200자평
이백시문학회에서 이백 시전집을 완역한다. 오랫동안 이백을 연구해 온 14명의 전문 학자가 국내외 모든 이백 관련서를 참고하고 수차례의 윤독과 토론을 거쳐 가장 완벽한 정본에 도전한다. 제4권은 <회고> 37수를 모았다. 정확한 번역과 방대한 주석, 다양한 교감과 상세한 해설은 이백 시를 처음 만나는 사람부터 전문 연구자까지 모두에게 이백 시의 진정한 면모를 보여 줄 것이다.
지은이
시선(詩仙) 이백(李白, 701∼762)의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고 이 한림(李翰林)이라고도 부른다.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며 10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이백의 출생과 어린 시절은 명확하지 않다. 전해지는 바로는 조적(祖籍)은 지금의 간쑤성 톈수이(天水) 부근의 농서현(隴西縣) 성기(成紀)였으나, 수나라 말기에 부친이 서역으로 이사해 서안도호부 관할이었던 중앙아시아에서 이백을 낳았고, 부친이 다시 사천성 면주(綿州) 창륭현(昌隆縣) 청련향(靑蓮鄉)으로 옮겨 옴에 따라 이백 또한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725년(25세) 촉 땅을 떠나서 장강을 따라 삼협을 거쳐 강남 일대를 유람했으며 산동, 산서 등지를 떠돌며 도교(道敎)에 심취했다. 742년(42세) 도사 오균(吳筠)의 추천으로 한림공봉(翰林供奉)에 제수되었으나,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실현할 수 없자 3년 만에 관직을 버리고 장안을 떠나 다시 방랑의 길로 들어선다.
755년(55세) 안녹산이 난을 일으켰을 때 이백은 안휘성 선성(宣城)에 있었다. 57세에 황자(皇子) 영왕(永王) 인(璘)의 막료가 되었으나, 영왕이 권력 투쟁에서 패하고 숙종이 즉위하자 이백도 역도로 몰려 강서성 심양(尋陽)에 투옥되었다. 송약사(宋若思)가 구명해 그의 막료가 되었으나 끝내 귀주성 야랑으로 유배되었다. 야랑으로 가는 도중, 삼협을 거슬러 무산에 당도했을 때 특사를 받아 강릉으로 내려가며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을 지었다.
이후 노쇠한 이백은 금릉과 선성을 오가다가 당도(當塗) 현령으로 있던 친척 이양빙(李陽冰)에게 몸을 의탁했다. 762년 병이 중해지자 이백은 자신의 원고를 이양빙에게 주고 <임종가(臨終歌)>를 짓고는 회재불우의 한 많은 한평생을 끝마쳤다. 우리에게는 당도에 있는 채석기(採石磯)에서 노닐다 장강에 비친 달그림자를 잡으려다가 익사했다는 전설이 훨씬 더 익숙하다.
이백은 굴원 이후 가장 뛰어난 낭만주의자로 꼽힌다. 그는 당시의 민간 문예뿐 아니라 진한(秦漢)과 위진(魏晉) 이래 악부 민가를 이어받아 자신만의 독특한 풍격을 형성했다. 더구나 그는 도가에 심취해서 그의 시는 인간의 세계를 초월한 환상적인 경향 또한 짙다.
옮긴이
이백시문연구회
이백의 시문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이 모여서 이백의 시문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번역하고 연구하는 모임이다. 2013년 2월 결성되었으며 매주 온·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이백의 시문을 강독하고 토론하고 있다. 2017년 중국 안후이성 마안산시를 방문해 중국이백연구회와 학술교류를 시작했다. 그간의 역서로는 ≪이백시전집 1. 고풍≫, ≪이백시전집 2. 등람≫, ≪이백시전집 3. 행역≫이 있다.
이동향(李東鄕)
이백시문연구회 고문. 현 고려대 명예교수. 서울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국립타이완대에서 석사 학위를,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고려대 교수로 재직했다. 타이완 정치대학과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했으며,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중국어대사전편찬실 실장을 지냈다. ≪이하시선≫, ≪송사삼백수≫ 등을 번역했으며 ≪중국문학사≫를 저술했다. 당시와 송사에 관한 논문 다수와 ≪가헌신기질사연구≫ 등이 있다.
김경천(金慶天)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특히 ≪논어≫의 성립 과정과 원의에 관심을 두고 있다. 대표 논문으로는 <고염무의 경학관> 등이 있으며, 공역으로 ≪다산의 경학 세계≫ 등이 있다.
김의정(金宜貞)
성결대 파이데이아 학부 교수. 이화여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시를 전공했고 주요 논문으로 <흥(興), 오래된 비유>, <영상 미학을 통해 본 중국 고전시의 재해석>, <명대 여성 시에 나타난 전통과의 대화 방식> 등이 있다. 저역서로는 ≪한시 리필≫, ≪두보 시선≫, ≪중국의 종이와 인쇄의 문화사≫, ≪장물지≫, ≪쾌락의 정원(李漁, 閑情偶寄)≫ 등이 있다.
김정희(金貞熙)
한양여대 교수. 한양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타이완 중앙연구원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했으며,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박사후과정을 이수했다. 사(詞)문학을 전공했으며, 중국 고전시와 중국 문화 연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 저역서로 ≪베이징 이야기≫, ≪현대 중국 생활차≫, ≪한 손에 잡히는 중국≫, ≪뉴스와 중국어≫ 등이 있고, 대표 논문으로 <주방언의 청진사 연구>, <韓國‘中國詞文學硏究’評述> 등이 있다.
노은정(盧垠靜)
성신여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 성신여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시를 연구하고 중국 고전 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용재수필≫, ≪중국 문학 이론 비평사≫, ≪그림으로 읽는 중국 고전≫ 등의 번역서와 <송시에 나타난 양귀비의 형상 변화 연구>, <양성재와 이퇴계 매화시의 도학자적 심미관> 등의 논문이 있다.
서성(徐盛)
배재대 교수. 홍익대 산업도안과 및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한 후 베이징대 중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저역서로 ≪양한(兩漢) 시집≫, ≪한시, 역사가 된 노래≫, ≪삼국지 그림으로 만나다≫, ≪대력십재자 시선≫, ≪당시별재집≫ 등이 있다.
여정연(呂亭淵)
우송대 교수. 숙명여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베이징대 중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 문학 이론을 전공했으며 대표 논문으로 <위진남북조문론의 물감설 연구>가 있다.
이기면(李基勉)
배재대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 문학 이론을 전공했으며 대표 저서로는 ≪원굉도 문학 사상≫, 대표 역서로 ≪이욱 사선≫(공역), ≪거인의 시대 : 명 말 중국 예수회 이야기≫(공역) 등이 있고, 대표 논문으로는 <명 말 청 초 이단 문학론의 실학적 이해>, <명 말 청 초 방외 문학론의 근대 지향성 연구> 등이 있다.
이승신(李承信)
한국산업기술대 외래교수. 이화여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상하이 푸단대 방문학자,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visiting scholar, 고려대학교 중국학연구소 연구교수 등을 역임했다. 저역서로 ≪首屆宋代文學≫(공저), ≪취옹문선역(醉翁文選譯)≫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 <중국고전산문연구의 시각과 방법론 모색>, <구양수 ≪귀전록(歸田錄)≫의 체재와 서술 방식 연구> 등이 있다.
조득창(趙得昌)
협성대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베이징사범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희곡을 전공했으며, 저서로는 ≪중국 문화의 즐거움≫, 편역서로는 ≪삼국연의 상·하≫, 역서로는 ≪피에로≫, ≪결혼/염라대왕 자오/오규교≫, ≪안개 낀 충칭≫이 있다.
조성천(趙成千)
을지대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 문학 비평 및 시론 중 왕부지의 학술 사상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저역서로는 ≪왕부지 시가 사상과 예술론 연구≫, ≪강재시화≫, ≪인간사화≫ 등이 있고, 대표 논문으로는 <중국 시론상 흥회(興會)의 역사성과 문예 미학적 의의>, <왕부지 소식 시문 비판론 초탐> 등이 있다.
최우석(崔宇錫)
국립안동대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국립타이완대에서 석사 학위를, 고려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상하이 푸단대학과 베이징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연구를 했으며, 중국 고전 시가를 전공했다. 저서로는 ≪魏晉四言詩硏究≫(中國巴蜀書社), ≪漢韓學習詞典≫(北京大學出版社) 등이 있으며, 대표 논문으로는 <고대 사언시와 율시 속의 아정(雅正) 심미관(審美觀)>, <당대(唐代) 시격론(詩格論)과 선(禪)> 등이 있다.
차례
제1수 서시(西施)
제2수 왕희지(王右軍)
제3수 상원 부인(上元夫人)
제4수 고소대의 옛 유적을 둘러보며(蘇臺覽古)
제5수 월중에서 옛 자취를 돌아보며(越中覽古)
제6수 상산의 네 백발 은자(商山四皓)
제7수 상산사호의 무덤을 지나며(過四皓墓)
제8수 현산에서 회고하다(峴山懷古)
제9수 광평에서 취흥이 일어 말 타고 60리 길을 달려 한단에 이르러 성루에 올라 옛 자취를 둘러보고 감회를 적다(自廣平乘醉走馬六十里至邯鄲登城樓覽古書懷)
제10수 소무(蘇武)
제11수 하비의 이교를 지나다가 장양을 생각하며(經下邳圯橋懷張子房)
제12수 달밤에 금릉에서 옛일을 생각하다(月夜金陵懷古)제13수 금릉 3수 첫째 수(金陵三首 其一)
제14수 금릉 3수 둘째 수(金陵三首 其二)
제15수 금릉 3수 셋째 수(金陵三首 其三)
제16수 가을밤 판교포에서 달밤에 배 띄우고 홀로 술 마시다 사조를 그리워하며(秋夜板橋浦汎月獨酌懷謝脁)제17수 금릉의 신정에서(金陵新亭)
제18수 팽려호에 들러(過彭蠡湖)
제19수 팽려호에 들어가 송문산을 지날 때 석경을 바라보고 사영운을 그리워해 벽에 시를 써서 유람의 취지를 적다(入彭蠡經松門觀石鏡緬懷謝康樂題詩書遊覽之志) 제20수 여강 객점의 주인 아낙(廬江主人婦)
제21수 송 중승을 모시고 무창에서 밤에 술 마시며 옛일을 그리다(陪宋中丞武昌夜飲懷古)
제22수 앵무주를 바라보며 예형을 슬퍼하다(望鸚鵡洲悲禰衡)
제23수 무산 기슭에서 묵노라니(宿巫山下)
제24수 금릉 백양로의 십자항(金陵白楊十字巷)
제25수 사공정(謝公亭)
제26수 남릉의 일을 적어 오송산에 쓰다(紀南陵題五松山)제27수 밤에 우저산 아래 배를 대고 회고하다(夜泊牛渚懷古)
고숙십영(姑熟十詠)
제28수 고숙십영 첫째 수 고숙계(姑熟溪)
제29수 고숙십영 둘째 수 단양호(丹陽湖)
제30수 고숙십영 셋째 수 사공택(謝公宅)
제31수 고숙십영 넷째 수 능효대(凌歊臺)
제32수 고숙십영 다섯째 수 환공정(桓公井)
제33수 고숙십영 여섯째 수 자모죽(慈姥竹)
제34수 고숙십영 일곱째 수 망부산(望夫山)
제35수 고숙십영 여덟째 수 우저기(牛渚磯)
제36수 고숙십영 아홉째 수 영허산(靈墟山)
제37수 고숙십영 열째 수 천문산(天門山)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 후기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제25수 사공정 -사조와 범운이 노닐던 곳
謝公亭 蓋謝脁范雲之所游
사공정, 이별했던 곳
그 풍경 매양 시름 돋우네.
나그네 떠난 뒤 푸른 하늘에 달은 휘영청 밝고
산은 텅 비어 옥빛 물줄기만 흐르네.
연못가 꽃이 봄 햇살에 빛나고
창가의 대나무 가을밤에 슬피 우네.
지금과 옛날이 이 순간 하나가 되니
길게 노래하며 옛사람의 노닒을 그리워하네.
謝亭離別處, 風景每生愁.
客散靑天月, 山空碧水流.
池花春映日, 窗竹夜鳴秋.
今古一相接, 長歌懷舊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