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소설에 담은 자연에 대한 철학적 사유
독일 초기 낭만주의의 대표 작가 노발리스. 이 책에서 그는 자연에 대한 철학적 인식을 소설이라는 미학적 형식을 통해 드러낸다. 1부 제자와 2부 자연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은 비인칭 화법, 독백, 대화, 동화 등 다양한 서술 방식이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텍스트의 구성 방식은 내용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특히 2부에 삽입된 ‘히아신스와 장미꽃 아가씨’의 동화를 기점으로 서술 방식이 분명하게 변화한다.
동화 이전까지 보이는 서술자의 태도는 과학적 접근 방식의 한계를 보여 준다. 자연 연구가적인 매우 세밀하고 다양한 접근을 통해서도 결국 자연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는 상황을 그려 냄으로써 자연 이해를 위한 또 다른 대안을 요청하는 것이다. 동화 이후, 자연은 성찰의 대상이 아닌 인간과 동등한 주체로서 등장하여 자신들을 소외시키고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들을 비난하고 인간에게 느낌이 결핍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서술자는 이제 더 이상 자연이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며, 자연을 정신을 가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느껴야 함을 깨닫는다.
히아신스와 장미꽃 아가씨
히아신스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장미꽃 아가씨를 사랑한다. 그러다 낯선 곳에서 한 남자가 오고 밤이 깊을 때까지 히아신스는 그와 이야기를 나눈다. 남자와의 대화를 통해 사유의 깊이를 갖게 된 히아신스. 그는 이제 베일에 가려진 여신을 찾기 위해 집과 장미꽃 아가씨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여정 끝에 마침내 그가 자이스의 사원에서 찾아낸 여신은 자신이 떠나온, 사랑하는 장미꽃 아가씨다.
이 동화에서 장미꽃 아가씨는 제자와 독자가 발견하고자 하는 자연 또는 자기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자기 자신은 계몽주의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개인의 무제한의 자유를 실행하는 자아 즉,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사유를 발판으로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자아라기보다는 자연의 일부로서의 자아를 뜻하는 것으로서 잃어버렸던 자기 자신을 의미한다. 히아신스는 길을 떠나기 위해서 자신의 의식을 일깨웠던 낯선 남자의 책, 즉 계몽적 의식을 필요로 했지만 히아신스가 진정으로 찾아야 했던 것은 전체로서의 자기 자신이었다. 또한 히아신스가 꿈속에서 장미꽃 아가씨를 만나 잃어버린 자기 자신, 즉 자연과 결합한 것은 시인의 정서와 언어로 이루어진 문학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자연의 예감에 대한 문학적 은유다.
200자평
독일 초기 낭만주의 작가 노발리스의 자연철학적 사유를 담은 소설이다. 자이스의 사원에 스승과 제자들이 모여 자연에 대한 형이상학적이고 심오한 철학을 다양한 서술 방식으로 드러낸다. 국내에 발췌본으로만 소개되어 있는 동화 ‘히아신스와 장미꽃 아가씨’를 온전한 모습으로 만나볼 수 있다.
지은이
독일 낭만주의 초기의 대표 작가 노발리스(Novalis, 1772∼1801). 그의 본명은 게오르크 필리프 프리드리히 폰 하르텐베르크(Georg Philipp Friedrich von Hardenberg)다. 노발리스는 필명으로 ‘새로운 땅을 개척하는 자’라는 뜻이다. “내면으로 향하는 길은 신비로 가득 찬 길”이라는 그의 말처럼 피히테의 자아 철학과 연관되어 있는 노발리스의 내면세계는 그만큼 주관적이고 신비주의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노발리스는 법학도이자 자연 과학자이며 철학도였다. 또 염전 관청의 관리인이기도 했다. 이렇듯 일상적인 생활의 한가운데서 의무에 충실하면서도 비일상적인 업무를 추진해 나갔다. 동시에 그는 완전히 정신과 동경이라는 내면적 세계 속에 살았다. 젊은 시절부터 시를 써 오던 노발리스는 어린 약혼녀인 조피 폰 퀸의 죽음을 통해 진정한 시인으로 성숙하게 된다. 조피의 무덤에서 죽은 연인을 만나는 신비한 체험을 하고 나서 지상적인 장벽을 넘어 그녀와 하나가 되었다고 느낀 노발리스는 동시에 두 세계에 살았다. 직업을 갖고, 또 새 연인인 율리 폰 카르펜티어와의 사랑에 걸맞은 인간으로서 이편 세상에 사는 동시에, 또 하나의 저편 세상에, 즉 조피가 속해 있고, 고향을 의미하며, 마법적인 힘으로 끌어당기는 세상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죽은 연인과 하나 되는 체험으로부터 자라나 그가 작가로서 남겨 놓은 작품이 《푸른 꽃》, 《자이스의 제자들》, 《밤의 찬가》, 《성가》다.
노발리스는 사후 독일 문화권에서는 별 영향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프랑스 상징주의에 영향을 주어 현대 시의 기반을 형성하게 되었다. 노발리스가 다시 독일에서 새로운 각도에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에 이르러서다. 그때부터 노발리스는 현대 예술과 문학의 선구자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또한 그의 영향력이 토마스 만, 호프만스탈, 무질, 벤까지 이르고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벤이 죽기 얼마 전에 자신에게 횔덜린보다 노발리스가 훨씬 더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 것을 볼 때, 노발리스에 대한 연구는 현대 시를 이해하는 전제 조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옮긴이
이용준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및 대학원에서 독일어를 전공하고, 석사 논문으로 〈노발리스의 푸른 꽃에 나타난 환상과 현실〉을 썼다. 2014년 심훈문학상, 계간 아시아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고, 《아시아》 통권 36호에 중편 〈붕어찜 레시피〉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로 《피시스케이프》가 있다. 그 외 독일어 학습서 《DAD 1∼3》을 썼다. 번역서로는 《독일 낭만주의 이념(Das Ideengut der deutscher Romantik)》과 《독일의 질풍노도(The German Sturm und Drang)》, 《푸른 꽃》이 있다. 《독일 낭만주의 이념》과 《독일의 질풍노도》는 18세기 중후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의 독일 문학을 집약적으로 소개한 책이다. 전자는 노발리스를 중심으로, 후자는 괴테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는데, 독일의 질풍노도와 낭만주의를 상술하고 있는 필수 도서다. 《푸른 꽃》은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소설이다. 그 외 일본의 아이누 민족의 서사집인 《아이누 신요집》을 옮겼다.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에 출강하고 있다.
차례
1. 제자
2. 자연
해설
지은이에 대하여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나는 또 내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 필멸(必滅)의 존재 그 누구도 저 비문을 향해 다가가 그 베일을 들어 올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불사(不死)의 존재가 되도록 애써야만 한다. 그 베일을 걷어 올리지 못하는 사람은 진정한 자이스의 제자가 아니다.
2.
자연에 관한 담화와 대화 속에서 진실에 대한 모든 노력은 점점 더 자연성으로부터 멀어질 뿐이다.
3.
오직 시인들만이 자연이 인간에게 무엇일 수 있는지 느낄 수 있지요. (…) 인류는 그들 안에서 가장 완벽하게 용해되어 있고, 그래서 모든 인상은 순전히 모든 무한한 변화 속에서 거울과 같은 밝기와 민첩성을 통해서 사방으로 전파되어 나간다고. 그들은 모든 것을 자연에서 발견하지요. 오직 그들만이 자연의 영혼에 낯설지 않게 머물며, 그들은 그들의 교제 속에서 아무 이유 없이 황금시대의 지복(至福)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죠. 그들에게 자연은 끝없는 정서의 변화를 갖는데, 그것은 가장 재기발랄하고 생생한 인간보다 독창적인 표현법과 착상, 만남과 일탈, 위대한 아이디어와 기괴함을 통해 그들을 놀라게 하죠. 사람들은 무궁무진하도록 풍부한 그들의 상상력 덕분에 그들과 교제를 추구하는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