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초판본 한국소설문학선집’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전영택의 초기 작품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약소자(minority)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했다. 그는 삶의 구체적 실상을 약소자를 통해 그려냄으로써 사회의 모순을 사실적으로 인식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는 이광수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인물이나 지식인을 내세워 계몽주의적 소설을 쓴 것과 대비된다. 초기의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화수분>·<바람 부는 져녁>·<천치? 천재?>를 꼽을 수 있다.
전영택의 대표작 <화수분>(1925)은 행랑살이를 하는 가난한 가족의 비극적 운명을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 아범 ‘화소분’은 원래 농사를 지으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차차 가세가 기울어 남의 집 행랑살이를 하는 처지에 내몰리게 되었다. 어느 날 화소분이 형의 농사일을 도우러 양평에 갔다가 몸살로 몸져누운 사이에, 화소분의 아내는 어린 딸 옥분을 업고 그를 만나러 엄동설한에 길을 떠난다. 화소분도 마침 가족을 만나러 길을 나섰다가, 소나무 아래에서 상봉했다. 하지만 어린 것을 가운데 두고 껴안은 채 밤을 지샐 수밖에 없어 결국 추위에 얼어 죽고 만다. 다만, 딸 옥분이만 화소분 부부가 꼭 껴안은 사이에서 추위를 견뎌내고 살아남으로써 생명의 강렬함을 아프게 그려냈다.
<바람 부는 져녁>(1925)은 도시 공간 속에서 개인화되고 있는 주체를 형상화하고 있다.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정옥은 고향 집에서 집안일을 봐주던 괴팍스러운 할멈을 서울로 올려 보낸다는 전보를 받고 곤란해한다. 어떤 의미에서 할멈은 사회적 질서를 교란하는 문제적 인물이며, 정상적 삶을 살아가려는 정옥을 위협하는 ‘타자’다. 정옥은 이런 할멈이 끔찍하고 무섭게 느껴져서 어떻게든 떨쳐버리려고만 한다. 할멈에 대한 연민만으로 할멈을 책임질 수 없다고 생각한 정옥은, 결국 할멈을 사직골에 버려두고 혼자 집으로 귀가한다. 오빠가 보낸 편지의 구절 “하나님께서 내려다보신다”를 읽으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천치(天痴)? 천재(天才)?>(1919)는 근대적 제도 혹은 근대 교육이 어떻게 한 소년을 파멸로 몰아갔는가를 보여준다. 소설 속 화자인 ‘나’는 중화군에 있는 득영학교에 교사로 부임해 주변 사람들에게 ‘천치’로 취급받는 열세 살 난 칠성을 가르치게 된다. 그런데 ‘나’는 관찰을 통해 칠성이 재능을 지닌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칠성은 마치 자연의 아이나 시인인 것처럼 “玉을 玉판에 굴니는” 듯 고운 소리로 노래를 불러 ‘나’를 놀라게 하기도 하고, “젓지 안코 가는 배”를 만드는 천재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칠성은 호기심이 많아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만년필을 망쳐 놓기도 하고, 같이 공부하는 학생의 시계를 훔쳐 분해해 버리기도 한다. 결국 ‘나’에게 야단을 크게 맞은 칠성은 평양을 가겠다고 길을 나섰다가 길가에서 얼어 죽고 만다.
1930년대에 들어서 미국 유학과 목회 활동으로 인해 소설 발표를 중단하다시피 한 전영택이 창작을 본격적으로 재개한 것은 1955년경부터다. 이 시기에 발표한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김탄실(金彈實)과 그 아들>·<외로움>·<해바라기> 등을 꼽을 수 있다.
<김탄실과 그 아들>(1955)은 전영택이 한국전쟁 기간 중 일본에 체류하면서 겪은 사건을 소설화하고 있다. 김탄실은 한국 최초의 여성 문인 김명순(金明淳, 1896∼1951)의 필명인데, 이 작품은 해방 이후 행방이 묘연했던 김명순이 일본에서 ‘정신이상자’가 되어 살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외로움>(1955)은 소설 형식을 빌려 개인사를 기록한 작품이다. 전영택은 미국 퍼시픽 신학대학을 수료하고 귀국한 후 황해도 봉산 감리교회 목사로 재직한 바 있는데, 이때의 아픔을 이 작품 속에서 그리고 있다. 그곳에서 전영택은 아내가 죽을 뻔한 일도 겪었고, 아들을 잃었으며, 전도 부인의 모함으로 목사직을 그만두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리기도 했다. 이 소설은 전영택 개인사를 서술함과 동시에 1930년대 한국 감리교 교단의 부조리한 운영 방식과 교단 내의 모순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해바라기>(1958)는 소품 같은 작품이지만, 노년의 곰보 할머니와 오 영감이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에 이르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장충단 공원 방공호에 홀로 살고 있는 곰보 할머니는 터줏대감·해님 상제·달님 마마를 모시며 ‘샤머니즘’적 삶을 산다. 그런데 곰보 할머니가 사는 곳 앞에 오 영감의 판잣집이 들어서면서 둘은 앙숙이 된다. 그러다 오 영감의 아들 오 소위가 동해안 경비를 하다가 폭풍을 만나 행방불명된 것이 계기가 되어 둘은 화해한다. 곰보 할머니의 아들은 학병으로 끌려가 뼛가루로 돌아왔는데, 이러한 상처가 떠올라 오 영감을 진심으로 위로하자 둘은 서로 부둥켜안고 공감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진심으로 느낄 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 소설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200자평
≪전영택 단편집≫에는 <화수분>, <바람 부는 져녁>, <천치(天痴)? 천재(天才)?>, <김탄실(金彈實)과 그 아들>, <외로움>, <해바라기> 등 전영택의 대표 단편을 담았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배제된 주체들의 비극적 삶을 포착해 식민지 조선에서 형성된 부정적 근대의 진상을 그려냈다. 또한 냉정한 시선으로 과감한 생략과 감정을 배제한 서술로 한국 단편소설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지은이
전영택은 평양 사창(社倉)골에서 개화파 지식인 전석영과 강순애의 4남 4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08년 대성중학에 입학해 도산 안창호의 영향을 받았으나 가정 형편으로 인해 3학년 때 중퇴했다. 이후 작은형 선택의 영향으로 기독교를 접했고, 한국 최초의 감리교 목사이자 평양 남산현 교회의 설립자인 김창식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1918년, 가우처(J. F. Goucher) 목사가 선교를 위해 제공하는 장학금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 학원(靑山學院) 문학부를 마치고, 신학부에 들어갔다. 일본 유학 시절 김동인, 주요한, 김환, 최승만과 교우하게 되어, 이들과 함께 1919년 2월에 최초의 종합 문예 동인지 ≪창조≫의 창간에 참여했다. ≪창조≫ 창간호에 단편 <혜선(惠善)의 사(死)>를 발표해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천치? 천재?>(1919), <운명>(1919), <독약을 마시는 여인>(1921), <화수분>(1925), <백련과 홍련>(1925), <후회>(1929) 등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했다.
전영택은 1923년 아오야마 학원 신학부를 졸업하고 서울 감리교 신학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1927년에는 아현교회 목사로 취임한 이후 목회 활동에 전념했다. 그는 흥사단과 연계를 맺고 있는 계몽적 독립운동 단체인 수양동우회에서 활동하는 등 민족운동에도 깊이 개입했다. 하지만 1937년 일제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81명의 지식인을 구속한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후 현제명·홍난파 등과 친일 단체인 ‘대동민우회’에 가입했다. 1944년에는 평양 신리교회 재직 중 설교 사건으로 한때 구금되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조선민주당 문교부장, 문교부 편수관, 국립맹아학교 교장, 중앙신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한국전쟁 중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한국복음신문≫ 주간을 지내다 1953년 귀국했다. 이 시기의 경험은 여성 작가 김명순에 대한 독특한 기록 소설인 <김탄실과 그 아들>(1955)에 잘 나타나 있다. 귀국 후 기독교서회 편집국장으로 있으면서, 다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전개해 <외로움>(1955), <집>(1957), <해바라기>(1959), <크리스마스 전야의 풍경>(1960) 등을 발표했다. 1961년에는 한국문인협회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해 근대문학 초기의 작가적 위상이 복원되었으며, 서울시 문화상(1961)과 대한민국 문화포상 대통령장(1963)을 수상했다.
그가 남긴 저서로는 창작집 ≪생명의 봄≫(1926) ≪하늘을 바라보는 여인≫(1958)·≪전영택 창작선집≫(1965)이 있고, 논설집으로 ≪생명(生命)의 개조(改造)≫(1926), 전기로≪유관순전≫(1953), 수필집으로는 ≪의(義)의 태양(太陽)≫(1955) 등이 있다.
엮은이
200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 도시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행동하는 공부, 실천하는 지식’을 위해 ‘지행네트워크(www.jihaeng.net)’를 만들어 인문적 실천을 위해 노력 중이다. 현재 중앙대학교 교양학부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평론집 ≪비평의 모험≫이 있고, 식민지 시대의 잊힌 작가인 이익상의 작품을 복원한 ≪그믐날≫을 엮었으며, 같이 지은 책으로는 ≪나는 순응주의자가 아닙니다≫ 등이 있다. 1960∼1970년대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인간의 감수성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문학작품을 통해 재구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차례
화수분
바람 부는 져녁
천치(天痴)? 천재(天才)?
김탄실(金彈實)과 그 아들
외로움
해바라기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화소분은 양근셔 오정이 거이 되여서 떠나서 해 저갈 즈음해셔 백 리를 거이 와서 엇든 놉흔 고개를 올나섯다. 칼날 갓흔 바람이 뺨을 친다. 그는 고개를 숙여 압흘 내려다보다가 소나무 밋헤 히끄무르한 사람의 모양을 보앗다. 그것슬 곳 달녀가 보앗다. 가본즉 그거슨 옥분과 그의 어머니다. 나무 밋 눈 우에 나무가지를 깔고, 어린것 업는 홋누덕이를 쓰고 한끝으로 어린거슬 꼭 싸가지고 옹크리고 떨고 잇다. 화소분은 왁 달녀들어 안엇다. 어멈은 눈을 떳스나 말은 못한다. 화소분도 말을 못한다. 어린거슬 가운데 두고 그냥 껴안고 밤을 지낸 모양이다.
–<화수분>
“엇더카고 왓소?”
“사직골 가서 두리번두리번할 때 휙 도라서 왓지.”
할멈은 갓다 버리고 와서 뎡옥은 마음에 죄숑스러운 생각이 만코 큰 죄나 저즐너노은 것 갓해서 공연이 가삼이 술넝거리고 마음이 편치 못하든 터에 오라버니 편지에 ― ‘하나님께서 내려다보신다’
하는 구졀에 니르러서는 벽력이 내리는 듯이 속이 끔직하고 졍신이 앗득하엿다.
–<바람 부는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