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제국의 형성과 문화발전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역할은 무엇인가?
구술 전통에서부터 다양한 글쓰기와 인쇄 형태를 거쳐 20세기 중반 전자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화 탐색, 미디어가 인간의 의식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고전
“이니스가 없었다면 마셜 매클루언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주장은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 이론 영역에서 이니스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매클루언의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명제는 토론토 대학 동료 이니스에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니스의 대표작으로 ‘어떻게 미디어가 인간의 의식과 사회에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계속되는 철학적 물음에 하나의 답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저작이다. 이니스는 많은 역사적 사례를 통해 제국 형성과 문화 발전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역할을 탐구한다. 그러나 단순히 매체에 의해 역사가 결정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정보나 지식을 통제하는 방식과 그 지배적 방식의 변화에 대응하는 태도, 매체를 통해 재편된 지식 독점 양상의 결과가 제국의 흥망성쇠의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문명의 몰락과 존속은 특정 매체를 사용했기 때문이라기보다 변화하는 매체 환경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상황을 그 문명이 어떻게 수용하고 대응했는가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니스는 여러 제국에서 미디어의 힘을 확인한다. 그리스 문명은 음성 언어의 힘이 반영되었다. 강력한 구술 전통의 문화 속에서는 이성주의와 개인주의가 싹튼다. 그러나 교역을 촉진하기 위해, 학문을 장려하기 위해, 행정 업무의 수월함을 위해 글쓰기가 활발해지면서 문학이 전파되고 영구 보존되어 시인의 지위는 약화된다. 그리스와 반대로 로마 문명은 문자 언어를 기반으로 발전했다. 문자의 발명은 구술 전통에서의 종교나 주술, 마술 대신 학문과 법, 과학의 성장을 가져왔다. 종교와 관습을 따르던 내세적 공동체가 정치와 군사가 지배하는 세속적 사회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결국 로마는 행정 관료제를 조직하고 법체계를 확립시켰다. 로마의 권력은 법을 만들고 군대를 지휘하는 자가 장악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독일에서 성서를 번역, 발행함으로써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개인주의적 사고와 대중의 문화가 싹트게 했다. 수도원에서 훈련받은 사제들이 힘들여 만든 필사본은 그 의미를 상실했으며 방언의 성장과 번역서 발행은 의식의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시간과 공간의 관계성, 무거운 매체와 가벼운 매체의 대조는 제국과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패턴이다. 이니스는 서양 문명사를 시간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매체와 공간의 ‘이동성’을 강조하는 매체의 충돌과 경쟁 속에서 변화해 왔다고 보았다. 매체 형식과 사회 현실이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 특정 매체가 지배하는 ‘편향’이 발생한다. 편향은 매체의 물리적 속성뿐 아니라 매체를 전유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관계망의 양상, 그리고 가치 체계를 함축하는 것이다.
예컨대 돌, 점토, 양피지는 시간 편향적인 매체다. 시간 편향적 매체는 무겁기 때문에 공간 이동에 제약을 받는다. 대신 단단하기 때문에 오래 보존할 수 있다. 따라서 시간 편향적인 사회는 영생이나 내세를 믿는 이상주의적 성향을 띠고 위계적 구조에 맞는 지방분권화를 이룬다. 반면 파피루스나 종이는 공간 편향적인 매체다. 공간 편향적 매체는 가볍기 때문에 쉽게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내구성이 약해 오래 보존하기 어렵다. 따라서 현실 지향적이며, 공간적 팽창을 가능하게 해 행정 제도를 확립하고 중앙집권적 구조를 형성할 수 있었다.
매체의 물리적 무거움은 문화적 무거움을 동반한다. 돌이라는 매체는 무겁기도 하지만, 돌에 상형문자를 새기는 데는 기술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오랜 훈련과 수고가 있어야 한다. 제한된 계급만이 글쓰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중앙집권적 통치가 용이했다. 이러한 ‘편향’의 결과가 ‘지식 독점’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니스는 역사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매체가 기존의 지식 독점을 청산하고 새로운 집단에 의한 지식 독점을 가져오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70년 전에 쓰였지만 지금도 유효하다. 나날이 발전하는 전자 미디어와 세계화 속에서 또 다른 형태의 제국 형성이 우리 삶에 미치는 의미에 대해 시사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구술 커뮤니케이션, 시간 편향과 공간 편향, 지식 독점 같은 이니스의 독특한 개념을 만날 수 있다. 마셜 매클루언, 노엄 촘스키, 제임스 케리, 닐 포스트먼, 에드워드 허먼, 로버트 맥체스니 같은 학자들의 사상과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다.
개정판을 위해 출판사는 초판에서 발견한 편집 오류를 수정하고, 이미지와 텍스트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전체 레이아웃을 새로 적용했다. 역자는 고전 텍스트의 가독성과 의미의 명확성을 위해 본문 전체를 다시 정리했다. 표기는 달라졌으나 초판과 개정판의 역자는 동일하다.
200자평
제국의 형성과 문화발전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역할을 탐구한 기념비적 저작이다. 문자 문화 이전의 구술 전통에서부터 다양한 글쓰기와 인쇄 형태를 거쳐 20세기 중반 전자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화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 ‘어떻게 미디어가 인간의 의식과 사회에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계속되는 철학적 물음에 하나의 답을 제시한다. 21세기 인터넷 미디어와 세계화 속에서 또 다른 형태의 제국이 우리 삶에 미치는 의미에 대해서도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구술 커뮤니케이션, 시간 편향과 공간 편향, 지식 독점 같은 이니스의 독특한 개념을 만날 수 있다.
지은이
해럴드 애덤스 이니스
해럴드 이니스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농가에서 태어났다.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시카고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토론토 대학 정치경제학부 교수가 되었다. 그의 초기 연구는 캐나다 문화와 경제가 모피, 어류, 목재, 밀, 광물, 연료 같은 원자재의 개발과 수출입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경제사를 전공한 그가 커뮤니케이션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토론토 대학 동료였던 마셜 맥클루언과의 만남을 통해서였다. 그후 이니스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가 사회 형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했고, 그 연구 성과는 『제국과 커뮤니케이션』(1950), 『커뮤니케이션 편향』(1951) 두 권의 주요 저서로 집약되었다. 맥클루언은 이니스의 커뮤니케이션 연구 개척에, 이니스는 그의 저작을 요약하고, 종합하고, 대중화시킨 맥클루언의 능력에 서로 빚졌다.
이니스는 캐나다인의 관점이 분명한 사회 과학의 기초를 놓았다. 그는 대학이 캐나다와는 역사와 문화가 다른 영국이나 미국에서 교육받은 교수들에게 계속 의존하지 않도록, 캐나다 학자 중심의 학회와 재단을 설립했다. 특히 대학이 정치적·경제적 압력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는 데 힘썼다. 대학이 비판적 사고의 중심으로서 ‘독립’하는 것이, 권력 지향적이고 광고 의존적인 미디어에 의해 훼손된 서구 문명의 존립에 필수적이라고 믿었다. 1952년 암으로 사망했다.
주요 논문 및 저서로는,『캐나디안퍼시픽레일웨이(CPR)의 역사(A History of the Canadian Pacific Railway)』(1923),『캐나다의 모피 무역: 캐나다 경제사 서설(The Fur Trade in Canada: An Introduction to Canadian Economic History)』(1930),『대구 어업: 국제경제의 역사(The Cod Fisheries: The History of an International Economy)』(1940),『근대 국가의 정치 경제(Political Economy in the Modern State)』(1946),『제국과 커뮤니케이션(Empire and Communications)』(1950), 『커뮤니케이션 편향(The Bias of Communication)』(1951)이 있다.
옮긴이
김지원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이화여자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어렸을 때부터 ‘보는 것’과 관련된 책, 신문, TV, 그림, 영화 등 다양한 것들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원 재학 시절 ‘커뮤니케이션 이론’ 수업 원서에서 짧게 언급된 해럴드 이니스를 알게 되었고, 그의 ‘미디어 편향’이라는 아이디어가 꽤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니스의 책을 번역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시각·영상 미디어의 역사 및 미학 등을 공부하면서 관련 분야의 의미 있는 해외 저작들을 번역하고 있다.
차례
감사의 말
서문
이집트
나일강:질서의 원리
신성한 말의 주인 토트
신성한 명문 ‘상형문자’
신성한 군주정의 성장
종교적 평등의 성장
돌에서 파피루스로
글쓰기와 평등의 영향
변화의 영향
이집트 제국
이집트의 글쓰기
이집트의 법
매체 독점과 시간·공간의 지배
바빌로니아
수메르의 도시국가들
점토와 설형문자
점토와 사회 조직
수메르 왕과 셈족의 왕
수메르인과 셈 문자
수메르 신들의 셈어 이름
수메르와 셈족의 법
바빌로니아의 업적
아리안족의 침략
히타이트 제국
아시리아 제국
제국과 알파벳
조각과 글쓰기
종교와 글쓰기
이스라엘 국가주의
페르시아 제국
이스라엘 종교와 민족주의
구술 전통과 그리스 문명
문자의 영향
바빌론:병력 대 정의
그리스:구어 대 문자
그리스 문자
서사시
영웅 시대의 그리스 사회
구술 전통
과학과 산문
글쓰기의 정치학
상업, 참주, 디오니소스
오르페우스교와 피타고라스주의
정치와 종교
아테네와 새로운 그리스
글쓰기와 조직
문자 전통과 로마 제국
그리스 문화의 영향
로마의 통치
사제의 지식 독점
글쓰기의 침해
평민 세력의 증가
법의 확장
로마 법 개요
군사적 팽창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알렉산드리아 시대
그리스의 영향력
파피루스의 독점 체계
양피지를 통한 경쟁
아카이아 동맹
헬레니즘의 영향
라틴어의 발달과 산문의 증가
철학과 법
글쓰기의 영향력
관료제와 제국의 출현
동방 종교, 신의 이동
파피루스의 중앙집권적 경향
사문의 법제화
도서관
문학 선전의 도구가 된 책
로마 아치
양피지의 안정성
양피지 사용과 그리스도교의 전파
그리스도교와 제국
이교의 최후
양피지와 종이
파피루스 대 양피지
수도원 제도
수도원 제도 대 그리스도교
교회 교육이 발전시킨 서체
중국의 글쓰기
중국의 문자 전통
불교의 전파
서양으로 이동한 종이
십자군과 비잔티움의 쇠락
유럽의 종이 생산
무슬림 문명
세지는 방언의 힘
프로방스 문학
법과 교황
파리의 신학
잉글랜드의 구전 법
방언으로 쓰인 성서
요약
종이와 인쇄기
길드와 독점
인쇄 테크놀로지
분산과 적응
독일에서의 출판
프랑스에서의 출판
종이, 검열, 경쟁
네덜란드에서의 출판
뉴스 서비스
잉글랜드에서의 출판
인쇄 언어와 구술 전통
인쇄 금지와 팸플릿 논쟁
산문과 과학의 발전
인쇄와 법
인쇄와 금융
출판법 완화
제지업과 정치
산업 혁명
라디오
경쟁과 독점
언론 권력
요약
지은이 주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책속으로
사람들은 제 정신을 사물보다는 기호에 적용시켰고, 그 결과 구체적 경험의 세계를 넘어서 확장된 시공간의 우주 안에서 창조된 개념적 관계들의 세계 속으로 들어갔다. 시간의 세계는 기억된 것들의 범위 너머로 확대되었고, 공간의 세계는 알려진 장소의 범위 너머로 확장되었다.
“서문” 중에서
‘무거운 매체인 돌을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사고는 가벼워졌다. ‘모든 환경이 관심, 관찰, 성찰을 불러일으켰다.’ 손으로 글씨를 쓰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이와 함께 글쓰기, 사고, 활동의 세속화가 이뤄졌다. 고왕국에서 신왕국 사이에 사회 변혁이 일어나 웅변이 유행했고, 종교의 지위가 변하면서 세속 문학이 나타났다.
“이집트” 중에서
히브리어와 그 밖의 셈어는 유형의 사물과 구체적인 사건을 선명하고 강렬하게 묘사하기에 적합했다. 이 언어들은 추상 개념은 빈약해도 행위와 사물에 있어 미세한 의미 차이가 있는 동의어가 많았고, 철학자보다는 시인의 어휘를 제공해 주었다. 독창적이고 빛나는 직유는 단조로움과 상세한 설명으로 제한을 받기도 했지만, 패트릭 칼턴은, 셈어군의 승리가 그리스와 로마의 승리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 세계관과 사고방식을 낳았다고 설명했다.
“바빌로니아” 중에서
구술 전통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학자들의 기록 해석에 대한 오랜 관심에 잘 나타나 있다. 하지만 그리스 문자Greek alphabet와 현대 알파벳의 유사성 그리고 그리스 문명과 서구 문명과의 절대적인 관계는 자기 성찰이라는 복잡한 기술에 의존하고 있음을 함축하고 있다. 여러 시대와 여러 국가의 개인은 고전 문명의 웅덩이를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복제를 보았다.
“구술 전통과 그리스 문명” 중에서
산문이 운문을 정복한 것은 그리스 문명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했다. 글쓰기의 전파로 구술 전통에 기초한 문명이 파괴되었으나, 구술 전통의 힘은 그리스 문화에 반영되어 서양 역사 내내 지속되었다. 특히 문자 전통의 구속력이 서양인의 정신을 파괴하려고 위협할 때마다 특히 그랬다.
“구술 전통과 그리스 문명” 중에서
역사적 상황을 담고 있는 로마의 조각은 한 무리 안에 주인공과 주변인물 간의 뚜렷한 차이를 드러내는 그리스 조각과 달랐다. 구도의 기초가 되는 각각의 인물을 강조함으로써 그 수가 제한되었다. 트라야누스 기둥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둥에 적힌 서사시 기록물 전승에서는 보편성과 이상보다는 구체적이고 개성적인 표현을 중시했다.
“문자 전통과 로마 제국” 중에서
커뮤니케이션 매체에 기초해 문명을 평가하는 것은 매체 특성의 함의에 대한 인식을 요구한다. 파피루스는 대부분 소멸되었지만 양피지는 보존될 수 있었다. 역사적 글쓰기는, 내구성 있는 소재가 보급되는 시대와 지역은 지나치게 강조되고 비영구적인 소재가 보급되는 시대와 지역은 간과됨으로써 왜곡된다.
“양피지와 종이” 중에서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소재가 값비싼 양피지에서 경제적인 종이로 바뀌게 됨으로써, 인간 지성이 만들어낸 작품의 보급이 용이해졌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혁명을 가져왔으며, 만약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글쓰기 기술은 별로 쓰이지 않았을 것이고, 인쇄술의 발명은 인류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양피지와 종이” 중에서
국왕 에드워드 7세Edward VII가 독일 신문과 인터뷰를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1909년 독일 황제가 「데일리 텔레그래프」와 인터뷰한 것을 영국 독자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책에 기초한 전통과 신문에 기초한 전통의 충돌이 전쟁을 일으켰다.
“종이와 인쇄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