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우주와 중간에서 만나야만 한다
양자역학과 양자장론으로 만들어 낸 신유물론의 윤리
과학은 하나의 정답을 찾기 위한 여정일까? 고전물리학자들은 여기에 “그렇다”고 답하겠지만, 양자물리학을 자신의 인식론, 존재론, 그리고 윤리의 토대로 삼은 바라드는 조금 다른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바라드는 세계가 명확한 주체로 구성된 것이 아닌 얽혀 있는 상태임을 강조하며 행위적 실재론 개념을 꺼내든다. 행위적 실재론은 기술과학적 실천을 포함한 모든 자연문화적 실천에 대한 포스트휴머니즘 수행성 이론이다. 바라드는 물질에게 세계의 생성에 대한 능동적인 참여자로서 정당한 몫을 허락하고자 한다. 페미니즘, 반인종주의, 후기구조주의, 퀴어 이론, 마르크스주의, 과학 연구를 수용하고 보어, 버틀러, 푸코, 해러웨이 등의 통찰에 기반한 바라드는 푸코와 버틀러가 미치지 못한 포스트휴먼의 세계를 열어 보인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신유물론 연구에서의 바라드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바라드의 소개는 미진한 실정이다. 이 책은 국내 최초로 바라드의 사상을 단독으로 다룬 책으로, 바라드의 주저 ≪우주와 중간에서 만나기≫뿐만 아니라 최근 양자장론으로 확장된 바라드의 사유까지 폭넓게 담았다. 자연 자체의 퀴어함, ‘회절’이라는 새로운 인식론, 시학이라는 신유물론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등 신유물론 또는 바라드에 입문하려는 독자, 나아가 현직 연구자에게도 새롭고 풍부한 개념을 소개한다.
200자평
신유물론 페미니즘 연구자 캐런 바라드는 양자물리학의 중요 개념들을 발전시켜 세계가 물질과 의미의 얽힘, 그리고 관계성으로 생성된다고 보는 ‘행위적 실재론’을 자신의 인식론, 존재론적, 윤리적 틀로 제안한다. 바라드는 과학에 기반한 자신의 사유를 소수자 정치로 확장시킨다. 최근 ‘물질적 전회’로 각광받고 있는 신유물론 연구자 중에서도 독특한 주제를 가진 바라드는 세계적 명성에 비해 국내에서 충분히 소개되지 않았다. 이 책은 바라드의 주저 ≪우주와 중간에서 만나기≫뿐만 아니라 양자장론과 시학으로 확장된 바라드의 사상을 10개 키워드로 담았다.
지은이
박신현
서울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석사 학위와 영어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캐런 바라드의 행위적 실재론과 신유물론을 바탕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작품을 분석한 논문 <행위적 실재론으로 본 울프의 포스트휴머니즘 미학>(2020), <버지니아 울프 소설에 구현된 기술미학과 환경미학>(2020), <회절과 얽힘의 텔레커뮤니케이션>(2021), <캐런 바라드의 육체의 윤리와 정치: 자기ᐨ만짐과 다가올ᐨ정의>(2022)를 발표한 바 있다. 단독 저서로 ≪공유, 관계적 존재의 사랑 방식≫(2021), 공저로 ≪신유물론: 몸과 물질의 행위성≫(2022)과 ≪생태, 몸, 예술≫(2020)이 있고, ≪강철혁명≫(2011)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차례
모든 삶은 만남이다
01 내부-작용
02 거미불가사리
03 신체 경계-만들기
04 회절
05 윤리-존재-인식-론
06 퀴어한 자연
07 자기-만짐, 타자들과 만나기
08 양자 얽힘과 다가올-정의
09 비결정성과 무한성
10 물리학과 시학
책속으로
그녀는 장애인 차별로 인해 ‘정상적’ 육체의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건설된 세계와 교섭하면서 몸의 본질을 당연히 여기는 사치가 가능해진다고 비판한다. 바라드는 마치 어떤 기구가 처음으로 주목받게 되는 것은 오직 그것이 작동을 멈췄을 때듯이, 사실 몸이 기능하지 않을 때, 몸이 고장 날 때에야 그런 전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고 지적한다.
_ “03 신체 경계-만들기” 중에서
바라드에 따르면 우리가 윤리로부터 벗어날 길은 없다. 심지어 한순간도 우리는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우리는 “우주와 중간에서 만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오만한 태도를 버리고 ‘우주와 교섭하고 우주와 의견을 조율하면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책임지는 겸손한 자세를 지녀야 한다. 우리는 세계의 변별적 생성에서 우리가 행하는 역할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
_ “05 윤리-존재-인식-론” 중에서
바라드는 흔히 퀴어한 행동을 비정상적인 성적 욕망으로 정의하며 비난하는 ‘자연에 반하는 행위’라는 문구는 짐승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면서 사람들에게 도덕적인 격분을 일으키지만, 여기에는 자연과 문화의 경계를 공고히 하려는 비논리가 숨겨져 있다고 지적한다. 만약 어떤 퀴어한 행동이 ‘부자연스럽고 자연법칙에 어긋난다면’, 그 행위자는 자연에 속하지 않고 자연 바깥에 있게 된다. 그런데, 한편 그를 ‘짐승처럼 행동한다고’ 비난한다면 그를 ‘자연의 일부’라고 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_ “06 퀴어한 자연” 중에서
바라드는 양자 얽힘이 두 독립된 상태들 · 개체들 · 사건들의 뒤얽힘이 아니며, ‘둘ᐨ임’, 그리고 ‘하나ᐨ임’의 본질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설명한다. 그녀는 양자 얽힘을 묘사하기에 하나는 너무 적고 둘은 너무 많으며, ‘사이’ 개념이 새롭게 사유돼야만 한다고 설명한다. 즉, 양자 얽힘은 분리된 ‘개체들’ 사이의 소통이라는 상식적인 관념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의미의 책임과 응답ᐨ능력을 요구한다.
_ “08 양자 얽힘과 다가올-정의” 중에서
바라드는 저항의 특정한 방법론, 즉 보통의 개별 입자 체제에 대한 대안에 기초하는 반대ᐨ전술을 제안한다. 이는 홍콩 민주화운동 시위자들에 의해 사용된 것이다. 그녀는 시위자들이 하나의 입자처럼 하나의 정해진 장소에서 나타나기보다는, 물처럼 되는 운동을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즉, 입자가 아닌 파동처럼 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개별 독립체보다는 물처럼 움직이는 운동이다. 이것은 유동적이고 형태 없이 되어, 한 장소에 밀려들었다가 재빨리 흩어져 버리고, 짧은 시간 뒤에 다른 곳에서 강렬하게 다시 출현하는 것이다.
_ “09 비결정성과 무한성”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