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존 키츠의 시 세계
존 키츠는 자신의 시를 통해, 인간의 경험에서 유래된 상상력에 의해 인간의 희망, 공포, 죽음, 재생, 세대 간의 대립 등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대립적인 양상들을 소화해 내고 있다. 그가 자신의 삶을 통해 서로 상반되는 특징들이 활발하게 반응하는 시적 공간을 경험했던 것처럼, 그의 시에서도 환상과 현실, 생과 사, 불멸과 사멸 같은 반대의 개념들이 공존하면서 때로는 서로 대립하고 때로는 서로 화해해 융합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초기 시에서 주로 대립의 상태나 단순한 융합에 그치지만, 후기 시로 가면서 적극적으로 서로 융해되어 가는 형태로 발전한다. 그는 인간의 모든 고뇌는 유한한 삶의 절대적인 가치의 인식에서 나오므로 그 유한성의 한계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때 비로소 인간의 영혼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항아리라는 예술 매체를 통해 사랑과 아름다움의 세계로 들어가 그것과의 일체감 속에서 지상과 천상, 빛과 암흑, 시간과 무시간, 사멸과 불멸이라는 이원적인 요소가 합체해 형성하는 객관적인 마음의 융화를 경험한다. 그리고 거기서 항아리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도모하며 그 순간에 “미는 진리이고 진리는 미”라는 영혼의 눈뜸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오, 사고보다는 감각의 삶을!”
키츠의 시론에서는 ‘자아 부정 능력’이 매우 중요한데, 이는 키츠 고유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고 셰익스피어에게서 빌려 온 것이다. 그러나 키츠로 인해 확대되고 발전되어 빛을 보게 된 용어로서 그의 시인관을 설명할 때 필수적인 것이다. 키츠는 자신의 동생 조지(George)와 톰(Tom)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아 부정 능력’이란 이성과 반대되는 상상력의 형태로 외부 사물의 정확한 정체를 파악하지 않아도 그것의 신비로움이나 오묘함을 쉽사리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고 설명한다. 그것은 외부의 모든 것을 분별해 가리지 않고 모두 수용하고 공감하는 자질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시인이란 사물의 진수를 추구하는 상태에서 다소 불확실하고 의혹스러워도 만족을 누릴 수 있고 그것을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임을 뜻한다. 시인은 사물을 철두철미하게 파헤치려는 과학자나 철학자가 아니라 사물의 미를 탐구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들 대부분이 무지개를 공중에 걸려 있는 물방울의 분자들에 의해 형성된 빛의 파편들이 아니라, 끝없이 아름답고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신비로운 존재로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진리는 사고가 아니라 직관을 통해 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키츠는 직관을 염두에 두고 “오, 사고보다는 감각의 삶을!”이라고 외쳤는지도 모른다.
200자평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25세에 세상을 떠난 영국의 천재 시인 존 키츠는 영국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쓴 시들은 서정시 중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짧은 생애에 비해 적지 않은 작품들을 남겼는데, 그의 시는 자신의 생애처럼 반대되는 개념들이 공존하고 화해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그간 번역되어 왔던 짧은 시들뿐만 아니라 새로 번역된 여러 편의 장시들을 읽고, 키츠 시의 정수와 역량을 한껏 맛볼 수 있다.
지은이
존 키츠는 1795년 10월 31일 영국의 런던 페이브먼트 로 무어필즈 24번지에서 마차 대여업자의 고용인인 아버지와 그 집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키츠는 학교에서 책을 많이 읽었으며, 키가 다 컸을 때 154cm였을 정도로 작고 몸은 약했지만, 명랑하고 싸움도 잘하고 매우 남자다운 성향을 지녔으며, 행복한 학교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동생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일찍이 인간 삶의 고통과 슬픔을 경험한 그는 약제사 겸 외과의가 될 생각으로 학교를 마친 후 병원에서 견습생을 거쳐 의사와 약제사 면허를 받지만 문학에 심취해 개업을 포기하고 문학 서적을 읽으며 인간 삶의 고통과 우울, 그리고 이에 대한 해독제로서의 사랑과 영원한 아름다움에 대한 시들을 쓰기 시작한다. 키츠에게 문학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그는 영국 낭만주의 시인의 막내가 될 초석을 닦은 셈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첫 작품집 ≪시집(Poems)≫에 이어 ≪엔디미온(Endymion)≫을 출간하고, 여러 작품들을 발표하며 유명한 시인이 된다.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이탈리아 로마로 가서 스페인 광장 26번지(26 Piazza Di Spagna)에 방을 얻어 지내다가 1821년 2월 23일에 스물여섯 살의 젊은 나이로 죽어 로마의 신교도 묘지에 묻히고 만다. 그의 묘비에는 엘리자베스 시대의 극작가인 프랜시스 보몬트(Francis Baumont)의 <필래스터(Philaster)>에서 따온 문구인 “여기 물 위에 이름을 쓴 자가 누워 있노라(Here lies one whose name was writ in water)”가 쓰여 있다.
옮긴이
윤명옥은 충남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후 같은 대학원에서 존 키츠의 시에 대한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캐나다와 뉴질랜드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다. 충남대학교에 출강하는 한편, 국제계관시인연합 한국위원회 사무국장과 한국시 영역 연간지 ≪POETRY KOREA≫의 편집을 맡았었으며, 현재는 홍익대학교와 가천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영미학, 교양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영미 시와 캐나다 문학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해 왔으며, 전공 저서로 ≪존 키츠의 시 세계≫, ≪역설·공존·병치의 미학: 존 키츠 시 읽기≫가 있고, 우리말 번역서로 ≪키츠 시선≫, ≪엔디미온≫, ≪바이런 시선≫,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사랑시≫, ≪로버트 브라우닝 시선≫, ≪디킨슨 시선≫, ≪나의 안토니아≫,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 등 다수가 있다. 영어 번역서로 ≪A Poet’s Liver≫, ≪Dancing Alone≫, ≪The Hunchback Dancer≫ 등이 있다. 허난설헌 번역문학상, 세계우수시인상, 세계계관시인상을 수상했으며, 한국과 미국에서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말 시집(필명: 윤꽃님)으로 ≪거미 배우≫, ≪무지개 꽃≫, ≪빛의 실타래로 풀리는 향기≫, ≪한 장의 흑백사진≫, ≪괴테의 시를 싣고 가는 첫사랑의 자전거≫가 있고, 미국에서 출간된 영어 시집(필명: Myung-Ok Yoon)으로 ≪The Core of Love≫, ≪Under the Dark Green Shadows≫가 있다.
차례
평화에 대해
바이런 경에게
리 헌트 씨가 출감한 날에 쓴
오, 고독이여! 내가 그대와 살아야 한다면
난 활발하고
여자와 술과 코담배를 내게 다오
오래도록 도시에 갇혔던 사람에게
오!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청명한 여름날 저녁을
내게 장미를 보낸 친구에게
행복하구나, 영국은! 나는 만족할 수 있으리
내 동생 조지에게
얼마나 많은 시인들이 흘러간 시간을 빛나게 했던가
채프먼의 호메로스를 처음 읽고서
날카롭고 발작적인 돌풍이 여기저기서 속삭이고 있네
메뚜기와 귀뚜라미에 대해
검은 수증기가 우리 들판을 억누른 후에
엘긴의 대리석 상들을 보고
바다에 대해
황량한 밤을 가진 십이월에
다시 한 번 ≪리어 왕≫을 읽으려고 앉아서
두려워질 때
인어 선술집에 대한 시
데이지의 노래
죽음에 대해
시인
이저벨라, 혹은 바질 화분
호메로스에게
공상
정열과 환희의 시인들이여
쉬, 쉬, 살며시 내딛어요, 쉬, 쉬, 내 연인이여
성녀 아그네스제 전야
오늘 밤 왜 내가 웃었는가? 아무도 말해주지 않으리
밝은 별이여, 내가 그대처럼 한결같았으면
무자비한 미녀: 발라드
잠에게
프시케에게 바치는 송시
명성에 대해 1
명성에 대해 2
나이팅게일에게 부치는 송시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송시
우수에 부치는 송시
나태에 부치는 송시
라미아
가을에게
히페리온의 몰락: 꿈
그날은 갔네, 그 달콤함도 함께 가버렸다네
당신의 자비와 동정과 사랑을, 아, 사랑을 애원하노라
패니에게
같은 사람에게 보내는
사계절이 일 년을 채우고
마이아에게 부치는 송시
메그 노파, 그녀는 집시
우리의 영어가 둔한 각운의 쇠사슬에 매인다면
지금은 따스하고 잡을 수 있는, 이 살아 있는 손이
당신은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오, 그대는 얼굴로 겨울 바람을 느꼈고
오, 나는 가장 끔찍한 생각에 깜짝 놀란다네
내게 비둘기 한 마리가 있었는데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우수는 미와 함께 산다, 죽어야만 하는 미와 함께,
그리고 작별을 고하느라 항상 그의 입술에 손을 대고 있는
기쁨과, 그리고 꿀벌의 입이 빨고 있는 사이에도
독으로 변해버리는, 쑤시는 쾌락 가까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