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제왕 티무르의 지극히 인간적인 몰락
크리스토퍼 말로는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에 활약한 영국 극작가다. 무운시 형식을 완성하고 영국 연극의 해방과 르네상스 연극 확립에 기여한 공적을 높이 평가받는다. 창작 기간이 짧아 현전하는 작품은 다섯 편에 불과하지만 모두 당대에 흥행했음은 물론이고 오늘날 문학사적으로도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지위를 획득하고 있다.
≪탬벌레인 대왕 2부≫는 몽골 제국의 번영을 이끈 탁월한 전략가이자 제왕인 티무르가 대제국을 이룬 뒤 병을 얻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1부>가 제왕의 탄생을 그렸다면, <2부>는 제왕의 번성과 몰락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티무르는 기독교 제국과 이슬람 제국을 모두 제압하며 신의 대리자를 자청하지만 생로병사 앞에 무력한 인간적 한계를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 영웅적인 인물의 인간적인 몰락은 고전 비극의 전형에서 벗어난, 말로만의 결말 방식이었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원조
전작인 <1부>의 성공은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이 엄청난 흥행이 결국 <2부> 집필과 공연으로 이어졌다. 말로는 ≪탬벌레인 대왕≫ 집필 당시 속편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2부>는 <1부>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관객과 극장의 요구로 제작되었다. 이에 말로는 <1부>의 주요 인물을 차용하면서도 독립된 서사로 <2부>를 완성했다. 티무르는 몽골 제국의 번영을 위해 기독교 제국과 이슬람 제국을 넘나들며 전장을 종횡무진 누빈다. 유혈이 낭자한 대규모 전투 장면이 무대 위에서 재현되었고, 이 엄청난 스펙터클을 위해 온갖 무대장치와 의상, 소품이 동원되었다. 전작의 흥행에 따른 상업적 요구로 속편이 제작된 점, 압도적인 스케일 때문에 이 작품은 종종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원조로 꼽힌다.
창작 배경부터 공연사까지, ≪탬벌레인 대왕≫에 대한 모든 것
프랜시스 베이컨, 옥스퍼드 백작, 모두 한편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의 원작자로 의심하는 인물들이다. 또 한 사람, 셰익스피어의 원작자로 유력하게 의심되는 인물이 바로 크리스토퍼 말로다. 셰익스피어와 동시대를 살았던, 셰익스피어 못지않은 필력으로 당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는 그러나 스물다섯 이른 나이에 암살당했음을 증거하는 역사 기록이 버젓이 남아 전한다. 그런데도 어떻게 의심이 가능했을까? 엘리자베스 시대에는 동시대 극작가들이 다양한 작품 활동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고, 협업도 활발했다. 그럼에도 현대의 엘리자베스 시대 드라마 연구는 셰익스피어에 치중해 왔다. 크리스토퍼 말로의 최대 흥행작 ≪탬벌레인 대왕≫을 <1부>에 이어 속편인 <2부>까지 완전하게 소개함으로써 말로만의 극적 성취를 독자들에게 온전히 전달한다. 이를 위해 역자는 ≪탬벌레인 대왕≫의 창작 배경부터 공연사까지 작품에 대한 총체적인 해설을 덧붙였다. 또한 중의적인 대사에 원어와 함께 다른 해석 가능성을 제시하는 등 전문성이 돋보이는 주석으로 독자를 작품 깊숙이 인도한다.
200자평
≪탬벌레인 대왕 2부≫는 크리스토퍼 말로가 전작인 1부의 흥행에 힘입어 창작한 작품이다. 이런 제작 배경과 대규모 전투 장면이 대거 등장하는 압도적인 스케일 면에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다. 영국 연극의 해방, 르네상스 연극의 확립, 무운시 형식의 완성이라는 공적으로 셰익스피어에 비견되는 대작가 크리스토퍼 말로는 이 웅장한 전쟁극을 통해 몽골 제국의 번영을 이끈 탁월한 전략가이자 제왕 티무르도 생로병사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임을 보인다. 창작 배경부터 공연사까지 작품에 대한 총체적인 해설, 중의적인 대사에 원어와 함께 다른 해석 가능성을 제시한 전문성 돋보이는 주석이 작품의 깊이 있는 이해를 돕는다.
지은이
크리스토퍼 말로(Christopher Marlowe, 1564∼1593)는 셰익스피어(1564∼1616)와 동갑이면서도 후자가 갖는 명성으로 인해 종종 그늘에 가리는 평가를 받아 왔다. 또한 셰익스피어는 생전에도 성공적인 작가로서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가 여유로운 여생을 보냈던 반면 말로는 혈기 왕성하고 충동적인 성격 때문에 안타깝게도 29세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그러나 불과 6∼7년에 불과한 작품 활동 기간에 <디도, 카르타고의 여왕>(1586), <탬벌레인 대왕>(1587), <파우스투스 박사>(1588), <몰타의 유대인>(1589), <에드워드 2세>(1592) 등 르네상스적 인간의 위반과 욕망을 잘 표현한 작품들을 발표하며 엘리자베스 시대 연극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분방한 감정과 풍부한 감각으로 열정적으로 노래한 미완성 서사시 <히어로와 리앤더>(공저, 1598)가 있다.
감수자
김성환은 충남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에서 영문학 석사 학위를, 고려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셰익스피어의 희극에 나타난 가부장제의 역할과 그 극복의 전망>). 현재 광양보건대학교 영어과에 재직 중이다. 셰익스피어 당대의 정치적·역사적 맥락에서 셰익스피어 극작품의 의미를 살펴보는 일련의 연구를 진행했다. 최근에는 그와 동시대 작가인 크리스토퍼 말로의 작품 세계에 대한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고전르네상스영문학회 부회장, 한국셰익스피어학회 편집이사, 현국현대영어영문학회 부회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셰익스피어/현대 영미극의 지평≫(공저), ≪영국 고전 르세상스 드라마 마스터플롯≫(공저)이 있고 역서로는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자에는 자로: 작품 해설 및 주석≫, ≪에드워드 2세≫, ≪자에는 자로≫, ≪줄리어스 시저≫ 등이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프롤로그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제5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탬벌레인 : 아들들아, 너희에게 전쟁의 기본을 가르칠 작정이다.
너희에게 땅바닥에서 잠자는 법을 가르치고,
무장한 채 습한 늪지대를 헤쳐 나가게 하며,
타는 듯한 열기와 얼어붙는 추위,
배고픔과 목마름, 전쟁에 따르는 것들을 견뎌 내게 해 주겠다.
그리고 그 후에는 성벽을 기어오르고,
요새를 포위하고, 도시에 침투하고,
전체 도시를 허공에 날려 버리는 법을 가르치겠다.
그런 다음, 너희 군대를 강화하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
평평한 개활지에서는 어떤 모양의 요새가 최선인지도 말이다.
-3막 2장, 87쪽
탬벌레인 : 자, 병사들이여, 그리고 친애하는 친구들이여,
지금까지 그랬듯이 정복자답게 싸워라.
이 행복한 날의 영광은 그대들 것이다.
나의 근엄한 표정은, 우리 군대 사이를 맴돌며
우리 모두를 왕으로 삼아 월계관을 씌워 줄
아름다운 승리의 여신이, 나를 비추도록 할 것이다.
-3막 5장, 119쪽
탬벌레인 : 어떤 대담한 신이 내 육신에 이처럼 고통을 가해,
위대한 탬벌레인을 정복하려 하는가?
질병이, 한때는 세상의 공포라 일컬어지던
나를 인간이라 입증할 것인가?
-5막 3장, 1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