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한국동화문학선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0명의 동화작가와 시공을 초월해 명작으로 살아남을 그들의 대표작 선집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 공동 기획으로 7인의 기획위원이 작가를 선정했다. 작가가 직접 자신의 대표작을 고르고 자기소개를 썼다. 평론가의 수준 높은 작품 해설이 수록됐다. 깊은 시선으로 그려진 작가 초상화가 곁들여졌다. 삽화를 없애고 텍스트만 제시, 전 연령층이 즐기는 동심의 문학이라는 동화의 본질을 추구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편저자가 작품을 선정하고 작가 소개와 해설을 집필했으며,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다.
시정신에 입각하여 인간의 보편 진실을 상징으로 표현하는 것을 동화라고 할 때, 강원희 동화는 가장 동화다운 동화다. 강원희 동화는 아름답고 환상적이면서도 역사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서사적으로는 역사와 낭만,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고 있으며, 주제적으로는 과거와 이어져 미래로 향하고 있고, 형식적으로는 시와 산문을 교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강원희 동화는 질서화되고 고정된 경계를 넘어서는, 자유롭고 순수한 동심의 문학이다.
강원희 동화는 시적인 문체와 낭만적인 상상으로 가득하지만 언제나 역사와 현실에 기반을 둔다. 전쟁을 이야기하되 생명과 꿈을 함께 이야기하며, 전통을 이야기하되 현재를 기반으로 한다. 또한 민족적 전통을 이야기하되 타자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놓치지 않는다. 서사와 시가가 혼재하며, 상상 세계와 현실 세계의 구분도 없다. 이쯤 되면 강원희 동화에 경계란 없거나 무의미해 보인다.
강원희에게 동화는 미성숙한 어린이 독자를 위한 특수문학이 아니다. 어린이가 알아야 할, 어린이가 이해할 만한 내용과 형식의 범주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주제를 확장하고 경계를 넘나들면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 동화는 어린이를 위한 문학이 아니라 순수하고 고귀한 어린이의 심성, ‘동심’을 가진 이들을 위한 문학이라는 기본 명제를 충실히 따르는 것이다. 강원희 동화가 내용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 뚜렷한 개성을 지니면서 자신의 문학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것은 이러한 작가적 고집과 확신의 결과일 것이다. 강원희에게 동화는 교훈도 아니고, 허구도 아니다. 강원희에게 동화는 삶이며 진실이며, 궁극의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예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200자평
강원희는 시적 문장과 서정적 판타지를 개성으로 하는 작가다. 그의 동화는 질서화되고 고정된 경계를 넘어서는, 자유롭고 순수한 동심의 문학이다. 시적인 문체와 낭만적인 상상으로 가득하지만 언제나 역사와 현실에 기반을 둔다. 이 책에는 <뮤지컬 배우 허수아비>를 포함한 12편의 단편이 수록되었다.
지은이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난 강원희는 1984년 동화 <꿈을 긷는 두레박>으로 아동문학평론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1986년에는 <씨앗 가게>로 계몽아동문학상 동시 부문에 당선되기도 하면서 동시작가로서도 문단의 기대를 모았다. 이후 강원희는 ≪천재 화가 이중섭과 아이들≫, ≪빨간 구름 이야기≫, ≪화가와 호루라기≫, ≪휘파람 부는 허수아비≫, ≪북청에서 온 사자≫, ≪술래와 풍금 소리≫, ≪바람아 너는 알고 있니?≫, ≪돌그물에 걸린 바람≫, ≪어린 까망이의 눈물≫ 등의 수많은 동화와 ≪날고 싶은 나무≫, ≪바람이 찍은 발자국≫ 등 동시집 등을 통해 동화작가와 동시작가로서 역량을 고루 발휘하면서 한국 아동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동화작가 겸 동시작가라는 이력이 말해 주듯, 강원희는 시적 문장과 서정적 판타지를 개성으로 하는 작가로 평가 받는다. 물활론적 사고에 바탕한 환상성은 강원희 서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이며 여기에 풍부한 비유와 상징, 시적 문체가 조화를 이루어 더욱 아름다운 서사를 만들어 낸다. 1993년 <잿빛 느티나무>로 세종아동문학상, 1994년 ≪북청에서 온 사자≫로 제1회 MBC장편동화대상, 2009년 <바람이 찍은 발자국>으로 한정동 문학상을 받았다.
해설자
진은진은 동화작가이자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다. 1969년 경상남도 하동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경희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했고, 동 대학원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1996년 <할머니의 날개>로 제3회 MBC 창작 동화 대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 ≪마고할미는 어디로 갔을까≫, ≪하늘나라 기차≫, ≪흑설공주 이야기≫(공저) 등이 있다.
차례
작가의 말
솟대 오리의 재채기
도둑고양이와 풍금 소리
잎사귀가 돋아난 허수아비
바퀴 달린 고래 이야기
할아버지의 금씨
모자 속의 바다
잿빛 느티나무
두레박이 된 철모
지워지지 않는 낙서
하늘을 다림질하는 천사
신문 읽어 주는 아이
뮤지컬 배우 허수아비
해설
강원희는
진은진은
책속으로
1.
장대 밑에는 돌멩이를 밀치고 파란 싹이 돋아나 있었습니다.
꽃샘바람이 쓱싹쓱싹 톱질을 했는지 톱니 모양의 잎사귀였습니다.
파란 싹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났습니다.
그러더니 어느 날 오후, 햇살을 헤치고 노란 우산처럼 활짝 꽃잎을 펼쳤습니다.
민들레였습니다.
솟대 오리 3형제는 금실 같은 꽃잎에 눈이 부셨습니다.
“저걸 좀 봐. 우리는 빈 하늘만 볼 줄 알았지 바로 우리 아래에 핀 작은 꽃 한 송이는 볼 줄 몰랐어.”
“그러게. 저렇게 키 작은 앉은뱅이 꽃은 처음 보는 걸.”
“우리가 내려다 봐서 그렇지 개미나 딱정벌레들에게는 금촛대처럼 키다리 꽃일지도 모르지.”
솟대 오리 3형제가 큼큼 꽃향기를 맡으면서 말했습니다.
“저는 해마다 봄이면 이곳에 와서 꽃을 피운걸요.”
민들레가 노란 꽃술을 달싹이면서 말했습니다.
-<솟대 오리의 재채기> 중에서
2.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습니다. 내가 담장 벽의 낙서를 지운 사실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렇담 담장 도깨비가 다시 낙서를 해 놓았단 말인가?’
나는 마음속으로 투덜거리면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 담벼락의 낙서들을 다시 지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또 어찌된 일일까요? 이튿날 아침 학교에 갈 때 보니 담장 벽에 똑같은 낙서가 다시 그려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참, 이상하기도 하네. 달빛을 받으면 낙서가 되살아나는 요술 담장일까? 아니면 정말 도깨비가 장난이라도 친 걸까?”
-<지워지지 않는 낙서> 중에서
3.
“내 심장이 시켜서 말하는데 바다에 가 보고 싶은 게 꿈이래.”
허수아비가 ‘바다’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바다’라면 쥔장어른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곳이자 바로 그리운 꽃님이가 떠나간 곳이었습니다.
“엊그저껜가 매화나무 꼭대기에서 쉬어 가던 소금구름이 말해 줬어. 짭짜름한 바다 냄새가 나는 구름이었지. 바다는 너무너무 넓어서 집채만 한 파도가 출렁거리는데 그 속에는 기와집만 한 고래가 살고 있대. 꼬마 친구 아버지도 바로 그 고래를 잡으러 바다로 간 거래. 바다는 너무 넓어서 무엇이든지 다 받아들인대. 그런데 넌 푸른 파도가 출렁거린다는 바다를 본 적이 있니?”
-<뮤지컬 배우 허수아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