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왕부지(王夫之)의 저작은 100여 종 400여 권에 이르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오랫동안 매몰되었다. 그가 몹시 가난해서 저술에 필요한 종이와 붓 등을 친한 친구나 문생들에게 빌려 쓴 후, 저작이 완성되면 그들에게 주었기 때문에 후손에게 남겨진 것이 없었다. 또한 그는 청조(淸朝)에 끝까지 저항했기 때문에 그의 책은 대부분 금서였다. 그러던 것이 그의 유저가 몇 차례 간각되었고, 몇 종의 ≪선산유서≫가 출판되다가, 최근 중국의 악록서사(嶽麓書社)에서 기존의 판본들을 참고·대조해서 전 16책의 ≪선산전서(船山全書)≫가 출간되었다.
≪강재시화≫란 명칭은 왕부지 자신이 붙인 것은 아니다. 1843년에 18종 150권의 ≪선산유서≫를 간각하였는데, 교감을 맡은 등현학이 왕부지의 저작 중에서 ≪시역(詩譯)≫, ≪석당영일서론내편(夕堂永日緖論內篇)≫, ≪남창만기(南窗漫記)≫를 각각 권일(卷一) ≪시역≫, 권이(卷二) ≪석당영일서론내편≫, 권삼(卷三) ≪남창만기≫라 하여 이를 ≪강재시화≫ 삼권이라 한 데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이는 편자의 시각에 따라 달리 편제되었으며, 이 책은 ≪시역≫, ≪석당영일서론내편≫, ≪석당영일서론외편≫, ≪남창만기≫ 4권을 역주 대상으로 하고, 이와 같은 순서로 편제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시역≫은 ≪시경(詩經)≫의 시구들을 예술적 관점에서 분석·해석하여 각종의 시가 예술론을 제기한 것이다. ≪석당영일서론내편≫에서는 역대 시인들의 작품을 분석·품평하여 자신의 시가에 대한 여러 가지 관점과 견해 등을 밝혀놓았고, ≪석당영일서론외편≫에서는 경의(經義)에 대해 논했다. ≪남창만기≫는 호남(湖南) 형양(衡陽) 지방의 문인들과의 화창 활동 및 당시 그 지역 문인들의 문학 활동을 기록한 것이다.
200자평
100여 종 400여 권의 저작을 남긴 중국 명말청초(明末淸初)의 사상가 왕부지(王夫之)가 종이나 붓마저도 살 수 없는 궁핍의 세월을 견디며 남긴 주옥같은 시론. 중국 시가의 창작, 비평, 감상 원리가 오롯이 담겨 있다. 왕부지의 시론과 시학 연구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은 옮긴이가 내공을 발휘, ≪강재시화≫의 핵심 부분을 골라 국내 최초로 역주를 시도했다.
지은이
자(字)가 이농(而農), 호(號)는 강재(薑齋)이며, 호남(湖南) 형양(衡陽) 사람이다. 만년에 형양 석선산(石船山)에 은거하여 후인들은 그를 선산선생(船山先生)이라 불렀다. 명말청초(明末淸初)의 위대한 사상가, 애국주의자, 유물주의자다. 명말청초의 시대적 격변 속에서, 왕부지는 청(淸)에 저항하여 형산(衡山)에서 기의(起義) 했고, 청(淸)의 체포를 피해 여러 지역을 유랑했다. 남명(南明)의 영력(永曆) 정권에서 명(明)의 부흥을 꿈꾸었지만, 당시 정치현실에서 환멸과 분노만을 느꼈다. 만년에 석선산으로 돌아와 모옥(茅屋)을 지어 은거하며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학문연구에 몰두하여 100여 종 400여 권에 달하는 고귀한 정신유산을 역사상에 남겼다. 그 중 ≪주역내·외전(周易內·外傳)≫, ≪상서인의(尙書引義)≫, ≪독사서대전설(讀四書大全說)≫, ≪독통감론(讀通鑑論)≫, ≪장자정몽주(張子正蒙註)≫등은 그의 사상을 대변하는 것이다.
옮긴이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중어중문학과에서 <왕선산시론연구(王船山詩論硏究)>로 석사 학위를, <왕부지(王夫之) 시학(詩學)의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성고등학교, 홍익대학교사범대부속여고 교사, 고려대학교, 홍익대학교 강사 등을 거쳐 2012년 현재 을지대학교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왕부지(王夫之) 시론 연구 논문으로 <왕부지 시론상의 ‘흥회(興會)’ 개념에 대한 고찰>, <왕부지 시론상의 ‘현량(現量)’에 대한 시가 미학적 고찰>, <왕부지 시론상의 ‘의세(意勢)’론>, <중국 시론상 ‘흥회(興會)’의 역사성과 문예미학적 의의>, <왕부지 ‘흥관군원(興觀群怨)’에 대한 해석과 운용>, <왕부지 시론상의 ‘온유돈후(溫柔敦厚)’론>, <왕부지 ≪시역(詩譯)≫의 ‘간지(簡至)’·‘운의불쌍전(韻意不雙轉)’론 고찰>, <왕부지 시론의 형성배경(1)-부형(父兄)과 스승의 영향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시역(詩譯)≫
第2條: “시(詩)로 흥기할 수, 관찰할 수, 함께할 수, 원망할 수 있다는 것”은 지극한 것이다
第3條: 뜻이 먼저 가슴 속에 온양되고, 작품이 완성된 뒤에도 흘러 퍼져야
第4條: 즐거운 경물(景物)로 슬픔을, 슬픈 경물(景物)로 즐거움을 표현하면, 그 감정은 배가되어 드러나
第7條: 간결한 언어의 극치
第8條: 경물의 본질까지 묘사해야
第10條: 시구(詩句)는 끝났지만 시어(詩語)는 이어지고, 시운(詩韻)은 변했지만 시의(詩意)는 변하지 않아야
第12條: 시가 역사가 되지 못하는 것은 입과 눈이 서로를 대신하지 못하는 것과 같아
第14條: 사리(思理)가 있어야 시를 이해할 수 있어
第16條: 경(景)은 정(情)을 낳고, 정(情)은 경(景)을 낳아
≪석당영일서론내편(夕堂永日緖論內編)≫
第2條: 시가나 문장은 모두 ‘표현하고자 하는 뜻(意)’이 주가 되어야
第3條: ‘세(勢)’를 취해서 ‘의(意)’를 표현해야
第4條: 고아하고 초탈한 ‘가슴’이 있어야 훌륭한 작품이 나와
第5條: ‘정(情)’에 따르고 ‘경(景)’에 따르면 자연 영묘(靈妙)해져
第6條: ‘빈(賓)’과 ‘주(主)’가 하나로 융합되어야
第7條: 몸으로 경험하고 눈으로 목도하여 솟아나는 형상을 표현해야
第9條: 고시(古詩)에는 천연의 뛰어넘을 수 없는 법도가 있어
第13條: 사법(死法)이 세워지는 것은 식량(識量)이 협소하기 때문
第14條: ‘정(情)’ 속에 ‘경(景)’이 있고 ‘경(景)’ 속에 ‘정(情)’이 있어야
第16條: 마음으로 느끼고 눈으로 보는 가운데서 뛰어난 시구가 나와
第18條: ‘장법(章法)’으로 시법을 삼아야
第20條: 음률은 귀에 감미롭고 마음에 화합을 이루어야
第24條: 경(景)을 묘사한 말이라도 정(情)이 깃들어 있어야
第27條: 경물에 직면 감흥(感興)을 일으키고, 경물을 체험 신리(神理)를 얻어야
第29條: 문파가 세워지면 예술 생명은 사라져
第30條: 문파의 건립은 ‘건안(建安)’에서 시작
第31條: 문파가 세워지면, ‘재자(才子)’, ‘명가(名家)’로 일컬어지는 것은 까닭이 있어
第35條: 창작에서 출처를 구하는 것은 가소로운 짓
第38條: 칠언절구는 솔직담백하게 필치를 운용하고 자연스럽게 써야
第42條: 지척(咫尺)에 만리(萬里)의 기세가 있어야
第43條: 오언, 칠언절구의 이상적인 작법
第45條: 여러 종류의 ‘악시(惡詩)’
第47條: ‘악시(惡詩)’보다 더욱 천한 것은 고용 시인의 시
≪석당영일서론외편(夕堂永日緖論外編)≫
第2條: 이백(李白)과 두보(杜甫)가 대가(大家)가 된 것은 까닭이 있어
第6條: 경의(經義)의 이상 작법
第7條: 한 글자라도 생사와 관련된 것처럼 사용해야
第9條: 대우(對偶)는 뜻으로 주인을 삼아 영활(靈活)하게
第11條: 한 편에는 하나의 뜻을 표현해야
第12條: 경의(經義)는 그 고유의 체제가 있어
第14條: 대가(大家)는 ‘사법(死法)’을 묵수(墨守)하지 않아
第23條: 생동적인 글자를 죽은 글자로 대신할 수 없어
第25條: 고인의 문장은 자신의 마음으로 읽고 그 정수를 얻어야
第32條: 뜻을 충분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라면 어려운 글자라도 피하지는 않아
第33條: 글을 짓는 사람은 말을 반드시 신중하게 가리고 골라서 써야
第34條: 고금 서적을 섭렵하여 속루(俗陋)를 제거하고, 심령이 발동하여 예술미를 추구해야
第36條: 이지(李贄)는 말재주로 천하를 현혹
第37條: 문장은 본래 청정한 선업(善業)
第44條: 글도 반드시 충직하고 신실한 행위를 바탕으로 해서 나와야
第54條: 천직(天職)을 끝맺지 못했는데, 하늘이 무너지고 문장이 끊어지니 목이 메어
≪남창만기(南窗漫記)≫
第1條: 나의 부친에 대한 감회
第3條: 양동명(梁東銘) 선생의 시는 청아하고 빼어나
第4條: 망우(亡友) 문소용(文小勇)의 유유자적한 생활
第5條: 대련(對聯)은 간명(簡明)함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공교하기 어려워
第6條: 임오(壬午)년 초가을에 벗들과 회동
第10條: 고휘전(高彙旃)선생의 귀감이 되는 말
역주자에 대해
책속으로
이백(李白)·두보(杜甫)가 대가(大家)로 일컬어지는 것은 의(意) 없는 시가 열에서 한둘도 안 되기 때문이다. 안개와 구름, 샘과 돌, 꽃과 새, 이끼와 숲, 금장식한 배목, 비단 휘장에 의(意)가 깃들면 신령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