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김기림은 1930년대 활동했던 한국 모더니즘 시인들의 대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상과 정지용, 김광균, 오장환, 장만영, 백석 등은 실제로 김기림에 의해 언급된 이래로 비로소 한국 문학사에서 모더니즘 시인으로 자리를 굳히게 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김기림은 이들 모더니즘 시인들의 실질적인 매개항이며 구심점 역할을 했던 것이다.
물론 김기림의 서구 모더니즘 문학에 대한 이해가 처음부터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초기에 발표한 시나 글들을 보면 이 부분과 관련된 그의 이해는 다소간 소박한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의 시적 전통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조급성이 그에게 지나치게 단순화된 논법으로 모더니즘을 대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그는 현대 서구 문명이 던지는 인상을 단순히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모더니즘의 기본 개념이나 원리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는 면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부분에서는 별 근거가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하고, 때로는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를 전개하는 등의 자기모순을 노출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자신의 문제점을 곧 인지했고, 곧이어 본격적으로 모더니즘 자체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과 모색의 필요성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모더니즘이란 반드시 현대 문명의 밝은 면만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이 던지는 어두운 면, 부정적인 면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사조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나아가 그것이 우리의 현실에 올바로 밀착되지 못할 때 외래에서 유입된 한갓 유행 사조의 차원에 머물고 말리라는 반성 또한 하게 된다.
이런 반성적 사유가 응집되어 잘 나타난 것이 바로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장시 <기상도>다. 그는 모더니즘의 기반이 되는 당대 자본주의 문명이 이제 막다른 한계점에 봉착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에 적절히 대응해 나가기 위해서 문학은 응당 문명 비판의 형식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한다. 문명에 대한 밝고 명랑한 전망으로 가득한 이미지들로부터 출발해서, 문명이 낳은 갖가지 병폐와 혼란들, 파괴적인 양상들을 묘사한 중반부를 거쳐, 모든 것이 파괴되고 몰락한 이후 새로운 출발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결말 부분에 이르기까지, <기상도>의 구성은 문명에 대한 비판과 위기의식뿐 아니라 그것의 극복과 초극을 위한 희망 섞인 전망까지도 한꺼번에 내포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구성 방식을 통해 그가 암시하고자 한 것은 현대 문명의 구원 가능성이 아니라, 그것의 파멸이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다는 인식이며, 뒤를 이을 시대는 이제까지 진행되어 온 문명사의 흐름과는 관계없이 새로운 질서와 문명에 의해 건설된 시대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의 극복을 위해 우리 시대는 현대 문명에서 버려야 할 것과 보존하고 계승해야 할 것들을 취사선택해 앞으로의 역사 진로에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200자평
1930년대 한국 문단의 새로운 조류는 모더니즘이었다. 이 모더니즘 문학의 수입과 소개에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한 이로 김기림이 있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인으로 꼽히는 김기림의 작품을 가려 실었다. 일제 식민 통치와 해방, 6·25 동란과 납북 등 역사적 전환기를 온몸으로 겪은 지식인 김기림의 문학적 성과를 살펴본다.
지은이
김기림(金起林, 1908~1958)은 1908년 5월 함경북도 학성(후에 성진으로 편입됨)에서 태어났다. 호는 편석촌(片石村)이다. 고향 근처에서 수학한 후 서울로 올라와 보성고보에 다니다가 일본 유학을 떠나 동경의 명교중학에 편입, 졸업한 후 1930년 봄에 일본대학 전문부 문학예술과를 수료한다. 대학 재학 기간 중 서구 모더니즘의 제 사조에 깊은 영향을 받은 그는 귀국과 동시에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하면서 시 창작과 시론 발표 등의 문필 활동에도 힘쓴다. 1933년 이태준, 정지용 등과 함께 모더니즘 문인들의 친목 단체인 ‘구인회’를 결성해 모더니즘 문학의 보급과 활성화를 위해 노력한다. 1935년 대표작인 장시 <기상도>를 발표하는 한편, 보다 심도 있는 학문을 위해 재도일해 동북제대 영문과에 입학한다. 1939년 동 대학을 졸업한 후 귀국한 그는 조선일보사 기자로 복직함과 함께 문단 전면에 다시 등장한다. 복귀 후 한동안 활동에 주력하던 그는 그러나 1940년대가 되자 점차 조여드는 일제의 압박에 위기감을 느끼고 한동안 고향으로 내려가 절필하고 지내게 된다. 친일 문학인들과 단체의 끈질긴 동참 권유를 뿌리치고 긴 침묵의 기간을 보낸 것이다. 1945년 해방 이후 다시 가족과 더불어 서울로 올라온 그는 그간의 침묵을 만회라도 하듯 문단과 학계 양쪽에서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 준다. 그러나 1950년 6·25 동란이 발발된 직후 서울 거리에서 북한 기관원들에 의해 연행당한다. 그 뒤 북으로 이송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북한에서의 행적이나 활동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확실하게 알려진 바 없다. 시집으로는 ≪기상도≫(1936), ≪태양의 풍속≫(1939), ≪바다와 나비≫(1946), ≪새 노래≫(1948) 등이 있으며 시론집으로 ≪시론≫(1947)과 ≪시의 이해≫(1950) 등이 있다.
엮은이
김유중은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서 학부를 마치고, 이후 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문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군 복무 중이던 1991년, ≪현대문학≫지의 신인 평론 추천으로 등단했다. 석사 졸업 후 잠깐 동안 서울 모 고등학교에서 국어과 교사로 근무한 적이 있으며, 이후 육군사관학교와 건양대학교, 한국항공대학교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금까지의 저서로는 ≪한국모더니즘 문학의 세계관과 역사의식≫(태학사, 1996), ≪김기림≫(문학세계사, 1996), ≪김광균≫(건국대출판부, 2000), ≪한국 모더니즘 문학과 그 주변≫(푸른사상, 2006), ≪김수영과 하이데거≫(민음사, 2007) 등이 있으며, 편저서로 경북대 김주현 교수와 공동 편집한 ≪그리운 그 이름, 이상≫(지식산업사, 2004)이 있다. 현재 한국 현대시의 존재론적 탐구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컴퓨터 게임이 지닌 구조와 특성을 인문학적인 시각에서 분석하고 이해해 보려는 융합학문적인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차례
≪氣象圖≫
世界의 아츰
市民 行列
颱風의 起寢 時間
자최
病든 風景
올배미의 呪文
쇠바퀴의 노래
≪太陽의 風俗≫
太陽의 風俗
海圖에 대하야
鄕愁
첫사랑
람푸
꿈꾸는 眞珠여 바다로 가자
感傷 風景
離別
가거라 새로운 生活로
먼 들에서는
憂鬱한 天使
봄은 電報도 안 치고
祈願
‘커피’ 盞을 들고
旗빨
噴水
바다의 아츰
제비의 家族
나의 掃除夫
들은 우리를 불으오
새날이 밝는다
出發
아츰 飛行機
日曜日 行進曲
‘스케이팅’
旅行
아스팔트
가을의 太陽은 ‘풀라티나’의 燕尾服을 입고
≪바다와 나비≫
모다들 도라와 있고나
어린 共和國이여
두견새
바다와 나비
共同墓地
바다
아리카 狂想曲
連禱
유리창
쥬피타 追放
世界에 웨치노라
≪새 노래≫
새 나라 頌
데모크라시에 부치는 노래
壁을 헐자
肉體 禮讚
오늘도 故鄕은
오늘은 악마의 것이나
[시집 미수록 시]
슈−르레알리스트
詩論
날개만 도치면
어머니 어서 이러나요
林檎 밭
초승달은 掃除夫
年輪
靑銅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
太陽아
다만 한 번이라도 좋다. 너를 부르기 위하야 나는 두루미의 목통을 비러 오마. 나의 마음의 문허진 터를 닦고 나는 그 우에 너를 위한 작은 宮殿을 세우련다 그러면 너는 그 속에 와서 살어라. 나는 너를 나의 어머니 나의 故鄕 나의 사랑 나의 希望이라고 부르마. 그러고 너의 사나운 風俗을 쫓아서 이 어둠을 깨물어 죽이련다.
太陽아
너는 나의 가슴속 작은 宇宙의 湖水와 山과 푸른 잔디밭과 힌 防川에서 不潔한 간밤의 서리를 핥어 버려라. 나의 시내물을 쓰다듬어 주며 나의 바다의 搖籃을 흔들어 주어라. 너는 나의 病室을 魚族들의 아침을 다리고 유쾌한 손님처럼 찾어오너라.
太陽보다도 이쁘지 못한 詩. 太陽일 수가 없는 설어운 나의 詩를 어두운 病室에 켜 놓고 太陽아 네가 오기를 나는 이 밤을 새여 가며 기다린다.
-<太陽의 風俗> 시 전문.
●
작은 魚族의 무리들은 日曜日 아침의 處女들처럼 꼬리를 내저으면서 돌아댕깁니다.
어린 물결들이 조악돌 사이를 기여댕기는 발자취 소리도 어느새 소란해젔습니다.
그러면 그의 배는 이윽고 햇볕을 둘러쓰고 물새와 같이 두 놀을 펴고서 바다의 비단 폭을 쪼개며 돌아오겠지요.
오- 먼 섬의 저편으로부터 기여오는 안개여
너의 羊털의 ‘납킨’을 가지고 바다의 거울판을 닦어 놓아서
그의 놀대를 저해하는 작은 파도들을 잠재워 다고.
-<바다의 아츰> 시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