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한국동화문학선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0명의 동화작가와 시공을 초월해 명작으로 살아남을 그들의 대표작 선집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 공동 기획으로 7인의 기획위원이 작가를 선정했다. 작가가 직접 자신의 대표작을 고르고 자기소개를 썼다. 평론가의 수준 높은 작품 해설이 수록됐다. 깊은 시선으로 그려진 작가 초상화가 곁들여졌다. 삽화를 없애고 텍스트만 제시, 전 연령층이 즐기는 동심의 문학이라는 동화의 본질을 추구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편저자가 작품을 선정하고 작가 소개와 해설을 집필했으며,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다.
김상삼 동화는 내용 면에서 첫째로 주인공의 자기 극복 의지 실현이 매우 강조된다. 이는 독자가 삶의 태도를 형성하는 데 매우 긍정적으로 기여한다. 외톨이거나 신체 불구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의지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자기 구현을 실현한다. <별 새>에서 별 새는 다리를 못 쓰는 약한 새로 태어났지만 많은 난관을 헤치고 기어이 날아올라 산삼 씨앗을 물어 와서 섬을 풍요롭게 가꾼다. <꽃배>에서 주인공 옥이는 벙어리라고 심하게 따돌림을 받는다. 그래도 묵묵히 친구 대신 몰래 청소를 도맡아 해 주는 등 되갚음보다는 베풂으로써 모든 것을 극복한다. <가슴앓이 새>에서 역시 가슴앓이 새는 다리를 못 쓰는 운명으로 태어나 형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해서 먹이를 제대로 얻어먹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엄마 새마저 잃게 되어 천애의 고아가 되지만 기어이 모든 고통을 참아 내어 삶의 높은 가치를 이룩한다. <철이와 살구나무>에서도 살구나무는 안일하게 꿀물을 받아먹는 대신 험한 바위를 이겨 내고 기어이 자신의 뿌리를 깊이 내려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튼실한 열매도 맺는다.<하나만 뽑는 학교>에서는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주인공이 할머니와 함께 지하 쪽방에서 가난하게 살아가지만 많은 유혹을 이겨 내고 양심에 따라 자신의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등 선행을 실천해, 마침내 모든 것이 보장되는 ‘하나만 뽑는 학교’에 들어가게 되는 인간 승리를 그린다.
두 번째로 베풂의 휴머니즘이 많이 나타난다. 자기 극복과 함께 참된 가치 실현의 중요성을 보여 주기 위해 휴머니즘 구현의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눈을 감은 누렁이>에서 주인공 누렁이 소는 경운기가 들어와 이제는 쓸모가 줄어들었다며 다소 천대를 받는 처지였지만, 새로 길을 내기 위한 절개지에서 산사태가 나자 주인을 살리기 위해 살신성인의 자세로 눈을 감고 흙더미 앞을 막아선다. <꽃배>에서 주인공은 벙어리라고 심하게 따돌림을 당해서 고통 받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남몰래 청소를 해 주는 등 원수를 은혜로 역전시킨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탕 한 알>에서는 다문화 가정 자녀로 말더듬이인 주인공이 억울한 누명 속에서도 아름다운 마음씨를 잃지 않고 가난한 노숙 노인을 돕는다.
세 번째로 정신적인 뿌리를 강조한다. <바나나>에서는 캐나다로 이민을 간 사촌 형이 큰아버지를 따라 할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했지만 너무나 기본에 벗어나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자기중심적 행동을 쉽게 자기 껍질을 벗고 마는 ‘바나나’에 비유함으로써 약한 뿌리 의식을 안타까워한다. <들리지 않는 거문고>에서도 서양에서 유래한 악기 기타(guitar)가 우리 고유의 악기인 거문고에 비해 더 많이 쓰이고 있음을 지적하고, 우리의 혼이 담긴 음색을 찾기 위해서 거문고 제작에 몰두하는 주인공의 치열한 의식과 태도를 작가주의로 그려 냄으로써 역시 우리의 참된 뿌리 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중편 <돌지 않는 북극성>에서는 전쟁으로 북(北)을 떠나온 실향민의 절절한 의식 세계에 예술가의 고뇌를 접목해서 로드 무비(road movie) 형식으로 그려 내어, 역시 고귀한 가치로서의 뿌리 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형식적인 면에서는 교훈적 사실(reality) 동화와 예술 지향적 환상(fantasy) 동화의 적절한 조화 및 감각적인 문장 구사와 대비 구조에 의한 구성 등의 특징을 들 수 있다.
리얼리티를 중심으로 쓰인 동화가 비교적 많지만 그 바탕에 판타지적 요소가 적절히 구사되고 있는 작품도 적지 않다. <하늘은 왜 공중에 걸려 있을까>는 존재하는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그려 내는 한편, 실존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 예술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임을 은근하게 보여 주고 있는 판타지 중심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들리지 않는 거문고>는 리얼리티 동화이기는 하지만 예술 지향적 동화다. 가장 아름다운 우리 소리를 찾기 위한 주인공의 노력은 바로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보여 준다. <철이와 살구나무>도 삶의 방식을 생각하게 하는 예술 지향적 동화다. 역경을 이겨 내고 자기 주도적 삶을 영위하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감각적 문장은 독자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가장 필수적이며 효과적인 접근 수단이라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문장은 독자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고 승화시키는 데에 유용하게 작용할 것이다.
구조의 절묘한 구사 또한 눈여겨볼 수 있다. 대비 구조는 대립 구조로 발전할 수 있는 장치로서 특히 스토리텔링 문학에서 필수적인 갈등 장면을 설정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구조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받아야 할 요소다. 상반과 동반 및 대립과 비교 등의 구조를 적절한 위치에 의도적으로 설정함으로써 작품의 주제를 더욱 선명하게 떠올린다. 이는 독자들에게 분명한 각인을 시도하는 것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200자평
김상삼은 1979년 <눈을 감은 누렁이>로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동화작가다. 초등학교 교사이기도 한 그는 통신 문학지를 통한 문학 교육의 저변 확대, 문예 지도 공로로 1995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김상삼 동화는 주인공의 자기 극복 의지 실현이 강조되고 베풂의 휴머니즘이 많이 나타나며 정신적인 뿌리를 강조한다. 이 책에는 <별 새>를 포함한 13편의 단편이 수록되었다.
지은이
김상삼은 1944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대구교육대학 졸업 후 교사 생활하다 정년퇴임했다. 1977년에 <철이와 살구나무>로 창주문학상을 받으면서 문단에 나왔다. 1979년 <눈을 감은 누렁이>로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1984년 <꽃배>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했다. 1987년 장편동화 ≪고향 별≫로 한국동화문학상을, 장편동화 ≪두 사람≫으로 계몽문학상을, 1988년 장편동화 ≪박섬의 보물지도≫로 대구문학상을 받았다. 영남대학, 대구보건대학, 대구교육대학교 대학원 등에서 아동문학을 강의했다.
해설자
심후섭은 1951년 경북 청송에서 태어났다. 대구교육대학, 대구경북대학교 교육대학원, 대구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등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 창주문학상 신인작품상 동시 부문에 당선되고 ≪아동문학평론≫지에 동시가 추천되어 아동문학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새벗≫ 및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동화 부문과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서 당선이 되었다. 이후 제1회 MBC 금성창작동화대상 장편동화 부문, 대구문학상 동화 부문, 한국아동문학상 동화 부문 등에서 문학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할머니 산소를 찾아간 의로운 소 누렁이≫를 비롯해 60여 권이 있다.
차례
작가의 말
눈을 감은 누렁이
꽃배
철이와 살구나무
하늘은 왜 공중에 걸려 있을까
별 새
가슴앓이 새
들리지 않는 거문고
하나만 뽑는 학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탕 한 알
돌지 않는 북극성
창자 없는 물고기
바나나
엄마 때문이야
해설
김상삼은
심후섭은
책속으로
1.
“저 살구나무는 시들지만 죽지 않아. 다만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고 있을 뿐이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살구나무 아래는 작은 바위가 있단다. 바위만 벗어나면 큰 나무가 될 거야.”
철이네 아빠는 철이에게 스스로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철이와 살구나무> 중에서
2.
…그러나 곁에 있는 미루나무가 햇빛을 막고 있었습니다. 오동나무는 그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고개를 길게 뺐습니다. 손을 넓게 폈습니다. 그러나 그 그늘을 벗어나기엔 미루나무가 너무 컸습니다.
오동나무는 날마다 미루나무의 잎 사이로 흘러드는 한 줄기 햇살을 받기 위해 몸부림쳤습니다. 참고 또 참다가 오동나무는 아저씨에게 눈빛으로 말했습니다.
“아저씨, 저 미루나무 좀 베어 줄 수 없나요?”
“왜?”
“미루나무 그늘 때문에 내가 자랄 수 없잖아요.”
“오동나무야, 아픔만큼 큰단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아픔 없이 자라면 온실 안의 화초처럼 겉만 번지르르하지, 향기가 없단다.”
“그럼 일부러 고생을 하란 말이에요?”
“어려움을 참고 이겨 내야 고운 소리를 낼 수 있는 거문고가 된단다.”
아저씨는 엄마처럼 오동나무를 어루만지며 속삭여 주었습니다.
<들리지 않는 거문고> 중에서
3.
바나나 먹는 형을 보니 나도 먹고 싶었습니다. 냉장고에 가니 마침 바나나가 있었습니다. 바나나 껍질은 쉽게 까졌습니다. 노란 껍질을 까니 하얀 속살이 드러났습니다. 하얀 바나나 속살에서 아빠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캐나다에서는 한국인들을 바나나라고 부른단다.”
“왜 그런데요?”
“바나나처럼 쉽게 한국인의 껍질을 벗기 때문이란다.”
“캐나다니까 그곳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뿌리마저도 너무 쉽게 변해 버리는 게 문제지.”
아빠는 형이 바나나처럼 너무 쉽게 껍질을 벗을까 봐 걱정했습니다.
너무 쉽게 벗겨지는 바나나 껍질은 동양 사람의 겉모습입니다. 허연 속살은 서양 사람을 뜻합니다. 그 속살은 금방 변해 버립니다. 아빠는 형이 바나나 속처럼 그렇게 쉽게 변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할아버지도 형이 뿌리를 잊을까 봐 걱정했습니다.
<바나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