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초판본 한국 근현대소설 100선’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소설적 화자는, 죽음에는 그것을 회피하면서 어쩔 수 없이 겪는 ‘비겁한 죽음’과 정면으로 대응하면서 맞이하는 ‘용감한 죽음’이 있다고 말한다. 현자는 늘 후자를 선택한다. 소크라테스와 카토는 각각 자신들을 고발하고 추격해 온 메레토스와 카이사르에게 머리를 조금만 숙였으면 죽음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양심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고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했다. 이런 이유로, 작가는 두 사람을 모두 현자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카토의 죽음, 이 둘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공통점은 두 사람 다 죽기 직전 사랑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이다. 소크라테스는 사형 집행일을 하루 앞두고 감옥에 갇혀 있는 자기를 찾아온 제자들과 함께 삶과 죽음에 관해 토론했고, 카토는 카이사르가 우티카에 입성하기 이틀 전 동료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 후 ‘자유는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명제를 토론했다. 그리고 차이점은 소크라테스는 신을 모독하고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타락하게 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쓴 채 원로원의 판결에 따라 독배를 마셨고, 카토는 공화정 아래의 모든 시민은 권리가 동등하기 때문에 한 로마인이 다른 로마인을 용서하고 사면하는 어떠한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는 저항의 논리로 자살을 선택했다.
200자평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를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바꾸려 한 정치적 시도에 대해 카토의 관점에서 해석한 것으로 60년대 한국 사회의 실존적 자유의 문제를 다룬 정치적 알레고리 작품이다.
지은이
소설가 정을병은 1934년 7월 5일 경상남도 남해에서 태어났다. 1955년 한국신학대학을 다니다가 중퇴하고, 1972년 하와이대학교 동서문화센터에서 수학했다. 1959년 9월 <자유공론> 제1회 신인문학상에 <철조망과 의지>가 당선되어 등단했지만, 소설가로서 본격적인 창작 활동은 4·19혁명 이듬해인 1961년 12월호에 단편소설 <부도>가, 1963년 2월에 <반모랄>이 <현대문학>에 추천되고 나서부터다.
그의 출세작은 <현대문학>에 1965년 3월·6월·11월, 1966년 3월 네 번에 걸쳐 발표된 장편소설 ≪개새끼들≫과 1966년 8월에 발표된 중편소설 ≪까토의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전자는 5·16 군사쿠데타 이후 병역 미필자를 강제 징집해 ‘국토건설단’ 공사 현장에 투입시켜 인권을 유린한 사건을 고발한 작품이고, 후자는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를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바꾸려 한 정치적 시도에 대해 카토의 관점에서 해석한 것으로 60년대 한국 사회의 실존적 자유의 문제를 다룬 정치적 알레고리 작품이다.
1967년 2월부터 11월까지 <현대문학>에 연재한 ≪아테나이의 비명≫으로 그해 제13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그는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한 고발과 정치색이 짙은 실존적 자유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작품화하면서 ‘고발문학의 기수’로 자리매김한다. 1968년 대한가족협회 홍보부장과 지도부장을 역임하면서, 그는 당시 “셋만 낳고 단산(斷産)하자”는 가족계획 운동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며, 과감하게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현재 우리 사회가 빠르게 고령화되어 가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임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러한 당시의 생각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피임사회>(1970)가 있다.
1970년대 초반의 일본 여행과 하와이대학교 동서문화센터에서의 학습 경험은 그에게 한국문제를 국제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넓은 안목을 갖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이 창조적으로 생성되기도 전인 1974년 1월 7일 이호철의 ‘문학인 61인 선언’으로 시작된, 갑인사화(甲寅士禍)라 불리는 ‘문인 간첩단 사건’으로 연행된 후 2월 25일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구속되어 10월 31일 항소심 공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을 때까지 옥고를 치러야 했다. 이때의 경험이 스며든 작품들로 <육조지>(1974), <본회퍼의 죽음>(1980), <인동(忍冬)덩굴>(1980)이 있다. 이해에 한국일보사 주최 제7회 ‘한국창작문학상’과 1976년 한국소설가협회가 주는 제2회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이러한 고초에 대한 보답일까?
1976년 공병우 박사와 함께 문장용 타자기를 개발·제작·보급한 업적으로 1982년 ‘한글학회 공로상’을 수상했고, 1985년 월간 <동서문학> 주간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같은 해에 가족계획 운동에 끼친 공로로 제34회 ‘서울시문화상’을 수상했다. 이때부터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회장을 맡아 1988년에는 제52회 세계작가대회(국제펜클럽 서울대회)를 유치·개최해 성공적으로 치렀다. 세계작가대회의 성공은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세계작가대회 한 해 전인 1987년에는 제12회 ‘대한민국문학상’을, 1990년에는 제1회 ‘한국난문화대상’과 ‘대한민국문화훈장’을 수상했다. 또 1990년에 한국기업문화협의회 회장을 맡아 전경련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이끌어내고 문학과 기업의 연계를 다져 1994년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가 탄생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의 행정 능력은 1999년 한국소설가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더 두드러졌다. 먼저, 2000년 인터넷에 ‘스토리뱅크’를 설립해 두고 전업 작가들이 작품의 서사를 요약해 그것을 스토리뱅크에 탑재하면, 정부로부터 받은 10억 원의 지원금에서 10만 원씩의 고료를 지급했다. 이렇게 해서 ‘스토리뱅크’에 저장된 서사의 요약본은 문화 콘텐츠 시대의 핵심 문화 산업인 만화, 게임, 영화, 드라마를 제작하는 데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소설의 보급과 독자의 확대를 위해 2002년 제7회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집 ≪꽃과 그늘≫(2001) 출간 기념으로 2001년 9월 제1회 ‘문예 부흥을 위한 소설 낭송회’를 개최했고, 이를 전국 각지로 확대했다. 이후 계속해서 수많은 작가들의 소설 낭독회가 전국 각지에서 끊임없이 열리고 있다. 2003년에는 ≪2003 소설 낭송회 초대 작품 선집≫을 출간한 바 있고, 참여정부로부터 민주화운동가로 인정도 받았다. 2006년부터 간암으로 투병해 오다, 2009년 2월 18일 향년 75세로 영면했다. 고인의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42편과 중·단편소설 150여 편, 그리고 수필집 6권이 있다.
옮긴이
이봉일은 1963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2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저서로 ≪1950년대 분단소설연구≫, ≪이데올로기의 유령을 넘어서≫, ≪문학과 정신분석≫이 있고, 역서로 ≪인간언어기원론≫이 있다.
최근에는 신화와 역사·문화·예술 유적 스토리텔링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차례
해설 ······················11
지은이에 대해 ··················30
까토의 자유 ···················35
엮은이에 대해 ··················146
책속으로
까토는 잠깐 책을 덮고 생각에 잠겼다. ‘쾌락과 고통은 하나로 묶여진 것…’, 소크라테스는 무엇을 느꼈을까? 아니, 지금 그의 사상을 접하고 있는 이 까토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쾌락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고통 또한 어디서 오는 것이기에 소크라테스는 이 이론으로 죽기 전의 자신을 달래었을까? 음침한 하데스의 입구에서….
-37~38쪽
다만, 피하면서 맞는 비겁한 죽음과, 죽음을 맞대하면서 죽는 용감한 죽음이 있을 뿐이다. 이 둘 중에서, 현자는 후자의 것을 택한다. 메레토스의 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으면서도 이를 거절한 소크라테스의 죽음도 후자에 속하는 죽음이요, 카에사르에게서 목숨을 구할 수 있으면서도 이를 거부한 자기의 죽음 또한 후자에 속한다.
-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