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921년 현병주가 일제 강점기에 쓴 소설로 고려 말부터 조선의 건국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고려 의종 때 최시랑이 난리를 피해 흥국사에 있던 중 기이한 암자에 갔다가 비석 밑의 구멍에서 동방청제의 아들인 불가살이를 풀어 준다. 불가살이는 최시랑에게 감사의 뜻으로 구슬 세 개를 주고 사라졌다. 이후 최시랑은 3대 동안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고려는 요승 신돈에 의해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이때 이성계는 신이한 승려와 점쟁이에게 장차 존귀한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되고, 홍건적과 맞서게 된다. 이성계는 홍건적의 장수 아지발도를 무찌르고, 불가살이가 나타나 적의 병장기를 먹어 치우고 불덩어리로 변해 적들을 무찌른다. 불가살이는 남방의 적장 꿈에 나타나 이성계와 대적하지 말고 항복하라 위협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이후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회군하고 마침내 조선을 건국한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은 이성계의 조선 건국을 따라가고 있지만, 일본의 장수인 아지발도가 홍건적의 장수로 표현되어 있는 것처럼 내용의 일부는 실제 역사와 다르게 나타나 있다. 또 대개 불가살이 설화에서 불가살이는 퇴치되는 존재로 등장하는데, 현병주는 불가살이를 신격화시켰다. 이런 오류와 상이함은 현병주가 혼동을 했다기보다 내용이 허구라는 점을 강조해 검열을 피한 것이며, 기이한 존재를 내세워 이성계의 조선 건국을 신성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일제의 지배하에 한국형 요물인 불가살이를 내세우고 조선의 정당성을 표방한 것이다. 이 작품은 국권 침탈의 상황 속에서 출판 탄압이 행해지는 가운데 교묘하게 허구를 버무려, 살아남은 국민들이 마지막까지 자신의 정체성과 조국에 대한 자긍심을 잃지 않도록 했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200자평
1921년 일제 강점기에 쓰인 소설이다. 고려 말부터 조선 건국 시기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쇠를 먹고 자라는 기이한 생물 불가살이가 외적을 물리치고 이성계의 조선 건국을 돕는다는 이야기다. 현병주는 일제의 검열을 피하고자 작품의 배경이 된 역사의 일부를 가공했지만, 그 안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지은이
현병주(玄丙周, 1880∼1938)의 초명은 철주며 자는 세경이다. 필명은 금강어부(錦江漁父), 허주자(虛舟子), 호연생(胡然生) 등이며 한학을 다룰 때에는 주로 수봉(秀峰)이라는 호를 썼다. 불교에도 관심을 두는 한편 신학문에도 밝았다고 전한다. ≪송도말년 불가살이전≫에서 쓴 필명 ‘허주자(虛舟子)’란 ‘빈 배의 사공’이라는 의미로, ‘현 허주자’는 ‘현씨 성을 가진 빈 배의 사공’이라는 뜻이다. 영선(翎仙)은 ‘날아다니는 신선’이라는 의미로, 이 역시 작가의 필명이다. ‘현영선’으로 불리기도 한다.
작가 현병주와 관련된 기록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의 행적에 대해 자세히 알 수는 없다. 그의 저서 중 지금까지 알려진 유명한 것으로 ≪사개송도치부법(四介松都治簿法)≫(덕흥서림, 1916)이 있다. 현병주가 송도 상인과 함께 출판한 ≪사개송도치부법≫은 송도 상인에 의해 전수되어 왔던 치부법을 매우 자세히 해설한 것으로, 당시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회계 분야에서 중요한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비난정감록진본(批難鄭鑑錄眞本)≫(영창서관, 1940)을 발간했는데 당시에도 여러 출판사에서 거듭 출판할 만큼 인기가 있었다.
지금까지 그가 창작한 문학작품에 대해서는 주목된 바가 거의 없었으나,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현병주는 1913년부터 1936년까지 오랜 시간 동안 작품 활동을 해 온 작가다. 그는 천안 흥남서시(興南書市)를 운영하며 창작과 출판을 겸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고향>의 작가 이기영과도 친분이 있었다. 현병주는 다양한 필명으로 활동했으나, 이 시기 다른 작가들에 비교해 보았을 때 자신의 존재를 숨기거나 하지 않았다. 또한 작품의 저작권을 양도하지 않고 대부분 자신의 독특한 필명으로 활동을 지속해 왔다. 그의 광범위한 지적 호기심은 작품 세계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데, <어사 박문수전>(1915), <수길일대와 임진록>상·하(1928, 1930), <단종혈사>(1936)와 같이 설화를 기반으로 한 소설이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로 발현되었다.
현병주의 작품 세계와 작가 의식을 분석하는 작업은 고전소설 분야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근대 지식인의 다양한 문학적 행보를 살피는 측면에서도 큰 가치가 있다. 따라서 보다 세밀한 작가 연구가 진행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옮긴이
조재현은 국민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 입학, “고전소설에 나타나는 환상계 연구”로 2006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특성과 의미를 조명할 뿐 아니라, 희구본(稀舊本) 고전소설을 다각도로 발굴·분석해 문학사적 가치와 의의를 밝히는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일찍이 불가살이의 연원과 비교문학적 가치에 대해 주목해 2009년 AKSE(유럽 한국학회)에서 <한국의 괴물, 불가살이의 淵源과 성격 연구>(네덜란드 라이덴 대학)를 발표했다. 이후 <韓國 <불가살이> 說話와 日本 <奈良縣風俗誌料> 昔話 比較 硏究>(2010), <고전서사에 나타나는 불가살이 연구>(2011)와 같은 논문을 발표하며 연구를 진행하였다. 최근에는 ≪송도말년 불가살이전≫의 작가 현병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며 불가살이에 대한 종합적 연구를 꾀하고 있다.
이 외에도 <<흥낭전>과 <金鳳釵記> 비교연구>(2008), <<정해경전>에 나타나는 모친탐색의 양상과 의미 연구>(2008), <<양소저전>연구ᐨ작품교섭양상과 주인공의 여성영웅적 성격을 중심으로>(2010), <뿌리 깊은 나무 박물관 소장 필사본 <유황후전> 연구>(2012), <<임상국부자삼취기> 연구ᐨ가문시조설화적 성격과 다문화 가문 계승의 의미를 중심으로>(2013), <홍의동자 연구>(2014), <비극소설 압록강 연구>(2015) 등 연구 논문을 활발히 발표하고 있다. 현재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학생들이 고전을 기반으로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의미를 창출할 수 있도록 교양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경기북부 구전자료집Ⅱ≫(공저, 2001, 문화관광부 우수추천도서), ≪편옥기우기≫(공저, 2002), ≪곰배령 너머 그대에게 간다≫(공동시집, 2002), ≪계축일기≫(2003), ≪영남 구전자료집 7, 8≫(공편, 2003, 문화관광부 우수추천도서), ≪산늪≫(공동시집, 2005), ≪영남 구전민요 자료집 2, 3≫(공편, 2005, 문화관광부 우수추천도서), ≪고전소설의 환상세계≫(2009), ≪호남 구전자료집 3∼5≫(공편, 2010), ≪박만득 박금단전≫(2013), ≪인현왕후전≫(2014) 등이 있다.
차례
첫 머리말
불가살이는 어떠한 것인가?
송도말년 불가살이전
원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대체 이 물건은 무엇인고? 이 물건이 짐승으로 이 세상에 현신하게 된 계기는 처음에 요승 신돈의 비자인 반야의 조카 기종랑이 점심밥을 먹은 후 식탁 밑에 흘린 밥찌꺼기를 손으로 주물러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능히 한 세상을 크게 놀라게 한 것이다.
처음에 흥국사의 모든 쇠를 먹을 때는 크기가 강아지만 하여 겨우 몸을 움직일 지경이었다. 이때 (불가살이가) 멀리 나갈 뜻을 두고 비로소 동구 밖에 나섰던 것이다. 이 짐승이 먹는 것은 단지 쇠뿐인데, 쇠를 먹는 대로 그 용량에 따라 몸이 커지고 중량도 같이 무거워졌다. 날개가 없어 날지 못할 뿐, 하루에 천 리든 만 리든 제 마음대로 갈 수 있었다. 배를 타지 않아도 물을 건널 수 있으니, 바로 물 밑으로 굴러다니는 까닭에 급한 여울이나 흐린 강물, 깊은 호수, 넓은 바다까지도 비바람을 개의치 않고 평지나 다름없이 왔다 갔다 하였다.
처음 흥국사를 떠나 황하(黃河)를 처음 건너려 할 때, 창해역사(滄海力士)가 잃어버렸던 철퇴[鐵椎]를 주워 먹고 몸이 새끼 밴 암캐만 해졌다. 힘들이지 않고 황해를 건너가 헌원씨 시절 치우가 황제와 싸웠던 전쟁터로 가서 멀고 먼 옛날에 쓰다 버린 병장기를 낱낱이 뒤져 먹었다. 그리고 도산으로 올라가 하우씨가 모아둔 쇠를 먹고, 춘추(春秋)시대 오패의 전쟁터로 가서 땅 속에 묻혀 있는 병장기를 낱낱이 뒤져 먹고, 전국 시대 육국 전쟁이 일어났던 전쟁터로 가서 진시황이 거두어들인 쇠를 먹고 초한 전쟁이 일어났던 전쟁터에 이르러 8년 전쟁 동안 쓰고 버린 병장기를 낱낱이 뒤져 먹고, 오한위(吳漢魏) 삼국 전쟁 터로 가서 주렁주렁 매달린 자물쇠 등속의 쇠를 낱낱이 먹고 나니 어느덧 크기가 인도의 칠백 년 묵은 코끼리의 세 배는 되는지라.
-54∼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