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한국동화문학선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0명의 동화작가와 시공을 초월해 명작으로 살아남을 그들의 대표작 선집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 공동 기획으로 7인의 기획위원이 작가를 선정했다. 작가가 직접 자신의 대표작을 고르고 자기소개를 썼다. 평론가의 수준 높은 작품 해설이 수록됐다. 깊은 시선으로 그려진 작가 초상화가 곁들여졌다. 삽화를 없애고 텍스트만 제시, 전 연령층이 즐기는 동심의 문학이라는 동화의 본질을 추구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편저자가 작품을 선정하고 작가 소개와 해설을 집필했으며,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다.
류근원의 장편들은 교사로서의 그의 자세와 교단 경험 속에서 습득된 어린이에 대한 이해가 화학작용을 일으킨 산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동료 작가들과 달리 장편동화를 통해 자신의 현장과 본분을 넉넉하게 풀고 조여 갔던 류근원은 단편동화를 장편과 다른 무엇을 모색해 볼 수 있는 영역으로 삼은 듯하다. 단평동화에서 주제의식을 치열하게 다듬기보다는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선한 마음의 예술적 표현에 도전했다. 그래서 세 겹의 시선을 사용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확장 관계나 중첩의 관계를 이룸으로써, 인간이 견지해야 할 마땅한 마음이나 태도를 효과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었다.
초기작 <이름 모를 꽃>은 달맞이꽃이라는 불안한 약자의 행적을 통해 선이라는 덕목을 깨우치려 한다. 달맞이꽃은 규정당하기보다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해 나갔던 적극적인 존재인 것이다. 류근원은 불안한 처지인데도 다른 존재들을 위해 자신을 내주었던 달맞이꽃의 선한 마음을 두고두고 표현할 주제로 삼았다. 그리고 이 주제를 형상화하는 방식에 대한 탐구에 나섰다. 주제에 걸맞은 표현법의 탐색에 도전함으로써 자신의 단편동화를 문학예술에 값하는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 책에 담긴 <가위바위보>, <종소리>, <형사 연습> 그리고 <베트콩의 첫사랑>은 이러한 탐색의 산물들이다. 이 작품들은 하나의 정황을 두고 세 가지 서로 다른 층위의 시선을 드리운다는 속성을 공유한다.
<가위바위보>에는 아빠의 죽음이라는 정황이 나온다. 어린 여동생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빠의 부재를 아빠가 용왕을 만나러 간 것으로 이해한다. 오빠는 이 천진한 동생에게 아빠의 죽음을 알리지 않는다. 동생이 받을 충격과 슬픔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는 섬에 그림을 그리러 온 화가가 있다. 화가는 섬의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그러나 이 오누이의 사정을 알고는 오빠의 마음을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여긴다. 이 작품에는 아빠의 부재를 천진하게 이해하는 여동생의 시선, 이 여동생을 보호하려는 오빠의 애틋한 시선,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 오빠의 마음을 아름답게 여기는 화가의 시선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종소리>의 정황은 치매 할머니가 아들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것이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이 정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들이 곧 돌아올 것으로 여긴다. 소망원 신부는 이 할머니의 기다림을 알기에, 할머니가 자신을 아들 취급할 때마다 할머니의 아들 노릇을 한다. 소망원에 이르는 길목 나루터에 사는 소년은 할머니가 다른 노인들처럼 다시는 가족을 만나는 일 없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뜻밖에도 아들이 돌아오고 이를 반기는 종소리가 울린다. 이 작품 역시 세 개의 시선을 드러냈다. 아들을 기다리는 할머니, 그리고 할머니를 보듬는 소망원 신부, 이들을 바라보는 나루터 소년, 이들은 각기 다른 시선들이다. 뒤의 두 시선은 <가위바위보>처럼 앞의 시선을 확장하는 측면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세 시선은 아들의 귀환을 바란다는 하나의 방향을 갖는다. 세 시선은 확장되는 동시에 포개졌는데, 그동안에 할머니의 소원은 소망원 식구들과 소년의 소원으로 더 나아가 독자의 바람으로까지 이어진다. <형사 연습>은 퇴직당한 아버지가 환경미화원이 되었다는 정황을 담았다. 부모는 이 사실을 아들에게 숨긴다. 이러한 부모의 입장이 첫 번째 시선이다. 정황을 몰랐던 아들은 우연한 계기들을 통해 아버지에게 얽힌 일을 알게 된다. 아들은 두 번째 시선에 해당된다. 한편 아들의 반 친구는 이 모든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들이 이를 알아 가자, 자신 또한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이 아들이 아버지 일을 성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안내한다. 아들 친구의 입장이 세 번째 시선이다. 이 세 가지 층위의 시선을 사용한 결과, 아버지에게 얽힌 일을 어린이들이 성숙하게 받아들이도록 안내한다. 한편, <베트콩의 첫사랑>은 사랑을 다루되 이 작품은 전설을 끌어들임으로써 신비성을 구축하고, 할아버지를 통해 월남 파병이라는 한국의 현대사, 그리고 그 역사 때문에 파생된 다민족 가정의 어린이가 겪는 고통까지 아우르고자 한 중편 동화다. 세 시선은 대신 세 사랑이 나타난다. 하나는 별똥별 돌에 얽힌 전설이 보여 준 이루지 못한 사랑이다. 두 번째로는 월남 파병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과 결합하지 못한 할아버지의 안타까운 사랑이다. 세 번째는 다문화 가족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동네 여학생에게 마음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주인공 배두홍의 가슴 아린 사랑이다. 세 겹 시선의 활용이라는 기법의 변주물에 해당된다.
200자평
류근원은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선한 마음의 예술적 표현에 도전하며 장편에 주력했다. 교사로서의 자세와 교단 경험 속에서 습득된 어린이에 대한 이해가 화학작용을 일으킨 산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베트콩의 첫사랑>을 비롯한 11편의 동화를 통해 작가의 세계를 만나 볼 수 있다.
지은이
류근원은 1952년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났다. 청주교대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국어 교육을 전공했다. 1974년 첫 발령지에서 글짓기 반을 맡게 되면서부터 글에 가까이하게 되었다. 동시집과 글짓기 교본을 구해 지도하고, 학교 신문과 문집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1984년 ≪아동문학평론≫지에 응모한 동화가 2회 추천 완료되어 정식으로 등단했다. 1985년 장편동화 ≪싸릿골 이야기≫로 제4회 계몽사어린이문학상을, 장편동화 ≪천등산 이야기≫로 제4회 새벗문학상을 받았다. ≪얄개삼총사≫, ≪눈자니마을의 동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만남≫, ≪열두 살의 바다≫, ≪어느 날 그 애가 왔다≫ 등을 펴냈다. ≪열두 살의 바다≫로 ‘한국해양문학상’을, 단편동화 <뱃고동 소리>로 ‘한국동화문학상’을, ≪눈자니마을의 동화≫로 ‘천등아동문학상’을 받았다. 2008년 교장이 되고부터 교실에 직접 찾아가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며 아이들에게 감성교육을 시작했다. 동화 구연가와 시 낭송가 자격증을 따 아이들을 지도했다.
해설자
김현숙은 아동문학 평론가이며 동화작가다. 1962년 전남 나주에서 출생했다.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95년 ≪아동문학평론≫지를 통해 아동문학 평론가로 등단했다. 199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했다.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등에서 아동문학론을 강의하고 있다. 아동문학 관련 주요 저서로는 평론집 ≪두 코드를 가진 문학 읽기≫와 저학년 장편동화 ≪여우들의 맛있는 요리 학교≫ 등이 있다.
차례
작가의 말
이름 모를 꽃
토토와 휘파람새
산새들이 만든 이불
가위바위보
베트콩의 첫사랑
약속
뱃고동 소리
워낭 소리
형사 연습
짜장면
종소리
해설
류근원은
김현숙은
책속으로
1.
‘아, 노을 할머니. 이젠 노을을 바라보지 않아도 돼요. 아저씨가 왔어요. 종이 울면 안 되는데….’
그때였습니다. 소망원 종탑에서 종소리가 무겁게 날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댕 댕 댕 댕.”
-<종소리> 중에서
2.
언제 왔는지 녀석이 옆에 앉으며 내 손을 잡아 쥐었다.
“아까 보았지? 우리 아버지도 환경미화원이셔. 벌써 1년이 넘었어. 아버지가 환경미화원임을 알았을 때, 나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 그렇지만 아버지가 자랑스러워지기 시작하더라구. 우리 가족을 위해 힘든 일을 마다 않는 아버지. 아버지도 처음엔 너무 힘들어하셨어. 너의 아버지처럼 모자 깊숙이 눌러쓰고 앞을 제대로 바라보질 못하셨어.”
“….”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활짝 웃으시더라구. 아버지가 하는 일이 지구의 한 모퉁이를 깨끗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말이야. 나도 처음엔 많이 힘들었어. 너도 그럴 거야. 하지만 빨리 벗어나는 게 좋아. 나 먼저 간다.”
“야, 어떻게 하면 빨리 벗어날 수 있는데?”
“아버지, 아버지, 아버질 수없이 불러 봐.”
사라지는 녀석의 다리엔 힘이 실려 있었다.
‘아버질 수없이 불러 보라구? 아버지, 아버지….’
아파트가 저만치 보일 때까지 나는 아버지를 얼마나 불렀는지 모른다. 이제 얼마 후면 시치미를 뚝 떼며 들어오실 아버지. 아버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그보다 먼저 어머니의 얼굴은 또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현관 앞에서 나는 자꾸자꾸 망설였다.
‘그래, 난 꼬마 형사다. 형사는 알고 있어도 모르는 체 시치미를 뚝 뗄 때도 있다.’
-<형사 연습>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