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헤겔은 1818년 여름 학기부터 1829년 겨울 학기까지 다섯 번에 걸쳐 ‘미학’ 또는 ‘예술철학’을 강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정작 강의를 위해 그가 작성한 원고는 남아 있지 않다. 수강생들이 필기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정리해 놓은 원고 열두 편 정도만이 있을 뿐이다. 게다가 첫 미학 강의 자료는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다.
지금까지 가장 널리 읽힌 ≪미학 강의≫는 헤겔의 제자 호토가 편집한 책이다. 베를린 강의에 사용한 헤겔의 수고와 수강자들의 필기 노트를 모아서 1835년(초판)과 1842년(개정판)에 세 권으로 출간했다. 그러나 호토가 미학도 완결된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헤겔 미학을 편집했다는 의혹이 최근 제기되었다. 1818년 하이델베르크 강의 노트뿐만 아니라 1820/21년 베를린 강의의 원자료를 편집에서 제외해 버린 사실 때문에 이러한 혐의는 더욱더 짙어지고 있다.
≪미학 강의(베를린 1820/21년)≫는 크게 ‘보편적 부분’과 ‘특수한 부분’으로 구분되고, ‘특수한 부분’에서 개별 예술 장르를 다룬다. 특이한 점은, ‘보편적 부분’에 ‘예술의 특수한 부분’이라는 제목을 별도로 표기해 놓고, 여기서 세 가지 예술형식, 즉 상징적 예술형식, 고전적 예술형식, 낭만적 예술형식을 다룬다는 것이다.
세 가지 예술형식은 표현되어야 할 내용과 표현된 형식, 실재와 개념의 적합성 여부에 따라 구분된다. 우선, 상징적 예술형식의 가장 큰 특징은 내용과 형식이 서로 부적합하다는 점이다. 헤겔은 부적합성을 내용이 예술형식을 찾는 과정이자 지향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이에 견주어 고전적 예술형식은 내용과 형식이 완전하게 일치함으로써 미의 이상을 실현한다.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 절대자가 개별적인 인간 신체로 구현되는 것처럼, 고전적 예술형식은 신적인 것을 인간적인 것으로 형상화한다. 특히 헤겔이 고전적 예술형식에서 아름다움 또는 예술의 이상이 진정으로 실현되었음에 주목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고전적 예술형식에는 아직 살아 있는 ‘개체’, 곧 ‘주관성의 일자’가 결여되었다고 한계를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낭만적 예술형식은 고전적 예술형식이 성취한 아름다움과 예술의 완성이 해체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는 내용과 형식의 불일치에 머문 상징적 예술형식으로 퇴행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기존의 예술에 대한 해체이자 초월이다.
200자평
‘헤겔 미학’은 무엇인가? 헤겔은 진정 ‘예술의 종말’을 고했는가? 이 책은 헤겔 미학의 기본 사유를 확인해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미학의 보편적 부분과, 건축·조각·회화·음악·시문학 등 특수한 부분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을 담고 있다.
지은이
게오르크 헤겔은 1770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났으며, 1778년부터 1792년까지 튀빙겐 신학교에서 수학했다. 그 뒤 1793년부터 1800년까지 스위스 베른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정교사 생활을 했다. 이때 청년기 사상을 보여 주는 종교와 정치에 관한 여러 미출간 단편들을 남겼다. 첫 저술 ≪피히테와 셸링의 철학 체계의 차이≫가 발표된 1801년부터 주저 ≪정신현상학≫이 발표된 1807년 직전까지 예나 대학에서 시간강사 생활을 했다. 그 뒤 잠시 동안 밤베르크에서 신문을 편집했으며, 1808년부터 1816년까지 뉘른베르크의 한 김나지움에서 교장직을 맡았다. 그리고 2년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교수를 지낸 후, 1818년 베를린 대학의 정교수로 취임했다. 1831년 콜레라로 사망했으며, 자신의 희망대로 피히테 옆에 안장되었다.
주요 저서로 ≪정신현상학≫, ≪논리학≫, ≪엔치클로페디≫, ≪법철학 강요≫ 등이 있다. 그의 사후에 ≪미학 강의≫, ≪역사철학 강의≫, ≪종교철학 강의≫ 등을 제자들이 간행했다.
옮긴이
서정혁은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칸트 철학으로 석사 학위를, 헤겔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리더십교양교육원에 재직 중이다. 저서로 ≪철학의 벼리≫, ≪논술 교육, 읽기가 열쇠다-선생님을 위한 읽기 교육의 방법과 활용≫, ≪논증과 글쓰기≫(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헤겔의 ≪예나 체계기획 III≫, ≪헤겔 예나 시기 정신철학≫, ≪법철학 강요≫, ≪교수 취임 연설문≫, ≪미학 강의≫, ≪세계사의 철학≫, 피히테의 ≪학자의 사명에 관한 몇 차례의 강의≫, K. 뒤징의 ≪헤겔과 철학사≫가 있다. 그 밖에 독일 관념론, 의사소통 교육 및 교양 교육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차례
서론
예술의 개념
예술의 분류
[A.] 예술의 보편적 부분
아름다움의 개념
정신과 아름다움의 관계
자연미와 예술미의 구분
예술의 특수한 부분
I. 상징적 예술형식
1. 자연 상징, 또는 물리적인 것의 상징적 표현
2. 참된 상징
3. 의미와 표현의 분리 단계, 또는 특수한 상태에 있는 상징
II. 고전적 예술형식
1. 개념, 절대적인 의미 부여자로서 사유 자체
III. 낭만적 예술
I. 종교적 소재
II. 이 원리가 세계와 인간 속에 출현하게 하는 소재
III. 이 원리가 완전히 형식화하게 하는 소재
[B.] 특수한 부분
조형 예술들
I. 건축술
1. 상징적 건축
2. 고전적 건축술
3. 고딕 건축술
정원술
II. 조각
1. 이집트인의 조각
2. 고전적 조각
III. 회화
회화의 대상, 소재
성격적인 것 일반
상황 일반, 특정한 감각의 표현
색, 채색 효과
음악
[IV.] 언어 예술
I. 서사시
II. 서정시
III. 극시
관련 문헌
찾아보기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예술작품은 단순히 지나가 버리는 인상만을 주어서는 안 된다. 예술작품은 우리의 심정에 물음을 던지고 말을 건네며 메아리(Echo)를 울린다.
-16쪽
예술은 조각에서, 낭만적 예술은 회화와 음악에서 그러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보편적 예술과 관련해서 보면, 이 세 가지 형식 모두를 초월해 대자적으로 자신을 확장하는 것이 바로 언어 예술(redende Kunst)이다. 이 밖에도 보편적 이념에 완전히 상응하지 않아서 조금씩 왜곡이 생기는 다른 많은 유사 예술들과 특수한 방식들이 있다. 예를 들어, 웅변술, 무언극술, 무용술(舞踊術), 정원술(庭園術, Gartenkunst) 등이 그러하다. 시 예술 중에서도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형식들로 표현되지 않는 방식들도 있다.
-46~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