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비록 분량은 적지만 전체 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권에서 아인하르트는 샤를마뉴의 선조들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샤를마뉴가 황제로 즉위하게 되기까지의 내용을 개관하고 있다. 특히 샤를마뉴의 부친인 피핀 단신왕(Pepin the Short)이 메로빙거 왕조를 타도하고 카롤링거 왕조를 창설하는 과정에 지면을 많이 할애하고 있다. 제2권에서는 샤를마뉴의 대외전쟁과 외교관계를 다루고 있다. 아인하르트는 전체 5권 중에서 여기에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끈질기게 저항해 오는 작센인들을 상대로 무려 3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전쟁을 벌여 마침내 굴복시키는 이야기는 마치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정복 과정에서는 샤를마뉴의 강인한 면모가 드러나지만, 여러 국가들과의 외교관계에서는 너그럽고 도량이 넓은 전혀 다른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제3권에서는 샤를마뉴 황제의 사생활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제3권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황제 대관에 관한 기사는 사료로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동안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무수하게 인용되어 왔다. 제4권에서는 황제의 말년과 죽음, 죽음의 징조들, 매장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마지막 제5권에서는 샤를마뉴의 유언과 유언장 내용이 나온다. 유언장의 내용을 통해서 우리는 샤를마뉴의 유산이 어떤 방식으로 분배되었는지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샤를마뉴와 사생활까지 함께하면서 샤를마뉴의 정책 전반에 깊이 관여했던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 쓴 전기 작품으로서, 샤를마뉴의 개인적 성품과 습관, 사생활은 물론 정복전쟁과 대외관계 등 당시의 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우리에게 전해 주는 귀중한 사료임에 틀림없다.
200자평
샤를마뉴는 중세 서유럽을 대표하는 통치자다. 768년에 프랑크 왕국의 왕으로 즉위해 814년에 사망할 때까지 47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왕국을 훌륭하게 다스리면서 수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이 책은 바로 이 위대한 인물인 샤를마뉴를 주제로 다룬 전기 작품이다. 샤를마뉴의 동시대인이 쓴 중세 최초의 세속적 전기 작품으로서, 샤를마뉴의 생애와 카롤링거제국에 관한 직접적인 정보를 제공해 주는 귀중한 사료다. 더구나 황제와 함께 생활하면서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 쓴 글이라 더욱 생동감이 있다.
지은이
프랑크 동부지역 마인 강 유역에 있는 마인가우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 되던 해(779)에 프랑크 왕국에서 최고의 학문 중심지 중의 하나로 알려진 풀다 수도원학교에 들어가 그곳에서 초기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 타고난 재능을 발휘해 그 대수도원의 제2대 원장인 바우골프로부터 신임을 얻었다. 수도원 학교에서 충분한 기초 소양을 갖추자 그 수도원의 원장은 아인하르트가 샤를마뉴의 궁정학교로 갈 수 있도록 알선해 주었다.
수도원장의 소개로 아인하르트는 791년에 아헨에 있는 샤를마뉴의 궁정학교에 입학했다. 샤를마뉴는 치세 초기에 주변의 학자들을 모아 궁정학교를 설립한 후 영국에서 앨퀸이라는 유명한 고전 학자를 초빙해 교장 자리에 앉혔다. 아인하르트는 궁정학교에 들어가서도 학문적인 재능을 발휘해 곧 앨퀸과 샤를마뉴의 눈에 띄게 되었다. 그는 문학 분야에서는 물론이고, 건축, 미술, 기술 분야에서까지도 재능을 발휘했다. 곧 샤를마뉴의 신임을 받아 왕의 친구이자 고문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샤를마뉴가 그에게 사생활에 대한 비밀까지도 허심탄회하게 토로할 정도로 둘은 가까운 사이를 유지했다.
샤를마뉴가 사망한 뒤에 아인하르트는 다시 샤를마뉴의 아들 루이 경건왕에게서도 깊은 총애를 받았다. 루이 치하인 814년부터 830년까지 카롤링거제국의 고위직을 두루 담당했다.
저서로는 ≪샤를마뉴의 생애≫ 외에도 71편의 서한들을 모아 놓은 ≪아인하르트의 서한들(Einharti Epistolae)≫이 있고, 종교 관련 저술로 ≪성 마르켈리누스와 베드로의 유해 이송과 기적들(De translatione et miraculis sanctorum suorum Marcellini et Petri)≫, ≪순교자 마르켈리누스와 베드로의 수난(Passio martyrum Marcellini et Petri)≫, ≪십자가 숭배에 관한 소책자(Libellus de adoranda Cruce)≫ 등이 있다.
옮긴이
2001년부터 ‘콘스탄티누스 기진장(Donation of Constantine)’을 연구 주제로 설정해 지속적으로 공부했다.
2000년 이후 옮긴이의 주요 연구 성과물로는 ≪중세의 정치 이데올로기≫(느티나무, 2000), ≪꿰뚫는 논술 교과서≫(공저: 신서원, 2003), ≪만화 한국사·세계사 척척 논술≫(공저: 중앙재능북스, 2006) 등의 저서와 역서 ≪중세 이야기≫(공역: 새물결, 2003), 그리고 논문 <로마 교회와 프랑크 왕국의 제휴: 피핀의 쿠데타를 중심으로>(<서양중세사연구>제8집, 2001), <스테파누스 2세와 피핀의 상봉: 그 역사적 의미>(<서양중세사연구> 제9집, 2002), <콘스탄티누스 기진장의 작성 목적>(<서양중세사연구> 제11호, 2003), <신성로마제국의 출발점에 관하여>(<서양중세사연구> 제13호, 2004), <콘스탄티누스 기진장의 작성 시기>(<서양중세사연구> 제14호, 2004), <신성로마제국의 성격: 교황권과 황제권의 관계를 중심으로>(<서양사연구> 제37집, 2007), <콘스탄티누스 기진장의 적용 사례: 13세기 전반기의 교황들을 중심으로>(<호서사학> 제49집, 2008) 등이 있다.
차례
서언(발라프리트 슈트라보)
서문(아인하르트)
제1권 초창기의 카롤링거 왕가
제2권 샤를마뉴의 전쟁과 외교
제3권 황제의 사생활
제4권 황제의 말년과 죽음
제5권 샤를마뉴의 유언과 유언장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샤를마뉴는 당시에 각국을 다스렸던 모든 지배자들 중에서 단연 가장 유능하고 가장 출중한 지도자였다. 그는 일단 시작한 일에 대해서는 어떠한 위험도 감내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관철시켰다. 샤를마뉴는 어떤 특수한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것을 참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체득했기 때문에 결코 역경 속에서 굴하지 않았으며, 행운을 맞아도 운명의 속임수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37쪽
그는 황제와 아우구스투스(Augustus) 칭호를 받았다. 처음에 그는 이 칭호를 전혀 원하지 않았다. 그날이 비록 교회의 가장 큰 축일이었을지라도, 만일 교황의 그 계획을 미리 알았더라면 결코 교회당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