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책의 유통은 지식의 독점과 반비례한다. 책의 유통이 활발해질수록 지식은 널리 퍼진다. 대략 17세기 이후부터 전 세계적으로 일반 독자가 인식의 주체로 급부상하면서 지식을 얻고 이를 공유하려는 의식이 강해졌다. 이때 원하는 책을 마음껏 사 볼 수 없는 독자는 책을 구매하기보다 빌려 읽는 것을 선호했다. 세책 문화는 특히 상품 가치가 높은 소설책 위주의 독서 문화가 형성되면서 18∼19세기에 유럽과 미국, 한국과 일본에서 공통적으로 발달한 현상이다. 세책 문화는 작품의 오락성과 상업성을 토대로 지식 확산에 기여했다. 이는 일반 독자가 출현해 만들어 낸 독서사의 진보이자 동서양 공동의 보편적 문화유산이다. 이 책에서는 국가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당대의 흥행 코드이자 문화 상품이었던 세책 도서와 그 세계의 다양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지은이
이민희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다. 강화도에서 태어나 강화의 역사와 문학, 자연과 대지의 숨결을 느끼며 자랐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고전문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일본, 폴란드, 영국 네 나라의 근대 이전 역사영웅서사문학 작품의 특성을 밝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년간 폴란드 바르샤바대학교 조교수로 재직하면서 폴란드 학생들에게 한국문학을 가르쳤다. 현재 잡학적 사유 속에서 고전소설과 고전문학교육, 비교문학, 어문생활사를 연구하고 있다. 『쾌족, 뒷담화의 탄생』(2014), 『백두용과 한남서림 연구』(2013), 『조선의 베스트셀러: 조선후기 세책업의 발달과 소설의 유행』(2007), 『16∼19세기 서적중개상과 소설·서적유통 관계 연구』(2007), 『파란·폴란드·뽈스까: 100여 년 전 한국과 폴란드의 만남, 그 의미의 지평을 찾아서』(2005) 등 십수 편의 저서와 6편의 고소설 번역서, 그리고 60여 편의 논문이 있다.
차례
01 동서양 세책 지형도
02 세책 문화 발달사
03 영업 방식
04 독서 주체
05 취급 서적
06 금서와 검열
07 경제와 소설 상품
08 세책 문화의 다양성
09 출판, 유통, 독서
10 세책 문화의 독서사적 의미
책속으로
세책 문화는 과거의 향수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근대 이전 세책 문화는 과연 사라졌는가? 아니다. 역사는 계속 순환한다. 시대별로 양상은 달랐을지언정, 그 체계와 원리는 동일하다. 세책의 21세기 버전을 우리는 바로 전자책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스트리밍 서비스는 세책의 21세기식 명칭일 뿐이다.
“세책, 디지털 기술로 꿈꾸는 책의 미래” 중에서
여유 시간이 많았던 사대부 집안 여성들은 경제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에 국문 장편소설을 빌려 와 다른 사람이 들려주는 소설책 이야기를 듣거나 직접 낭독하며 심심함을 풀고 교양을 쌓았다. 김만중이 노모를 위로하기 위해 소설 『구운몽(九雲夢)』을, 조성기가 『창선감의록(彰善感義錄)』을 직접 창작한 것처럼 하기는 어렵더라도, 소설책을 빌려와 여성 독자에게 읽어 주는 것이야말로 자식들이 선사할 수 있는 훌륭한 효도 선물이었던 것이다. 최대 분량을 자랑하는 『완월회맹연(玩月會盟宴)』(180책)을 비롯해 『명주보월빙(明珠寶月聘)』(100책), 『하진양문록(河陳兩門錄)』(25책) 등의 장편소설이 대표적이다.
“취급 서적” 중에서
이를 세책업자 입장에서 본다면 고객이 여가로 행한 독서 활동은 상업적 손익분기점을 고려한 ‘선택의 자유’를 시장 논리에 맡긴 것과 같았다. 다시 말해 세책업은 책을 수집하고 축적한 것을 공유한다는 것의 가치를 처음으로 실험한 것이고 그것이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일반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삶을 윤택하게 만들며 오락적 요소에 투자할 수 있는 책을 공급하겠다는 발상은 선택의 자유를 확대하고자 한 논리와 다르지 않았다.
“경제와 소설 상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