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소동파(蘇東坡, 1036∼1101)가 우리 문단에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했다. 그러기에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세상의 학자들이 처음에는 과거 시험에 필요한 문체를 익히느라 풍월을 일삼을 겨를이 없다가 과거에 급제하고 나서 시 짓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면 소동파 시 읽기를 무척이나 좋아하기 때문에 매년 과거의 방이 나붙은 뒤에 사람마다 금년에 또 서른 명의 소동파가 나왔다고 여긴다”라고 했고,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은 “신라 말에서 고려 초까지는 오로지 만당(晩唐) 시만 익혔고 고려 중엽에는 오로지 소동파 시만 배웠다”라고 했다. 김부식(金富軾, 1075∼1151)과 동생 김부철(金富轍)의 이름이 소동파(본명 蘇軾)와 소철(蘇轍) 형제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소동파에 대한 우리 문인들의 추앙심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라고 하겠다.
200자평
중국의 대문장가 소동파 사선집. 소동파는 김종직이 “고려 중엽에는 오로지 소동파 시만 배웠다”고 했을 정도로 우리나라 문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소동파의 사 작품은 약 350수가 현존하는데 ≪소동파 사선≫은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 64수를 선정하여 역주한 것이다.
지은이
1036년 중국 사천성에서 태어나 1101년 생을 마쳤다. 자는 자첨(子瞻),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 이름은 식(軾)이다. 부친 소순(蘇洵), 아우 소철(蘇轍)과 더불어 ‘삼소(三蘇)’라 불린다. 송나라 제1의 시인이며, 문장에 있어서도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다. 22세에 진사에 급제하고, 구양수(歐陽修)에게 인정을 받아 문단에 등장하였다.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이 실시되자 ‘구법당(舊法黨)’에 속했던 그는 지방관으로 전출되었다. 시, 사(詞), 산문, 부(賦), 서예, 그림 등 여러 장르에 모두 뛰어나 각기 시대의 최고봉이었다. 자유정신과 이성적 사유, 그리고 개성을 중시했던 북송의 문화와 문학 정신, 시대정신이 그에게 역력히 구현되어 있다. 대표작인 <적벽부(赤壁賦)>는 불후의 명작으로 널리 애창되고 있다.
옮긴이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석사 학위와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대구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를 거쳐 2013년 현재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 및 역서로 ≪소식사연구≫·≪당송사사≫·≪여산진면목≫·≪논어의 문법적 이해≫·≪송시선≫·≪범성대시선≫·≪팔방미인 소동파≫·≪육유시선≫·≪소동파시선≫·≪소동파사선≫·≪소동파사≫·≪당시삼백수 1, 2≫·≪정본완역 소동파시집 1, 2≫ 등이 있다.
차례
해설······················ 11
지은이에 대해·················· 17
병진년 중추절에 자유를 생각하며
고산의 죽각에서 진술고를 전송하며 江城子(翠蛾羞黛怯人看)
························ 29
밀주로 가는 길에 말 위에서 자유에게 沁園春(孤館燈靑)· 32
을묘년 정월 스무날 밤의 꿈 江城子(十年生死兩茫茫) ··35
병진년 중추절에 자유를 생각하며 水調歌頭(明月幾時有) 37
자유에게 畫堂春(柳花飛處麥搖波) ··········40
늦봄에 이공택과 작별하며 蝶戀花(簌簌無風花自墮) ·42
팽문에서 작별하며 減字木蘭花(玉觴無味) ·······44
칠석날 황주 조천문 위에서 菩薩蠻(畫檐初掛彎彎月) ··46
취옹의 노래 醉翁操(琅然) ··············48
원풍 7년 4월 1일 설당의 송별연에서 이중람에게 滿庭芳(歸去來兮) ·····················53
자유를 그리며 滿江紅(淸潁東流) ···········57
서호를 노래한 구양공의 사에 차운하여 木蘭花令(霜餘已失長淮闊) ······················60
여름 풍경 賀新郎(乳燕飛華屋) ············62
술 깨면 또 그리운 걸 어찌하겠나 雨中花慢(嫩臉羞蛾因甚) 65
어촌의 저녁나절
밀주의 대보름 蝶戀花(燈火錢塘三五夜) ········71
늦봄 望江南(春已老) ················73
서주의 농촌 1 浣溪沙(照日深紅暖見魚) ········76
서주의 농촌 2 浣溪沙(旋抹紅妝看使君) ········78
서주의 농촌 3 浣溪沙(麻葉層層檾葉光) ········80
서주의 농촌 4 浣溪沙(簌簌衣巾落棗花) ········82
어부 1 漁父(漁父飮) ················84
어부 2 漁父(漁父醉) ················86
어부 3 漁父(漁父醒) ················88
어촌의 저녁나절 調笑令(漁父) ············90
입춘 減字木蘭花(春牛春杖) ·············91
8월 18일에 조수를 구경하며
봄을 찾아 나섰더니 浪淘沙(昨日出東城) ·······95
칠리탄을 지나며 行香子(一葉舟輕) ··········97
조수를 구경하며 瑞鷓鴣(碧山影裏小紅旗) ······100
풍수동에서 臨江仙(四大從來都遍滿) ·········102
양원소에게 화답하는 매화사 南鄕子(寒雀滿疏籬) ···104
황주의 정혜원에 우거하며 卜算子(缺月掛疏桐) ····106
황주의 임고정에서 南鄕子(晩景落瓊杯) ·······108
버들개지를 노래한 장질부의 사에 차운하여 水龍吟(似花還似非花) ······················110
거문고 소리 水調歌頭(昵昵兒女語) ·········113
홍매 定風波(好睡慵開莫厭遲) ············117
8월 18일에 조수를 구경하며 南歌子(海上乘槎侶) ···120
춘경 蝶戀花(花褪殘紅靑杏小) ············123
어느 봄밤의 노숙
경구에서 고향편지를 받고 蝶戀花(雨過春容淸更麗) ··127
경구를 떠나면서 醉落魄(輕雲微月) ·········129
팽성에서 자유의 사에 화답하여 水調歌頭(安石在東海) 131
이것 역시 사천에서의 야유회로다 江城子(夢中了了醉中醒) ··························· 136
어느 봄밤의 노숙 西江月(照野瀰瀰淺浪) ·······139
본래부터 호숫가의 모랫길이 좋았던 건 南歌子(帶酒衝山雨) ························ 141
<완계사>로 개작한 현진자의 <어부사> 浣溪沙(西塞山邊白鷺飛) ····················143
지팡이 짚고 어슬렁어슬렁 鷓鴣天(林斷山明竹隱牆) ··145
유유자적 浣溪沙(傾蓋相逢勝白頭) ··········147
초여름 阮郎歸(綠槐高柳咽新蟬) ···········149
양선에서 살게 되어 滿庭芳(歸去來兮) ········151
의흥에서 늙고 지고 菩薩蠻(買田陽羨吾將老) ·····155
참료자에게 八聲甘州(有情風萬里捲潮來) ·······157
풀 근심이 아예 없네
연회석에서 양원소에게 醉落魄(分攜如昨) ······163
중추절 陽關曲(暮雲收盡溢淸寒) ···········165
사호로 가는 길에 비를 만나 定風波(莫聽穿林打葉聲)· 166
난계가 서쪽으로 흐르는 것을 보고 浣溪沙(山下蘭芽短浸溪) ························ 168
달팽이 뿔에서 다투는 허망한 명예 滿庭芳(蝸角虛名)· 170
밤에 임고정으로 돌아가 臨江仙(夜飮東坡醒復醉)··· 173
늦가을에 十拍子(白酒新開九醞)··········· 175
풀 근심이 아예 없네 無愁可解(光景百年) ·······177
평산당 西江月(三過平山堂下) ············182
술회 行香子(淸夜無塵) ··············184
어느 때에 마시려고 기다리는가 虞美人(持杯遙勸天邊月) 186
적벽에서의 옛날 생각
사냥 江城子(老夫聊發少年狂) ············191
장계원에게 陽關曲(受降城下紫髥郎) ·········194
적벽에서의 옛날 생각 念奴嬌(大江東去) ·······196
옮긴이에 대해 ··················200
책속으로
만약에 거문고 소리가 거문고에서 난다면/통에 넣어 두었을 땐 어찌하여 안 울릴까?/만약에 거문고 소리가 손가락에서 난다면/어찌하여 손가락에 귀를 대지 아니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