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송옥(宋玉)은 굴원(屈原)의 초사(楚辭) 문학을 계승 발전시키고 한부(漢賦)의 기틀을 마련한 작가다. 그는 전국(戰國) 시기 초나라 사람으로, 대략 초나라 경양왕(頃襄王) 원년(BC 298)에 태어나 초나라의 마지막 임금 부추(負芻) 때 세상을 떠났다. 한때 초(楚) 양왕(襄王)의 신하로 있으면서 간언도 하고 계책도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때 대부(大夫)로 있던 등도자(登徒子)와 당늑(唐勒)의 모함을 받은 적이 있다고 전한다. 동한 사람 왕일(王逸)의 ≪초사장구(楚辭章句)·구변서(九辯序)≫와 ≪수서(隋書)·경적지(經籍志)≫에는 굴원(屈原)의 제자라고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송옥의 작품은 내용상 뜻을 이루지 못한 심정을 읊은 것과 군주를 일깨우고자 풍간한 것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전자는 <구변>·<적부>·<미영부> 등이 대표적이다. 그중 <구변>은 총 255개 구의 1500여 자로 이루어진 장편의 시로, 굴원의 <이소(離騷)> 다음으로 길다. 내용은 소인배들이 나라를 망치는 암울한 현실과 뜻을 이루지 못한 선비들의 비참한 처지와 분한 마음을 읊고 있다. 후자는 <풍부(風賦)>·<고당부>·<등도자호색부>·<풍부(諷賦)>·<대언부>·<조부> 등이 대표적이다. 역자의 조사에 따르면 송옥의 작품 중 10편 정도가 풍간하는 내용으로 송옥 부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 밖에 작품 속의 산수 묘사와 여인 묘사도 후세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산수 묘사는 <고당부>에 잘 나타나는데, 중국 산수 문학의 비조로 알려져 있을 만큼 묘사가 섬세하고 뛰어나다. 여인 묘사는 <신녀부>·<등도자호색부>·<풍부(諷賦)>·<무부> 등에 두루 보이고, 이 역시 후세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신녀부>는 중국 문학사에서 신녀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최초의 작품으로, 조식(曹植)의 <낙신부(洛神賦)>가 이 작품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형식을 살피면 송옥의 작품에는 초사체(楚辭體)와 부체(賦體) 특징이 동시에 보인다. 때문에 부체 문학의 형성을 연구하는 데 큰 가치가 있다. 송옥의 작품 중 <구변>과 <초혼>이 초사체이고, 나머지 <풍부>·<고당부>·<신녀부>·<등도자호색부>·<적부>·<대언부>·<소언부>·<풍부>·<조부>·<어부>·<초왕문>은 부체(賦體)다. <초혼>은 서사(序辭)·초사(招辭)·난사(亂辭)로 이뤄져 있는데, 이 중 서사는 산문화되어 있어 초사체에서 부체로 넘어가는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이는 굴원의 <대초(大招)>가 서사가 없는 순수한 초사체인 것과는 다르다.
송옥의 부는 앞이 산문, 중간이 운문, 결말이 산문으로 이뤄져 있다. 이러한 3단 구조는 한부의 형식에 그대로 수용되었다. 또한 화려하고 세밀한 묘사는 지나치게 수식을 강구하는 한부의 표현 형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
때문에 송옥은 실질적으로 한부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문학사에서 그의 위상을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문학사가인 루칸루(陸侃如)가 ≪굴원과 송옥(屈原與宋玉)≫에서 “고대에 굴원과 송옥이 없었더라면, 문학사는 그렇게 찬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중국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 특히 중국 고전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굴원과 송옥부터 손대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했을 정도로 송옥의 문학 작품은 초기 중국 문학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00자평
송옥은 굴원(屈原)의 초사(楚辭)를 계승 발전시키고 한부(漢賦)의 기틀을 마련했다. 중국의 대표적인 문학사가 루칸루(陸侃如)는 “고대에 굴원과 송옥이 없었더라면, 문학사는 그렇게 찬란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 특히 중국 고전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굴원과 송옥부터 손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단언했다. 국내 최초로 그의 전 작품을 번역 소개한다.
지은이
송옥(宋玉)은 전국(戰國) 시기 초(楚)나라 언(鄢) 사람으로, 대략 초나라 경양왕(頃襄王) 원년(BC 298)에 태어나 초나라의 마지막 임금 부추(負芻) 때 세상을 떠났다. 초(楚) 양왕(襄王)의 신하로 있으면서 간언도 하고 계책도 올렸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대부(大夫)로 있던 등도자(登徒子)와 당늑(唐勒)의 모함을 받은 적이 있다. 문학사적으로 그는 굴원(屈原)의 초사(楚辭) 문학을 계승 발전시키고 한부(漢賦)의 기틀을 마련한 작가로, 중국 문학사에서 큰 위상을 갖고 있다. 그의 작품은 현재 20편 정도가 전하는데, 뜻을 이루지 못한 심정과 군주를 일깨우고자 풍간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널리 알려진 <구변(九辯)>·<고당부(高唐賦)>·<신녀부(神女賦)> 등이 있다.
옮긴이
권용호는 경북 포항 출생으로 중국 난징대학교 중문과에서 고전 희곡을 전공했으며, 위웨이민(兪爲民) 선생의 지도 아래 ≪송원남희곡률연구(宋元南戱曲律硏究)≫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동대학교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중국 고전 문학의 연구와 번역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거시적 관점에서의 중국 문학 연구와 중국학의 토대가 되는 경전의 읽기와 번역에 관심을 두고 있다. 저서로는 ≪아름다운 중국 문학 1≫, ≪아름다운 중국 문학 2≫, ≪중국 문학의 탄생≫이 있고, 번역한 책으로는 ≪중국 역대 곡률 논선≫, ≪송원 희곡사≫, ≪중국 고대의 잡기≫(공역), ≪초사≫, ≪장자 내편 역주≫, ≪그림으로 보는 중국 연극사≫, ≪꿈속 저 먼 곳−남당이주사≫(공역), ≪서경≫ 등이 있다.
차례
구변(九辯)
초혼(招魂)
풍부(風賦)
고당부(高唐賦)
신녀부(神女賦)
등도자호색부(登徒子好色賦)
적부(笛賦)
대언부(大言賦)
소언부(小言賦)
풍부(諷賦)
조부(釣賦)
무부(舞賦)
미영부(微詠賦)
어부(御賦)
대초왕문(對楚王問)
대우인문(對友人問)
대혹인문(對或人問)
고당대(高唐對)
영중대(郢中對)
보우인서(報友人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은나라의 탕 임금이 가로세로 70리의 땅으로, 주나라 문왕이 가로세로 100리의 땅으로 백성을 이롭게 하고 해를 제거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세상 사람 모두 그들에게 귀순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미끼가 아주 달콤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남면해서 세상을 다스렸습니다. 몇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으니 그 낚싯줄은 아주 튼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백성이 그 은택을 입고 사람들이 그들의 벌을 두려워하니, 이는 그 낚싯바늘이 잘 굽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업을 이루고도 무너지지 않고 큰 이름을 세우고도 바뀌지 않으니, 이는 그 낚싯대가 아주 강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낚싯대가 부러지고 줄이 끊어지며, 미끼가 떨어지고 낚싯바늘이 부러지며, 물결이 사납게 일어 물고기들이 사라지는 것은, 하나라의 걸과 은나라의 주가 낚시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옵니다. 지금 현연이 낚시하는 것을 보면, 왼쪽에는 통발을 차고 오른손으로 바싹 마른 낚싯대를 쥐고서 연못가에 서 있거나 버드나무 가운데에 기대어 있습니다. 눈으로는 물고기의 입이 낚싯바늘을 무는지만 살피고, 머릿속으로는 온통 붕어와 방어뿐입니다. 안색은 초췌하고 마음은 피폐해져, 즐거움보다 수고로움이 더 많고, 수확한 것에 비해 고생을 더 많이 합니다. 그러니 이 사람은 물가에서 고생만 하는 사람이온데, 폐하께서 무슨 칭찬할 것이 있겠습니까? 폐하께서 만일 요와 순과 같이 거대한 낚싯대를 만드시고 우와 탕같이 긴 낚싯줄을 내던져 큰 강에 드리우고 바다에 던져 놓으시려 한다면, 수많은 백성 중에 폐하의 것이 아닌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이 폐하께서 낚시하는 방법이라면 이 또한 즐겁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