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야마토 모노가타리(大和物語)≫는 전본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173단의 와카 설화로 이루어진 우타모노가타리(歌物語) 작품이며, 예로부터 ≪이세 모노가타리(伊勢物語)≫와 더불어 와카 제작을 위한 교양서로 평가되어 왔다. ≪고금 와카집(古今和歌集)≫, ≪후찬 와카집(後撰和歌集)≫과 같은 칙찬집이 연이어 편찬되던 당시, 궁정 귀족에게 와카(和歌)는 일상의 필수품이 되었다. 때와 장소에 맞춰 노래 한 수 읊지 못하면 풍류(風流)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우타모노가타리라는 형식의 작품이 생겨난 것이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와카가 읊어졌는지 하는 정황과 작가(作歌)의 결합이 중요시되어 이것이 ≪이세 모노가타리≫나 ≪야마토 모노가타리≫와 같은 우타모노가타리의 출현을 재촉했다. 가집(歌集)에서도 머리말에 해당하는 고토바가키(詞書)가 중시되어 그것이 점차 길어지고 있던 당시 가단(歌壇)의 경향과도 합치한다.
헤이안 시대(平安時代)에는 노래에 얽힌 작은 이야기들이 무수히 많이 존재했다. 유명한 노래의 경우 그 작자가 유명인이고 연애 스캔들로 잘 알려진 인물이면 흥미로 인해 이야기는 끊임없이 화제가 된다. 그런 식으로 소문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세월이 흐르면 이전(異傳)도 생겨나고, 의도적인 허구도 섞이게 마련이다. 대부분은 어느 한 장소에 국한된 구승 문예였던 이야기가 정선(精選)되고 수집되어 ≪야마토 모노가타리≫와 같은 우타모노가타리 작품이 생성된 것이다.
헤이안 시대의 귀족 생활 안에서 와카는 신분이나 계급, 남녀 간의 차별을 한시적이라고는 해도 뛰어넘을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었다. 일상적인 언어는 경어로 대표되는 것처럼, 현대인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신분 차별의 체계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일상의 언어로는 전달 불가능한 것도 와카와 같은 시적 언어에 의해 전달이 가능해지고 마음의 교류가 생겨난다. ≪고금 와카집≫의 가나 서문에서 기노 쓰라유키(紀貫之)는 당대의 노래가 ‘연애의 정취를 이해하는 풍류인(色好みの家)’의 것이 되어 궁정에서 군신이 교류에 사용하는 공적인 가치가 상실되었다고 한탄하고 있다. 칙찬집(勅撰集)의 서문이라고 하는 입장도 있고, 사적 세계에 묻힌 와카를 공적인 것으로 복권시키려는 의도는 제쳐 두더라도 와카의 공사에 걸친 기능을 잘 나타내고 있다. 와카가 사적으로는 ‘풍류’의 행위이며 남녀의 연애를 중심으로 제작된 것은 이러한 사생활에서 와카의 기능과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야마토 모노가타리≫는 사랑 노래에 의한 마음의 교류를 그리다가도 뜻하지 않은 결말을 그리기도 하고, 보다 넓고 다양한 생활 속의 많은 정황을 묘사하고 있다.
모노가타리는 사실의 전승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 ≪야마토 모노가타리≫는 실존 인물의 이름이나 관위에 따른 호칭을 부여해 그 점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실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전승의 사실성을 기반으로 화자나 필자가 모노가타리의 제공자와 읽은 책의 내용을 그대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과 허구와의 구별은 그리 쉽지 않다. 소재의 내용에서 허구라고 판정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소재는 사실이라도 언어에 의한 표현이 허구성을 내포할 때도 있다. 말의 표현은 본질적으로 허구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을 자각한 상황에서 문학적 리얼리티의 세계가 태어난다.
가어(歌語)의 표현이 가진 수사적인 허구성과 그 기교 연습은 가케코토바와 엔고(縁語) 등에 따라 문학의 지평을 열었다. ≪다케토리 모노가타리≫도 마찬가지지만 ≪야마토 모노가타리≫에도 언어유희라고 할 수 있는 표현이 넘칠 정도로 가득하다. 그 언어유희가 아니면 진심을 쉽게 표현할 수 없었을 것으로 판단되며, 따라서 단순한 일상 언어로는 불가능한 문학적 세계가 가능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200자평
와카(和歌)는 일본 고유의 정형시다. 헤이안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와카를 지었고 어떻게 즐겼을까? ≪야마토 모노가타리≫는 와카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함께 소개한다. 재치 있고 멋들어진 와카뿐 아니라, 애틋한 사랑 이야기, 섬뜩한 민담, 화려한 궁중 생활 등 당시 사람들의 모습도 맛볼 수 있다.
옮긴이
민병훈은 일본의 센슈대학(専修大学)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 문학연구과에 입학해 ≪이세모노가타리≫를 중심으로 하는 우타모노가타리 연구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2001)를 취득했다(문부성 국비장학생). 박사 과정 중에 집필한 논문 <≪伊勢物語≫六段の<あくたがはといふ河>考−地史的視点から−>가 ≪国語と国文学≫에 게재되었다. 귀국 후 2002년 9월 대전대학교 일어일문학과의 전임 강사로 임용되어 현재 국제언어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에 ≪歌物語の淵源と享受≫, ≪일본의 신화와 고대≫, ≪わかる日本文化≫(공저, 외국어 고등학교 국정교과서), ≪出雲文化圈と東アジア≫(공저), ≪한 권으로 읽는 일본 문학사≫, ≪이세 모노가타리≫(역서), ≪다케토리 이야기≫(역서) 등이 있으며, 최근의 주요 논문으로 <≪土佐日記≫における楫取蔑視の視座>, <神話に見る英雄の神性>, <≪土佐日記≫に見る送別の諸相>, <≪竹取物語≫の主題と方法>, <≪土佐日記≫の方法−<前の守>と<船君>と−>, <≪다케토리모노가타리≫의 성립 시론−모노가타리의 시조성−>, <神話における征討者と統治者の映像>, <≪다케토리 모노가타리≫의 원천과 수용>, <≪고사기(古事記)≫에 나타난 오쿠니누시(大国主神) 상> 등이 있다.
차례
1. 데이지 천황(亭子の帝)
2. 여행지에서의 꿈(旅寝の夢)
3. 갖가지 색(ちぢの色)
4. 옥합(玉くしげ)
5. 숨긴 탄식(忍び音)
6. 속절없는 하늘(はかなき空)
7. 원치 않았던 이별(あかぬ別れ)
8. 하룻밤 만난 그대(一夜めぐりの君)
9. 가을의 끝자락(秋の果て)
10. 강물 같은 세월(昨日の淵)
11. 스미노에의 소나무(住の江の松)
12. 봄날 밤의 꿈(春の夜の夢)
13. 울며 견디오(泣く泣くしのぶ)
14. 연못의 수초(池の玉藻)
15. 밤의 흰 구슬(夜の白玉)
16. 망우초(忘れ草)
17. 흔들리는 억새(なびく尾花)
18. 봄나물(若菜)
19. 저녁녘의 가을비(夕ぐれの時雨)
20. 월계수(月の桂)
21. 숲 속의 잡초(もりの下草)
22. 물들인 가죽 색깔(染革の色)
23. 산 물소리(山水の音)
24. 당신 기다리는(君松山)
25. 천년 소나무(ちとせの松)
26. 은밀한 사랑(忍ぶ恋)
27. 산에서도 번뇌는 여전히(なほ憂き山)
28. 안개 속(霧の中)
29. 마타리(をみなへし)
30. 후케이 포구(ふけゐの浦)
31. 끝이 없는 꿈(見はてぬ夢)
32. 무사시 들의 초목(武蔵野の草)
33. 항상 푸른 나무(常磐木)
34. 이 꽃(この花)
35. 오우치 산(大内山)
36. 담죽(呉竹)
37. 꽃 피는 봄(花咲く春)
38. 사라져 가는 돛(消え行く帆)
39. 나팔꽃 위의 이슬(朝顔の露)
40. 반딧불이(ほたる)
41. 무상(無常)
42. 마당의 서리(庭の霜)
43. 요카와(横川)
44. 뜬소문(ぬれごろも)
45. 마음의 그늘(心のやみ)
46. 잊힌 사람(いそのかみ)
47. 깊은 산속의 단풍(奥山のもみぢ)
48. 하늘을 건너는 긴 봄날(空行く春日)
49. 숙소의 국화(宿の菊)
50. 울창한 봉우리(木高き峰)
51. 꽃의 색깔(花の色)
52. 깊은 마음(深き心)
53. 사슴 울음소리(鹿の鳴く音)
54. 돌아갈 수 없는 여행(帰らぬ旅)
55. 숨졌다고 들어도(限りと聞けど)
56. 전에 왔던 말(もと来し駒)
57. 산마을의 주거(山里の住居)
58. 구로즈카(黒塚)
59. 우사(宇佐)
60. 타오르는 연정(燃ゆる思ひ)
61. 여운의 등나무 꽃(なごりの藤)
62. 운명(宿世)
63. 봉우리의 폭풍(峰のあらし)
64. 봄 안개(春がすみ)
65. 구슬 발(玉すだれ)
66. 할미새(いなおほせ鳥)
67. 빗물 새는 집(雨もる宿)
68. 나무 지키는 신(葉守の神)
69. 사냥복(狩ごろも)
70. 소귀나무(やまもも)
71. 산벚꽃(山桜)
72. 연못 거울(池の鏡)
73. 아무리 기다려도(待つとてさへも)
74. 집의 벚꽃(宿の桜)
75. 고시의 시라야마 산(越の白山)
76. 강 물떼새(川千鳥)
77. 아카시의 포구(明石の浦)
78. 노골적인 사랑(うちつけの恋)−여자
79. 스마의 포구(須磨の浦)
80. 고향의 꽃(ふるさとの花)
81. 지난 이야기(過ぎし言の葉)
82. 구리고마 산(栗駒山)
83. 홀로 지키는 잠자리(わが守る床)
84. 맹세한 목숨(誓ひし命)
85. 빈 조가비(うつせ貝)
86. 봄나물(若菜)
87. 갈림길의 눈(別れ路の雪)
88. 기 지방 여행(紀の国の旅)
89. 어살의 빙어(網代の氷魚)
90. 덧없는 마음(あだごころ)
91. 부채의 향(扇の香)
92. 12월의 그믐(師走のつごもり)
93. 이세 바다(伊勢の海)
94. 처소를 지키는 이(巣守)
95. 고시 길의 눈(越路の雪)
96. 파도 이는 포구(浪立つ浦)
97. 달의 영상(月の面影)
98. 유품의 색(形見の色)
99. 봉우리의 단풍잎(峰のもみぢ葉)
100. 강가의 황매화(岸の山吹)
101. 만나지 못한다는 약속(逢はぬにちぎる)
102. 오늘 하는 이별(今日の別れ)
103. 은하수(天の川)
104. 이슬 같은 신세(露の身)
105. 휘파람새 소리(うぐひすの声)
106. 물억새 잎(荻の葉)
107. 옛날 사랑(むかしの恋)
108. 패랭이꽃(常夏)
109. 소의 목숨(牛の命)
110. 젖은 소매(ぬるる袖)
111. 이별의 강(別れ路の川)
112. 동풍(東の風)
113. 이데의 황매화(井手の山吹)
114. 칠석(たなばた)
115. 가을밤(秋の夜)
116. 오랜 탄식(長き嘆き)
117. 귀뚜라미 소리(松虫の声)
118. 해변의 모래(濱のまさご)
119. 홰치는 닭(ゆふつけ鳥)
120. 매화(梅の花)
121. 대나무 피리(笛竹)
122. 이런저런 고민(かつがつの思ひ)
123. 풀잎의 이슬(草葉の露)
124. 남오미자(さねかづら)
125. 오작교(かささぎ橋)
126. 물 긷는 여자(水汲む女)
127. 다홍빛 소리(くれなゐの声)
128. 수사슴(さを鹿)
129. 약속한 달(契りし月)
130. 꽃이 핀 억새(花すすき)
131. 울지 않는 휘파람새(鳴かぬうぐひす)
132. 활시위 달(弓張り月)
133. 우는 모습 보는 것만으로(泣くを見るこそ)
134. 못 만나는 밤도(あはぬ夜も)
135. 히토리(火取り)
136. 지루한 하루(つれづれの思ひ)
137. 시가 산의 가을(志賀山の秋)
138. 늪의 잡초(沼の下草)
139. 아쿠타가와 강(芥川)
140. 풀 베개(草枕)
141. 뱃길(浪路)
142. 사는 동안(命待つ間)
143. 자이지 님(在次の君)
144. 가이 길(甲斐路)
145. 바닷가 물떼새(浜千鳥)
146. 도리카이인(鳥飼院)
147. 이쿠타 강(生田川)
148. 갈대 장수(蘆刈)
149. 도적이 출몰하는(沖つ白浪)
150. 사루사와 연못(猿沢の池)
151. 단풍 비단(紅葉の錦)
152. 말하지 않고 생각하는 것(いはで思ふ)
153. 등골나물(藤袴)
154. 부정 씻은 닭(ゆふつけ鳥)
155. 산 우물물(山の井の水)
156. 백모 버린 산(姥捨山)
157. 말구유(馬桶)
158. 사슴 우는 소리(鹿鳴く声)
159. 구름 위를 나는 새 문양(雲鳥の紋)
160. 가을 싸리(秋萩)
161. 오시오 산(小塩の山)
162. 사모초(忍ぶ草)
163. 국화의 뿌리(菊の根)
164. 지마키 장식(かざりちまき)
165. 결국에 가는 길(つひに行く道)
166. 우차 속의 여인(女車の人)
167. 꿩 기러기 오리(雉 雁 鴨)
168. 이끼 옷(苔の衣)
169. 이데의 소녀(井手のをとめ)
170. 연한 버들가지(青柳の糸)
171. 후회하는 마음(くゆる思ひ)
172. 우치이데 해변(打出の濱)
173. 고조의 여자(五条の女)
해설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부채의 향(扇の香)
산조 우대신이 중장(中将)으로 계실 때, 가모노 마쓰리(賀茂の祭)의 칙사로 지명되어 외출하셨다. 그런데 부채를 잊고 나와, 이전에 다니셨던 여자로 오랫동안 찾아가지 않은 사람에게 “이 같은 용무로 외출합니다. 다만 쥘부채를 들어야 하는데 이것저것 바쁘게 뛰어다니다 보니 들고 나오는 것을 그만 잊어버렸습니다. 하나 보내 주세요”라고 써서 보냈다. 마음 씀씀이가 자상한 여자였기 때문에 틀림없이 훌륭한 물건을 보내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계실 때, 색깔도 무척 아름답고 향기도 상당히 훌륭한 것을 보내왔다. 그것을 뒤집어 보자 끄트머리에 노래가 적혀 있었다.
불길하다고 삼간다 해서 무슨 보람 있을까
괴로움을 부채에 실어서 보냅니다
ゆゆしとて 忌むとも今は かひもあらじ
憂きをばこれに 思ひ寄せてむ
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 마음 깊이 감동해 반가를 읊어 보냈다.
불길하다고 모두 삼가는 것을 나를 위해서
없다 하지 않으니 어찌 모른 체하리
ゆゆしとて 忌みけるものを わがために
なしといはぬは たがつらきなり
* 주) 부채는 가을바람이 불면 잊히기 때문에 남녀 관계에서 부채를 선물하는 것은 기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