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주인공 ‘도블라토프’는 출감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미국에 도착한 그는 러시아에서 들고 온 여행 가방을 구석에 처박아 두고 까맣게 잊어버린다. 어느 날 그는 우연한 계기로 그 가방을 발견하고 열어 본다. 셔츠, 양말, 양복, 단화, 모자, 장갑 등 특별한 물건은 없지만 그 안에 깃든 추억은 특별하다. 그는 가방 속 물건들 하나하나에 얽힌 일화들을 떠올린다.
각각의 일화에는 소비에트 러시아의 부정적인 단면들이 간접적으로 드러나 있다. 하지만 도블라토프는 이마저도 유머로 승화시킨다. 이에 그 사사로운 추억들은 친구에게 흥미로운 경험을 듣는 것처럼 느껴지고 마치 우리의 이야기인 것처럼 공감을 일으킨다. 그러나 사실 이 이야기는 ‘픽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렇게 이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소비에트 사회의 모습이 너무나도 그럴듯하고 생생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소설 속 설정과 실제 ‘원형’ 사이에 공통분모를 두고 예술적으로 가공하는 것은 도블라토프의 주된 창작 기법 중 하나다. 이러한 기법과 유려하고 유머러스한 입담이 우리를 자연스럽게 소비에트 러시아 사회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여행 가방≫은 미국으로 이민 간 도블라토프가 소비에트 시절부터 준비했던 모든 작품을 출판한 뒤 순수하게 미국에서 쓴 것이다. 도블라토프는 이 작품을 통해 이민 작가로서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세련되고 성숙한 문체와 기교를 선보여 작가로서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그의 작품을 무엇 하나 게재해 주지 않았다. 때문에 미국에서 집필을 시작한 이 책의 출판은 작가 개인에게 뜻깊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작가 사후에는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등에서 여러 도블라토프 관련 문화 행사가 열렸는데, ≪여행 가방≫ 육성 녹음 CD, ≪여행 가방≫ 캐리커처 등 각종 기념 상품을 팔기도 했다. 이는 도블라토프와 ≪여행 가방≫의 위상을 보여 주는 것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소비에트 러시아 시절의 문단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편협했는지 보여 주는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0자평
러시아 현대 문학의 대표 작가로서 뛰어난 예술성과 대중성으로 인정받은 세르게이 도블라토프의 작품이다. 주인공 ‘도블라토프’는 미국으로 이민 후 잊고 지냈던 여행 가방을 우연히 발견하고 들어 있는 물건 하나하나에서 추억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각각의 일화는 소비에트 러시아 사회의 부정적인 단면을 보여 주고 작가는 이를 유머로 승화시킨다. 역자는 작가의 느낌과 스타일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구어적 문체로 번역했다.
지은이
세르게이 도나토비치 도블라토프(Сергей Донатович Довлатов, 1941∼1990)는 러시아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단편 작가로,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고 있다. 도블라토프는 1941년 9월 4일 피난지 우파에서 태어났고, 3년 후 전쟁이 끝나자 부모가 지내던 레닌그라드로 돌아간다. 이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1959년 레닌그라드대학교 핀란드어과에 입학한다. 3학년 때 입대해서 3년 중 열 달은 코미 공화국, 나머지 기간은 레닌그라드에서 복무한다. 제대 후 신문방송학과에 재입학하지만 졸업은 하지 못하고 신문사를 전전하며 글을 쓴다. 1976년 프랑스와 이스라엘에 있던 러시아 이민 잡지들에서 도블라토프의 단편들이 실리더니, 이듬해 미국의 ‘아디스(Ardis)’ 출판사에서 ≪보이지 않는 책(Невидимая книга)≫이 출판되었다. 정부의 요주의 인물이 된 도블라토프는 다니던 신문사에서 해고당한다. 1978년 2월 아내와 딸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 버리고, 여름에 무위도식과 포주 등의 억지 죄목으로 체포된 뒤 출소와 함께 곧장 고국을 떠난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반년을 보낸 도블라토프는 미국으로 입성, 가족의 재결합과 함께 작가로서의 재기에 성공한다.
미국에서 도블라토프는 작가가 되었다. 고국에서 무수히 퇴짜를 당했던 글들을 다듬어 출판했고,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1980년부터는 ≪노비 아메리카네츠(New American)≫라는 러시아 이민 잡지를 발간, 큰 반향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어로 된 작품들이 영어 및 다른 언어들로 번역되어 나가면서 도블라토프는 명실상부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도블라토프는 끝내 고국에서는 작가로 인정받을 수 없었다. 50주년 생일을 기념으로 고국에서 출판될 책들이 나오기 열흘 전 1990년 8월 24일 갑작스런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작가로 고국 땅을 밟고 싶었던 도블라토프의 오랜 숙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는 기억되고, 그의 책은 읽히고 있다.
옮긴이
김현정은 경남 마산에서 출생했다. 1996년 부산대학교 노어노문학과에 입학했고, 2003년 러시아 정부 장학생으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학교 러시아어문학 및 교육학과 석사 과정에 입학, 2005년 논문 <도블라토프의 작품 세계 속 <여행 가방>(Книга <Чемодан> в творчестве С. Д. Довлатова)>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6년 대한민국 관정 이종환 재단 국외 장학생으로 동 대학 박사 과정에 입학, 2009년 논문 <도블라토프의 <우리들의>와 가족소설의 전통(Книга С. Д. Довлатова <Наши> и традиция семейного романа)>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단편소설 연구를 계속해 나가고 있다.
도블라토프 연구 논문으로 <≪여행 가방(Чемодан)≫ : 이민 작가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물건(вещи)”에 묻어 있는 소비에트 러시아의 체취>, <“짧은 이야기(рассказ)”의 미학으로 본 러시아 문학(제정러시아의 체호프와 소비에트러시아의 도블라토프)>, <세르게이 도블라토프의 ≪보존지구(Заповедник)≫ 속 푸시킨의 정치적 “슬라바(слава 영광)”에서 미학적 “슬로보(слово 단어)” 찾기>, <수용소 문학 :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1862)과 도블라토프의 ≪교도소≫(1982) “공연”을 통해 바라본 범인(犯人)의 범인화(凡人化)>가 있으며, 번역서로는 ≪우리들의≫(지만지, 2009), ≪보존지구≫(지만지, 2010)가 있다.
차례
여행 가방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아침에 편집장실로 호출을 받았습니다. 사무실에는 쉰쯤 되는 낯선 남자가 앉아 있었죠. 깡마르고, 귀 위쪽에 화환을 쓴 것 같은 대머리였습니다. 모자를 쓴 채로 머리를 빗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남자는 편집장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사무실 주인은 손님 의자에. 나는 소파 가장자리에 앉았습니다.
“인사드리세요.” 편집장이 말했습니다. “국가안보위원장 칠랴예프 소령이십니다.”
나는 예의 바르게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소령은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주변 세계의 불완전함이 그를 언짢게 하는 듯 보였습니다.
편집장의 행동에서 나는 − 동시에 − 동정과 고소함을 보았죠. 그의 모습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뭘 봐? 끝장났지?! 이제 스스로 잘 빠져나가 보라고. 내가 그리 경고했건만, 바보같이….”
소령이 입을 열었습니다. 날카로운 목소리는 그의 찌든 모습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아르투르 토른스트렘을 아시는가?”
“네.” 나는 답변합니다. “어제 알게 되었습니다.”
“반체제적인 질문 같은 걸 하지는 않던가?”
“그러진 않았습니다. 질문을 하고 그러진 않았습니다. 기억나는 건 없습니다.”
“하나도?”
“제 생각엔, 하나도.”
“어떻게 처음 알게 되었는가? 정확히,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되었지?”
“저는 타이피스트들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가 들어와서 묻기를….”
“아, 묻기를? 그러니까, 물어는 봤다는 거지?! 뭐에 대해서, 밝힐 수 있겠나?”
“그가 물었습니다. 여기가 화장실인가요?”
소령은 이 문구를 메모하고, 덧붙였습니다.
“좀 더 집중해 주길 요청하네….”
이후의 대화는 내게는 전혀 무의미한 것들이었습니다. 칠랴예프는 모든 것을 궁금해했고. 우리가 무엇을 먹었는지? 무엇을 마셨는지? 어떤 화가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는지? 심지어 스웨덴 사람이 자주 화장실을 갔는지도 궁금해했습니다.
-78∼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