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영국’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축구 종주국, 문화 산업 강국, 셰익스피어와 워즈워스, 디킨스 등 문학 대가들의 나라, 여왕과 공주, 왕자들이 아직도 한몫하는 나라, 신사(紳士)의 나라, 의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세계 최초로 발전시킨 나라, 20세기 초까지 세계의 4분의 1을 지배하는 영제국을 운영함으로써 현재 세계의 양상을 결정적으로 조형한 나라 등등.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이러한 영국의 특징들이 발현되는 데 영국 헌정 체제는 주요 기반이 된다. ≪영국 헌정≫은 영국 헌정 체제에 대한 역사상 가장 탁월한 해설서 가운데 하나다.
배젓이 영국 헌정을 논하기 위해 설정한 주제는 내각·국왕·귀족원·평민원의 네 기관과 각료 경질 등 실제 정치 행위들이다. 그는 이러한 주제에 경험적으로 접근했다. 기존 저술들을 이론에 치우쳤고 이론에만 기반한 세련성을 지녔다고 비판하며 이념이나 이론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을 의식적으로 거부했다. 영국 헌정의 실제 작동을 설명하기로 작정했던 것인데, 이는 헌법전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헌정 체제를 조망하는 효과적 방법으로 드러났다. 또한 그는 기능을 중심으로 설명했는데, 이는 영국 헌정이 훌륭하게 운영된다는 판단에서 당시 체제 전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데로 나아갔다. 이는 6년 전에 발간된 밀(J. S. Mill)의 영국 헌정에 대한 평가가 대의 정치 원리를 기준으로 삼아 비판과 개혁성을 띤 것과 대조된다. 그가 행한 논의의 독창성은 정치 분석에서 인간의 감성과 성향, 그리고 국민성 등 소위 비이성적 요소를 중요한 설명 인자로서 취급한 점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충성심과 존경심, 관습을 정치의 중요 요소로 파악하고 영국 헌정에서 국왕과 귀족원의 위상 및 기능을 독창적으로 설명했다.
≪영국 헌정≫에서 읽을 수 있는 주요 주제는 내각제 옹호론, 정치 제도와 인간성 및 국민성과의 관련성, 민주주의 비판론, 하층 사람들의 성향 분석 등이다. 이 주제들에 관한 배젓의 논설은 기본적으로 ‘빅토리아 시대 자유주의자’의 입장에서 전개된 것이다. 더 나아가 배젓의 시각은 전체적으로 당시 영국의 번영과 위세에 만족하며 그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보수주의자의 시각이라고 평가된다.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그리고 반민주주의가 배젓의 주장을 평가할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요소인 것이다. 더욱이 배젓의 분석과 주장이 21세기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빅토리아 시대의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그리고 반민주주의에 대한 파악을 넘어서 더욱 날카로운 판단이 필요할 것이다.
200자평
월터 배젓은 공식 헌법전이 존재하지 않아 헌법 해설가가 유별나게 권위를 지니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헌법 해설가다. 이 책에서 그는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고려할 필수 사항들, 즉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대비, 의회 작동에서 관건이 되는 요소들, 여론과 언론의 기능, 국민의 정치의식과 정치제도의 관계 등을 논의한다.
지은이
월터 배젓은 영국이 세계 최고의 번영과 국제적 위세를 누리던 빅토리아 시대에 활약한 뛰어난 언론인이며 문필가다.
문법학교와 브리스톨 칼리지를 거쳐 개혁을 표방한 신생 대학인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공부했으며 22세에 최우등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변호사 자격을 얻었으나 법률가 대신 가업인 은행 경영과 문필가의 길을 선택했다.
다방면에 재능이 있던 그는 20대부터 문필가로서 활동을 시작했고 곧 큰 주목을 받았다. 세간에 그의 능력을 각인시킨 글은 ≪인콰이어러≫의 특파원으로서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를 보도한 <1851년 프랑스 쿠데타에 관한 편지>다. 여기서 그는 프랑스 국민성을 주요 설명 인자로 채택한 독창적 설명과 재기 넘친 문체를 선보였다. 29세에 ≪내셔널 리뷰≫라는 새 잡지를 공동 창간했는데, 여기에 발표한 의회 개혁에 관한 논설은 그를 당대 이슈에서 유망한 논객의 지위로 올려놓았다.
자유무역을 기치로 내건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를 창간한 윌슨(J. Wilson)의 딸과 결혼하고, 1861년부터 ≪이코노미스트≫의 편집장으로서 본격적인 언론 활동을 시작했다. 오늘날 150년이 넘는 역사를 쌓은 ≪이코노미스트≫가 주간 평론난의 제목을 “배젓”이라고 쓸 만큼 그는 이 잡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대표 저술로는 빅토리아 전성기의 영국 헌정 체제를 분석한 ≪영국 헌정≫(1867), 진화론을 선구적으로 채용해 정치 발전의 기제를 구명한 ≪자연학과 정치학≫(1872), 런던 은행과 금융계를 분석한 ≪롬바드 거리≫(1873), 경제학 논저인 ≪영국 정치경제학의 전제≫(1876) 등이 있다.
옮긴이
이태숙은 서울대학교에서 <버크의 역사관과 보수주의>로 석사 학위를,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에서 <웨이크필드와 식민체계화 운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제국주의와 영국 정치사를 주제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저서로 ≪근대 영국 헌정: 역사와 담론≫(한길사, 출간 예정), ≪서유럽 무슬림과 국가 그리고 급진 이슬람주의≫(공저, 아모르문디, 2009)가 있다. 번역서로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한길사, 2008), ≪빅토리아 시대 명사들≫(경희대학교출판국, 2003), ≪영국 제국주의: 1750∼1970≫(공역, 동문선, 2001) 등이 있다.
김종원은 경희대학교에서 <둔부의회의 무역 정책과 1651년의 항배법>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서유럽 무슬림과 국가 그리고 급진 이슬람주의≫(공저, 아모르문디, 2009)가 있고, 번역서로 ≪제국≫(민음사, 2006), ≪과거는 낯선 나라다≫(공역, 개마고원, 2006), ≪역사의 격정: 자율적 반란의 역사≫(공역, 미토, 2003), ≪영국 제국주의: 1750∼1970≫(공역, 동문선, 2001) 등이 있다.
차례
제2판 서문
제1장 내각
제2장 군주제
제3장 군주제 (계속)
제4장 귀족원
제5장 평민원
제6장 내각 변경에 관해
제7장 이른바 견제와 균형
제8장 내각제의 전제 조건과 영국 내각제의 특징
제9장 영국 헌정의 역사와 그 결과: 결론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나는 적절한 근거가 제시될 수 없는데도 영국 국민이 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조약이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나는 외교에 존재했던 과묵함 가운데 많은 것들이 공개적으로 이야기되었던 편이 훨씬 더 나았음을 역사가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 최악의 가족은 구성원이 서로에게 결코 마음을 터놓지 않는 경우다. 그들은 실제와 다른 분위기를 유지하며 모두가 반감을 억누르며 산다. 국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해 당사자들은 협상자들이 조약을 체결한 실질적인 이유를 듣기 때문에 거의 언제나 더 이익일 것이고, 협상자들은 업무를 훨씬 더 잘해 낼 것이다.
-55쪽
훌륭한 의회는 최고로 중요한 선거 단체이기도 하다. 의회가 한 나라의 법률을 제정하는 데 적당한 정도라면, 의회의 다수는 분명히 그 나라의 평균 지적 수준을 대표할 것이다. 분명히 의회의 다양한 의원들은 그 사회에서 발견될 여러 가지 개별적 관심, 견해, 편견을 대표할 것이다. 의회에는 온갖 특정 분파의 옹호자가 있을 것이고 어떠한 분파에도 속하지 않는 광범위한 중립 단체-국민 그 자체처럼 동질적이고 공정한-의 옹호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단체가 가능하다면, 행정부를 선출하는 데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단체다.
-115쪽
미국에서는 단일 경쟁에 중요성이 압도적으로 집중됨으로써 정당에 몰두하는 현상이 악화되고, 뇌물로 공직을 약속한 것이 실현될 가능성이 커진다. 승자가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자기 마음대로 자리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342쪽
소수는 대중의 이성을 장악해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환상과 관습을 장악해 통치한다. 그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멀리 있는 사물에 관한 그들의 환상과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주변 사물에 관한 그들의 관습을 장악해 통치하는 것이다.
-4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