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자평
컬러가 일상화되면서 영화의 색채는 점점 더 화려해졌고, 그만큼 더 중요해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관객들은 영화에서 색채의 중요성을 깊이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컬러가 일상이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것. 그러나 색채의 원리와 색채의 정서에 대한 이론을 토대로 대중문화가 토해 내는 무수히 많은 색채의 향연을 즐긴다면, 이는 분명 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책은 현대 추상화의 대표 작가 가운데 한 명인 바실리 칸딘스키의 색채 이론을 토대로 검정과 하양에서부터 파랑과 노랑, 빨강과 초록, 주황과 보라, 그리고 회색에 이르기까지 각 색채가 어떤 정서를 지니고 있는지, 그 원리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실제로 어떤 영화감독이 어떤 작품에서 특정 색채를 효과적으로 사용했는지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지은이
강성률
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다. 서울시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서 영화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며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영화제 심사를 했다. 지금까지 지은 책으로는 『영화 비평-이론과 실제』(2016), 『여행은 아빠의 방학숙제다』(2015), 『한국의 영화 감독 4인을 말하다』(2015), 『은막에 새겨진 삶, 영화』(2014), 『감독들 12』(2012), 『친일 영화의 해부학』(2012), 『영화는 역사다』(2010), 『한국영화, 중독과 해독』(2008), 『친일영화』(2006), 『하길종 혹은 행진했던 영화 바보』(2005) 등이 있다.
차례
01 영화 속 색채, 색채의 영화
02 하양, 천상의 색채, 또는 무(無)의 세상
03 검정, 죽음과 중후 사이
04 회색, 그 중도의 머뭇거림
05 노랑, 황금의 찬란함과 깊은 광기
06 파랑, 이상향적 우울
07 빨강, 열정과 경고의 아이러니
08 초록, 안정과 위협의 역설
09 주황과 보라 또는 보라와 주황
10 영화 팔레트, 장이머우의 <영웅>
책속으로
이 책의 목표는 영화 속에 등장한 색채의 의미를 분석하는 것이다. 컬러 시대가 된 이후 영화에서 색채의 중요성은 여기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색채는 등장인물의 심리 표현이며, 이를 인지하는 관객의 수용이고(거꾸로 말하면 이를 표현하는 감독의 재현 코드고), 이렇게 ‘기호’로 소통이 되니 하나의 ‘문화’가 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색채에 관심이 있고 인류학에 관심이 있으며 무엇보다 영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읽으면 작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색채에 대한 여러 이론과 심리, 이를 통해 영화에서 사용되는 색채의 실제 효과에 대해 이 책은 집중적으로 다루려 했다.
“색채는 심리고 기호며 문화다” 중에서
홍상수 감독은 남성의 성적 욕망을 그 누구보다 섬세하게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영화 가운데 <생활의 발견>(2002)을 보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남성은 춘천에서는 무채색의 옷을 입고 있지만 경주에서는 빨간 옷을 입고 있다. 다시 말해 춘천에서는 그를 좋아하는 여성이 적극적이라 남성은 방어하는 차원이 강했다면, 경주에서는 그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여성을 징하게도 찾아가고 따라가서 조르는 역할을 맡았다. 마치 발정난 개처럼 남자 주인공은 끊임없이 여성에게 접근한다. 빨강은 이런 색이다.
“빨강, 열정과 경고의 아이러니” 중에서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미술적 시각에서 초록을 정의했다. 노랑과 파랑이 결합해서 발생하는 초록의 특성에 주목한 것인데, 그는 “종국적으로 두 개의 대립적인 운동은 서로 무화되고 완전한 부동(不動)과 정지 상태가 생겨난다. 여기에서 초록색이 생겨”난다고 했다. 노랑의 원심력과 파랑의 구심력이 하나의 색채에서 만나 완전히 정지해 버린 것. 그래서 칸딘스키에 의하면 “절대적인 초록색은 존재하는 모든 색 중에 가장 평온한 색”이다. 괴테가 더 이상 요구하지도 않고 요구할 수도 없는 색이라고 한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초록, 안정과 위협의 역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