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자평
인간 이외의 동물은 이미지를 만들지 못한다. 인간만이 자기 앞의 사물에 의미를 부여할 능력이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미지를 열망하고 창조하는가. 인간의 삶은 이미지와 함께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인류학적 보편성으로 답을 찾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지가 인류학적 필요에 조응한다는 것은 진실이지만 그럼에도 인류 삶의 시기마다 이미지를 향한 욕망과 의지의 색깔은 결코 같지 않다. 이 책은 서구를 무대로 이미지에 관한 그 질문에 답한다. 서구의 긴 역사에서 이미지는 상징, 재현, 운동의 양상으로 모습을 바꾸어 갔고 연속보다는 단절과 불연속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왔다.
지은이
하상복
국립목포대학교 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다.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브뤼셀자유대학교 철학과를 거쳐 프랑스 파리9대학(Dauphine)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석사학위를 마치고 정보사회정책연구원(KISDI)에서 정보통신 분야 국제협력 관련 일을 했다. 상징·이미지와 권력의 정치적 관계가 주된 연구 테마다. 주요 저술로는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변동 읽기』(2016), 『죽은 자의 정치학-프랑스, 미국, 한국 국립묘지의 탄생과 진화』(2014), 『광화문과 정치권력』(2010), 『광기의 시대 소통의 이성-푸코&하버마스』(2008), 『빵테옹: 성당에서 프랑스 공화국 묘지로』(2007), 『세계화의 두 얼굴-부르디외&기든스』(2006) 등이 있다.
차례
01 이미지, 초월과 상징의 길
02 진리 인식의 장애물로서 이미지-플라톤의 이데아론
03 성상 옹호와 성상 파괴-이미지 숭배와 배척의 역사
04 근대적 이미지 원리, 원근법의 탄생
05 근대와 이미지-이성의 구현물
06 칸트와 미적 주체의 탄생
07 근대의 위기와 파노라마 시각의 등장
08 현대와 이미지-기술의 지배
09 문학적 상상력과 운동하는 이미지
10 근대 너머의 이미지, 상징의 복귀?
책속으로
로고스페르 시대의 이미지는 종교적 필요에 강하게 결부되어 있었고, 그 점에서 이미지 제작의 진정한 주체는 결코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은 단순히 대리자일 뿐이었다. 초월적 계시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는 단순한 관념체나 허상일 수 없다. 오히려 신성함을 두르고 있고 성스러움을 끌어안고 있는 생명이다.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등장한 그라포스페르 시대의 이미지는 종교라는 기능적 필요가 아니라 예술이라는 표현적 필요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미지, 그 다면적 양상들” 중에서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에 대한 극단적인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이 진리 인식에서 이미지가 수행하는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림자라는 이미지만을 본 죄수들은 태양을 마주함으로써만 진리의 세계로 들어올 것이지만 문제는 처음부터 그렇게 할 수 없다. 따라서 서서히 익숙해지는 방법을 따라야 한다.
“진리 인식의 장애물로서 이미지-플라톤의 이데아론” 중에서
자본주의적 논리로 구축된 대도시에서는 넘쳐나는 흥미로운 볼거리를 만날 수 있다. 그 볼거리들은 인공적인 조명 기술의 힘으로 한층 더 매력적으로 빛난다. 여기서 우리는 스펙터클(spectacle)이란 용어를 떠올리게 된다. 대도시의 사람들은 인공적인 도로와 공간을 따라 걸으면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여러 시각적 이미지들을 만난다. 익명의 대중적 공간인 도시는 멈추어 서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밀려드는 사람들의 물결 때문이다.
“근대의 위기와 파노라마 시각의 등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