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한국동화문학선집’은 동화작가 100명의 대표작 선집이다. 7인의 기획위원이 작가를 선정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추천했다. 삽화가 없는 동화책으로, 작가가 직접 쓴 자기소개, 평론가의 수준 높은 해설, 깊은 시선으로 그려진 작가 초상화가 차별성을 더한다. 작고 작가의 작품은 초판본의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휘문고보에 다니던 1924년 6월 <물고기 이약이>를 교지 ≪휘문≫에 발표했던 이태준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에 착수하기 시작한 1930년 이전에 아동문학 작품들을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소설 작품의 모티프라는 점에서, 그의 소설 세계에서 차지하는 의미 역이 상당하다. 즉, 그의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동화와 소년소설들에 먼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그의 행적은 식민지 소년들의 궁핍한 처지와 자신의 것을 동일시한 증거다. 어려서부터 곤궁한 환경에서 자라서 고학으로 학업을 겸행할 수밖에 없었던 그로서는 식민지의 열악한 현실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소년들의 처지를 동정할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그의 아동문학 작품들은 어떤 작품보다도 진실하다.
이태준은 자타가 공인하는 완벽주의자다. 자신을 억압하는 물적 조건을 극복하고자 결벽주의를 견지했다. 그의 태도는 서자에다가 고아라는 이중적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심리적 방어기제다. 어른이 되어도 고아의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교유 관계가 구인회원들을 비롯한 일부 작가들에 국한되었던 사실에서도 유추 가능하다. 그는 폐쇄적인 대인 관계에 입각해 카프를 외면하고 예술성을 앞세우며 문단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구인회는 이태준에게 한 번도 갖지 못했던 가족적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었다. 말하자면, 구인회는 그의 고아의식을 이완시켜 주는 심리적 울타리였다. 그는 구인회의 활동을 바탕으로 ‘아비관’을 갖추기에 이른다.
이태준의 고아 체험은 동화의 기본 정서로 배치되어 있다. 그에게 고아의식은 슬픔과 서러움이라는 감정 표지를 인식시켜 주는 정서적 체험이다. 더욱이 주권을 잃어버린 식민지민으로서의 그는 중첩된 상실감을 작품의 도처에 장치하고 있다. 이 점에서 그의 고아의식은 역사적 의미를 획득한다. 그가 한사코 동화 작품에서 상처투성이의 아이들을 등장시키고 나서 그들로 하여금 험한 세파를 이기도록 부추기는 것은, 고아의식에 절었던 그의 성장기의 내상을 반영한다. <불상한 소년 미술가>, <불상한 삼 형제> 등이 곤란했던 어린 시절을 기록한 추억담이란 점만 보더라도, 나라 잃고 부모 없는 아이들의 처지를 위로하고 싶었던 그의 바람을 확인할 수 있다.
200자평
이태준은 박태원 등과 구인회를 결성한 이로, 한국의 스타일스트라 불린다. 본격적인 작품 활동이 이루어진 1930년대 전 아동문학 작품을 발표했다. 그가 동화에서 상처투성이의 아이들을 등장시키고 나서 그들로 하여금 험한 세파를 이기도록 부추기는 것은, 고아의식에 절었던 그의 성장기의 내상을 반영한다. 이 책에는 <어린 守門將> 외 12편이 수록되었다.
지은이
이태준은 1904년 강원도 철원 태생의 소설가로, 호는 상허다. 휘문고보에서 교지 ≪휘문≫에 동화 <물고기 이약이> 등을 발표해 문재를 드러내던 중에, 동맹휴학의 주모자로 몰려 퇴학당하고 말았다. 일본에 건너가 1925년 단편 <오몽녀>를 ≪조선문단≫에 발표하고, 이듬해 조치대학교에 들어갔다. 가난으로 1927년 학업을 중단하고 경성에 돌아와 개벽사에 입사했다. 1931년 ≪중외일보≫ 기자를 시작으로 ≪조선중앙일보≫ 등에서 학예 면을 담당하며 문단과 연결 고리를 이어 갔다. 1933년 박태원 등과 유명한 구인회를 결성하고 소설 창작과 문단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해방을 맞아 카프의 서기장 임화를 도와 조선문학가동맹과 민주주의민족전선 등에서 적극 활약했다. 1946년 월북해 북한에서 표창장을 받고 북조선문학예술동맹의 간부를 역임하는 등 한때 잘나가는 작가에 속했다. 그러나 전쟁 책임을 두고 벌어진 일련의 투쟁에서 사상성을 의심받으며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환갑을 맞은 늘그막에야 작가의 지위로 복귀했다는 소식 외에, 현재까지 사망 연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엮은이
최명표는 1960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전북대학교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 시를 전공해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계간 ≪문예연구≫와 계간 ≪아동문학평론≫의 편집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간 지은 책으로는 이론서 ≪전북 지역 시문학 연구≫, ≪전북 지역 아동문학 연구≫, ≪한국 근대 소년소설 작가론≫, ≪해방기 시문학 연구≫, 평론집 ≪균형감각의 비평≫, ≪아동문학의 옛길과 새길 사이에서≫, 편서 ≪김창술 시전집≫, ≪김해강 시전집≫, ≪이익상 문학전집 Ⅰ∼Ⅳ≫, ≪유엽 문학전집 Ⅰ∼Ⅴ≫, ≪전북 문학 자료집≫ 등이 있다.
차례
어린 守門將
불상한 少年 美術家
슬픈 명일 秋夕
쓸쓸한 밤길
불상한 三 兄弟
눈물의 入學
외로운 아이
몰라쟁이 엄마
슬퍼하는 나무
馬夫와 敎授
달밤
點景
돌다리
해설
이태준은
최명표는
책속으로
그 이튼날임니다. 貴男이는 서울 가고 십흔 생각이 붓적 이러낫슴니다. 貴男이를 종처럼 들복가 먹든 주인집 아들 乙龍이까지 고향 학생들과 갓치 동행하여 서울 간다는 말을 듯고 貴男이는 더 일이 손에 잡히지 안엇슴니다. 걸핏하면 돌멩이나 부짓갱이나 잡히는 대로 때리고 할퀴든 乙龍이가 업서지는 것이 시원한 생각도 업지는 안엇스나 그보다도 자긔를 지금도 그처럼 구박하는 乙龍이가 서울노 공부 간다는 것은 장차 자긔 가튼 사람을 지금보다도 더 멧 배 구박할 준비로 가는 것 갓햇슴니다.
그래서 貴男이는 생각다 못 해 乙龍 아버지에게 사정하여 서울까지 가는 차표만이라도 하나 사 달라고 애원해 보앗슴니다. 그랫드니 열 달이나 너머 밤잠도 재우지 안코 소나 말처럼 부려 먹든 주인이엿만 “네까짓 자식이 공부가 무슨 공부냐. 일하기 실커든 냉큼 나가!” 하고 貴男이 등덜미를 내여 밀엇슴니다. 그뿐이겟슴닛가. 어듸서 엿드럿는지 乙龍이가 뛰여 드러오며 “엣다 서울 가는 차표다” 하며 貴男이의 뺨을 올녀붓첫슴니다. 貴男이는 아푼 뺨을 만지며 정신업시 乙龍이를 처다보앗슴니다. 乙龍이는 “쳐다보면 엇절 테냐” 하고 貴男이 얼골에다 침을 배텃슴니다. 貴男이는 그래도 침을 씻고 도라스려는데 乙龍이는 다시 “네까짓 게 서울 공부를 가?” 하고 이번에는 발낄노 피해 가는 貴男이 허리를 찻슴니다. 여기서는 마음 착한 貴男이도 더 참을 수가 업섯슴니다.
-<눈물의 입학>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