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이한직 시에 배어 있는 상실의 쓸쓸함은 일상의 뒷면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래서 가장 가까우면서 망각된 그 무엇을 끊임없이 상기하게 한다. 정신없이 생활에 쫓기며 산 기억,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혀 그것이 전부인 양 내달려 온 기억을 뒤로하고 시인은 무심코 지나쳐 온 수많은 사람과 순간에 서려 있는 안타까움을 되살려 낸다. 그때의 쓸쓸함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는 강렬한 유년의 빛, 이상의 빛에 눈멀어 있다. 이상의 빛 아래에서 지상의 사물은 비루함을 가까스로 견디며 서 있는 가련한 존재로 판명 난다. 물론 태양 빛이 그토록 찬연한 만큼 정확히 현실적 곤란과 어려움도 비례한다. 현실에 떠밀려 그는 겨우 발 디딘 이국의 영역, 죽음에서 장렬히 생을 마감할 것이다. 생은 파멸로, 죽음으로써 그것이 얼마나 무가치했던가를 온전히 증명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카루스처럼 결국 죽음을 향하더라도 찬연한 태양 빛에 매혹된다.
200자평
이한직 시인의 시를 엮은 ≪초판본 이한직 시선≫. 경향시의 정치 지향성과 모더니즘 계열의 시 모두에 반발하면서 나름대로의 순수시를 쓰려는 자세를 보인 저자의 다양한 시편들을 만나볼 수 있다.
지은이
이한직(李漢稷, 1921∼1976)의 본관은 전의(全義), 호는 목남(木南)이며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 아현리에서 이진호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진호는 구한말에 평안도 관찰사를 지냈고, 일제가 한국을 강제로 합병한 뒤에는 중추원 참의, 경북지사, 그리고 총독부 학무국장을 역임한 거물 친일파였다. 때문에 이한직은 당시 극소수 특권층만이 다녔던 서울 남산심상소학교와 경성중학교를 다녔다. 경성중학교를 졸업한 뒤 1939년 봄 일본 게이오대학 법학부에 입학하며 이어 ≪문장(文章)≫에 <풍장>과 <북극권>을 추천받아 등단한다.
등단 이후 경향시의 정치 지향성과 모더니즘 계열의 시 모두에 반발하면서 나름대로의 순수시를 쓰려는 자세를 보였다. 생전에 시집을 내지 않았고 죽은 뒤 1976년 21편의 시가 엮인 ≪이한직 시집≫이 발간된다.
엮은이
이훈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학부와 석사,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이청준 소설의 알레고리 기법 연구>(1999)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2007년 계간 ≪실천문학≫ 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주요 평론으로는 <지옥의 순례자, 역설적 상실의 제의-편혜영론>,<부재, 찰나, 생성을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 <냉장고를 친구로 둔 인간, 피뢰침이 된 인간>, <생의 환상, 공전의 미학-박완서론>, <사랑을 부르는 매혹적 요구>,<부정의 부정-허혜란론>등이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차례
風葬
駱駝
溫室
覊旅抄
北極圈
놉새가 불면
家庭
雪衢
東洋의 山
聳立
餘白에
黃海
花河
象牙海岸
幻戱
또다시 虛構의 봄이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詩人은
未來의 山上
毒
어느 病든 봄에
昧爽記
붕괴
비상
洗禮滿月
범람
항해
행진
瞋恚의 불꽃을
깨끗한 손을 가진 분이 계시거든
사월의 旗는
降下
부록: 시평
志向是非
投稿와 選者
낡은 衣裳을 벗은 해
精神生活 現實의 옳은 反映
上半期 詩壇의 印象
詩薦記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12쪽) <놉새가 불면>
놉새가 불면
唐紅 연도 날으리
鄕愁는 가슴 깊이 품고
참대를 꺾어
지팽이 짚고
짚풀을 삼어
짚세기 신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슬프고 고요한
길손이 되오리
놉새가 불면
黃나비도 날으리
生活도 葛藤도
그리고 算術도
다 잊어버리고
白樺를 깎아
墓標를 삼고
凍原에 피어오르는
한 떨기 아름다운
百合꽃이 되오리
놉새가 불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