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홉스의 ≪인간론≫과 ≪시민론≫을 합본한 ≪인간과 시민(Man and Citizen)≫(translated by Charles, T. S. K. Scott-Craig, and Bernard Gert, The Anchor Books edition, 1972)에 수록된 ≪인간론≫을 옮긴 것이다. 이 책은 시대에 뒤떨어진 생물학을 언급하는 1장과, 인간에 대한 직접적 논의와 무관한 광학을 다루는 2∼9장을 제외하고 10∼15장을 옮겼다.
10장은 ‘언어의 기원과 의미 그리고 언어와 학문의 관계’를 다룬다. 홉스에게 인간의 언어는 학문과 기술의 진보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유용한 발명품이지만, 오류와 망상의 원천이기도 하다. 따라서 언어의 유용성을 최대화하고 그 폐단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언어의 의미가 모호한 경우에 분석적 방법을 통해 그 의미를 명료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홉스의 입장이다.
11장은 ‘정념과 선악’의 문제를 다루는데, 모든 정념의 기초는 자기 보존과 자기 확장이다. 모든 존재는 자기를 보존하며 자기 영역이나 능력을 확장하려는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을 욕구하며, 그 반대의 것을 혐오하고 기피한다. 사람이 하는 일이나 학문도 그 유용성 때문에 선하다. 따라서 홉스에게 이성적 인식의 대상으로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선이나 악의 의미는 없다. 오히려 모든 욕구가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선악의 문제 역시 경험적 차원에서 논의될 뿐이다.
12장은 ‘다양한 정념들이 발생하는 과정’을 생기(animal spirits)의 작용을 통해 설명한다. 이것은 정신을 신체와 독립적인 실체로 생각했던 심신 이원론과 대비된다. 홉스는 정념은 두뇌의 생리적 반응이면서 동시에 정념들 상호 간의 인과적 반응이라고 언급한다. 더욱이 인간 상호 간의 관계에서도 발생한다고 보았다. 이는 오늘날 신경생리학이나 심리학에서 정신 문제에 접근하는 것과도 유사한 맥락이다.
13장에서는 ‘개인의 기질이 형성되고 변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인’을 언급하며 기질과 태도의 문제를 도덕 측면에서 설명한다. 홉스가 말하는 기질은 개인의 고유한 성향이다. 이 성향은 체질과 습관, 경험이나 교육, 가문과 같은 선천적 요인 등을 통해 형성되는데, 기질이 좋은 태도를 형성하면 덕이고 나쁜 태도를 형성하면 부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덕과 부덕을 곧 도덕의 문제로 처리하지는 않는다. 홉스는 개인적 덕과 도덕적 덕을 구별하는데, 이것은 개인을 자연체(natural body)의 측면과 정치체(body politic)의 측면으로 구별해 해석하려는 시도와 맞물려 있다.
14장에서는 종교 문제를 기적과 연관 지어 다룬다. 기적을 행하는 개인이 더 이상 없다면, 종교는 개인에게 의존해서는 안 되며, 신앙의 문제는 학문의 영역이 될 수도 없다. 학문은 기적의 영역을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홉스는 신학적 논쟁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사이비 논쟁으로 몰아붙여 버린다. 학문을 가장해 이런 논쟁이 진행되는 만큼 오히려 신에 대한 신앙만 해친다는 것이다. 이런 논쟁에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신에 대한 신앙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15장에서는 인공체로서 인격의 의미와 종류를 거론하며 논의를 마무리한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인격은 자연 상태로 존재하는 개인이 아니다. 개인은 사회적 관계에 의해 설정된 다양한 역할에 따라 다양한 인격으로 규정된다. 또 개인뿐만 아니라 인간들의 집단이나 무생명체조차 국가의 법률에 따라 인위적으로 규정된 사회적 존재를 의미한다. 따라서 인격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인간론≫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을 다루는 ≪시민론≫의 영역에 훨씬 가까우므로, 홉스는 이에 대한 구체적 논의를 ≪시민론≫에서 다룰 것이라며 ≪인간론≫을 마무리한다.
200자평
≪리바이어던≫과 함께 토머스 홉스의 철학 체계를 대표하는 ≪철학의 원리들≫ 3부작 중 하나다. 정신 작용을 유물론적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 17세기 철학자 홉스의 인간 개념, 기계론적 인간관과 근대적 개인관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지은이
토머스 홉스는 맘스베리 근처의 웨스트포트에서 하릴없이 도박이나 즐기던 무능한 목사 토머스 홉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당시 영국 사람들은 스페인 무적함대 아르마다가 침공한다는 소문 때문에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 또한 공포감에 짓눌려 홉스를 칠삭둥이로 낳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공포와 쌍둥이로 태어났다는 농담을 즐겼다고 한다. 하지만 이 농담은 외부의 공격 가능성에 언제나 대비해야 하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공포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상황을 설정하고 안정과 평화를 위해 인간에게는 국가라는 사회가 필요하다고 본 그의 인간관을 암시하기도 한다.
열네 살의 나이에 옥스퍼드의 매그덜린 홀(Magdalen Hall)에서 5년간 공부하며 학사 학위를 받은 후, 캐번디시 가의 가정교사로 지내면서 유럽 여행을 하며 폭넓은 학문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1608년부터 1610년 사이에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프랜시스 베이컨과 교류할 기회를 가졌고 그 뒤로도 친밀한 교분을 유지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함께 비난하는 것에 그쳤을 뿐 베이컨의 귀납적 방법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그가 연역적 방법을 학문의 방법으로 택했기 때문인데, 이에 대해서는 ≪인간론≫ 10장에 잘 설명되어 있다. 특히 1629년부터 1631년 사이에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유클리드의 기하학을 알게 되었고, 여기서 기하학의 논증적 방법을 자기 학문의 주요 방법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기하학의 논증적 방법을 학문의 근본 방법으로 택했다고 하더라도 사실 문제에 관한 한 지식의 기원을 경험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또한 인간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것은 외부 대상의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운동한다고 함으로써, 인간의 경우에 의식의 기원은 경험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이런 이유로 홉스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신학을 학문의 영역에서 배제하고, 많은 신학 용어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한다. 정신이라는 용어도 무의미할 수 있다고 하면서 미묘하고 유동적인 물체라고 새롭게 정의하기도 했다.
90세의 나이에도 저서를 출판할 만큼 만년에도 왕성한 학문 활동을 했다. 1679년 12월 초순, 캐번디시 가의 한 저택에서 9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옮긴이
이준호는 동의대학교 철학과와 경북대학교 철학과 석사 과정을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박사 과정(문학 박사)을 졸업했다. 서양근대철학회 부회장, 동아대학교 철학과 초빙교수를 지냈다.
저서로는 ≪데이비드 흄≫(살림출판사), ≪공학윤리≫(공저, 철학과현실사), ≪흄의 자연주의와 자아≫(박사 학위 논문, 울산대출판부) 등이 있고 역서로는 데이비드 흄의 ≪오성에 관하여≫(서광사), ≪정념에 관하여≫(서광사), ≪도덕에 관하여≫(서광사), 토머스 홉스의 ≪시민론≫(서광사) 등이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헌사
X. 언어와 학문
XI. 욕구와 혐오, 만족과 불만 그리고 그 원인에 관해
XII. 정념, 또는 정신의 동요에 관해
XIII. 기질과 태도에 관해
XIV. 종교에 관해
XV. 인공 인간에 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동물은 배고프지 않는 한 탐욕스럽지 않고, 자극을 받지 않는 한 잔혹하지 않은 반면, 인간은 앞날의 배고픔 때문에도 허기를 느낀다.
-34쪽
선과 악은 욕망함과 회피함 등과 서로 관련이 있다. 공통의 선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어떤 것에 대해 공통적으로 선한 것, 즉 많은 사람에게 유용하거나 국가를 위해 좋은 것이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 때로는 건강과 같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으로 말하는 것은 상대적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어떤 것을 전적으로 선이라고 할 수 없다.
-42~43쪽
다른 어떤 사람에게 일어난 나쁜 일을 보는 것은 만족스럽지만, 그 까닭은 그것이 악이라서가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의 일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죽음과 위험에 처한 비참한 광경을 신속하게 떠올리는 데 익숙하다. 마찬가지로 다른 어떤 사람의 좋은 것은 불만스럽다. 그것이 좋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의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51쪽
그들은 언제나 신의 지혜인지 신의 친절인지 의심하는 것처럼 예배를 올렸다. 그리고 이것은 미래를 불안해하는 거의 모든 생명체가 쉽게 헤아릴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종류의 예언에 어지러워하는 까닭이다.
-1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