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신의 법과 인간의 법의 대립이 주요 테마였다. 안티고네는 망자에 대한 예절을 지키며 신의 법을 수호하기 위해 죽음을 택하는 위엄 있고 당당한 어른의 모습이다. 반면, 순수함과 자유와 절대적 행복이 주요 테마로 나타나는 아누이의 작품 속에서 안티고네는 어린애 같고 절대적인 것을 추구하며 그것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젊음의 반항을 표현한다. 그러므로 아누이의 안티고네는 현실과 타협하며 위선적인 태도로 살아가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죽기 전에 자신이 왜 죽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고백하면서 자신의 죽음이 의미 없고 부조리한 일임을 깨닫는다. 아누이의 크레온은 섬세하고 고뇌하는 합리적인 통치자의 모습이다. 안티고네를 살리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그는 개인의 가치관이나 성향보다는 국가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책임감 있는 왕으로, 왕의 직무를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매일 수행해야 하는 노동자의 일과 같은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크레온은 개인의 정서나 취향과 상관없이 맡은 임무를 완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해야 하고 현실과 타협하면서 얻는 일상의 작은 행복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크레온의 모습은 완벽한 자유와 절대적인 것을 추구하며 그것에 위반되는 모든 것을 거부하고 죽음을 선택하는 안티고네와는 대조적이다. ‘네’와 ‘아니요’로 축약해 볼 수 있는 크레온과 안티고네의 긴 대결 장면은 악한 자와 선한 자의 대립이 아니라 삶의 자세가 다른 두 인물 간의 대립인 것이다. 아누이의 <안티고네>는 시공간을 초월해 보다 근원적인 질문과 성찰을 이끌어 내며 우리 각자에게 영원한 현재의 문제인 삶의 자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최고의 가치로 삼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 가치를 수호할 것인가?
200자평
장 아누이의의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한 <안티고네>. 작가는 순수한 이상을 품고 죽음을 택하는 안티고네와 그녀의 세계를 이해하고 갈망하면서도 통치자로서의 현실적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크레온의 대결을 통해 부조리한 세계를 살아가면서 꿈과 이상을 실현시키지 못하는 현대인의 고독과 비극을 보여 준다.
지은이
장 아누이(Jean Anouilh, 1910∼1987)는 전기가 없는 것에 만족한다고 밝힐 만큼 개인사가 공개되는 것에 대해 매우 조심했다고 전해진다. 1910년 보르도에서 양복 재단사인 아버지와 바이올리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누이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 덕분에 오페레타 등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을 파리에서 보내고 법학을 공부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중단하고 광고 회사에 다니며 일종의 문장 훈련 기간을 보낸다. 청년 아누이는 샹젤리제 극장에서 자주 공연을 관람했는데 1928년 공연된 장 지로두(Jean Giraudoux)의 <지그프리트(Sigfried)>에 완전히 매료되어 연극계에서 일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당시 샹젤리제 극장의 상임 연출가였던 루이 주베(Louis Juvet)의 비서로 취직하면서 연극계에 몸담는다. 1932년에 발표된 첫 작품 <흰 담비(Hermine)>가 성공을 거두자 아누이는 극작가의 길에 전념하기로 한다. 1937년에 공연된 <짐 없는 여행자(Le Voyageur sans bagage)>의 대성공으로 아누이는 극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다. <짐 없는 여행자>, <안티고네>, <도둑들의 무도회(Le Bal des voleurs)>, <종달새(L´Alouette)>, <베케트 또는 신의 영광(Beckett ou l´Honneur de Dieu)> 등의 성공으로 프랑스 연극사에서 중요한 극작가로 자리매김을 한 아누이는 평생 5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작품이 자아내는 분위기와 주제에 따라 아누이의 작품은 ‘검은 희곡’, ‘새로운 검은 희곡’, ‘삐걱거리는 희곡’, ‘새로운 삐걱거리는 희곡’, ‘화려한 희곡’, ‘장밋빛 희곡’, ‘가장 희곡’, ‘바로크 희곡’, ‘은밀한 희곡’, ‘익살스러운 희곡’으로 분류된다.
옮긴이
안보옥은 가톨릭대학교(구 성심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파리3대학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프랑스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다수의 논문을 썼으며, 번역서로 가스통 바슐라르의 ≪불의 시학의 단편들≫(2004), ≪장 아누이의 안티고네≫(2011) 등을 출간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3
장 아누이의 안티고네···············5
해설······················105
지은이에 대해·················113
옮긴이에 대해·················116
책속으로
안티고네: 물론이지. 각자 자기 역할이 있는데. 그는 우리를 죽여야 하고, 우리는 우리 오빠를 묻으러 가야 하는 거야. 그렇게 역할이 분배된 거야.